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용서와 페어플레이  
상병 문두환   2008-08-09 00:04:43, 조회: 221, 추천:1 

             용서라는 것은 용서를 안해도 되는 강자가 할 수 있는 자기선택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약자가 자청해서 할 수 있는 미덕이 아니다.
             용서란 승자가 베풀 때에는 도덕적 위대성을 과시하는 미덕일 수 있지만
             패자가 부르짖으면 꼴불견이 된다.
             비굴의 자기기만일 수가 있다.
                               
                               (강준만 편저, <리영희>, 개마고원 2004, 153페이지)

  우리말의 묘미는 한 단어가 가지는 묘한 뉘앙스와 함의적인 의미에 있다. 용서란 자비로움의 
상징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비겁한 자기변명이 될 수도 있고 도덕적 
우월성에 기반한 미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도 “X이 무서워서 
피하느냐 더러워서 피하지.”라고 말을 내뱉으며 사실상 상대하기 어려운 눈 앞의 적을 마음 편히 
외면할 구실을 마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란과 사소한 논쟁에 휩싸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진심일 수도 있지만 실상 문제를 회피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보인다. 

  세상을 살다보면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할 때가 많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을 알기 ‘때문’에 
진실 앞에 놓인 위험을 비껴가는 법을 배운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더 옳을 듯 싶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고 굴종하는 것은 현명한 처세법 이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차피 해서 되지도 않을 것, 미리 포기하고 ‘피’를 보지 않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는 우리는 말한다. 나는 과거를 용서했다. 그리고 지금은 ‘때’가 아니거나 그냥 더러워서 
피해버렸다. 라고.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는 참 많은 ‘용서’를 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선택적이었다기 보다 선택에 대한 
강요였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이익에 기대어 민족을 배반했던 이들을 용서했고 36년간 민족의 
뿌리마저 위협했던 이들을 몇 푼의 외화로 용서했다.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아버지였거나 
누이였거나 형이었던 이들을 숱하게 죽였던 이들을 용서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에게 
죄 진 사람들을 용서해 나갈 것이다. 

  말이 한참 엇나갔다. 하지만 몇 마디 더 보태야겠다. 누가 그랬던가. 계란으로 바위를 쳐 바위에 
흠 하나 가지 않더라도 바위에 덕지덕지 눌러 붙은 흔적들에게서 교훈을 배워 나갈 것이라고.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개론(국민개X끼론)’같은 말이 버젓이 떠돌고 
무슨 일이 생겨나든 배후가 누구냐부터 따져 묻는 지금의 현실에서 
나는 과연 이 사회에 상식이 무엇인지부터 묻고 싶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페어플레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0:29 

 

병장 윤영돈 
  눈앞에 벌어진 불화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것도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거겠죠 
용서란 강자가 할 수 있는 자기선택이라는 말에 동의. 
과거에 우리가 한 용서는 어불성설의 비굴함밖에 안되죠. 2008-08-09
00:36:40
  

 

일병 김세현 
  전 모르겠어요. 페어플레이라는게 어떤 건지. 작용하는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면 그 경계는 더더욱 애매모호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흐흐 
요즘처럼 배후 들먹이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그것도 그러한 요소들 중 하나 겠죠..아무개씨의 배후 언급과 관련해 이제 음모론은 대체로 좌파의 강박관념인 경우가 많았는데 갈 수록 우파의 집착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심히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거 저런거 해석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만이 답이겠죠! 

그나저나 똘레랑스의 기원이 생각나는군요. 이 기원이 종교전쟁이 바탕이라(너희들도 인정해준다식의?)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평등보다는 피측의 입장에선 다분히 동정의 성격이 강했다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군요..기냥 강준만씨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보니 조각조각 떠오른 기억이었답니다..크크 2008-08-09
07:11:26
  

 

상병 문두환 
  발췌한 글은 한양대 전 석좌교수였던 '이영희'교수가 썼던 글이고 
강준만 교수가 '리영희'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편집한 것이랍니다(웃음). 

상식의 개념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페어플레이의 기준 역시 피아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상식이든 페어플레이든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의 도덕선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요. 
보편적이라느니 일반적이라는 경계를 구분짓기 어려운 단어로 표현되어 
세현님 말씀대로 사뭇 말장난이나 지적유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한편으로는 진정한 용서와 페어플레이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 선(善)이나 철학의 부재로 의미가 연결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2008-08-09
08:33:40
  

 

일병 김세현 
  맞습니다! 탈국가든 세계화든 세상이 다양해직 복잡해질 수록 그러한 관념에 대한 대중적 논의는 더욱 활발해져야 된다고 들었는데...그러한 문화자체가 저희에게는 부족한 듯 싶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각종 괴상한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 마다 전 도대체 무엇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가에서 부터 출발하여 너무나 많은 혼란에 빠지기도 했죠. 이내 수능에 파묻혀 버렸지만.. 아무튼 그러한 문화를 부흥시키는게 제 작은 삶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크크. 2008-08-09
10:43:49
  

 

병장 이동석 
  간만에 훈풍하나가 불어오는듯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8-08-10
14:56:49
 

 

병장 윤형주 
  당최 좌,우파 또는 좌,우익을 구분짓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정치권에서 관용을 베푼다는 것 자체가 쉬운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8-08-10
19:11:13
  

 

병장 임정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귀군요 2008-08-11
13:36:51
  

 

병장 이태형 
  저로써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주제입니다. 
2번이나 읽었지만 제가 무식한건지 현 상황이 이상한건지 집중이 안 되서 눈으로만 읽고 머릿속으로 저장이 안되는건지 몰라도 어렵네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 2008-08-11
22: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