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감독열전 시리즈1-1  
병장 윤영돈   2008-10-17 05:30:36, 조회: 172, 추천:0 

쓸 것 없을때 올리는 나중에 잰채할때 써먹을 만한 감독열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어떤 시덥잡은 놈이 저질러놓은 시리즈 1-1


로드리게즈의 가르침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대표 연출작 : 엘마리아치시리즈(엘마리아치, 데스페라도, 원스원폰어인멕시코), 황혼에서새벽까지,씬시티)



1편에서 설명했듯 그는 어렵게 올라온 다른 감독들보다 너무나 쉽게 유명감독의 위치에 올랐고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며 수치심에 얼굴을 못드는 영화학도들을 비웃듯 젊은 나이에 굉장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말하는 가르침은 실로 간단하다.

'영화학교에 가서 수천불의 수업료를 내면서 듣지말고 나가서 영화한편 더 찍어라.'

각 대학 영화과 교수들이 들으면 분통을 토할 소리겠지만 그가 바로 산 증인이기 때문에 말도 안된다는 반박을 할 수 없다. 그는 영화학교를 다니지 않고 혼자서 자수성가한 감독이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감독이고 음향,편집,조명,각본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관한 모든 분야를 혼자서 모두 할 수 있을 정도로 올그라운드 플레이어다. 그건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웠다는 감독들도 자신있게 못하는 일이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학생시절에 대학교는 가야겠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영화밖에 없어서 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성적이 저조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를 교수에게 보여주어 강의를 듣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가 원했던 것은 건방지게도 영화에 대한 이론이나 전문화된 지식이 아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세분화된 영화작업에 대해서였다. 그는 그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혼자 찍으면서 알 수 없었던 전문적인 영화제작에서 부수적인 것들을(예를 들자면 필림현상에 관한 여러가지 방법 등)배웠다.

그가 만든 단편 영화인 '수세미머리(bad head)'를 보면 그가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우지 않은 사실이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을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는 주인공의 목을 제외하고 머리부분만 클로즈업한 장면을 촬영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주변의 영화과에 다니는 소년소녀들에게 '어떤 영화를 봤는데 목은 없고 머리부분만 촬영한 장면이 있더라, 이게 문제야?'하고 물어봐라.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똑같을 것이다. "어떤 또라이가 그렇게 찍어?" 로드리게즈라고 대답해주자. 그러면 그들은 대답할 것이다. "구라KIN."

뭐, 과장한다면 그렇다는 거고. 클로즈업 할 때 인물의 목을 제외한 머리부분만 찍는 것은 금기시 되다시피 한다.(그런 클로즈업을 봤다는 사람들은 머리부분에서 더 클로즈업한 익스트림 클로즈업 장면을 본 것이다.) 이유는? 머리부분만 나오면 머리가 잘린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내 첫 영화라고 해야할지,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창피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딱히 내세울 이유가 없는, 어쨌건 팀단위로 모여서 만들었던 감독 6명에 촬영감독 6명, 조명 6명, 스텝 6명, 음향 6명, 편집 6명. 한마디로 여섯이서 다 해먹었던 프로젝트에서 문제의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편집된 문제의 장면을 본 영화학도 모두가 입에 침을 튀겨가며 왜 이렇게 촬영을 했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세웠다. 불가능 그것은 하나의 의견에 불가하다. 라는 불굴의 의지를 컨셉으로 내세운 CF도 나왔었지만 교수님이 문제의 장면을 보고 실소를 머금고 지나가는 모습에 여섯명의 감독과,촬영감독,조명,스텝,음향,편집들은 의지는 고사하고 하나같이 발그레한 얼굴을 숙이기에 바뻤다. 근데 그 문제의 장면이 정말 문제일까? 글쎄, 모를일이다.

교수도 실소를 머금고 지나간 문제의 장면이 포함된 '수세미머리'는 아무도 알지못하는 그들만의 영화제은 물론이고 전세계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영화제까지 모든 시상을 휩쓸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교수는 물론이고 영화좀 배웠다는 사람들마다 비웃고 지나간 문제의 장면을 포함시켰는데도 모든 영화제를 휩쓸었다는건 그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닐까. 뭐,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을 받을 만한 대단한 작품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모를 일이다.

