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읽기, 개론서를 옹호한 영준군에 발맞춰 보며 + 약간 덧붙임 
 
 
 
 
음. 글에서는 반말해도 되는 분위기군요. 그렇군요. 좋은 걸 배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말 놓고 시작하겠다() 그냥 찌질하게 떠드는 소심쟁이의 이 사소한 중언과 부언의 연속길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당신의 역량이 뛰어나서이지 이 글 안에 어떤 통찰력 따위가 있어서는 아님을 전제한다. (........) 조금, 긴 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다지 읽을 만한 내용은 아닐거라 장담한다. (........) 그냥, 이건 일기다. 일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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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을 손에서 멀리했다. 언제 잘 모른다. 수십 년의 간격을 뛰어넘고 수천 km의 거리를 건너온 각종 대학의 학보와 교지들로 내 하숙방 서가를 가득 채웠던 대학 사회의 꿈을 키우던 그때 부터였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남아있을 뿐. 언제부터인가 책은 분명, 내 손에서 멀어졌다. 

어려서부터 학자와 관료의 집안에서 나는 태어났다. 유생이신 외조부나 대학총장이라는 조부의 직함은 내 유년기를 책 곰팡이로 가득 메우기에 차고 넘쳤다. 책은 언제나 넘쳤고, 나는 세상에서 유일한 도락을 독서로만 생각했다. 캠퍼스 사택에 살았기에 친구 따윈 없었다. 어린 시절 내 주변엔 오로지 어른들만 있었다. 그 속에서 난 내 나이를 배우지 못했고 독서의 방법을 습득하지 못했다. 그저 어른들의 행동과 독서를 나는 무작정 따라 했다. 옹알이하듯 책을 앞에 놓고 읽는 척하는 3살의 나를 어른들은 그저 귀여워할 뿐이었다. 세살 무렵 혼자 책을 앙탈하듯 흔들리는 목소리로 한 줄 한줄 읽는 모습에서도 나의 친척들은 대학교 학생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방치했다. 지도하고, 가르쳐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대학교라는 축복의 공간에서 독서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책을 보았다. 책 읽는 법을 배우기 전에 혼자 사는 법을 그렇게 먼저 배웠다. 책을, 배웠다. 

아무런 책이나 그저 집어다 읽었다. 내가 보던 책에는 유년기의 나를 위한 동화책은 거의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오로지 책읽기였기에 동화책 몇 권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으니까. 나는 의미도 모르고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었다 한다. 사택은 신학교 안에 있었다. 니체와 스피노자를 함께 품에 안았다고 한다. 사택은 신학교 안에 있었다. 데카르트와 콩쥐팥쥐를 같이 놓았던 기억은 아직 내 머리에 남아있다. 

간단했다. 그냥 잡히는 책을 집어다 읽었다. 6살이 되어 부모님이 분가한 이후로도 이미 들인 습관은 여전히 이어졌다. 새로 이사한 동네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다. 여전히 나는 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었다. 일판을 번역한, 당시로선 비교적 완역에 가까운 버전으로 동끼호테와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고 오만과 편견을 접했다. 화이트헤드와 플라톤을 섞어 읽었다. 하나하나는 이해가 갔으나 그 총체적 접근은 하지 못했다.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소쉬르와 국부론을 함께 읽는게 왜 이상한 건지 내가 다닌 초등학교, 중학교에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우리 지역 유일의 도서관 사서는 4년간 빌려본 책이 3천권이 넘었다 말했다. 책은 오컬트에서 인문학, 고등수학에서 고시용 이론서까지 전혀 잣대나 체계가 없었다. 다만 그저 읽고 배우는 게 좋았고 그렇게 했다. 고등학교까지도, 대학교까지도. 아무런 체계도 교육도 없이 그냥 많이 읽는게 마냥 좋았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믿었다. 

그때까지 난, 그저 넓게, 한정없이 넓게 읽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책은 무조건 원전을 읽으려 했다. 내가 살던 대학에서 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읽었으니까. 소개서, 입문서는 어차피 다이제스트라 생각했다. 줄거리만 보는 것은 진절머리 났다. 그 문장, 그 속에 담긴 냄새 하나마저 나는 모조리 접하고 읽고 싶었다. 책을, 읽었다. 

