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우리의 역사. 그것을 꿈꾸며
상병 이지훈 2009-01-08 23:40:13, 조회: 101, 추천:0
역사란 무엇인가? 진부하고 식상한 물음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인간이 보편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 물음이기도 하다. 감히 계보학을 빌려와 역사라는 것을 살펴보면, 역사는 문자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인간들의 삶은 계속 되고 있었지만 그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인간들과 소통할 수 없었다. 역사가 과거와의 소통을 통해 미래의 환상을 지워가는 과정이라면 문자 없이 대화-인간의 육성이 닿는 범위 내에서 주고받는 말-로만 의사소통을 했던 문자 탄생 이전의 인간들은 역사와 거리가 멀었다 할 수 있다.
문자는 시공간을 초월한 소통이 가능토록 한다. 과거 인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 하면 미래의 인간을 위해 이야기를 남길 수도 있으며 현재 자신과 동시대를 사는 인간들과 과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을 인간이 깨달은 순간이 역사의 시작이다. 비록 소통의 공간적 제약이 불과 몇 백년 전까지 나름 심각하게 이어졌지만 최근 들어와 공간적 제약은 눈에 띄게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도구인 문자를 통해 인간은 시간 흐름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작업인 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시간 흐름 속에서 인간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알다시피 세상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의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간들은 스스로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가며, 둘, 셋 혹은 수천, 수만이 모여 인간 집단의 역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역사는 실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의 역사가 좋은 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파악하더라도 인간과 인간 집단이 이루는 역사는 무한에 가깝다. 이 모든 역사를 인간이 인식할 수는 없다. 인간이 역사를 최대한 인식할 수 있도록 정리, 편집하는 역할을 역사학이 한다. 그러나 역사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역사를 인간의 인식 범위 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늦기 전에 이 글에서 말하는 인식과 이해의 뜻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인식과 이해, 이 두 한자어의 차이에 대해 2006년 경 어느 나이 지긋하신 분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었으나 부끄럽게도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두 한자어의 뉘앙스 차이로 이 글에 쓰인 인식과 이해의 뜻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인식은 무엇인가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같다면, 이해는 고개를 끄덕임에 그치지 않고 그를 바탕으로 무엇가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의미 속에서 헤아려 본다면 인식이 이해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무엇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보편적인 혹은 사전적인 인식과 이해의 의미와 차이가 클 가능성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 의미로 사용했음을, 사용할 것을 밝힌다.
다시 돌아와서, 역사학은 우리의 역사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역사를 정리, 편집해야 한다. 다른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겠지만 역사학이란 학문은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역사학의 역할과 도움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학이 때로 역사 그 자체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이 자신의 역할을 넘어 감히 자신을 탄생하게 한 역사에 대한 패륜을 저지르면 역사는 사라져버리고 역사의 자리를 역사학이 차지하게 된다.
역사 인식은 주로 역사학의 성과물로 이루어진다. 역사 이해는 역사학의 성과물로 이루어진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학의 성과물들은 주로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물론 도서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역사학의 성과물이 전달되기도 하지만, 중등 교육까지 의무화가 된 현재 상황에서 교육을 통한 역사 인식이 역사 이해에 다른 것들보다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친다 할 수 있다. 현재의 역사 교육은 완전히 암기를 통한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기를 통한 역사 교육은 단순히 일제의 잔재라기보다는 식민지시대를 겪은 국가의 민족주의적 반작용으로 보인다. 사라진 국가를 재건하는데 있어서 역사는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이 되는 사상적 무기다. 국가가 피탈된 명백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시간과 고민, 노력을 요하는 역사 이해보다는, 민족과 국가의 뿌리를 든든하게 하여 당장 사상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역사 인식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역사 이해를 등한시하고 역사 인식을 중요시하여 무기화하는 흐름은 전쟁과 격동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국가를 포함한 우리네 사회의 안정(?)을 빌미로 강화되어 왔다.
역사 이해를 뒷전으로 미루고 역사 인식만을 중요시하다보니 민족과 국가 입장에서 중요한 사건과 민족, 국가 그 뿌리로부터의 시간적 구성에 대한 암기가 역사 교육의 주가 되었다. 역사 이해 없이 암기로만 구성된 역사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피곤함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현재 역사 교육은 과거의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어째서 우리가 배워야하고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외우게 하는데 그치고 있다. 조선시대 대동법의 시행이 대체 지금 우리네 삶에 무슨 의미란 말인가? 현 교육 과정에는 아무도 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즉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지도해주지 않는다.
