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마구마구 이어붙이기  
상병 이지훈   2009-01-18 16:18:47, 조회: 141, 추천:0 

야구는 아주 재미있는 스포츠임에 틀림없지만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인원도 상당수(?) 필요하거니와 적어도 가정집 창문은 안정권인 널따란 공터도 필요하다. 게다가 다른 스포츠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자. 축구는 학교 운동장을 거의 다 사용하면서도 다른 운동과 효과적으로-서로 양보가 조금 요구되지만-어울릴 수 있는데 반해, 야구는 헬멧을 쓰고 하는 ‘나름 위험한’ 스포츠이기에 다른 운동과 어울리기 어렵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들을 우리 사정상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주변의 널따란 공간은 운동장이 유일한 경우가 많고, 다른 인기 스포츠인 축구를 운동장에서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사랑하는 야구가 다른 스포츠를 모두 몰아내는, 진정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야구 게임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게임에선 누군가의 갑작스런 홈런으로 모니터가 깨질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으며, 친구가 학원을 가도 그럭저럭 상대할만한 A.I.가 있다. 하드볼 4를 시작으로 EA의 수작들을 거쳐 슬러거, 마구마구, 실황파워풀까지 야구를 할 수 없는 여러 제약들이 등장할 때마다 이 게임들은 야구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켜주는데 일조해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야구다운 야구의 모습을 모니터 속에 꼭 박아 넣은 것은 실황파워풀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우리의 야구’다운 야구를 꼭 박아 넣은 것은 마구마구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온라인 게임의 범람 속에서 선전하고 있는 마구마구는 기록의 힘을 잘 보여준다. 사실 마구마구가 실황파워풀처럼 게임성이 뛰어나서, 다시 말해 야구를 모니터 상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뛰어난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구마구의 인기 비결은 시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는데 있다. 마구마구에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가장 최근인 2008년까지의 모든 프로팀과 해당 팀 소속 선수들이 대다수 등장한다. 이 선수들로 플레이하는 것에 있어서 제한이라고는 게임머니와 초보 유저들을 위한 몇 가지 규칙뿐이다. 현재까지의 물리학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과거 전설의 선수가 공을 뿌리고 치는 것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그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과거로 이루어지는 존재이면서도 과거를 잡을 수 없다. 시간의 화살이 인간의 코앞까지 바짝 날아오더라도 그것을 막거나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두 발 딛을 수 있는 곳은 과거뿐이고, 인간 모두가 삼국지의 하후돈처럼 뛰어난 맹장이라 하더라도 시간의 화살은 우리의 눈을 꿰뚫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잡을 수 없는,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을 그저 짝사랑할 수밖에 없다. 기록은 날아가는, 혹은 날아오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을 역사학이라고도 하는데, 역사학의 엄청난 범위와 그 깊이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같아서 인간이 소유하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다. 인간은 하후돈이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꿰뚫린 자신의 눈알을 씹어 먹은 것처럼 짝사랑의 대상인 사랑을 결코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하기에 욕망하기에 노력을, 역사학을 멈추지 않는다. 눈알을 씹어 먹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야구 역시 기록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의 커다란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야구의 기록은 역사학에 비해 그 범위가 넓지 않으며 그 때문에 기록 자체 또한 역사학보다 훨씬 치밀하고 상세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극세미시사’ 정도가 알맞을 것 같다. 물론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기록만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재현할 수 없는 것들에 비하면 야구에선 기록이 대부분을 말해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해당 년도의 방어율, 타율, 홈런, 피안타율, 장타율, 이닝당출루허용률 등은 그 당시 한 명의 선수를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근접하게 재현해낼 수 있으며 나아가 그가 속한 팀의 모습을 재현해낼 수 있다. 마구마구는 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모습들을 소유하게 해주고 직접 손으로, 키보드로 이들을 조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삼국지 등 기타 정치, 전쟁사를 다룬 게임과는 다르다. 예전 사람들의 힘과 지능을 수치화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야구와 같이 기자나 분석가가 전쟁마다, 정치판마다 붙어 다니면서 장수들의 무력과 지력을 수치화해서 기록했을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재현된 시간의 흐름을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 주물럭 가지고 논다는 개념은 동일하지만 야구처럼, 마구마구처럼 ‘그 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 재현은 야구의 기록만이 가능케 한다. 야구의 기록은 선수와 팀 재현의 근거를 제공하고 마구마구는 이 근거를 바탕으로 당시 모습들을 재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록으로 만들어내는 야구의 모든 것이 그저 유희이고 장난임을 안다. 짝사랑을 쟁취하고자하는 인간의 대리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실제 야구장을 한 번이라도 가보면 알겠지만 그딴 기록은 정말 기록에 불과하다. 그 기록으로 마구마구는 계속 성장하고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얻겠지만, 그 기록은 결코 진짜 야구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진짜 야구는 운동장에 있고 야구장에 있다. 외야로 쭉 뻗는 타구의 청량함과 포수 미트의 울림을 느껴보지 않고서는, 야구의 대부분을 말할 순 있어도 전부를 말할 순 없다. 마구마구를 포함해 기록을 가지고 노는 즐거운 유희는 서로 이것이 진지한 것이 아님을 알 때만이 가능하다. 기록이 보여주는 것이 야구의 전부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치 가위바위보 졌다고 벌칙으로 죽빵을 꽂아넣는 것과 같다. 장난은 받아들이는 사람, 거는 사람이 모두 그것을 장난으로 인식할 때만이 장난은 ‘장난’으로써 기능하고 그 재미 또한 뛰어나다. 장난은 장난, 놀이는 놀이일 뿐이니까.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역사학 이어붙이기를 시도해 살펴보면, 야구 기록들의 큰 범주인 역사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기록들의 덩어리를 이리 저리 굴리는 장난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이제는 좀 진지해지고 싶다. 아, 야구장에 가고 싶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4:33 