경제학 고교 교과서도 모르는 녀석이 국부론을 읽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경제학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에 아담 스미스가 만든 책이니 괜찮을 거라 믿었다. 매슬로우의 기초적인 동기부여 이론조차 모르면서 허즈버그를 꺼내 2요인 동기부여이론을 읽었다. 어차피 이 세상의 학문은, 원전을 중심으로 이어 내려온 거라 믿으면서 그냥 읽었다. 한 문장 한 문단이 읽히고 이해되는 것을 나는 이해라고 믿으며 그저 많이 읽어 내렸다.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천체물리학, 빌둥, 문학, 시문학, 기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생각날 때마다 책을 집어다 읽었다. 종교학이 한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정치학에 3년을 빠져 지냈지만 언제나 나는 학문적 딜레탕트에 불과했다. 하나도 깊이 아는 것 없으며 어느 하나 그 깊은 이해의 고리에 내 손가락 끝이나마 걸어보지 못했다. 허나 그것만으로 나는 내게 만족했다. 아직 어린 나이, 아직은 모든 세상의 학문과 책을 접하지 않았기에 필연적인 나 자신의 한계라 나는 그때 믿었다. 책을, 믿었다. 

더 많은 독서, 더 폭넓은 독서의 향연은 지금 생각하면 오딧세이아의 연밥, 우울한 딜레마였다. 아무리 많이 읽어도 선배, 선각자, 앞서간 이의 발자취를 나는 몸서리치게 느낄 수 없었다. 무수한 문헌에서 드러나는 글읽는 기쁨, 배우는 엑스터시를 느낄 수 없었다. 국내에선 좁지 않다는 학교 도서관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방황하며 책을 찾고 읽었으나 갈증만 자라났다.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 라블레의 가르강튀아를 10년간 찾았으나 끝끝내 보지 못하고 실망했다. 내가 보지 못한 책, 바로 다음 페이지와 다음 책장에 나를 열락에 젖게할 내용이 담겨 있을 거라, 이 세상을 관통할 지혜가 있을 거라 믿고 책을 읽었으나 끝끝내 나는 혜안을 접해보지 못했다. 실망했고 좌절했다. 

원전들은, 숱하게 널린 온갖 학문의 전당은 도리어 부질없었다. 너무 길었고 너무 난해했다. 다른 책들, 각종 소개서에서 설명한 지혜와 통찰은 그 너른 책장의 평원 중 고작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슬펐고, 힘들었다. 나는 책을 던졌다. 차라리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사유하리라. 내게 걸맞는, 지금 이 사회에 맞는 지혜를 내 스스로 깨달으리라 다짐하면서 책을 놓았다. 책을, 읽지 않았다. 

그 즈음 언론에, 대학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 사회에 뛰어들고 그 현실에 분개했다. 숱한 학보와 교지들을 모았다. 받아 읽었다. 훑어보는 것만으로 현기증날 정도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구하기 힘들던 하버드 크림슨을 읽어내릴 때 즈음에는 원전, 학문과 학예의 본당을 나는 거의 머리에서 떼어버렸다. 책을 보지 않았다. 내 스스로 접할 수 있는, 직접 뛰어들 수 있는 대학 사회, 내가 속한 대학의 학생 사회를 분석하고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만으로 머리는 가득찼다. 읽어야할 선배들, 다른 학교의 학보와 교지들만도 수백권은 족히 넘었으니까. 책을, 잊었다. 

내 스스로 대학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보다 적극적으로 내 생각 내 판단을 밀어붙였다. 많은 선배들의 전통을 내 손으로 화장했고, 숱한 선배들의 전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어중간하게 가로 놓였던 내 위치는 어디에서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자리였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했다. 그래야 하는 처지였고, 그래야하는 위치였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에 만족했고 사유의 중요성,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붙이는 이성과 합리의 책임을 중요시했다. 다른 위치, 다른 입장의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과 대화하려 했었다. 내 생각 내 사상을 설명하고 내 책임 아래 펼쳐나갔다. 그것으로 만족했었다. 