잠시나마 역사 인식으로부터 오는 피로함을 잊은 것은 부끄럽게도 자성의 목소리가 아닌 중국, 일본 등 타인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스스로 깨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피로함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제거하려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은 것은 더욱 아쉽다. 피로함을 제거하지 못한 사이 잠시나마 잠을 깨운 저 목소리들도 역사, 역사학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제 정치, 국가 안보의 문제로만 조명되고 있다. 충분히 근본적인 역사 교육, 역사학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것을 자극적인 요소로 가득채운 채 ‘역사는 현실을 위한 것’이라는 기치만 높이 세우고 있다. 피교육자에게 피곤을 가져다주는 암기 위주의 역사 교육은 그대로이며, 이와 관계된 모두가 ‘입시’라는 방패를 세우고 그 뒤에 숨어서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 하지 않는다. 역사학의 패륜에 조금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 자들도 방패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대중화라는 돌을 무차별적으로 던지고 있을 뿐이다. ‘대중화’ 돌들은 대부분 마치 수능 후 고삼을 위한 상업적 이벤트의 느낌이다. ‘암기에 지친 그대에게’라는 느낌으로 등장한 이 돌들에게도 역사 이해를 위한 노력은 없으며 교과서, 교육 과정에 등장하지 않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의 단순한 나열, 또는 소비의 소요에 따른 공급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술과 음식을 소재로 한 사극 두 편의 흥행은 매우 고무적이었지만 뒤이어 등장한 사극들은 다분히 포퓰리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역사 아니, 재미있을 법한 옛 이야기를 역사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마약중독자가 힘들어 한다고 무한정 마약을 공급할 것인가? 언젠간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약은 없고 마약뿐이다. 결국 그는 마약에 취해 미래 따위는 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최근 쏟아지는 많은 서적들도 알고 싶은,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다룬다. 서적, 드라마를 저자, 연출자의 역사 이해 없이 단순히 덩어리들로 나열하는 것은 우리를 더 적극적인 소비자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현 교육으로는 불가능한 역사 대중화의 대안이 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역사의 대중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한국사인증시험은 또 하나의 자격증일 뿐, 이를 통해 퀴즈의 달인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지 어쩌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인증시험을 통한 취업 가산점 등을 이용해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겠다고 하는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상아탑 속의 고고한 학문의 위치가 낫다. 역사 대중화는 역사 교육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고 또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역사 교육의 근본적 수정 없이, 소리만 요란하게 오히려 작은 입시를 하나 더 만들어버린 꼴이다.
역사는 국가만의 것도, 민족만의 것도 아닐뿐더러, 그 무엇의 역사도 자신의 역사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 자신의 역사에 대한 굳건한 이해 없이 가까이는 자신 주변의 인간, 멀리는 국가와 민족, 세계와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다. 역사학이 제시하는 정리, 편집된 역사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를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역사와 역사학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역사학은 역사에 대한 패륜으로 역사 인식이 역사 이해를 수반하지 못하고 있으며 퀴즈 문제와 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 머물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를 경계해야하는 것은 역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당연한 일이다. 개개인이 역사를 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자각했을 때 우리의 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인터넷 중독자의 웹처럼 정보와 지식이 어지럽게 높이높이 쌓여서 저 멀리 있는 역사 이해의 창을 보지 못하게 하는 현재의 역사 대중화는 역사 이해를 수반하지 못하는 역사학의 대중화일 뿐이며 역설적으로 우리에게서 역사를 점점 빼앗아갈 것이다. 남는 것은 남의 역사, 아니 주인 없는 누군가의 ‘비도덕적’ 역사학뿐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4:20
상병 이석재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로 저를 당황스럽게 하실 줄이야. 허허. 역사 인식이 아니라 역사 이해가 중요하며, 현 역사교과로는 그 2개의 차이를 낼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네이女의 문제점도 이와 비슷한데, 지식인이 사람들에게 제대로된 지식을 가르쳐 주기는 커녕 오히려 편법적이고 간단한 퀴즈문제 알아내기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였지요.
그래서, 저는 현대 천추태후 뭐 이런작품보다는 왕의 눈물, 왕건,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최소한 왕건에서는 나레이션으로 -원래 궁예의 모습은 이렇게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각색한 것으므로 시청자들을 이해하기 바란다.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니까요. 2009-01-09
00:38:35
상병 김무준
음. 잘 읽었습니다. 2009-01-09
02:17:28
병장 이우중
도서관에서 E.H 카(맞죠?)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빌려서 조심스레 읽던 어느 날 술김에 "에이! 뭐야 이게! 하나도 모르겠네! @$#!$%@" 하며 던져버려서 잃어버린 뒤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허허. 왕과 비, 허준 이후로는 사극도 거의 보지 않았구요. 뭐, 티비 자체를 별로 안 보긴 했지만 말이어요.
잘 읽었습니다.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할텐데... 저 말입니다. 오해들 마시길. 2009-01-09
17:50:18
상병 김용준
음...저는 역사 이해보다는 역사 인식이 중요하다 생각하는데...재밌네요. 후후.
