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지방선거 부재자 투표를 앞둔 즈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하지 않을지 망설이는 상황에서의 그 망설임은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망설임일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책임을 사려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먼저 행동을 하고나서 그 이후에야 책임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는 벌써 책임을 질 수 없는 정도의 사건이 벌어져버린 상황이 생겨 종종 우리를 난감하게 한다. 책임 질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 경우를 일컫는다. 책임의 문제는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런데 그 문제는 그 범위라는 것이나 그 제한이라는 것 둘 다 개인 마다 범주가 미묘하게 달라서 그 경계에서는 언제나 사람들 간에 충돌이 빚어진다. 주권 국가의 영토처럼 물질적인 세계의 구획을 긋는 것도 국가적인 논쟁을 야기하는데 사람간의 추상적인 선을 논하는 것에서 어찌 논쟁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유주의의 토양 위에서 어느 시대보다도 더 자유롭게 성장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그 선-범주-에 대한 고민은 늘 필요하다. - 굳이 필연적이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때때로 주변에서 그 고민에 대한 심각한 결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책임을 논하는 것은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최우선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그 책임을 상기시켜야만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점은 항상 비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고립되어 살아가고, 관계를 종종 망각하며 나와 세상을 잇는 사슬의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발전은 그저 나의 발전일 뿐이고, 나의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하는 그런 일종의 패배주의나 무력감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북을 치고 장구를 치든 나는 그저 내 손에 들린 꽹가리나 음정, 박자 무시하고 두드려대는 성향이 생긴다. 그래서 자기 혼자 자기의 타악기를 두드리기 바쁜데, 다른 사람들 일일이 모으고 모아 한 소리를 만들어내려는 정치적인 시도는 종종 삽질로 비하된다. 저런 삽질은 자기 악기도 채 두드리지 못하고 지지부진 시간만 끄는 경우가 많음을 논리적이 아닌 경험적으로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신명나는 놀이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정말 성급한 귀납 추리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혹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만한 행동만 한다, 또는 책임지지 못할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책임’이란 대체 뭔가. 그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지마라는 경거망동에 대한 일갈일 수 있겠지만, 책임의 범주를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책임 회피를 가져올 우려도 크다. 앞서 말했듯 책임의 범주를 고민하는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임의 범주를 한데 그러모아 고정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도 없거니와,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책임의 범주를 고정시킨다는 말은 책임의 거울이미지처럼 쌍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자유를 획일화 시키자는 말과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고, 고민한데도 막상 성문법처럼 문서화시킬 수도 없는 책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물론, 어느 누군가 ‘모든 결과물이 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일어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라고 그랬듯 나비효과라는 말이 의미하는 거대한 파장과는 달리, 사회는 하나의 힘이 저 너머의 다른 것을 모조리 바꾸어버리는 단순 구조가 아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자신의 책임 범위를 좁히고, 그로 인해 타인과의 인과라는 관계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멀게 함으로써 의도했든 아니든 책임을 일정 회피한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유주의자라는 말은 모순이다. 자유와 책임의 그 강력한 연관을 온몸으로 고민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자라 자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자유가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소중하고,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함께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책임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문제다. 그 책임에 대한 고민은 그저 당장 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내가 빚어내는 행위들이 모두 내 통제하에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들만을 한다라고 말한대도 그것은 책임이라는 문제에 실존적으로 다가가는 접근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조금 더 나은 정도,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과의 사슬을 지나치게 엷게 해석해서 그저 관조나 방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게 만든다, 본인의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과연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것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할 수 있을까.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라고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어쩌면, 정말 책임을 지지 않을만한 행동을 한정할 수는 있습니다. 비록 매우 낮은 성취 가능성이 수반되겠지만. 하지만 나의 모든 행동은 내가 책임 질 수 있는 범주, 그 책임에서 행동이 나온다라고 스스로 확언하기엔 저는 그것을 오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임의 정도를 규정하고, 서로의 책임을 인지시키며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 정책적인 차원, 제도적인 영역에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것이 정치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언급했던 것과 같이 선거는 그 정치의 시작이다. -결코 끝은 아니지만- (군에서 부재자 투표를 강조하고, 전 장병의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국가의 기간 조직으로서의 군이 다해야 할 책임에 충실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결코 귀찮아 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강제든 아니든 참여하게 될 선거인만큼 자신이 누구에게, 어느 정당에 표를 줄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선거가 이제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여전히 여야는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책에서 크게 별 차이를 주지 못하고, 제3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민노당은 기대이하의 역할에만 머물고 있으며, 지방선거가 그 본래의미로서의 풀뿌리 민주주의나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발전과는 무관하게 여당과 대통령의 평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지금의 시점이다. 수도 서울의 시장에는 정책이 뭔지 관심을 돌릴 여유도 없을 만큼 화려한 이미지를 지는 인물들이 등장했고, 지역 정당론이나 호남적자론이나 부산정부나 이런 이야기들이 선거 때가 되면 좀 잊을까 무섭게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거기다 각 정당들의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유권자들은 불어대는 붉은 월드컵의 바람에 휩쓸려 저만치 가버렸다. 대-한민국을 들을때마다 대한민국의 16강 소식보다 지방선거 최소 투표참여율이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응원을 하는 대상이 대한민국인지,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인지, 그저 뭔가 신나는 경험이 필요한건지 그 타겟이 분명했으면 좋겠다. 목적없음이 의미없는 행위들을 계속해서 빚어내고 그 행위들은 술에 물탄듯 무책임으로 슬쩍 넘어가서 그냥 그랬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낳는다. 시대를 뿌옇게 덮은 무관심과 무책임, 고립과 고독은 무수한 섬들 사이에 있는 책임이라는 다리가 붕괴되어버린 결과는 아닐까.