책은 지혜가 아닌 지식의 장이라 나는 생각했다. 책에 담긴 단어의 의미, 철학자와 사회과학도들이 자신의 책속에서 내뱉은 단어 하나의 의미에 천착하는 사람들을 그래서 나는 경멸했다. 책은 중요하지 않다. 그 속에 담긴 지식을 나의 일상 나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펼칠 수 있는가가 정말로 중요한 거라 나는 확신했다. 책이 없어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그때 난 믿었다. 내 손에는 항상 책보다는 내가 만든 문서, 분석안, 기획안이 들려있었다. 책은 버렸다.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책임의 자리에서 벗어나면서, 인생의 다음 장을 펼치면서 보다 한적해졌고 여유를 가졌다. 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이 보낸 대학의 4년을 나 역시 지켜볼 여유가 생겼다. 나보다 더 많은 걸 깨닫고 깊이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내가 지향한 지, 完知의 지향점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도. 매끈한 문장력과 한참을 앞서 나가는 분석력을 겸비한 그들을 보며 나는 울었다. 왜 나의 힘겹던 4년은 보상받지 못했던 것일까. 나의 노력은 실패한 것일까. 나는, 미련한 것일까. 20년 가까이 원전을 읽어댔고, 4년이라는 시간을 사유와 현실을 알아가는데 온전히 바쳤는데, 내 모든 걸 거기에 쏟았는데. 왜 나는 이리도 뒤쳐진 것인가. 나와 같이 출발한 저 사람들의 뒤를 바라보기에도 숨이 찬 것일까. 알지 못했고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책을 들었다. 이전엔 내가 결코 책이라 인정하지 않았던, 장래를 위한 직업교육서를 나는 들었다. 결코 남의 강의, 남의 지침을 듣지 않고 홀로 책을 들고 공부했다. 원리, 중급, 고급, 원가 한단계 한단계를 밟아나갔다. 다른 이들의 가르침은 필요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른 이의 가르침은 도리어 나의 속도에 걸맞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회계의 세계는 그러나, 내 생각과 너무도 달랐다. 기술이 아닌 학문을 회계에서 엿보게 된 나는 다시 충격에 빠졌다.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회계는 기업의 자금을 관리하고 자산을 평가하는, 그저 술에 불과한 내용이 아니었던가 회계의 안에서는, 그 스스로 갖춰온 체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었다. 기술적 부분에 한정지어지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치와 시야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무엇이 잘못 생각한 것인가. 무엇을 오해한 것일까. 고민하고 고민했다.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고 모든 것을 재구성하는 스스로 들인 습관이 그나마 내 한조각 희망이었다. 나는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나는 개론서들을 손에 잡았다. 언제고 무시하던 다이제스트들을 손에 들었다. 개론서, 입문서, 지침서, 강론서, 교양서. 전공과 맞닿은 경제학과 언론학을 그렇게 읽으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제야, 아마도, 깨달았다. 부족한 건 체계였다. 

원전에 새겨진 한줄 한줄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단순히 그 말뜻을 이해했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았다. 자유자본주의와 대공황 당시 미국 증시 변동의 정황을 정확히 꿰뚫어 부유층은 몰락하지 않았고 모든 자금의 변동은 단지 화폐로 상징된 상징자본의 변동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케인즈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영국의 학자로 영국이 당시 압도적 공업생산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국부론에 담긴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개론과 입문서는, 체계를 깨우쳐주기 때문에 개론이고 입문이다. 원전과 원문은, 당시의 시대, 그때의 동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의 벽이며 살아있는 메시지로 들리지 않는다. 그 이전의 사상적 조류와 철학자 개인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같은 저자의 책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현상을 납득하지 못한다. 

개론과 입문의 목차가 없는 난삽한 독서는 독서자 자신에게 허망한 허무주의만을 심을 따름이다. 지도 없이 길을 찾는 자는 무수한 길의 가운데서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계통없이 난삽한 독서를 행하는 자는 진리의 허위 속에서 가장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조차 알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너도 나도 진리를, 진실을, 지혜를 외치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작정 행하는 다독은 확신없는 허무주의를 가슴 속 깊이 아로새길 따름이었다. 나는 그랬기에 모든 일에 회의할 수 있었고 모든 것에 의문을 쉽게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길, 빛나는 진리의 무언가가 있으리라 망상하는 모더니즘 적 사고에 빠져들 수 있었을 것이다. 

