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고백록  
병장 이찬선   2009-03-13 08:15:40, 조회: 172, 추천:0 

희망이라는 두 글자의 힘을 실감하기 위해서 내가 돌아온 길을 회고해 보건데, 그 도정속의 물음은 진실과 거짓의 그 무엇이었다. 지속적인 아이덴티티의 뒤틀림을 겪으면서, 이런 물음은 어찌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길을 잘못 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향해 달려드는 이데올로기의 외침들은 언제나 진실과 거짓의 스펙트럼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의 자리를 달리했고 끝내는 논리를 무력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가상의 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행위.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데올로기로 그 존재이유를 정당화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리는 행위. 분명 가상이지만 그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의지의 확인은 더없이 현실적이기만 하다. 그것이 자기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나에게 희망은 곧 사랑함을 의미했다. 사랑함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면 그것보다 당혹스러운 일 또한 없다. 필연적인 죽음을 동반하는 이 과정에서 부정은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마지막 끈이 되곤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부정 또한 죽음에 너무나도 쉽게 포획된다. 부정은 곧 데드맨 워킹의 발자국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실의 시대』에서 하루키가 말한 죽음의 의미는 곱씹어 볼 만하다. 삶의 대극점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삶과 동반하는 죽음. 삶의 우연성과 시간성은 이러한 의미의 죽음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이 속에서 기억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논쟁점의 한가운데를 점유한다. 
우리는 결코 지금의 그 무엇과 동일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이 기억에 사로잡히는 때는 그 무엇이 변하여 결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있는 것 같은 막연함을 조금이라도채우고자 기억이라는 다리를 짓곤 할 때이다. 정체되어 있다는 것과 지극히 변하였다는 것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넘나드는 이 멀미나는 상황이 곧 일상이었다. 이 어지럼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나도 쉽게 들어간 기억의 시간 속에서 난 그렇게 2년 즈음의 시간을 보냈다.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끝없이 중얼거리며.
강변하고 싶었다. 그 무엇을 그토록 사랑했던 나를 난 결코 죽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난 여전히 그대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 확인받고 싶어한지도 모르겠다. 플라톤, 데카르트, 헤겔의 곧고, 곱고, 고정된 가면 마냥 그것만이 진실이고 진본이었다. 삶의 우연성은 그야말로 이탈이었고, 합리화는 오독의 전형이었다. 얼굴 하얀 아이 ‘김해경’과 박제된 천재 ‘이상’ 사이의 그 수많은 얼굴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 속으로 용해되어 사라진 후였다. 지독히도 외로워졌고 고립되어 갔다. 인간이 아닌 하나라는 기수적 존재의 멍에.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 존재.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그 몸부림 속에서 그것은 무화되어 손아귀에서 흩날려졌다.

진실과 거짓이라는 헛된 허공에 열심히 발길질을 해대며 던졌던 물음들은 결국 정신적 생채기만 잔뜩 남기고 원점으로 돌리었다. 결코 같을 수 없는 그 원점으로. 그제서야 알았다. 안간힘을 쓰며 마주 대한 들뢰즈와 니체 그리고 라캉, 김연수, 이상, 하루키. 진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 정본과 위본, 정독과 위독,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 몽타주로 새겨진 수 많은 얼굴들은 그것들 속을 질주하고 전복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경계선은 없었다는 듯이 뒤틀리고 탈구되며 무수한 생성과 창조를 이룩해낸다. 결코 부정의 죽음 없이. 난 사는 법을 배웠다.

그토록 무엇인가를 사랑했던 나란 녀석을 대하고 싶었다. 비가 내리는 밤바다 위에서 마주한 나를, 난 참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부둥켜 안았다. 
“죽지 않아도 돼. 죽고 사는 것 따윈 없었어. 내 손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을 뿐.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는 존재 그게 우리야. 중첩된 나란 존재 말야. 
이런 우리들의 존재의 행복을 신에게 과시해 주자.  
사장(沙場)을 피로써 물들이고 자빠진 영웅이 될 지라도...”
그렇다.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은 인간(人間)이기 때문이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8
09:01:47 

 

병장 이지훈 
  형 글은 항상 길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2009-03-13
10:15:31
  

 

상병 정근영 
  오랜만이네요. 
비록 책마을에 많은 발자취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 몇몇의 흔적을 더듬어본 결과 그 무게감은 결코 적지 않은 것 같군요.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해 제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떠돌던 것이 찬선님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