로드리게즈는 영화학교를 포함한 전문화된 지식을 가진 영화인들을 비웃었다. 실제로 그것을 노리고 썼든 아니든, 원했던 아니든, 영화학교가 그렇게 강조하는 금기를 깼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음으로써 '비웃기'는 성립됐다. 그리고 영화학교에서 배우지 말고 영화나 하나 더 찍으라는 가르침을 설파함으로써 학교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말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의견과는 약간 다른 입장이기는 하겠지만 영화는 너무나 세분화되어있고 전문화되어있다. 모든 분야를 어느정도 어우를 수 있는 능력과 시나리오를 멋들어지게 연출할 수 있는 표현력만 있다면 나머지 부분들은 잘 나눠진 개미들이 알아서 영화를 만들어 줄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있다. 뭐, 어느정도 어우를 수 있는 능력과 멋들어진 표현력이 말처럼 쉬운건 아니지만.

자, 그럼 그의 가르침이 진실로 옳은걸까.

이부분에 대해선 말이 많다. 옳다는 사람도 많고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든 그의 성공기를 봤든,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의 가르침을 봤든간에 그것에 감명받아 잴 것없이 영화를 찍은 사람들이다.

얼래? 그의 가르침대로 했는데 왜 반대를 할까?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했던가 그들이 잴 것없이 찍은 영화들은 말그대로 잴 것없는 영화가 되어 찍은 사람들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영화학도가 은근히 있는걸로 아는데 자신의 첫 영화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의 변종만큼이나 그 수가 적다는 것에 대해선 모두가 동감할 것이다. 대부분 영화를 공부한다는 사람들, 그리고 잴 것없이 뛰어들든 잴 것 다 재고 뛰어들든 단편이든, 독립이든, 상업이든 영화를 만든다는 사람들 대부분, 아니 모두가 눈은 높고도 높아 대기권을 통과해 소행성 B456에 닿아있다.

그들은 이미 평론가 뺨치는 평론실력으로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몽상가들이고 이 영화는 저래야 한다. 이래야 한다. 말들은 많지만 그런 이론들에 비해 그들의 첫 작품은 수치심에 물들어 재빨리 필림을 불태울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눈은 소행성 B456인데 만들어낸 물건은 저 땅속 깊은곳에 자리잡은 공룡 똥찌꺼기 화석보다 못하다는 것에 마음은 시퍼렇게 멍이 든다.

어쨌든 감명받아 뛰어들었는데 왕창 넘어진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옳다는 사람들은? 똑같다. 감명받고 슬립스틱코미디를 보여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하는거에는 개인의 성향과 태도의 차이일 뿐이니 별다른 말은 안하겠다. 찬성하는 사람이 더 낫다느니 반대하는 사람이 더 현실적이라느니 하는 얘기가 아니라 양쪽 다 시퍼렇게 멍이들게 만든 이 가르침을 그는 왜 설파한 것인가에 대한 얘기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고된 작업이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뭐해?", "응, 촬영중이야.", "우와, 재밌겠다." 재미있지. 단거리선수가 100Km 철인마라톤에 출전해 완주하는 기분이랄까? 매일같은 밤샘작업에 푹 늘어지는 몸을 싸잡아서 액션- 을 외치고, 촬영스케줄되로 대는건 하나도 없고, 배우는 나 몰라라하시고, 로케이션한 촬영지는 취소되고, 조명은 왜 이렇게 무거운거야, 촬영을 오래하다보면 한쪽 어깨가 내려간데, 씨스탠드는 왜 강철로 만든거지?, 촬영끝! 내일부터 보조촬영들어가겠습니다, 헥헥 왼손으로 쓰라린 폐를 부여잡고, 16기통 엔진 저리가라하게 굉음을 울리는 심장이 앞으로 튀어나올까 걱정되 오른손으로 막고서 100km 완주! 아 이 감동의 순간! 축하합니다 ~ 부상으로 슬립스틱코미디를 드리겠습니다. 꽈당.

는건 오바지만. 보통의 학생영화들은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말이 길었지만 대체로 '힘들다'로 요약할 수 있다. 배워가는 과정이다 보니 엉성한 면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이상은 스티븐 스필버그급에 있으니 낙담하는 량도 비례해서 천문학적인 량이다.

반면에

로드리게즈는 첫 영화제작의 시작이  8살 전후다. 그의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얻어온 비디오카메라와 편집기를 그가 차지해 자신의 장난감으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형제자매들도 9명이나 있었으니 배우는 충분하게 있었다. 원래 놀이와 함께 제작을 하다보니 첫영화의 엉성함도 꺌꺌거리면서 넘어갔을테고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영화제작덕분에 20대가 된 그의 경험치는 이미 노련한 중견감독수준이나 다름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가지 더하자면 그는 영화제작이 힘들지만 그 상황을 굉장히 즐거워한다. 애초에 놀이로 시작한 것이었으니 성인이 되어 진지하게 작업에 몰두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즐길수 있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그 힘든 작업을 깔깔거리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능력 이야말로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싶다.

