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잡담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24 13:27:32, 조회: 178, 추천:1
"어째 돈 낭비 같지 않아?"
TV를 보며 A가 물었다. TV에서는 막 발사된 우주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한없이 쓸데없는 짓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B가 대답한다. 전 세계의 첨단 기술이 모두 모인 우주선의 임무는 지구 밖의 새로운 생명체를 찾는 것이다.
"혹시 모르다니?"
A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묻는다.
"찾을 수도 있잖아, 외계인을."
B는 바닥에 앉아 소파다리에 기대어 앉아있다.
"그쪽에서 보면 우리가 외계인이겠지."
"헤에, 그렇겠네. 어쨌건 혹시나 찾을 수도 있잖아."
"찾는다고 다는 아니잖아."
"헤에,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B가 고개를 돌려 관심을 갖는다. A는 종종 어이없지만 재미있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저 우주선은 외계인을 찾으려고 떠나간거잖아. 그렇다면 만일 찾는다면 어떤 외계인이 발견될까가 중요한거지."
"흐음, 옳은 말이네. 애써 찾았는데 아메바 수준이면 헛탕이나 다름없다는 거지?"
"그래, 네 말대로 아메바같은 외계생명체를 찾으면 처음에는 지구 밖에도 생명이 산다고 들썩들썩 하겠지만 곧 끝이겠지. 하지만 그건 그나마 괜찮은 경우 같은데?"
"흐음, 더한 게 있단말이지?"
A는 늘 B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기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애써 찾았더니 저쪽에서 얼씨구나 하고 공격할 수도 있고."
"침략인 줄 알았다는 건가?"
"역으로 저쪽에서 쳐들어 올 수도 있는거고."
"어제 한 주말의 명화가 뭐였는데 그래?"
"너무나도 평화로운 종족이 말 그대로 낙원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을수도 있고."
"음? 그건 무슨 문제가 있는건데?"
"전쟁날껄?"
"지구에서 침략전쟁이라도 벌인다구? 우리는 아직 우주전쟁 같은 거 벌일 능력 없던 것 같은데."
"아니, 지구 내에서. 내전."
"아...? 알 듯 말 듯 한데."
"돈 많은 사람들은 저쪽으로 보내달라고 얼마든지 내겠지. 그리고 나머지들은 손가락만 빨면서 구경하고. 그러다가 보면 불만이 터지겠지. 돈없는 자들은 낙원에도 갈 수 없는 거냐고."
"아, 어렵다.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내 생각에 최악의 경우는 그런 게 아니야."
"더 심한 게 있단 말이지?"
B가 몸을 일으키며 되묻는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애써 찾아낸 신세계가 이곳과 똑같은거야. 쌍둥이처럼."
"도대체 어디가 최악인건데?"
"수백, 수천억을 들여서 전 세계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걸고 찾아낸 곳이,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 옆집이랑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거지."
"미안, 아직까진 그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잘 모르겠어."
B가 자연스럽게 A의 추가설명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정말 신기해 하겠지.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 전 우주적인 흐름을 탄 올바른 모습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고."
"내가 쓴 답이랑 남이 쓴 답이 똑같을때 안심할 수 있는 거랑 비슷한거구나? 그런데 그건 좋은 거 아니야?"
"그리고 그게 전부겠지. 보고 배울 것도 없고, 느낄 것도 없고. 이득되는 것도 없고."
"아아, 외계생명체를 찾는다는 인류의 희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건가."
"차라리 못찾으면 어딘가에는 있을거야, 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겠지만."
"굳이 가 볼 이유도 없고, 갈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런 상황이면 정말 전쟁날꺼야. 우주선을 만들어서라도 싸우겠지."
"왜?"
"똑같은 둘이 있는데 한쪽만 앞서나가면 얄밉잖아. 서로 견제하다가 싸움날꺼야. 게다가, 이기면 땅이 생기잖아."
"흐응-."
"배고프다, 밥이나 먹자."
"귀찮은데 라면이나 끓여먹자."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9:47
상병 김용준
호. A는 독특한 생각하는 사람, B는 호기심 강한 사람 같군요. 후후.
근데 뒷 얘기도 있나요? 잇으면 올려주세요.
호기심이 발동해버리네요. 어떤 이야기들을 할지...A와B가요. 하하.
잘 보고 갑니다.(웃음) 2008-11-24
14:02:43
상병 김상윤
마지막에 반전이 있지 않을까(예컨데, 이쪽이 외계인이라는)했는데,
역시 그런 뻔한 반전이 없는 편이 더 나은거 같네요, 흠? 2008-11-24
14:04:52
병장 김우열
호오 재밌는데요? 2008-11-24
15:00:18
병장 이동석
아, 기화님의 그 통통 튀는 상상력을 붙잡아 주머니속에 넣고 도망가버리고 싶을정도로군요. 허허. 2008-11-24
18:47:53
병장 정병훈
글이 물흐르듯 흘러가는군요.
글을 읽을 때 마다 느끼지만, 대충 느낌이 베르나르의 글을 읽는 느낌입니다.
추신.
기화님 요새 좀 바쁘신가봅니다. 글한편 툭 던져 놓으시고 어딘가 떠나셨네요. 흐흐 2008-11-24
20:05:23
병장 김낙현
바쁘신데도 뽑아내시는 건 여전하군요. 2008-11-25
00:39:20
병장 김현민
재밌습니다. 결국은 그런게 있었군요. 2008-11-25
05:3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