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눈물받이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1-18 13:32:58, 조회: 224, 추천:1 

앞에 앉은 손님은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통제가 안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뿐이다.
원래 이 직업이 손님과의 대화가 중요한 직업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기 용건이 끝나면 후다닥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의 직업은 눈물받이이다. 이런 것이 하나의 정식 직업으로 인정되는 시대에 살고있다니, 이 일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있지만 참 한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앞에 앉은 손님은 눈가를 연신 닦아내고 붉게 상기된 얼굴을 식히고 있다.
내가 이 일로 남들못지 않은 돈을 벌고있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제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마음놓고 눈물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동료는 커녕, 친구나 가족에게조차 안심하고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눈물받이를 찾아와 돈을 내고 운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앞에 앉은 손님은 이제 옷을 추스리고 있다.
이 손님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왼손에 반지를 보아 어딘가의 가장일 이 남자는, 내가 오늘 만난 4번째 손님이고,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욕을 해가며 울었다. 온갖 울분을 토해내며 울었다.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고, 그도 나에게 바라는 말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손님이 방음시설이 갖춰진 좁은 밀실을 빠져나간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다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창피할 것이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다. 잠자는 모습이 인간의 가장 무방비한 모습이라면 우는 모습은 가장 나약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모습을 경쟁상대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죽여 몰래 흐느끼는 것은 오히려 더 서럽기만 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찾아와 자기 돈을 내고 서럽게 울다가 가면 쌓인 것들이 풀릴까? 내가 하는 일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옆방에서는, 그리고 그 옆방에서도 누군가 들어앉아 울고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물받이들이 그저 남이 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눈물받이로써 손님의 눈물을 이끌어내고 받아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옆에서 함께 욕을 해주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차분하게 다독여주는 것이 효과가 좋다. 이런 방법들을 순간적으로 손님에게 맞추는 것이 눈물받이의 노련함이다. 물론 처음부터 직감적으로 손님에게 맞출 줄 아는 눈물받이도 있다. 하지만 남이 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상당한 동요를 일으킨다. 많은 경험이 없는 자들은 손님과 함께 우울함에 빠지기가 쉽고 매일 열 명이 넘는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대부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눈물받이를 하다가 우울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멍하니 앉아서 돈만 버는 직업은 아닌 것이다.

-띠-
손님이 들어온다는 신호다. 준비를 한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온다. 이번 손님은, 여자다.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꾸벅, 나에게 목례를 한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많은 손님들을 만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다른 손님들과는 달랐다. 소리치지도, 화를 내지도, 욕을 하지도, 무언가를 던지지도, 부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눈물만을 흘렸다. 그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일을 겪으면 이렇게 울 수 있을까. 사람의 우는 얼굴이라면 누구못지않게 많이 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울고있었다. 나에게 그 모습은 거룩하게까지 느껴졌다. 마치 세상을 대신하여 우는 것 같았다. 온 세상이 슬픔에 잠겨 참을 수 없어 그녀를 통해 대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눈물, 눈물, 눈물, 그녀의 눈물이 흐른다. 슬픔, 슬픔, 슬픔, 슬픔이 이 좁은 방을, 그리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운다. 그녀에게 눈물받이란 것은 필요가 없어보인다. 사실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나같은 눈물받이가 받기에는 너무 무거워 보였다. 내가 저것을 받았다간, 금방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말, 어떤 행동도 그녀를 방해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저 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난 그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들어왔을 때처럼 조용히 나간다. 그녀의 모습은 차분했지만 오히려 나의 감정이 동요해버렸다. 슬픔에 젖어버렸다. 더 이상 손님을 받는 것은 무리일 듯 싶다. 오히려 내가 울고싶은 기분이다. 도대체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감정이 흔들리곤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흔들림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가슴속에서 뭔가 꾸물꾸물 하는것이, 눅눅하고 무겁다. 아무래도 오늘은, 울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 눅눅함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가라앉아버릴 것 같다. 데스크에 연락해서 부탁한다. 잠시만 손님을 들이지 말아달라고.