정치가 밥 먹여주나, 정치에 관심없다. 그래봐야 다 똑같다는 식의 편협한 경험에서 빚어지는 성급한 일반화는 그러한 이유들로 극복되어야 한다. 정치에 관심없다. 왜? 맨날 지들만 싸우고, 나아지는 것도 없으니까. 사회의 연결고리가 싫고, 다른 사람과 내가 왜 굳이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인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떠한 방법으로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깨달음이 어느 날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친 그 때, 서로우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세금도 소득도 없이 신이 주신 선물인 자연의 품으로 홀로 걸어들어가 다시는 사회와 연을 맺지 말고 자신만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정말 스스로에게 정당하고 옳은 일이 아닐까. 괜히 바람이 왜 동쪽에서 서쪽으로만 부는거야 하는 불펑처럼, 정치는 왜 저 모양이지라고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고, 자신과 완전히 동떨어진 그저 허공에 부는 바람에 대고 이야기하듯 투덜거리지말고.
 

  
 
 
 
병장 한상원 (2006/05/22 14:29:22)

부재자 투표를 다들 진지하게 해봅시다-라는 전략적 구호아래, 예전 희석씨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논의의 수위를 조절하다보니 별반 다른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혹시라도, 자극적인 댓글은 자제합시다.(훌쩍) 제가 좀 겁이 많아서. 에헴    
 
 
병장 박형주 (2006/05/22 16:06:26)

0.1mm만큼 수위를 높여서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조만간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치학에는 문외한이라 역시 대단한 얘기는 안 될 것 같고.    
 
 
병장 주영준 (2006/05/22 16:07:06)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누군가 써야 했던 글을 맡아 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죠. 수고하셨습니다.    
 
 
상병 송희석 (2006/05/22 16:11:26)

혹자 = 송희석, 어느 누군가 = ? 
아무튼간, 하하, 투표를 이야기하는것에 대해 별 관심은 없지만, 굳이 집고 넘어가자면 투표를 하면 그순간 본인의 책임은 다 끝나는것인가? 라는 꽤 말도안되는 이야기도 나올수 있고, 그렇다면 투표를 하기전 선거운동을 하면 본인의 책임을 다 하는것인가? 라는 또 말도안되는 이야기도 나올수 있고, 도대체 책임을 끝까지 진다는 의미를 사회의 연결고리에 대해 스스로가 앞장서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자유주의에 합당한것인지도 의문이 들고, 그냥 대충 그렇다는 건데, 역시 전 이문제에 대해서는 별 고민거리가 없어서 그냥 잘 읽고 갑니다.    
 