원전과 본전들은 그 시대 혹은 그 당시의 사상적 조류의 틀 속에서 최대의 빛을 발한다. 그 자체로써 명저이고 인류의 지혜이지만, 그들은 지금의 시대와 조류 속에선 그 빛을 조금 깎는다. 이미 가장 큰 진리의 빛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은. 난삽한 독서, 그 맥락을 읽지 못하는 독서는 따라서 진리의 빛을 도리어 등돌리는 행위가 되기 십상이라고 지금의 나는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책을 다시 들었다. 

언젠가, 조금 더 내 소양이 깊어진다면, 그때는 다시 원전을 손에 잡아도 될 것이다. 이미 10년도 더 예전에 읽었던, 그리고 무시했던 푸리에는 이제는 너무나 큰 거성이 되어 책장을 잡은 내 손을 짓누른다. 이것은 퇴보인 동시에 진보이다. 잘못 내딛은 발 걸음을 뒤로 물리고 정말 갔어야할 길로 한 걸음 걷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은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겁을 낸다. 명저, 놀라운 저작들이 두렵고 어렵다. 차라리 이제야 나는, 다른 사람들이 10대 초반에 경험한 단계를 이제서라도 밟기 시작했다고 자위한다. 

원전을 먼저 읽은 뒤 개론서를 읽어보려는 생각도 한때 했었다. 개론서만으로도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마샬의 Economic도 처음엔 경제학 개론서로 쓰여진 책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내 앞을 섞어둔 혼란의 불길은 너무도 거세었으므로 원전을 읽을 순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사람에겐. 

언젠가 내 앞을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갈 것은 그다지 상상하지 않는다. 이 안에만 해도 그런 사람은 너무도 많고 내가 그들에게 다다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뭐가 중요한가.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늦고 빠름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닌데. 

어린 시절 나는 꿈을 꾸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모두 내 품에 아로 새기는 그런 꿈을. 지금도 그런 꿈을 나는 잊지 않고 꾸고 있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에서 묘사한 그런 환경에 내가 던져지는 것을 고대한 적도 있었다. 언제고 나는 진리의 희망을 내 머리에 담고 산다. 

이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도리어 늦어진 출발에 좌절스럽기도 하다. 허나 언제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그나마 빠를 때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진부함은 진리이기에 너무도 말해져 진부한 것일 가능성이 많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책을 잡는다. 책을 읽고 생각한다. 

이제는 책을 천천히 읽는다. 12권짜리 이영도씨의 소설을 네댓 시간에 다 보았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책은 그렇게 보면 안된다고, 적어도 나는 그래선 안된다고 믿는다. 행간과 문장 사이에 담겨진 저자의 의도와, 지금의 괴리를 나는 짚어내야 한다. 책을 오래도록, 아끼며 보려 한다. 조금더, 나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 
 병장 노지훈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07 1626) 

  
 
 
 
병장 안대섭 (20060707 161019)

입다물고 그냥 가지로    
 
 
병장 유승현 (20060707 161634)

동갑입니다. 가지로    
 
 
병장 주영준 (20060707 161738)

그럼 이제부터 말 놓고 시작하겠다() 
이건 어느동네 언론편집실 개그냐. 지나가던 김동환이 웃겠다. 가지로. 이거. 독서법 논쟁이 생길지도.    
 
 
병장 이영기 (20060707 162025)

영준  어느동네겠냐. xx춘추지. 
근데 가지로가 뭐냐 (.....) 무슨 의미야 대체 (.....불안하게...)    
 
 
병장 송희석 (20060707 162031)

부분부분 내용면으로는 동의할수는 없으나 전체적인 맥락이나 이어짐이 너무나 뛰어나며, 푸리에를 10년전에 읽었다는 글을 보고 전율을 느끼지 않는다면 아마 천재이거나 바보일것입니다. 아아! 가지로 입니다.    
 
 
상병 김여환 (20060707 162052)

좋습니다. 푹빠져 읽었습니다.    
 
 
 병장 김동환 (20060707 162614)

영준 우리는 편집'국'. (먼산..)    
 
 
병장 이영기 (20060707 163307)

아아. 책가지로 옮아오면 가지로인건가요 (.......) 
희석 당시에 설마 이해를 했겠습니까 (....) 읽을 때야 이해한다고 믿으며 읽었습니다만.. 
동환형 편집국! (......)    
 