난 울었다. 하지만 '운다'는 행동에 눈물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면 난 울고있지 않았다. 난 내 속에 서 흔들거리는 감정들을 꾸역꾸역 밀어냈지만 그것들은 눈물과 함께 나오지 않았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낯선 느낌이었다. 운다는 행동 자체도 오랜만이었지만 이런 식의 울음은 처음이었다. 이런것도 울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런지. 아쉬웠다. 내 감정을 다 쏟아낸 것 같지가 않았다. 눅눅한 덩어리가 작게 조각조각나서 내 핏줄을 따라 몸 속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찜찜했다. 억지로 눈물을 내려 노력하다가, 포기한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눈물받이라니. 그동안 받아낸 수많은 눈물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데스크에 연락해서 이제 괜찮다고 말한다.

그 이후의 하루는 그저 그랬다. 드문 드문 손님이 찾아왔고, 울었고, 나갔다. 그들의 울음은 나를 자극하지 못했고, 난 내 몸속을 떠다니는 것 같은 눅눅한 파편들의 느낌에 몸서리쳤다. 도대체 내 눈물은 어디에 숨어서 나오질 않는걸까.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울고싶다.


덧. 어제는 너무나도 무서웠어요.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책마을.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18:59:05 

 

병장 정병훈 
  발랄한 기화님의 글을 다신 못보는 줄 알았습니다. 

눈물을 흘린다는건 참 감사한 일이죠. 감정을 갖고 우는 동물도 인간의 특권아닌 특권아닌가요? 저는 눈물이 많아서, 나름 행복하답니다. 
눈물도 감정의 하나이기 때문에, 내 감정중 하나는 멀쩡하다는걸 울면서 느끼기 때문일까요. 흐흐흐 
눈물 많이 사랑해 주세요. 잘 봤습니다. 2008-11-18
14:31:18
  

 

병장 조훤 
  와.. 이거 신선한데요.. 눈물받이라.. 
실제로 있는 직업 같기도 하고.. 만약이 창작이시면 정말 기발하긴 한.. 
정말 잘읽었습니다. 2008-11-18
15:00:09
  

 

병장 이동석 
  토크바-라는 곳을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의미가 안마시술소만큼이나 이상해져버렸지만, 
원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목적이었다는군요. 

참, 그 정도로 사람들이 외롭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11-18
16:07:20
 

 

병장 이동석 
  이렇게 말하니 토크바-를 꼭 가본것 같군요. 거기 갈 정도로 외롭진 않습니다만, 
이상하게 토크바-든 안마시술소-든 이발소-든 퇴폐적으로 변하는걸까요. 
퇴폐미도 없게 말입니다. 2008-11-18
17:44:13
 

 

병장 이재민 
  토크바가 퇴폐적이라고요? 
전 그냥 남성네들이 여성상대로 노닥거리는게 허용된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섹시바마냥 변화되었나보죠 2008-11-19
09:02:22
  

 

병장 이동석 
  음, 이젠 뭐 거의 체험 성노동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2차는 뭐 그냥, 기본이라는데요. 2008-11-19
09:07:07
 

 

일병 송기화 
  음? 뭐죠, 이 대화는? 
(흐...흥미롭다?!) 2008-11-19
09:10:25
  

 

상병 이우중 
  흠.. 글도 댓글도 흥미롭군요. 후후후... 

이 글을 보면서 문득, 윤이형님의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의 수록작이 떠올랐습니다. 
아, 제목이... 얼마 전에 읽었는데 읽는 도중에 빼앗겨 버렸어요. 흑흑. '절규'였던가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절규대행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잘 읽었어요! 2008-11-19
09:56:11
  

 

병장 이재민 
  흐음 

체험 삶의 현장이나 해볼까나... 후후 

농담이고 
그런것과 무관하기로 소문난 저희 동네에 
'토크바' 세글자 적힌 간판이 생겨서 궁금했었지요 2008-11-19
13:08:41
  

 

병장 이동석 
  물론, 아닌곳도 있을거라고 믿어요. 
안마시술소가 꼭 페니스를 중심으로 안마해주는 곳이 아니듯이. 

노래방에 이어 디비디방이나 피시방도 퇴폐미없는 퇴폐를 추구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는데 
이러다 나중엔 갈곳이 없을듯... 2008-11-19
15: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