능력의 차이가 많이 나는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애초에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리는게 아닌가 싶다.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영화를 배운다는 사람들은 그 영화의 흥겨움에 취해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배우지만 영화제작은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작업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들어온 문제도 있지만 만들어가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대한 태도 또한 부족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원할 뿐이지. 제작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로드리게즈의 가르침은 단순히 영화학교를 상대로 거는 도발의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작과정을 즐길줄 아는 그 속에서 한단계 발전하는 그 같은 사람들에겐 최고의 가르침이고 완성된 하나의 작품만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영화학도들에겐 따끔한 훈계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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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군요. 설탕먹고 와서 눈코뜰새없이 바뻐서 이제야 올리네요.
뉴페이스들도 많고 제가 없는사이 전쟁을 벌이다니 치사하게.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어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다음주도 바쁠 것 같고 글이라도 올려야 되겠고 조급하게 올립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1-28
20:07:44 

 

병장 김태형 
  감독..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죠. 영화의 전체적인 색깔을 결정 짓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 2008-10-17
07:18:10
  

 

병장 황인준 
  오랫만에 보는 영돈씨의 글이군요. 
반갑습니다. (웃음)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 보는 것 이외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습니다만, 
흥미있게 잘 읽었어요. 
만류귀종이랄까... 
"나가서 영화한편 더 찍어라. " 
"한가지 더하자면 그는 영화제작이 힘들지만 그 상황을 굉장히 즐거워한다 " 
이 두 구절이 확 와닿네요. 동감도 되고. 
무엇이든 간에 한 번이라도 더 해보고 그것을 즐긴다면 
못 해낼 것이 없다고 생각되요.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땀땀). 

한 편이라도 더 글을 쓰고, 글 쓰는 것을 즐긴다. - 이게 왜이리도 어려울까요(울음). 2008-10-17
08:39:25
  

 

상병 김무준 
  자신의 일에서 타인에게 인정받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치거나 
즐기거나 
두가지 방법 밖에 없나봅니다. 

그냥 미친 듯 즐길 수 있어야겠네요. 우선. 2008-10-17
10:18:32
  

 

병장 이동석 
  만날 이런 일만 있으면 우려먹은 이동슥의 래퍼토리 

영화를 좋아하는 경지가 셋 있는데, 
첫째는 영화를 보는것이고 
둘째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것이고 
셋째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전 정말로 전문적은 커녕 대충이라도 영화 제작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그냥 카메라가 생겼을뿐이고, 마침 심심했었죠. 그래서 그냥 찍었어요. 마구 찍다가 테잎을 갈고, 이번엔 할일없는 친구들을 불러다 이것 저것 시켰죠. 카메라 앞에 서겠다는 여자애가 없어서 졸지에 퀴어영화가 되긴 했지만, 완성하긴 했어요. 낄낄. 인코딩은 방송부 담당 선생님에게 맡겼고, 편집은 방송부에서 EBS 수능강의 테잎 만들던 친구가 했습니다. 완성한 걸 자체 시사회 느낌으로 봤는데, 

그때가 2002년 겨울인데, 지금까지 창피하군요. 

2005년 가을에 광주 KBS에서 운영하는 영화제작학교 워크샵에 조교로 채용됐는데, 
(단순히 광주지역 유일 영화제작 동아리에서 삼년만에 만든 영화의 감독이라는 이유로) 

막상 전 인코딩도 할줄도 모르는 풋내기였죠. 한창 깨지며 잠깐 배우고 있었는데, 친한 후배가 서울에서 봉준호 감독 영화에 스텝으로 있다는 소리에 낚여 전부 때려치우고, 급 상경했더니 봉준호도 없고, 송강호도 없고, 불법 다단계만 있더군요. 

낙향해선, <화려한 휴가> 세트장에서 보조출연자 관리하는 동아리 선배 따라다니다 말았구요. 봉두난발에 촌스러운 옷차림 덕에 분장도 필요 없이 군중신에서 몇번 나왔는데, 제가 봐도 못찾습니다. 

제 영화 경력은 그게 끝이었어요. 중간 중간 영화제 스텝한건, 영화 경력이라고 보긴 어렵겠죠. 

이거 그리고 보니 제 주민 탐방에 쓴 내용이랑 거의 똑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