 
상병 허익준 (20060707 164011)

쳇. 가지로를 붙이려고 했더니 원본 글이 없대요. 여기에 있는걸.(...)    
 
 
 병장 김동환 (20060707 164152)

오늘은 풍작이네요. 건진글들이 많은걸. 흐흐(웃음)    
 
 
병장 김형진 (20060707 164424)

오오. 
오늘은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병장 주영준 (20060707 165527)

한마디 더 붙이면, 넌 생긴 것보다 굉장한 놈이었구나. (아마 이 말은, 이 녀석을 직접 보지 않은 녀석이라면 무슨 말인지 모를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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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요즘 가끔 하릴없이 과거를 되짚어 보기도 하는데, 너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잘 안난다. 그 시절, 너무 많은 사람들과 생각들과 삶들을 한꺼번에 만나서였을까.    
 
 
상병 김청하 (20060707 165758)

이미 가지에 있지만..서도 책가지로 가셔야겠어요. 허허. 
영준 그런데 저영질기 씨가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병장 주영준 (20060707 170008)

청하  변영기태처럼 생겼습니다. 오크. 오거. 트롤. 해리포터에 나오는 그 괴수아저씨. 질럿. 등등을 섞은 듯한 체격과 인상을 자랑하는.    
 
 
병장 이영기 (20060707 170148)

저 자연스러운 변영기태는 뭐야 저건. (......) 
그 당시, 02년 봄에 너나 나나 우리는 모두 너무도 많은 생각과 지나치게 강렬한 사람들을 한번에 접하고 흠뻑 빠졌었으니까. 
아마 ezdragon이 개입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병장 김형진 (20060707 170223)

하지만 우랄 알타이한 외모의 주영준이 외모 운운하다니 무언가 아다리가 안 맞는다, 이건.    
 
 
병장 김태경 (20060707 170314)

우하, 오늘은 게시판에 글들이 하나같이 다 여기에 와 있네요. 
개론서 화이팅~ 아싸아싸!    
 
 
병장 주영준 (20060707 170641)

형진 잠깐. 난 몽골리안 꽃미남이라고. 브리티시 꽃미남 김대현과 이탈리안 꽃미남 신수용의 계보를 잇는. 

영기 아. 그 까칠가이 재호녀석 친구, 구수한 호남인을 말하는 것인가. 그가 미싱 링크였군.    
 
 
병장 김형진 (20060707 171004)

이탈리아-브리튼 라인업과 몽골의 거리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오만 [...]    
 
 
병장 손동철 (20060707 17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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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이영기 (20060707 171620)

크허허. 기억력 업데이트 해야겠어. 영준군.    
 
 
병장 엄보운 (20060707 172437)

아, 좋아요. x세x추 계열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지 몰랐어요. 
잘 읽었습니다. 영기님.    
 
 
병장 김희곤 (20060707 173454)

그러게요. 대학생 시절에 좀 열심히 봐둘껄 그랬나봐요. 그런데 개론서조차 어려운 저에게는 너무 먼나라의 이야기라구요. 흑.    
 
 
병장 김정훈 (20060708 215528)

오우. 글 너무 멋집니다. 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병장 주영준 (20060709 142312)

뻘소리인 듯 하지만 나는 춘추가 아닌 x세지 계열입니다. 신문계열이 아닌 교지계열.    
 
 
상병 이훈재 (20060709 155529)

아무래도 춘추랑 교지랑 착오 불허 비교 불가    
 
 
병장 주영준 (20060709 155929)

훈재  당연히. 다만 시비걸고 싶은 건 '춘추랑 교지'라니. '교지랑 춘추'도 아니고. 것참.    
 
 
병장 이영기 (20060709 160439)

교지랑 춘추라니요. 허허. 춘추랑 교지지. 사소한 것에서 부터 오류가 시작되고 정치적 그름이 싹트는 것이지요. 춘추랑 교지입니다. (.........)    
 
 
병장 주영준 (20060709 160751)

영기  對춘추戰 최종병기 김태성 군이 발진 준비중에 있소. 각오하시길. 막대한 분량의 춘추비판 기획기사을 잊지는 않았겠지. 풋. 그리고 당연히 교지랑 춘추지.    
 
 
상병 이훈재 (20060709 162445)

영준  아 이거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군요. 춘추랑 교지(x), 교지랑 춘추(o). 게다가 대 춘추 전이라면 저 역시 몇 마디 할 건덕지도 있으니까...    
 