 
병장 한상원 (2006/05/22 16:23:34)

형주/ 전략적으로 괄호를 사용하면 됩니다. 제 글의 핵심은 본문 가운데의 괄호랍니다- 기대할게요. 저는 정당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으나 못하겠습니다. 켁. 

영준/ 누군가 써야했던 글을 맘대로 맡다보니 글이 사실 어중간해서 저는 별로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헤헤. 저의 빈 부분은 언제나 이런 부분이 되는군요. 영준씨의 사회학적 해석처럼 풀어놓는 재주가 되지 않아 언제나 제가 맡고자 하는 부분은 그저 금기어 투성이 입니다. 켁. 

희석/예전에 부락에서의 댓글을 고대로 옮겨와서 편집, 추가한겁니다. 혹자는 아마 희석씨겠죠. 마음대로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출처를 밝혔으니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그리고 사회의 연결고리에 대해 스스로 앞장서는 것은 제가 아는 자유주의에는 분명 합당합니다. 스스로 앞장선다는 것의 수위에 아마 차이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만.    
 
 
상병 송희석 (2006/05/22 16:32:31)

상원/ 저는 스스로 앞장서는 것만큼 스스로 물러서는것도 존중해자는 그런 의미입니다. 조금 수위를 높여서 부재자투표자체가 그다지 효율성이 없는 투표라는것은 상원님도 이해하실거라 생각을 합니다. 후보자가 그저 당이 무엇인지, 공략이 무엇인지, 약력은 어느정도인지만 아는 투표를 하는것이 진정한 투표의미라면 저는 사양한다는 대충 수위 0.01mm높은 발언을 해봅니다.    
 
 
상병 송희석 (2006/05/22 16:33:31)

오타입니다. 존중해자는 -> 존중해주자는    
 
 
병장 한상원 (2006/05/22 16:44:04)

예전 제 글에 그런 댓글을 다신 분이 있었는데, 그때 뒤숭숭해서 못한 대답을 해야겠군요. 

스스로 물러서는 것도 물론 표현의 하나지만, 스스로 물러서는 것과 무관심한 것이 적절하게 혼재되서 일부 당사자들도 내 마음 나도 몰라-식으로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유명무실해진 대학의 학생회 투표를 떠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심을 담아 물러섬으로 표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물러선 자리에 다른 새로운 것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부재자 투표는 해야합니다. 지나친 낙관에 기댄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상병 송희석 (2006/05/22 16:49:09)

상원/ 상원님과 저는 결국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이런이야기를 깊이있게 나눌수밖에 없어요. 여기서는 절대 불가능하죠. 물러서는것을 그냥 물러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상원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고, 다만 물러설때 충분히 진심을 담은 물러섬은 존중해줘야 하는것입니다. 그것을 억지로 제발 다가오세요! 라고 외치는것은 결국 자유주의와는 아주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부재자 투표는 하든 안하든 결국 당사자가 결정하게 되어있습니다.누굴 뽑는것은 절대적인 자유에 맡겨야 합니다. 설사 아무도 안뽑고 나올지라도 말이죠. 하라고 절대 강요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병장 한상원 (2006/05/22 16:51:16)

희석/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래도 일종의 전술적 발언으로 봐주세요. 흐흐    
 
 
상병 송희석 (2006/05/22 16:51:56)

상원/윽! 전술적 발언이라면 전 더이상 침묵하겠습니다.    
 
 
상병 박종민 (2006/05/22 20:02:48)

좋은 글 남겨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책가지에서만 만나기엔 많이 아쉬운 글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나몰라라 생-가실 분들은 아니라고 보거든요(웃음)    
 
 
 병장 김동환 (2006/05/23 08:15:14)

잘읽었습니다. 
우리모두 주변사람들 손잡고가서 같이 투표꼭 하고옵시다. 힛.    
 
 
상병 강승민 (2006/05/24 09:33:15)

온건하시군요. 
아주 아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