역사 인식 바탕으로 역사 이해...이 부분에서 역사 이해가 너무 주관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모든 사람들마다 틀릴텐데요...조금씩이라도요. 그런걸 생각하면 너무 위험한 발상 같네요. 끌끌끌. 모 그래요 제 생각은...낄낄낄. 2009-01-12
09:34:48
상병 이지훈
용준//
음? 당연히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전 저의 역사 이해를 남에게 주입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때문에 이 글을 작성한 것도 아니고요. 제가 쓴 글은 용준님께서 말씀하신 '개개인의 역사 이해'를 돕지 않는 역사 교육을 비롯한 몇몇 것들에 대한 넋두리입니다.
어떤 점이 위험한 발상인지 재차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2009-01-12
10:53:54
상병 김용준
제 말은 자신의 역사 이해를 남에게 주입시키는? 지훈씨가 말하는 그런 경우를 얘기 했던겁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자연스레 자기 주장이 나오게 되고...잘못 알고 있든 잘 알고 있든 역사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 이해가 들어간 발언으로 인해 생길 파장을 얘기하는겁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네요. 특히,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요. 2009-01-12
14:05:58
상병 이지훈
용준//
역사 이해가 역사 인식보다 더 중요하다기 보다는 인식이 이해보다 선행되어야할 무엇이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해와 인식은 위에서 밝혔던 것과 같고, 용준님이 생각하는 이해와 인식의 개념은 저와는 약간 다른 것 같은데요.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용준님의 역사 인식과 역사 이해 개념은 객관적 역사와 주관적 역사의 개념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흠. 우선 의사소통이 계속 진행되려면 이 부분이 명확해야할 것 같아요 2009-01-12
18:59:35
일병 황호상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인식과 이해에 대한 의미규정을 통해 현 실태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여, 역사에 문외한인 저로서도 쉽게 이해가 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더불어.. 말씀하신 주입식 역사교육의 피곤함은 제가 역사시간에 취한 숙면의 탄탄한 근거가 되겠군요. 하하.
역사인식, 즉 주입식 역사교육의 의도에는 말씀하신 국가 존립의 문제에 더해, 당파적 요소도 들어있다고 봅니다(신분상 자세한 얘기는 묻어두어야 하겠지만).
대중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은 골치아프게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단순한 오락요소로 즐기는데 급급하지 않나 싶어요. 주몽은 확실하게 인기몰이를 했고(주몽의 줄거리 설명과 유머요소, NG모음 및 출연진 인터뷰를 담은 '주몽 완전정복' 방영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천추태후 또한(안봐서 함부로 말은 못하겠지만)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지요.
사극과 서적의 '포퓰리즘' 지향은 결국 자본주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나 싶네요. 마약은 돈이 되니까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반면 사람들이 입에 쓰다고 찾지 않는 치료약 제조는 부진하거나, 제조되었다 해도 등한시되고 묻혀버리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결국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역사를 찾아가고자 하는 개개인들의 노력이 수반될 때 좀 더 가치있는 역사, 역사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겠지요. 현 실태로 보아 쉽지 않은 과제일텐데... 너무 어깨를 무겁게 해드리는 건 아닌가 싶지만서도- 지훈님의 열정으로 효과가 실하면서도 조금은 달짝지근한, 멋진 치료약을 만들어내 주기를 기대해 볼게요. 하핫. 2009-01-14
14:08:30
일병 황호상
사족으로 궁금한 것 세가지를.
우선 역사학의 패륜에 대해. 역사학이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거나, 또는 올바른 역사 이해를 방해하는 것을 패륜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대의 '식민사학' , 나아가 그에 대한 자주성 수호로 일어난 신채호 등의 '민족사학' 또한 패륜으로 해석될 수 있는건지 궁금합니다. 어디까지가 역사학의 패륜인지에 대한 정확한 감이 잘 오지 않아서요. ('사상적 무기' 라는 단어에 착안했습니다)
두번째. 대중화 서적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이덕일 씨의 ...역관 책도 한몫 했나요?
마지막으로, 2006년 경의 나이 지긋하신 분은 혹시 상신님....? 호호.. 2009-01-14
14:23:51
상병 이지훈
호상//
누추한 제 글방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거기에 장문의 답글까지. 제 누추한 글을 여러 번 보신 정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감사해요.
음...'패륜'이란 도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를 제가 남용했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역사학의 패륜은 일단 이 시대-역사 이해를 위해 개개인의 노력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된-를 겨눈 단어이기 때문에 다른 시대의 역사학에 대해 '패륜'의 잣대를 들이밀기엔 제 생각이 좀 짧은 감이 있습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지 않고 판단을 내려버릴 것만 같은...느낌이 듭니다. 조금 더 생각해볼게요
이덕일 씨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몽도요. 그 후에 등장한 제목만 봐도, 이게 왜 드라마로 나왔는지 알만한 드라마들도요.
그 분 맞습니다. 그 때는 왜 그 시간이 소중했던 것을 몰랐...아니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을까요. 허허. 다시 만나뵙고 싶지만, 글쎄요. 하하
지금 못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그리고 또 다른 글로 하지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