 
 병장 김동환 (20060709 185637)

오. 저는 예전부터 이런 살아숨쉬는 오피니언란을 꿈꿔왔었는데!    
 
 
병장 김희곤 (20060709 195946)

자중지란. 3자 입장에서 보았을 때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타앙!)    
 
 
병장 이영기 (20060710 071834)

살아숨쉬긴 하는데 뭔가 그 숨이 긍정적인 호흡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죠    
 
 
상병 이영준 (20060711 074937)

춘추랑 교지다, 교지랑 춘추다라고 싸우는 것이 
저기 안암골에 있는 학교와 신촌에 위치한 학교 둘이 싸우는 모습과 유사하군요. 
다만, 춘추와 교지 모두 신촌에 위치한 학교의 학생들의 작품이라는 차이가 있는것 외에는요. 
(근데, 저는 상당히 뒷북인데요)    
 
 
상병 이훈재 (20060711 085636)

영준  그런 유사성 보다는 조선일보와 한겨레21의 대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크크크... 사실 매치업이 안 될지도, 신문은 신문이랑 붙어야하는데, 통이라는 신문이 영 맥을 못 추는 거 같네요    
 
 
상병 이영준 (20060711 091511)

훈재 아 저는 그냥 그 유치함이 닮았다는 거에요. 
근데, 저도 친구들이랑 만나면 유치하게 동일한 주제를 갖고 싸우곤 하지요.(웃음)    
 
 
병장 주영준 (20060711 091919)

훈재  통. 보다는 노가리스트에 한표. 아마 춘추 출신 기자도 한둘 노가리스트로 이적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내 전대 교지 편집장이 노가리스트 창간인이고. 무려 조갑제 인터뷰에 성공한. 아무튼 조선일보와 한겨레21. 아니. 한겨레21과 조선일보.    
 
 
상병 이영준 (20060711 101206)

병장 주영준 교지 편집장이었어요 오- 새로운 사실인걸요(집에 있는 옛 교지 뒤져봐야 겠어요)    
 
 
상병 이훈재 (20060711 101220)

이  유치. 치열. 하핫 
주  노가리스트! 소문만 들었고 본 적이 없어서 아쉬워요. 저는 이상하게 춘추에만 지인이 많았는데-다들 수습에서 떨어져나가더군요. 한 명만 빼고. 아무튼 교지랑 춘추.    
 
 
 병장 김동환 (20060711 145528)

오늘 자꾸만 어지럼증이. 
이영기 + 주영준 = 이영준. 이런 환영에 시달리고 있어요. 
이영준님 초면에 정말 죄송. (먼산..) 

아.. 노가리스트 아직도 활동하나봐요 춘추에서 그쪽으로 간 친구들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들. 
지금은 안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춘추와 조선일보를 등치시키는 화법에는 찬동할 수 없어요. 영기씨가 춘추에 대해서는 꽤 깊숙히 알고있으니 그와의 대화로 가급적이면 그같은 오해를 좀 풀었으면 좋겠네요. (오늘따라 저쪽 산이..)    
 
 
병장 주영준 (20060711 151819)

환  노가리스트 지금은 어찌된 지 모르겠네요. 초대 편집장은 졸업하고 사후장교 시험 재수중이니, 7월 18일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정견 차이로 힘들어하던데(꼭 춘추 인사들과의 정견 마찰은 아닙니다). 아마 '까칠가이' 재호가 노가리스트로 오지 않았었나요 저도 울타리로 피신 안했으면 노가리스트에 묶일 뻔. 

춘추에 대해선 반쯤 농담이지만, 반쯤 진담입니다. 개인적으로 제 임기 전후로 대학언론협의회 체제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의 입장도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춘추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쪽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한울 회장의 문제도 있고. '현장에 한명의 기자도 보내지 않은 다른 언론'운운하는 오만도 그랬고. 뭐. 여러가지로 '각잡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거리가 꽤나 있을 듯 합니다. 논조에 대한 농담을 빼고도 말이에요. '프로 정신'의 차원에서 조선일보와 비교하고는 합니다. 아무래도 한겨레21이나 교지나, 아마추어 냄새가 너무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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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 지난 일이지만. 역시 먼산. 아. 나 춘추 1면에 사진 나온 적 있는데. 04년 머리 기르고 분홍색 곱창으로 묶고 본관점거 취재할때. 맨 앞줄에서 취재() 중이었는데 춘추 기자의 카메라 정중앙에 잡혀 버렸어요. 그렇게 1면 사진에 뒤통수 등장.    
 
