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잡담2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27 08:48:44, 조회: 163, 추천:0 

식탁 위에는 냄비가 한 개, 접시도 한 개, 젓가락도 한 짝.
"안먹어?"
"응."
"왜?"
"너 같으면 먹겠냐."
"아니, 도대체 왜!"
"라면+우유는 소주+맥주만큼이나 최악이야."
"아, 그래서 너 저번에 나랑 술마시러 갔을 때 아무것도 안먹고 멀뚱멀뚱 있었던거야? 그래서 그때 주변에서 나 완전 미친사람 취급했잖아."
"마시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던 게 누군데 그래? 넌 나랑 식성이 달라도 너무 달라."
A와 B는 라면을 하나 끓여놓고 티격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뭐 먹는 모습은 못 본 것 같네?"
"네가 매번 이상한 것만 먹어대니까 그렇지."
A가 먹자고 하는 음식은 매번 B의 식성에 맞지 않았다.
"어쨌건 라면에 우유를 넣으면 고소하니 맛있다니까? 맛이라도 봐!"
"아니, 됐어."
"정말 맛있다니까? 나 못믿어?"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인데?"
"자존심 문제지."
"엥? 자존심?"
"막상 먹어봤는데 맛있으면 어떻게 하냐? 그렇게 빼다가 갑자가 게걸스레 먹을 수도 없고."
"그래서 아예 안먹는다고? 저건 맛이 없을거야 맛이 없을거야 하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마치 '포도와 여우'같네."
"아, 저 포도는 셔서 못먹을거야, 그거?"
"그래, 그거."
"어쨌건 불겠다, 나라도 먹을래."
A는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B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A가 꺼낸 말에 B의 표정이 밝아진다. 기대하는 표정이다.
"그런 거 있잖아, 뭐더라? 붉은 실인가."
"실?"
"그 뭐냐, 손가락에 묶여있는거."
"뭐지, 그건. 가끔 네 얘기는 너무 붕떠있어."
하지만 B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드러나고 있다.
"그거 있잖아. 운명의 상대랑 묶여있다는 거."
"아, 그 실?"
"응, 그래 그래. 그게 진짜로 있을까?"
"만약에 있다면?"
B는 A의 이야기를 받아주는 데에는 달인이다. 있다 없다를 가지고 다투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만약에 그 실이 정말로 있는데, 보이지 않는 거라면, 웃기겠다."
"그러니까, 그 실이 정말로 있고, 보이지 않는 것 뿐이고, 네 눈에만 보인다면 말이지?"
"응, 그거야. 얼마나 웃길까?"
"어떤 점에서?"
"지나가는 모든 커플들의 손만 쳐다보게 될 것 같아. 실이 연결되어 있는지 아닌지."
"결혼한 사람들도?"
"응, 결혼한 사람들도. 뭐가 그리 좋아서 죽고 못사는지 궁금해."
"안돼, 넌 얼굴 표정에 다 드러나서."
"그게 왜?"
"실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커플들을 볼 때는 안타까운 표정이 빤히 보일 테고 실이 연결되어 있다면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이 보일테니까."
"징그럽잖아, 한쌍의 바퀴벌레."
"그건 그렇고, 다음 이야기는 실이 모두의 눈에 보일 경우인가?"
"오, 그렇지 그렇지. 잘 알고 있구만."
A가 대견하다는 듯이 말한다.
"야, 네 시덥잖은 이야기 들어온 게 몇년째인데."
B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B라고 표정관리에 뛰어난 것은 아니다.
"어쨌건 보인다면, 너무 재미없겠다."
"그러게."
"드라마도 영화도 소설도, 멜로물은 완전히 사라지겠지?"
"왜, 무궁무진하게 긴 붉은 실을 따라가는 2000페이지짜리 장편 소설이 나올 수도 있잖아."
"1시간 15분동안 실만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저 드디어 왔어요'하면서 남자랑 여자랑 만나고 끝나는 영화도 나올거고?"
"으아, 정말 재미없겠다."
"실이 연결되어 있는데도 마음이 안맞으면 죽을맛이겠네."
"실이 연결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단 낫겠지."
"하긴 남들 눈에 실이 다 보일테니까."
"역시, 실 따위는 없는 게 낫겠어."
"그러게나 말이야."
"그런데, 실 이야기는 어쩌다가 생각한거야?"
"아니, 라면 먹다보니까 면발이 실로 보이길래."
"하긴, 그 라면 면발이 좀 가늘기는 하지."
A가 남은 면발을 후루룩거리며 들이킨다.


덧. 밤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왔어요. 그러면 전 산책 후유증 제거를 위해서 올라가서 좀 자고, 오후에 다시 놀러올게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00:16 

 

병장 고동기 
  한숨 자고 왔을 뿐인데, 읽을 거리가 이렇게 많아지다니. 
일단 댓글부터 달고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2008-11-27
09:10:23
  

 

병장 이충권 
  계란+라면 밥+라면 떡+라면 만두+라면 은 먹겠는데 

치즈라면은 무슨 맛인지 못 먹겠네요 (어허허) 

근데 치즈만 따로 먹는건 좋아하는데 말이죠. 

조합이 중요한듯.. 2008-11-27
09:42:35
  

 

일병 조영준 
  저도 식성이 B와는 다른건지.. 

소주 + 맥주는 정말 좋아합니다.. 2008-11-27
10:56:11
  

 

병장 이동석 
  계란이나 치즈나 노란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허허. 
라면에 계란을 풀때 계란의 지방이 라면 국물을 순하게 만들고 면에 쫀득한 맛을 더하는것처럼 치즈도 유지방이 녹아들어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며 먹는건 아니지만 

새로운걸 시도해보는것도 괜찮죠- 
늘 먹던것만 먹기엔 세상에 먹어볼께 너무 많아요. 

그건 그렇고 라면이야기가 아니잖아요. 허허. 
그리고 왠지 A와 B는 기화님과 전에 언급하신 그 여자인 친구분-같군요. 

붉은실-이라거나 플라톤식으로 자신의 반쪽-이라거나 그런걸 믿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발상만은 재밌는데요. 허허. 2008-11-27
11:20:01
 

 

일병 송기화 
  소주+맥주에 대한 이야기가 될 줄 알았더니 
라면에 대한 이야기가 됐군요! 
전 이미 라면에 오만가지것들을 다 넣어먹어보았는데요 
우유는 그래도 양호한 맛이에요! 2008-11-27
13:19:33
  

 

상병 양 현 
  생각이 많은 이야기네요. 치즈라면은 그냥 라면에 치즈 녹인 맛이구요. 
우유라면은 그냥 고소한 맛이에요. 육개장에 그렇게 해먹는데 괜찮더라요. 

..맞아요. 저 실은 매운거 못먹어요. 으하하. 2008-11-27
17:5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