 

상병 이석재 

  잘 봤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분도 마구마구에서 롯데의 우승 원년 멤버를 다 모아놓고 희희낙락 거렸다지요. 흑, 오늘도 저는 흰 쓰레기를 치웠답니다[무슨 관계지?] 2009-01-18
17:19:45
  

 

상병 김예찬 
  지훈님이 '야구'라면 전 '스타 리그'를 유사한 것으로 꼽고 싶네요. APM, 대 종족 승률, Map 당 승률, 우승 기록 등등,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하는 E-Sports 스타 리그.. 2009-01-18
17:35:24
  

 

일병 정윤찬 
  야구는 사직구장이 제맛입죠. 롯데 아자!(생뚱..) 2009-01-18
18:28:27
  

 

병장 박찬걸 
  야구는 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보는게 제일 재밌죠. 아 가고 싶다 야구장. 2009-01-18
18:45:42
  

 

병장 이동석 
  아놔, 

통닭에 맥주 마시면서 여자친구가 오빠 저건 뭐야 이건 왜 그래 쫑알쫑알 물어보는거 적당히 말해주다가 적당히 쌩까다가 공 받으려고 뛰어다니다가, 치어리더 넋놓고 보다가 꼬집히고, 고래고래 응원가 부르다가, 8회쯤 됐는데 한 오점차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보면서 하여튼 우리나라 관중문화는 이래서 안돼-라고 투덜대다가 8회 삼자 범퇴로 끝나니까 신발거리면서 여자친구 끌고 나가고, 기아 또 졌다고 담배피고, 술먹고 

딱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누우면, 

좋겠군요. 아놔. 이런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니. 2009-01-18
20:06:21
  

 

병장 이동석 
  그건 그렇고 마구마구는 야구 좋아하는 사람에겐 악마의 게임이 아닌가하는, 
요새는 슬러거가 인기가 많다는데, 

어쨌거나 나가서 야구팀이나 만들어서 야구 딱 하고 끝나고 맥주 딱- 마시면, 정말 
딱- 죽겠군요. 어어. 2009-01-18
20:07:46
  

 

상병 이지훈 
  석재// 전 기아랑 쌍방울이요. 그래요 저 호남빠(?)예요 
예찬// 

저도 한 때 스타리그에 흐흐. 변길섭이 우승한 이후 보지 않은 듯 하군요. 그 때 이후로 워크3로 전향했기 때문이라죠. 음 전향?....그러나 여전히 블리자드의 노예군요 흑 

윤찬// 

흥 롯기동맹은 결렬입니다. 홀로 가을야구하다뇨. 그래도 사직은 꼭 한번 가고 싶어요. 

찬걸// 곧 가시겠네요. 후...부러워요 4개. 
동석// 

악마의 게임 아닌가...가 아니라 악마의 게임 맞습니다. 가끔 손도 떨려요(?) 저도 제가 게임에 현질하게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하아 한숨......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머릿속에 자꾸 라인업이 떠오르고 마무리는 임창용이 좋을까 선동열이 좋을까....허허허 이번 설탕도 왠지 느낌이 불길해요 다시 손댈 것만 같아요 흑 2009-01-18
21:01:33
  

 

병장 김민규 
  그러게요. 아놔. 이런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