[내글내생각]재판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28 15:11:42, 조회: 248, 추천:0 

"그러니까, 피고는 원고의 가족을 살해한 죄로 이 자리에 선 것입니까?"
엄숙해야 할 재판장 내부에 수근거림이 가득했다. 하지만 판사도 이 상황에서 정숙을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그냥 묵인하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는 원고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원고를 대변하기 위해 서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원고석은 비어있었다.
"이의 있습니다! 피고의 행동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양측 변호인들의 논쟁은 여느 재판장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모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재판이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기상천외한 재판의 결과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의 카메라들 또한 이 재판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원고를 대변하기 위해 자진하여 이 자리에 섰다는 변호사가 냉정하게 대꾸한다. 사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은 것을 계기로 언론의 집중을 받고 있었다.
"생존이라구요? 이들이 도대체 피고에게 도대체 어떤 생명의 위협을 했다는 겁니까? 그가 피고에게 칼을 들이댔나요? 협박을 했습니까?"
피고측 변호인 또한 그에 맞대응한다. 하지만 변호인의 표정에는 뭔가 창피해 하는 기색이 보였다.
"원고와 그의 가족들은 피고의 집을 피고의 허락없이... 자기 마음대로 드나들어 피고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지저분한 몸으로 피고의 집을 어지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피고는 주위사람들에게 이 일에 대한 조언을 구했고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의견을 따랐을 뿐입니다."
피고측 변호인은 단어를 고르는 모습이 보였다. 감정대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억누르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그것이 어디가 생존에 위협이라는 거죠?"
"그의 지저분한 몸은 피고에게 질병을 옮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피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고의 집에 나타나는 그의 가족들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이의있습니다. 피고의 집이라고 했는데 사실 원고는 피고가 그 집에 거주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 집을 처음 건축하고 소유했던 전 주인에게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불행한 원고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멋대로 그 집에 눌러앉았으며 또한 원고와 그 가족들을 부당하게 핍박하였습니다."
사실 재판장 또한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적당히 하라고 소리치고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이 어처구니 없는 재판은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얼렁뚱땅 끝낼 수도 없었다.
"원고측, 그렇다면 피고가 도대체 어떻게 원고의 가족들을 해쳤다는 건가요?"
변호사가 신중한 얼굴로 서류를 꺼내 제출한다.
"제출한 서류는 살해당한 가족들의 부검결과입니다. 부검결과 그들의 사인은 질식사와 음독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것은 피고가 피해자의 가족들을 해치기 위해 구입한 가스가 원인으로 저희는 피고가 이 가스를 구입했다는 증거인 영수증 또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중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피고측 변호사가 애처롭게 소리쳤다. 사실 재판장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태반은 피고측 변호사를 동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가스 때문에 그들이 부당하게 생명을 잃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피고 또한 이 가스가 이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지요.”

결국 피고측 변호사가 참지 못하고 흥분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녀석아! 그럼 넌 집안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데 그걸 그냥 놔두냐!"


덧. 제 정신세계가 이래요(한숨)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51:13 

 

일병 김예찬 
  마지막에 흥분해서 소리치는 사람은 원고측 변호사가 아니라 피고측 변호사가 되어야하지 않나요? 2008-10-28
15:16:20
  

 

일병 송기화 
  예찬님/네 맞네요. 저 그래도 원고피고 헷갈려서 쓰고나서 10번도 더 읽어봤다니까요? 읽을수록 더 헷갈렸지만. 수정했습니다. 2008-10-28
15:18:45
  

 

병장 강석훈 
  재, 재밌다... 2008-10-28
15:20:37
  

 

병장 황인준 
  사람이 아니란 건 진작 짐작했지만, 
뭘까뭘가 궁금했었는 데, 바퀴벌레였군요. 허허. 

마지막 외침에서 피고측 변호사의 심정이 대략 짐작이 가네요. 
동정심이 절로 일어난다는. 2008-10-28
15:25:02
  

 

병장 전승원 
  우...우와, 대반전이야! 2008-10-28
15:27:42
  

 

상병 양순호 
  여기서 우리는 더러운 음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그렇게 더러운 음모는 아닐 것 같아요. 아마도) 


과연 판사는 인간일까, 바퀴벌레일까. . . 2008-10-28
15:34:14
  

 

병장 전승원 
  바퀴벌레와 인간 모두와 대화가 가능한, Joe 가 아닐까 싶군요. 
모두들 조의 아파트는 보셨죠? 에이, 설마. 2008-10-28
15:50:55
  

 

병장 정병훈 
  승원님은 말하고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할까봐 안절부절 하고 계십니다. 

낄낄낄 농담이구요. 

기화님의 글을 많이 봐서 그럴까요... 대충 예감했답니다 낄낄낄. 2008-10-28
16:30:50
  

 

병장 이동석 
  컥, 병훈님 댓글에서 너의 공격 패턴은 이미 파악했다는 명언이 떠오르는군요, 

강약중강약 

-강건마 2008-10-28
17:12:26
 

 

일병 송기화 
  와하핫. 역시 주민여러분들의 댓글센스는, 히히힛 
근데 역시 좀 다 비슷비슷하죠?(곰곰곰곰곰곰곰) 2008-10-28
17:21:27
  

 

병장 정병훈 
  이런... 기화님은 지금 

한페이지에 하나씩 들어가있는 자신의 글이 책주민들에게 식상하게 다가갈까 고민고민 
하고 있군요. 


하지만 고민할꺼 없어요. 
저처럼 안남기면 다들 찾게 되죠. (응?) 
그렇게 잊혀진 1人이 등장했습니다...(나?) 


남의 시선 의식하면 글 못쓰더라구요. 
그렇게 잊혀진 1인입니다.(앗.) 

기화님의 글이 사라진다면... 
마치 밤하늘의 별이 없는것과 같은 허전함이 느껴지겠지요 책마을에 말이에요. 2008-10-28
18:39:20
  

 

병장 정병훈 
  그나저나 동석님의 댓글은 정말 피식하게 하네요. 

지다니... 2008-10-28
18:4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