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잡담 마지막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2-12 16:26:10, 조회: 131, 추천:0 

A는 집 문앞에서 B를 기다리고 있었다. B는 곧 올것이다.
"어서 와."
A의 생각대로 B가 나타났다.
"음? 나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응. 올 것 같았거든. 들어가자."
A가 문을 연다. B가 따라 들어온다.
"왠일로 날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할 말이 있거든."
"할 말? 어떤건데?"
"나에 대한 이야기야."
A가 자리에 앉는다. B도 따라 앉는다. 늘 앉던 자리다.
"오늘은 왠지 진지하네."
"재미없는 얘기 할거야."
A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얼마나 됐지?"
"13년 정도."
"나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였어."
"응, 너 조용했어."
"부모님들도 걱정 많이 하셨데, 너무 낯을 많이 가려서."
"하여간 부모님들은 걱정도 많으셔."
"그러다가 너를 만난거야."
"놀이터에서 만났었지."
"그 옆에 있는 벤치에서 매일같이 떠들어댔지."
"응, 그런데 그때 얘기는 왜?"
"지난 13년동안 나는 나를 속인거지?"
B의 침묵.
"너는 내가 만들어낸거야. 맞지?"
"나에게 되묻는 게 무슨 소용이 있지?"
"하긴, 그래."
"어떻게 안 거야?"
"사실 13년 씩이나 몰랐던 게 이상하지. 넌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잖아."
"나에겐 실체가 없으니까."
"먹지도 않고, 문도 열지 않고, 물건을 옮기지도 않고, 소파에 앉지도 않고. 내가 본 영화는 모두 봤고, 내가 읽은 책도 모두 읽었고. 내가 말하는 상식도 다 알고있고."
"소파에 앉아봐야 난 무게가 없으니 눌리지 않아서 어색하거든."
"정말 어처구니 없는 건, 네 연락처도 모른다는 걸 어제 깨달았다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13년 동안이나 몰랐던거지?"
"의심되는 모든것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한거야."
"무시?"
"맹점같은 거지. 맹점은 알지?"
"네가 아는 건 나도 알아."
"나라는 존재는 너에게 중요한 역할이었거든."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에서 대나무 숲 같은 존재였지."
"대나무 숲 보다는 안전하잖아. 내 말은 너 외에는 아무도 못들으니까."
"어쨌건 그것도 오늘까지지."
"완전히 받아들인거야?"
"받아들이게 만든 건 너잖아."
"내가 뭐."
"저번에 자꾸 정신병 얘기 꺼내가지고 의심하다보니 이렇게 돼버린거잖아."
"넌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네."
"응?"
"헷갈려하지 마. 내가 하는 말은 네가 듣고 싶은 말이야. 네가 원한거라고."
"내가 원한 말이라고?"
"잘 생각해봐. 넌 이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
"원하지 않아? 내가 널?"
"되묻지 마. 넌 이미 알고있어. 난 네가 원하는 말을 한 것 뿐이야."
"내가 왜 널 부정하겠어?"
"넌 이제 낯가림하던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이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일까 탐색하던 바보같은 시절도 지났고."
"많은 사람들을 터놓고 만나보라는 거야?"
"내 말이 아니고, 그게 네가 원하는거야.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했어."
"난 별로 그런 생각따위 한 적 없는데."
"내가 한 말은 네가 하는 말이라고 했을텐데. 너도 알고있잖아. 억지부리지 마. 나를 아까워하지 마."
"그래, 난 사실 네가 아까워. 이렇게 재확인을 하고 나면 너를 더이상 만나지 못할수도 있잖아."
"그래, 대화같은 건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지만 넌 아직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나는 너야. 만나지 못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야. 그리고 난 어차피 존재하지 않아."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혼잣말인거지?"
"다른 사람 찾아다가 앉혀놓고 말하면 되잖아, 바보야."
"나한테 바보소리 들으니까 이상하네."
"자기 자신한테 설득당하는 게 더 이상해."
"이미 알아버린 걸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남들은 다 속여도 자기자신은 속이기 힘드니까. 물론 넌 지금까지 해왔지만."
"별로 자랑스럽지는 않네."
"어쨌건, 이제는 안녕인가봐?"
"그러게. 생각보다 혼란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영화에서 보던거랑 다르지?"
"응. 하긴, 어차피 넌 나니까."
"이제야 좀 제대로 알아들었구만."
"어이, B."
"응?"
"어떻게 멋있게 사라져줄거야?"
"그거야 네 맘이잖아."
"그렇다면 멋있지는 않겠네."
"잘 알고있네."
"아, 그러면 너랑 밖에 있을 때 난 얼마나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을까?"
"그런거 신경쓰면 오래 못산다."
"동네창피해서 어떻게 돌아다니지?"
"그냥 다녀. 어차피 지금까지 다녔잖아."
"하여간 너도 나라면서 어쩜 그렇게 태평하냐."
"몰라, 난 이제 사라질거야."
"야, 나 생각난건데. 내가 널 왜 의심하게 됐는지 알것같아."
"내가 정신병 이야기 꺼내서 그렇다며?"
"아니, 그게 아니었어."
"그럼 뭔데?"
"넌 나랑 이야기가 너무 잘 통했어."
"그거, 칭찬이네."
"응."
"뭐, 13년동안 헛고생한 건 아니구나. 그럼."
A가 눈을 깜빡였을 때, 자신이 혼자 소파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 매정한녀석."
A는 의도적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당분간은 버릇이 될 것 같다.

덧. 사실 좀 더 길게 가고싶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김빠진 콜라가 될 것 같아서요. 뭐, 지금도 밍밍하지만.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9:01:14 

 

병장 고은호 
  오호~ 결국은 그랬군요. 
주억. 주억. 2008-12-12
16:53:36
  

 

일병 김태경 
  A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군요(웃음) 2008-12-12
16:54:43
  

 

병장 양 현 
  A랑 B는 재밋네요. 
마치 사우스파크의 그녀석들이 떠올라요. 2008-12-12
17:13:52
  

 

병장 이동석 
  잔잔한 감동이라니, 허허. 이거 느낌있는데요? 2008-12-12
19:43:39
 

 

병장 임민규 
  일본 소설 "피아니스모 피아니스모" 가 생각나네요. 2008-12-13
12:40:19
  

 

병장 양 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가, 생겨나길 바라고 있어요. 히히. 2008-12-19
17: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