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내 마음은 저녁에 가장 맑고 냉철합니다. 나는 냉철함을 좋아합니다. 냉철하고 명석하고 차분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절망하고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작품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낙하하는 저녁의 인물들이 제각기 기묘한 향을 풍기는 것은.
그 향은 살아있는 인간의 살내음과 땀냄새가 아니라 Opacity를 지독히도 낮추어 어른어른 뒤가 비쳐보일 듯한 투명함을 자랑하는 망령의 향이었다. 덕분에 글을 읽는 내내 그 향에 질식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 역시 책을 표지 디자인과 제목의 ‘간지’만 보고 사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구나 하고 조금 반성했다.
낙하하는 저녁은 세 명의 이별이야기이다. 8년 동안 다케오를 사랑해온 리카의 이별, 8년간 사랑해온 여자를 3일의 순간적이고 초월적인 이끌림에 버리고 하나코를 사랑하게 된 다케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하나코.
어찌 보면 사랑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이끌려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다만 이 세 명이 하나같이 둥실둥실 현실감각과는 동떨어져 허공을 부유한다는 데에 ‘낙하하는 저녁’의 아이덴티티가 있다.
사랑하는 남자의 여인과의 동거
결국 이 소설을 가장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헤어진 남자가 새로이 사랑하게 된 여인이 무려 자신과 함께 동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로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인데, 리카는 스스로도 정확히 이유를 모르면서 하나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다. 감정은 폭발하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어물쩍 어물쩍 갈기도 마냥 이도저도 아닌채 허공을 맴돈다. 마치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저녁마냥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분명히 세상이 어둠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뿐.
불쑥 찾아온 하나코의 황당한 제안 ‘여기서 살게’라는 제안에 주인공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도 없이 죽을 듯한 슬픔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얌전히, 너무나 얌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새로이 사랑하게 된 여인을 그저 관찰한다. 그것은 아마 그녀가 ‘다케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코는 접점이다. 하나코가 자신의 집에 있는 한 다케오는 다시 자신의(리카) 집을 찾아오게 될 것이고 일단 그 사실에 리카는 안도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케오는 다시 옛 연인의 집이며 동시에 현 연인의 거주 장소인 이 집을 다시 찾아온다. 게다가 그 초대는 ‘리카’부터의 것. 그 초대를 받은 ‘다케오’는 ‘하나코’를 만나러 오며, 하나코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말한다.
“나, 나가 있는게 좋을까?”
“왜?”
“오랜만에 만나는 거잖아, 둘이 있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이미 헤어졌는데 뭐.”
“그냥 있어. 너 만나면 다케오도 좋아할거야”
뭐니? 얘네들? 아무리 컨셉이라해도 지독히도 현실감이 없는 이러한 상황은 내 머리에서 쥐가 나게 만들었다. 아아. 일본센스다. 너무나 일본센스다. 사라져라. 이 섬모충들아.
하나코
솔직히 말하건데 이 캐릭터를 보며 ‘아야나미 레이’가 언뜻 떠올랐다. 시기로 봐도 대충 비슷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1995년 작이고, 이 [낙하하는 저녁]은 1996년 작이다.
분명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니다. 일종의 ‘신비주의 컨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야나미 레이’의 경우 그녀 특유의 투명하고 실체가 없는 듯한, 항상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한 그 허무함의 정체는 작중에서 어느 정도 설정이 밝혀지나, 이 ‘하나코’의 경우 밑도 끝도 없다. 그냥 처음부터 그런 ‘여자’인 것이다.
“하나코는 늘 남달랐으니까요”
“남달랐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제멋대로였습니다.”
욕조가 빨갛게 물들였으리라. 하나코에게는 빨간색이 어울렸으니까.
게다가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보는 순간 정체 모를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며, 8년간 사랑한 여자도, 미모의 부인도 전부 내팽개치고 그녀에게 달려간다. 정작 그녀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집착과 소유욕은 너무나 격렬하여, 마지막에 ‘하나코’가 자살해버리자 카츠야는 부인에게 말한다.
“오히려 잘된거야. 이제 하나코가 다른 남자하고 자는 걸 보지 않아도 되게 됐네”
하지만 누구도 그 정체불명의 매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나코는 어떤 탐미적 상상의 결정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존하는 어떤 인물로써 확립되다기 보다는 그저 누군가가 품고 있는 환상. 어디에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노닐며 죽음조차 아름다운 그런 것. 그래서 이 소설이 싫다. 분명 다루고 있는 것은 판타지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그저 현실적인 배경으로 하는 ‘연애소설’ 일 뿐인데, 그에 반해서 캐릭터들의 개성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하나코를 실체가 있는 하나코로써 확립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빠져있다.
에반게리온의 유명한 씬.
“나 이런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지 모르겠어.”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해서, 미소짓는 ‘아야나미 레이’를 보는 순간 그때까지 허공을 휘젓는 듯 하던 레이의 캐릭터가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느낌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마무리 지으며
여태껏 내가 말한 건 사실 취향의 문제다. 이런 가슴이 허하도록 부드럽고 너무나 맑고 투명해 하늘하늘거리는 이야기 또한 즐기는 사람은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 나에게 이 작품에서의 에쿠니 가오리의 ‘감수성’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투명하고 냉철해서 거부감이 든다.
사실 그녀의 작품에서 감정이 격렬한 케릭터는 거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울 준비는 되어있다.’ 의 ‘울 준비는 되어있다’는 이 낙하하는 저녁과 상당히 유사성을 가진다.
주인공과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한 때 동거를 하며 깊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파트너를 만나고 다닌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인공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그 아픔을 특별한 격렬한 감정의 요동 없이 고요한 호수처럼 이겨낸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인공은 수 많은 경험을 거친 ‘강한 여성’이다. 해외여행 도중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시도했던 남자에게 침을 뱉기도 하며, 귀여운 자신의 조카가 상처입지 않도록 언젠가 다른 남자에게 배운 ‘해산물 수프’ – 뜨거운 생명력의 상징 –을 먹여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껍데기만 남은 사랑 – 나무가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 – 에 대한 전화를 받아도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낙하하는 저녁의 리카는 그렇게 되기엔 너무나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에쿠니 가오리 답다면 에쿠니 가오리 다운 글이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결국 ‘반짝반짝 빛나면’과 ‘울준비는 되어있다’를 제외하면 별 볼일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