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남자들의 '찐한' 우정  
상병 박원익  [Homepage]  2009-05-22 00:34:21, 조회: 217, 추천:2 

  최근 실크로드 탐방(?)에 나선 유명 작가 황모 씨의 발언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와 문단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수 많은 문인과 비평가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 분의 발언이나 그 분의 인격에 대해, 혹은 그가 소위 말하는 몽골리안 대연합이라는 어떤 구상의 원-파시즘적 성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이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곳 공간의 특성상 맞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더라도, 여전히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황모씨와 어떻게든 일면식이 있는 지인들, 예컨대 시인 김모씨라든지, 혹은 <창작과 비평> 편집인으로 있는 백모씨(백낙청은 아닙니다)들의 반응이 그렇지요. 저는 그들에서 저 좋았던 옛 시절에 찐하게 판을 벌렸던 남성들의 기막힌 우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변화를 운운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백 모씨의 경우에는 창비 편집인으로서, 황씨의 발언에 대해, '평소 흉금을 터놓던 선배인데, 무슨 의중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만나서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전에는 무어라 예단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는 군요. 이에 한 술 더 떠 김 모씨의 경우에는, 황 씨를 신랄한 독설가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의 비난으로부터 방어하면서, '그는 그런 사람 아니다, 내 아우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는군요. 이런 화법에 기본적으로 깔린 인식론적 전제는, 그가 내뱉은 몇마디를 가지고 역사의 온갖 질곡을 넘어서고 극복해 온 '인간' 황모 씨의 위대성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되며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문학의 세계에서 혹은 언어와 담론으로 승부를 가르는 비평의 세계에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규준은 무엇보다 그의 '언행'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저에게 혼란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러한 '인식론적 전제'는,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공적 자리에서 '각' 잡고 발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술잔을 부딪히면서 남자 대 남자로 서로 불편한 속내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오해를 훌훌 털어놓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유사 이래 우리는 지금까지 문학계라든지 문단이라든지 비평의 공간에서 이런 식으로 남자답게 '소통'해 왔다는 것인가요? 하긴 그런 식으로 본다면, 앉아서 천리 밖을 내다보듯이 촌철살인을 서슴지 않다가도 어느새 흉금을 털어놓고 상대의 품에 안기는 '전향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처세술이고 훌륭한 생활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저들이 황씨를 옹호하는 화법들에서 묻어나오는 멘털리티는 사뭇 충격적이기가지 합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남자다운 소통방식'의 이러한 뒤틀림이 정치적 공간 밖으로 터져나왔기에 그토록 '스캔들'이 되었던 것이지, 그 이전에는 이러한 남성적 도착이 도처에 존재해왔고, 심지어 가장 정직한 언어로 우열을 가려야하는 문학의 공간, 비평의 공간, 그리고 학적 담론의 공간에 더더욱 밀착된 채 기생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테지만, 아무래도 보다 '뻔뻔'스러운 형태로 공적 공간에 표출되다보니 저로서 상당히 민망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이런 '뒤틀림'이 사실 저들에게는 이미 세월과 더불어 뼛 속 깊이 각인된 채 만성화되었을 테지요. 하긴, 거리에서 스크럼을 짜고 얼굴을 붉히며 지하서클에서 논쟁하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사실, 내 진심이란 발이지, 벗이여...."라며 술잔을 기울였겠지요. 저는 이런 일상들이 오늘날 세미나에서도, 학회에서도, 동아리에서도 만연하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씁니다. 

  진보적인 남성들의 이러한 마쵸적 성향의 소통방식은 사실, 기성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며 어쩌면 언제나 느슨한 인문학적 취향의 울타리 내부에서 '공감'과 '위로'를 바라며 탐닉하는 오늘날 일상적인 태도에도 되물려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우리가 타인과 소통하며 그토록 주려고 노력하고 동시에 그만큼 받으려 노력하는 이 '공감'어린 소통의 진정성이 얼마나 진심이든 간에, 그것을 어떤 정합적인 "언어"로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 없이는, 결국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 저는 저 기성세대의 모습에서 벌써 목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결국, 사실은 똑같은 기득권, 똑같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면서 말로는, 관념으로는 누구와도 연대하고 공감하고 투쟁할 수 있을 것 같은 저 아름다운 영혼들의 모습으로 귀결될 테지요.

  저는 황모씨와 그를 둘러싼 문단의 수많은 권위자들을 보면서, 사실은 '언어'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저들이 얼마나 '언어'를 모르며 그것에 대해 무지하고 무심한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신이 쓰고 말한 '언어'로 승부를 내려 하지 않고, 그것으로 평가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영혼'과 '진심'과 그들이 공유했던 '시대정신'으로 평가받으려 하는 한에서, 그들은 가짜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들의 본성을 똑바로 직시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4:19 

 

상병 양동훈 
  껄껄껄. 

날카롭고도 냉철한 글이네요. 

