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공룡  
일병 송기화  [Homepage]  2008-10-24 14:23:57, 조회: 269, 추천:0 

얼마 전부터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있다. 소문에 근원은 우리동네 꼬맹이들인데 그 소문인즉슨 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우리동네 뒷산에 공룡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덥잖은 소리. TV에서 쥐라기공원 특집이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디선가 네스호에 괴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도 틀어줬던 것일까? 어쨌건 옛날에 살았던 커다랗고 무서운 공룡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어릴적에는, 그러니까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는 공룡에 관심이 많았다. 동네 책방에 가면 공룡에 관한 책을 사달라고 엄마의 손을 잡고 떼를 썼고 12종류나 되는 공룡을 그릴 수 있었고 20가지가 넘는 공룡의 이름과 특징을 줄줄 외울 수 있었다. 만일 공룡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그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끝나버리곤 했다. 공룡을 실제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내 미니카를 줄 수도 있었다. 공룡은 내 7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공룡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TV가, 축구가, 친구가, 게임이, 학교가, 학원이, 숙제가, 시험이 내 인생을 차지했다. 공룡에 관심이 많던 7살짜리 꼬맹이는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뒷산을 헤매고 있는 이유는 동생 때문이다. 나와는 나이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는 우리 막내는 어제 저녁 집에 돌아온 나에게 뛰어와 떼를 쓰기 시작했다.
"형아! 형아! 공룡은 없지? 그치?"
처음엔 요 녀석이 왜 이러는 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옛날에 봤던 공룡의 멸종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내가 건성으로 해준 대답-공룡? 다 죽었어.-을 진실이라 믿고있는 막내가 학교에서 돌고있는 공룡에 관한 소문을 헛소리라고 단언해버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반 아이들은 내 동생을 둘러싸고 공룡은 있다고 주장했고 말싸움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이 논리보다는 목소리크기에 승패가 좌우되어 결국 일대 다수로 싸운 우리 막내가 눈물을 머금고 공룡은 있다고 인정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억울했던지 내 다리를 잡고 매달려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동생의 억지에 이기지 못하고 주말에 뒷산에 올라가 공룡이 있는 지 없는 지 찾아보고 온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고, 결국 난 동생이 싸준 도시락-과자, 초콜렛, 사탕-을 들고 뒷산을 찾았던 것이다.
당연스럽게도 공룡은 보이지 않았고 운동한다는 기분으로 뒷산을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산에는 언제나처럼 까마귀나 까치, 청설모와 다람쥐 뿐이었다. 아,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공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세상을 지배하던 그 강인한 모습을 실제로 보고싶었다. 동생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공룡이 살아있어줬으면 싶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사탕과 초콜렛을 하나씩 까먹으며 어슬렁 어슬렁 오르다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도대체 요런 뒷동산에 공룡이 산다는 소문을 만들어 낸 녀석은 누굴까? 귀여운 꼬마애일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다람쥐 한마리가 지나갔다. 후다닥 지나가 도토리를 집어서 까먹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런데 뭔가 다람쥐의 모습이 이상했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어딘가 위화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 작은 몸집도 귀여운 얼룩무늬도 도톰한 꼬리도 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걸까? 앗. 다람쥐의 몸에는 북슬북슬한 털 대신에 비늘이 덮여있었다. 눈은 악어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머리가 이 상황을 정리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맙소사, 저건 공룡이야! 다람쥐처럼 생긴 공룡이라구! 그들은 멸종한 것이 아니었다. 모습을 바꿔 세상 속에 섞여들어있었다. 자세히 관찰하니 포유류보다는 파충류에 가까운 움직임들이 보였다. 우와, 신기하다. 난 위대한 발견자가 된 거야! 네스호의 괴물같은 소리하고 있네, 바보들. 공룡은 우리동네 뒷산에서 도토리를 먹으며 살고있다구.
내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어 몸을 움직이자 후다닥, 공룡은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것이 타고 올라간 나무 위에 모여있는 세 마리의 다람쥐도 알고보면 공룡일까? 그래, 저걸 잡자.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공룡이 살아있는걸? 그렇다고 말로만 공룡이 있더라, 해봐야 믿지도 않을테니 직접 잡아다가 보여줘야겠다.

