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상병 이지훈   2008-11-25 08:17:33, 조회: 193, 추천:0 

새벽에 완성한 글이지만 일이 밀려서 지금에서야 올리는군요...허허
제목은 김훈님의 책 이름을 살짝 빌렸음을 밝힙니다

우리들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으로 이곳에 와있다. 운이 좋지 않은 경우, 몇 일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이 책임을 짊어진다. 역사적 책임을 시간으로 환산한다면 모두가 같은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때때로 이 책임의 무게를 정말 모두가 같은 무게로 짊어지고 있는 것인지, 혹시 내 쪽이 더 무거운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다. 다시 말하면, 시간으로 이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역사적 책임의 무게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겁기 때문에 이곳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짊어지게 하고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직업으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 교육하기 위한 이곳 조직의 특성상 이러한 직업의 분화는 당연하다. 이곳 조직의 존속을 위한 이러한 직업의 분화가 내 쪽이 더 무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 쪽이 더 무거운 것인지 아닌지 확실한 해답을 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너”는 어떤지, 의문을 자신에게서 남에게까지 확대시킨다.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곳 직업의 분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지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전제로 간단하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 이 두 가지가 그것이다.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실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고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실외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다. 이 구분은 조직의 상부로 가면서 살필수록 불분명해지고, 하부로 가면서 살필수록 이분법적 구분처럼 분명해진다. 때문에 이 글의 다음 문단부터는 이곳 조직의 대다수인 하부 조직에 대해서만 적용이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분법적 구분이 그러하듯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끊임없이 내 쪽이 더 무거운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이렇게 발생한 긴장감의 흐름은 어처구니없는 일로 이어지기도 하며, 가벼운 감정싸움을 넘어서 감정폭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마치 “너는 어느 쪽이냐”라고 뒤에서 쫓아다니며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처럼 이러한 긴장감은 사람을 상당히 피곤하게 한다. 서로를 좀 더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나, 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봐왔다. 

운이 좋은 것인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경우 1년은 발을 사용하는 사람이었고, 지금을 포함한 나머지 1년은 손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이곳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덕분에 책마을의 주민이 되었다.)글쓴이 또한 발을 사용하던 시절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수없이 의문을 던졌고, 입장이 바뀐 지금은 현재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문어린 시선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난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 쪽이야.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내 몫의 무게를 너를 포함한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떠넘기지 않아. 물론 내 자유로운 의사로 주어진 책임은 아니지만 내 몫의 무게를 회피하지도 않고. 모두의 무게는 같아. 그 무게가 시간적 환산이든 물리적 환산이든 말야.”라고 해명하고 싶지만 계급사회라는 이곳의 특성, 그리고 모두가 글쓴이와 같이 양 쪽을 모두 오랫동안 경험을 하지 않는다는데 한계를 느낀다. 피곤함이 극에 달할 때면 계급사회라는 이곳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할까 생각하고, 실제로 여러 번 계급사회의 권위의식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는 너무 불합리하고 겁쟁이의 처사가 아닌가 싶다. 쓸데없이 예민한 것 일수도 있고 평생 있을 곳도 아닌 곳에서 쓸데없는 참견을 늘어놓는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의 삶도 내 삶이다. 현재 여기서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것에 익숙해진다면, 결국 이곳이 아닌 미래의 내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회피만 하다가 “어쩔 수 없다”며 푸념만 늘어놓는 찌질이가 될 뿐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3:35 

 

병장 이동석 
  전 또 조갑제 님이 부르시는 나는 편향해도 넌 편향하지마-내용인줄 알았습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일상적 고민과 맞닿아있군요. 2008-11-25
08:43:59
  

 

병장 정병훈 
  삶의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네요. 그게 어떤 삶을 살던 자세를 무시한 삶은 무의미한 건조오징어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건조 오지어는 반건조 오징어로 변하고 있군요. 흐흐흐 2008-11-25
09:11:22
  

 

상병 박지훈 
  똑같은 무게라...무게는 같지만 도르레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짊어지는 사람과 몸으로 직접 부딛혀 가면서 짊어지는 사람이 느꼈을때 과연 같을까요? 
주어진 책임은 같지만 그 책임을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은 그 양과 질이 다릅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다른 생소한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려 하니 힘들다고 말할 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곳에 첫 발을 딛을때부터 그 길은 정해져있습니다. 
간혹 저 하늘 높이 구름넘어 계신분들의 손장난에 의해 바뀌기도 하지만 주어진 길에 있는 잡초와 잔나무가지들을 헤치면서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곳은 계급사회라는 전제로 권위주의가 진득하게 퍼져있습니다. 
처음에는 한개의 임무와 책임이 주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4개의 임무와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 어디에서 있던지 다 똑같은 것입니다. 내가 발으로 부딛치던 손으로 부딛치던 처음 부딛칠때보다 나는 4배나 더 성장해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인생의 성장의 한 흐름이자 관문입니다. 
나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을 비교하기 전에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뒤를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2008-11-25
09:52:39
  

 

상병 김용준 
  음...지훈님 이 글을 쓰시려고 그동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셨군요? 후후. 

자신의 생각에따라 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저야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라...저를 뒤돌아볼 수 있고 꿈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 되네요. 하하. 2008-11-25
10:18:42
  

 

상병 이지훈 
  박지훈// 

주어진 책임은 같지만 그 책임을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흘리는 땀은 그 양과 질이 다릅니다. 

무슨 말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해한대로 답변갈게요. 
저는 손을 사용하는 사람과 발을 사용하는 사람이 둘 다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도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고 생각하구요. 어떤 기준으로 간접, 직접을 나누시는지 모르겠지만 직접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노동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소위 정신적인 노동은 육체적인 노동보다 어떠한 책임을 지는데 쉽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할게요. 제 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정신적인 노동도 힘든데 왜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너희는 나의 고통을 안 알아주니?"가 아니라 같은 책임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손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편견만 가지고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통이 안되는 이유는 이곳이 계급사회인 이유도 있겠고 글에서도 밝혔듯이 "평생" 있을 곳이 아니기에 치열하게 살지 않는..그런 것도 있겠죠. 좋은 말씀해주셨지만 제 글이 부족해서인지 약간 저의 논점과 벗어나신 것 같아 답변드립니다. 

이동석// 

노래인가요? 흐흐 

정병훈// 

개인적으로 건조오징어보다는 반건조가 맛있더군요 허허 
물론 보관할 때 냄새는 더 많이 나지만요 

김용준// 

왠만한 일은 저도 그냥저냥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지나가지만, 걸리는 건...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