한 인간을 그 인간 군상이 이루어 온 길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이루어 낸 결과물로 볼 것인가... 2009-05-22
14:49:09
  

 

일병 이승진 
  박원익/제목을 보면서 신랄하게 독설을 퍼부어주리라고 들어왔다가는, 형님!하고 안기고 싶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 허허. 이런 멋진 사나이! 

더 슬픈 것은 '진보적인 남성들의 마초적 성향'이 비단 '진보적인 남성들' 에게만 한정되어 나타나지 않는 다는 사실.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원형은 강하게 남아있지 않던가요. 

브라더후드-형제애는 우애라 불리는 모든 단어에 쏙 쏙 쏙 쏙 쏙 쏙 들어가서는 
대체 묵은 때처럼 빠질 줄을 모릅디다. 

같은 생각이라고 확신하긴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간만에 맞닿는 부분의 글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 언제나 느슨한 인문학적 취향의 울타리 내부에서 공감과 위로를 바라며 탐닉하며 자위하는- 이런 자세. 아아/ 2009-05-22
14:57:44
  

 

병장 이동열 
  한국사회에서는 유독 이러한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것같습니다. 오른쪽에 서 있는 이들이나, 왼쪽에 서 있는 이들이나. 오른쪽에 서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왼쪽에 서 있는이들 마저 이러하다는 사실에 절로 슬퍼집니다. 이러한 원인이 우리 사회에 편중된 스펙트럼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나오는 빛들이 때론 첨예하게 대립하길 기대해봅니다. 2009-05-22
15:20:42
  

 

상병 진수유 
  원익님 말씀대로 그러한 '인식론적 전제'가 보다 '뻔뻔'스러운 형태로 '하필'이면 공적 공간에 표출되다 보니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이러한 반응을 그들이 과연 계산으로 깔지 못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들보다 더 '무개한' 황모씨의 발언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는, '다소간 무개한' 발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면면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황모씨'로 상징되는 한국 인문학계를 그나마 방어해 보고자 (물론 이렇게 되면 원익님 말씀처럼 그들도 결국 ㅡ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하는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확연한 진실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한발짝 물러나서 기다려보자는 제안은 다시 '형제애' 문제를 낳게 되는 건가요? 어찌됐든 간에, '형제애' 문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똑바로 직시해야만 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저도 크게 동의합니다. 

동열님 말씀처럼 제 생각에도 이것은 문화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보여지는데, 즉, 다른 나라의 경우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형제애' 문제 스펙트럼에서(죄송) 한국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엄청나게 심각한 나라도 있지 않을까요? 2009-05-22
16:25:15
  

 

병장 이지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군요. 소위 황모씨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한 몫했습니다만, 황모씨의 이야기로 이렇게 깊이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니. 저로썬 많은 것을 배우네요. 2009-05-22
22:40:38
  

 

병장 김무준 
  이 이야기를 투어 후에 바깥 신문을 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기사를 접한 후에는 사건이 꽤나 진행된 후였는데, 황석영씨는 '사실 그렇게 말하려던 게 아닌데 어떻게 하다보니 말이 왜곡된 것 같다.'더군요. 

사람이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황석영씨와 같은 작가가 언행에 있어, 혹은 정치와 관련된 민감한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는 건 영 실망스럽습니다. 뭐랄까, 예전에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자주 느꼈던 아쉬움을 많이 느꼈어요. 

지나치게 비판적인 입장은 아니지만서도. 이건 아니다 싶네요. 한편으로는 좀 더 입조심, 손조심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2009-05-23
01:03:39
  

 

상병 박원익 
  말씀하신대로 애초에 '형제애', '브라더후드'라는 게 어제 오늘날의 일만은 아닌,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고요. 물론 동기 간의 형제애는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겠지요. 사실 전 영화 <300>을 보고 열광했던 한 명의 관객이기도 합니다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영혼'이나 '내면'에 그토록 잇닿아 있는 인문학이란, 그토록 외면적인 '언어'에 신경쓰고, 또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런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는게 슬플 따름입니다. 

사실 황모씨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어쩌다 사석에서 흘린 실언이 아니고, 큰 결심을 하고 공적 자리에서 발표를 한 것인만큼 타인의 평가에 대해 '부당하다'고 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말이 맞고, 그토록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싶었다면, 전통적인 옹호자들로부터의 비판 정도는 가볍게 받아쳐야지 않을까요? 2009-05-23
07:21:51
  

 

상병 김예찬 
  '황구라'가 황'구라'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 기분이 들더군요. 우리는 다른 황'구라'를 익히 알고 있죠. 황우석이라고... 

정모 때도 잠깐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민주화 운동 참여에 대한 황석영의 후일담들도 진지하게 따져보았을 때 애매한 느낌이 드는 구석이 없지않습니다.. 물론 탄압 때문에 전세계로 떠돌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인생 역정을 떠올리면 이런 의문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정 부분에 '구라'가 섞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2009-05-27
16:5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