후, 하, 후, 하, 정말 간신히 잡았다. 사실 이 녀석이 실수로 나뭇가지를 잘못 타지만 않았다면 놓쳤을 것이다. 다람쥐처럼 생겼는데 비늘이 있으니 감촉이 이상하다. 게다가 발톱도 날카롭고 이빨도 단단해서 손에 작은 상처가 꽤 여러 개 생겼다. 결국 난 녀석의 꼬리를 잡고 거꾸로 데롱데롱 거리게 한 채 산을 내려왔다. 이야, 난 살아있는 공룡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일단 동생한테 보여준 다음에 방송국에 가지고 가 볼까? 엄청난 이슈거리가 되겠지. 어쩌면 우리 동네 뒷산이 진짜 쥐라기 공원이 될 수도 있고. 이 공룡을 발표하면 이 공룡의 학명에는 내 이름이 붙겠지? 난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될 수 있겠지?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볼수록 다람쥐랑 닮았네. 옛날 내 책에 있던 거랑은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이렇게 변했지? 왜 이런 모습으로 변했을까? 한때는 세계를 지배하던 거대한 생명체가 이렇게 다람쥐의 모습을 닮아있다니. 힘들었나?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사는것이? 어째서 공룡이 역사에서 사라졌지?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들이 멸종한 이유는 운석이 떨어졌다는 둥, 날씨가 추워져서 얼어죽었다는 둥, 포유류들이 알을 훔쳐먹었다는 둥, 정말 다양한 가설들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 내 손에 공룡이 들려있으니 멸종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역사의 주역에서 밀려난 것은 사실이었다. 한 번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난 공룡들은 다시는 자신의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이런 모습이 되어버렸다. 지구를 지배하던 가장 거대한 생명체였던 그들이 내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그나마도 다른 동물의 모습을 따라한 약한 생명체가 되어있었다. 갑자기 슬퍼졌다. 이런 모습이 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였겠지. 단지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모든것을 포기해버린 공룡이 애처로웠다. 한때 나의 꿈이었던 공룡을 실제로 만났건만 지금의 내 감정은 씁쓸함 뿐이었다. 이상이라는 것은 손으로 잡는 그 순간부터 이상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공룡을 놓아줬다.
"잘 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공룡은 바로 나무를 타고 내 눈에서 사라졌다.

"형아! 형아 왔어?! 공룡은? 공룡은 없지?"
"응, 공룡은 다 죽었어."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7
14:50:30 

 

상병 조용석 
  공룡들이 지구에서 사라진 것은 
그들의 고향을 그리워했기 때문이에요. 

..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듯 (웃음) 2008-10-24
14:27:21
  

 

상병 이우중 
  와. 잘 읽었어요. 신선하군요. 

용석/ 어? 그거 어디선가.. 분명 들어 본 것 같은데.. 뭐죠?(웃음) 2008-10-24
14:29:22
  

 

상병 조용석 
  우중/ 
실은 조금 매니악한 이야기에요. 
고전 명작 만화책 (웃음) 중 <나의 지구를 지켜줘> 1권에 보면 나오는 내용이죠. 2008-10-24
14:34:46
  

 

병장 정병훈 
  잘 읽었습니다.! 2008-10-24
14:36:19
  

 

병장 고은호 
  음.. 왠지 2~3년 전에 예전에 하던 '젠타의 기사' 라는 게임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기억에 다시 했더니, 

나의 머리속에 재구성 되었던 재미있던 게임의 환상이 
조잡한 그래픽과 함께 산산히 부서져서 결국 지우고 말았던... 
그 날 밤이 생각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웃음) 2008-10-24
14:40:43
  

 

상병 김남우 
  소문이 아니라 제가 직접 본 건데 말이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저희 집 뒷산에서 성인 남자만한 도마뱀들이 떼로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먼 발치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 해 봤자 아무도 안믿더라구요.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지금에 와서는 그게 제 꿈이 아니였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꿈이라 하기엔 너무 생생하다는. 2008-10-24
14:44:36
  

 

병장 박성훈 
  오 상병 김남우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어린시절 친처 누나 형들과 우리집 농장에 갔었는데 

농장에 있던 연못을 저 먼발치에서 

목주위가 매우 부풀은 도마뱀 한마리가 (흡사 목도리 도마뱀 닮았음) 

반대편 물가쪽으로 물위를 뛰어서 도하 하는것을 본적이 있는데요.. 

물위를 달리는 도마뱀이 있는건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엔 살지 않기 때문에 제눈을 의심 했었죠 2008-10-24
15:04:09
  

 

병장 이동석 
  와우 좋군요. 2008-10-24
15:10:20
 

 

상병 김남우 
  성훈씨 / 역시 꿈은 아니겠죠? 제 기억엔 절대 꿈이 아닌데말이죠.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봤는데 말이죠. 왜 아무도 안믿어주는걸까요 (울음) 2008-10-24
15:20:21
  

 

병장 황인준 
  좋네요. 
314에 이어서 또 좋은 글을 이렇게 써주시네요. 
자주 써주시길 바랄게요. 흐.. 
남우/ 성인만한 도마뱀이라, 믿기 힘들 수 밖에요. 허허. 
그나저나 성인만한 도마뱀이면, 엄청 클텐데요. 
그 덩치로 기어다니는 건가.. 2008-10-24
15:36:06
  

 

병장 임정훈 
  정말 잘 봤어요. 이런 글 좋아합니다. 2008-10-24
16:23:58
  

 

일병 기류언 
  남우/ 성인만한 도마뱀이라니... 순간 머릿속에 공룡보다 외계인이 먼저 떠 올랐어요. 2008-10-24
16:48:14
  

 

상병 양순호 
  하지만 손에 작은 상처는 입었잖아요. (아마도요) 2008-10-24
17:50:13
  

 

병장 김선익 
  착한 형이네요(웃음) 2008-10-24
20:4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