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마음으로 마신 '도라지청'차
상병 이찬선 2008-04-17 13:38:47, 조회: 195, 추천:0
사무실에 두달 전 부터 함께 근무하게 된 여 군무원 한분이 계신다. 부대 사정상 급작스러운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근무지가 바뀌게 되셨는데... 갑자기 변한 환경 탓인지 사무실 이동 후 몸이 많이 안 좋아 지셔서 여전히 고생을 하고 계신다. 한 이주일 전 쯤... 심한 감기에 걸리신 그 여 군무원 분의 그렁그렁한 숨소리와 쉴지 모르는 마른 기침소리가 파티션 너머로 들려왔지만, 난 이미 나와 별 상관도 없는 타인이라고 치부해버린 한 존재의 아픈 소리를 공감하기에는 너무 매말라있었다... 단지 환경 탓이라고 치부하며 내뱉은... 나도 이렇게 물들어 버렸군... 이라는 자조적인 중얼거림은 분명 말도 안되는 자기 합리화와 부끄러운 내 자신에 대한 자위의 행위였다. 허나, 아무리 狂者 마냥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고 해서 나의 비겁함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후, 환절기 날씨 탓인지, 약간은 과도한 업무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일하기 싫은 심리적 상태인 꾀병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감기에 걸려 버렸고 사무실에서 쉰소리를 내며 그냥저냥 앉아서 하루를 때워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전 날 먹은 감기약 탓에 조금은 몽롱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사무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 여 군무원 분께서 출근하셨다. 난 무의식적으로 전혀 의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식상의 인사를 툭... 내뱉고나서는 이제는 완전히 몸에 새겨져 버린 일련의 움직임들을 계속했다. 그 여 군무원 분께서는 출근하시자마자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분주하게 꺼내고 계셨지만, 사무실 정리를 다 마친 내 눈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모니터에 가 꽂혔고, 이내 모니터에 새겨지는 활자 외에는 그 무엇도 내 의식에 맺히지는 못하였다.
잠시 후, 어깨에 툭~ 하는 낯선 존재의 손길이 느껴졌고, 돌린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종이컵을 들고 계신 그 여 군무원 분이셨다. 어제부터 기침이 심하길래... 행여나 자기 때문에 감기 옮은거 같아서 마음이 계속 불편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종이컵을 내미시며, 이거 '도라지청'을 따뜻하게 탄 것인데 감기에 좋은거라며 마시라고 하셨다. 좀 써도 몸에는 좋은 거라면서 웃음을 지으시며 그렇게 말씀하시곤 자리에 가 앉으셨다. 아침에 출근하시자 마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분주하게 꺼내신 것이 그 '도라지청'이었던 것이다. 종이컵의 따뜻한 온기가 손으로 전해졌고, 곧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단순히 무의식적으로 머리에 새겨지곤 언제 그랬냐는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으로 박한 말들과 행위들이 아닌...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마음 씀씀이였다.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도라지청' 차는 그 분 말마냥, 입에는 썼지만, 그 따뜻한 목넘김은 세상 그 어떤 값진 차 보다도 맛있는 것이었다.
비단 우리가 있는 이 곳만의 문제는 아닐터이다. 아니... 이 곳이라는 장소로 에둘러 한계지으며 슬며시 그 탓으로 돌리지는 말자. 이는 분명히 하루 하루 의미없는 내뱉음을 반복하며 단지 자신만의 감정의 배설 따위를 하며 사는 우리가 만들어 버린 이 세상의 모습이다. 나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세상은 참으로 하루하루 발달해 간다고들 하지만, 우리라는 심리적 아우름의 관계에서의 따뜻함은 점차 사라져만 가는 것이 아닐까... 점차 관계 맺기에 서툴어져만 가는 우리들은 하루 하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모순적이게도 누구나 읽어본 적 있는, 정말 어렸던 '어린왕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볼 일이다. 자기 자신이 말하고 행하는 것들이 타인에게 단순히 머릿속으로 계산되어지는 의미 이외에는 그 어떤것도 아니었는지, 아니면, 가슴을 울리며 동하게 하는 따뜻한 것이었는지... 누군가 말했던, 우리는 서로를 가엾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쓰디 쓴 '도라지청' 차 한 모금을 참 맛있게도... 참 따뜻하게도... 목으로... 아니 마음으로... 넘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1:13
병장 어영조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마음이 담긴 먹을 것에 유난히 사람들은 감동받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담긴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지만) 2008-04-17
15:09:00
상병 이태형
그 분 마음씨가 참 곱네요(웃음)
뭔가 깨닫는게 있어서 좋습니다.
뭘 깨달았는지는 부끄러우니 얘기 안할래요(낄낄) 2008-04-17
15:26:38
상병 이찬선
태형// 그 부끄러운 이야기 몇 자 들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호기심 유발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셨군요... (땀땀) 2008-04-17
15:39:46
상병 정찬훈
전체적인 이야기와는 별개지만.. '도라지청' 효과 좋더군요.
저 같은경우도 한동안 기관지가 좋지않아서 많이 고생했었는데,
많이 괜찮아졌답니다. (... 광고 아닙니다) 2008-04-17
16:08:49
상병 이찬선
찬훈// 정말 효과 좋더라구요~ 감기도 많이 가라앉았고...
그래서 지금도 종종 타주시면 낼름 받아먹고 있습니다(웃음) 2008-04-17
16:15:28
병장 황인준
그러니까 결론은
감기에 걸리지 말자.
감기에 걸리면 도라지청 마시자?
처음 들어보는 거네. 2008-04-17
16:33:44
상병 이찬선
인준// 머... 결국은 그렇게 되버린건가~
좋더라구~ 근데 이 놈의 담배에는 약도 없더라...(땀땀) 2008-04-17
16:37:22
병장 김상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에서 따뜻함이 묻어나네요(웃음). 2008-04-17
23:56:48
병장 박준연
글의 묘사나 표현, 단어 선택이 참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찬선님의 글,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