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설득에 관한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
병장 윤영돈 [Homepage] 2008-11-12 01:33:56, 조회: 148, 추천:0
설득에 관한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
설득이란 타인을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납득시키고 설득자의 의도로 납득시키는 것이다. 따로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도 없이 비물질적 영역에서 인간의 구성성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만큼 하나의 존재이다. 내가 혼자의 생각을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설득시키는 행위이고 - 설령 그냥 써봤다는 이유를 들더라도 그것은 설득하는 행위이다. - '커피한잔?'이라는 무심코 내뱉은 말조차 설득이라는 존재의 개입이 있다는 등의 예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득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설득이란 행위는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당하는거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의에 의해 행하는 것이 아닌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의 의도가 섞인 순수한 내 자유의사라는게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설득을 당하는 입장에서야 자신은 자유의지로 행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꽤 있겠지만 개인의 자유의사라는 것도 실제로는 자신조차 모르게 설득을 당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하는게 설득이 아니다. 간지 잘잘 흐르는 모델이 입고있는 옷에 혹해 충동적인 구매를 한다면 그것또한 모델의 자태에 설득당한 것이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기에 그 책에 대한 얼추적인 내용만 가지고 읽고있는 당신의 옆에 높인 책, 지나가는 행인의 코를 자극하는 음식냄새에 이끌리는 것, 누군가의 조언으로 인해 행동한 일, 밤마다 울어대는 뻐꾸기에 넘어지는 우리의 여성분들, 또는 밤마다 화려한 조명에 비치는 실루엣에 쓰러지는 우리의 뻐꾸기들, 우리의 일상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오감적인 것들의 대부분은 설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실로 현실세계의 모든 부분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큼 광범위할 정도의 많은 설득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애초에 자유의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여기서 쓰인 '자유의사'라는 단어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개인적인 생각, 사상을 포함한게 아닌 개인이 실제적인 행동을 하게했던 의식의 일부분으로 한정지음 - 판매자들은 일찍부터 우리가 이런 오감에 흔들릴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더 아름다운, 더 설득력있는, 더 좋은 향이 나도록, 더 혀를 자극하도록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어쩌면 판매자의 물건은 변하지 않고 더 그럴듯해 보이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의 성과인 똑같은 물건들을 우리는 더 발전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은 음모론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서론이 길었다. 이 글은 음모론도 아니고 무언가를 비판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설득이라는 개념, 아니 존재에 대해 바라보는 한가지 다른 의견을 제시(제시라고 쓰고 설득이라고 읽는)하기 위해 썼다. 설득은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설득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동조하게 만드는 한 방법으로 대개 정중하고 정당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방법들은 협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이미지이거나, 협박이나 강요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로 상대방에게 강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개입시키는 비도덕적 행위로 알려진다.
하지만 설득 또한 충분히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아니 오히려 솔직하지 못한 협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설득은 하나의 협박이다. 설득의 절차를 밟지 않고 여러가지 오감적인 요소로 아무런 의도도 가지지 않은 척 설득하는건 이미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상대방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기에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설득들은 순수한 설득으로 취급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기본적으로 설득은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의 의사에 개입시키는 것이기에 승낙과 거절이라는 두가지 갈림길이 생긴다.
상대방은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승낙과 거절이라는 두가지 갈림길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냐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크던 작던 감정, 호감의 변화가 있겠고 승낙할시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일이 추가되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설득자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협박의 형식을 거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의무감의 호소, 소속감, 호감, 감정, 관계와 친분 등, 을 걸어 협박을 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설득자가 그것을 염두에 두건 두지 않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하나의 질서다. 또한 협박의 제안물은 상대방의 요소일 수도 있고 설득자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 협박의 형식을 거치지 않은 협박은 상대방에게 충분히 위협적이고 더 위험한 것은 설득자가 자신이 상대방을 설득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하는 행동때문에 더 위험하기도 하다.
쇼윈도 너머에 있는 한눈에 보기에도 세련되 보이는 구두를 물끄러미 보고있는 사랑스런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아마도 여자친구가 저 구두를 갖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저걸 사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 라고 생각하고 이 설득을 승낙할까, 거절할까라고 해석되는 -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굳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생각은 여자친구의 자기조차 모르는 설득행위에 대한 의사가 된다. 그 의사결정에는 많은 제안이 걸려있다. 거절을 하게 되더라도 여자친구의 호감에는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나 해줬다면 호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등 여타의 감정들이 거절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실제로 이것들이 그 당시에는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쌓이다보면 감정이나 행동하는데 있어서 꽤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결국 여자친구의 설득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렇듯 설득하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물질적인 대가를 걸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대가를 놓고 협박을 하게 된다. 설득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비겁한 짓이라고 과장되게 말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사회성에 있어서 그 자체나 다름 없는 것이니까. 설득이 없다면 인간은 고립된 채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고 설득자의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다. 설득은 공기마냥 인간의 어디에서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므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다가 설득 자체를 불순하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설득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때론 협박보다 더 지독한 강요행위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망이 되기도 한다. - 이게 주된 성분이겠지만. - 많은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면 그걸 사용하는 사용자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용해야 한다. 무의미하고 무심코 내뱉은 설득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대방은 그 제안에 자신의 사상과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바탕으로 고심해야 한다.
물론 생활 자체가 설득행위인 우리에게 그 많은 것들을 통제하라고 한다면 애인과 지나다닐 때 쇼윈도를 무심코 보는 행동조차 통제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기에 주장할 수 없고, 최소한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힘들어할 설득을 - 대부분의 사회적 행위이라고 칭할 수 있는 - 조금씩 생각하고나서 행동한다면 서로에게 더 나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8:23
상병 양순호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것도 여느 의미에서 전달받은 설득이며. 그 글에 대해 생각을 다는것도 어떤 의미로의. 그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써달라는 식의 설득이지 않나 싶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것들이 무언적인 설득에가 될 수 있고, 직접적으로 말하여 하는 설득이 될 수도 있는거겠지요.
전 윤영돈님과 같은 이런 생각이 좋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볼 수 있으니까요. 2008-11-12
10:29:48
병장 이태형
자각 못하고 계속 설득 당하는 것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 사람이 날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구나'를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서(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칭찬이라던가) 그냥 설득당하거나 속아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허헛. 2008-11-12
11:4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