 
 병장 김동환 (20060711 153623)

영준 
아무래도 덩치가 크다보니 민첩하지 못한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죠.(말은 간단하지만 정말 수많은 단점이 여기서 파생된다는 거.) 그 점 때문에 반발하는 내부기자들도 꾸준히 있어왔고. 
사진은 아마 춘추가서 초상권을 주장하면 받을 수 있을거에요.(웃음) 그런게 또 무시할 수 없는 
쏠쏠한 추억이 되는 법이니. 
15일에 만나면 더 많은 교집합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흐흐.    
 
 
병장 주영준 (20060711 155329)

환  어랏. 원판 사진 받을 수 있는거요 다음에 시간나면 필히 받아야겠소. 그리고 나도 입학 전엔 춘추 갈까 어요. 입학 얼마 전 세이클럽에서 만난 개념없는 어떤 01학번이 춘추에 대한 악선동과 교지에 대한 선전을 하지 않았더라면(아남라인의 어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작년, 당국으로부터의 편집권 탄압에 맞서 분연히 싸워 편집권 완전쟁취와 추가예산 쟁취-라기보단 교수들이 횡령했던 편집자문비용 학기당 100만원을 되찾음-의 승리를 보면서. 백지사설 촌극을 떠올리면서. 아. 말 이렇게 한다고 해도 비꼬려는 의도 전혀 없는 거 알죠 

동환씨나 나나 분명 오다가다 몇 번 봤을 것 같아요. 교집합. 이미 여기 이영기나. 일전에 말한 욱이나. 뭐. 많이 있겠죠. 아. 00인지 99인지에 춘추 간부 교육학과 여학우 하나 있지 않아요 조모임에서 그 분하고 MBC 2차까지 붙은 96하고 나하고 한조가 되어 상대방에 대한 신나는 학살을 펼친 추억이. 아무튼. 기대됩니다.    
 
 
 병장 김동환 (20060711 161048)

영준 
아마 나 할때보단 데이터베이스화가 더 잘 되어있을테니 원판사진은 90%이상의 확률로 받을 수 있을꺼요. 가서 초상권이 있거든요 식의 까칠한 애교를 좀 부려주면. 
백지사설. 캬. 내가 뭘 말할수있을만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나나 영기씨나 적지않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단골 소재지요. 공소시효가 거진 끝나버린 얘긴데 이곳에서 그 얘기를 또 듣게될줄은 몰랐네. 하하. 그래요.(웃음) 
학살의 추억은 00은 아닌것같고 99여학우들과는 거의 안친해서 딱 집히는 사람이 없는데. 아무튼 기대됩니다.    
 
 
병장 엄보운 (20060711 184532)

우리도 수업이나 하나 같이 들을까요    
 
 
병장 김희곤 (20060711 184938)

같이 들으면 재밌겠네요. 근데 적당한 접합점이 있을라나 독서와 토론이 나름대로 교양수업 중에는 피튀기는 혈투가 일어난다는 소문을 들어보긴 했는데 강사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군요.    
 
 
상병 이훈재 (20060711 194936)

XYZ  춘추 간부 교육학과 여학우 이름 혹시 아시면 쪽지 좀 주세요. 혹시해서. 

희곤  독토는 굉장히 많이 개설돼있잖아요. 제 기억에 아마 한 반 정원도 스무명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매주 1권씩 반강제적 고전 읽기를 한다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전공과 학번이 다양한만큼 좋은 접점이 될 수 있을 거 같네요. 그리고 글쓰기 교재 쓴 강사인지 교수들이 맡은 수업이 대체로 피튀긴답니다. 올초에 보니까 글쓰기의 전략 인가 하는 책도 낸 그 분들... 정희모, 김성수 등등.    
 
 
병장 송희석 (20060712 052515)

이양반들 대학생활을 참 재밌게 했군요. 제가 지냈던 대학생활하고는 정 반대네요. 흐흐.    
 
 
병장 주영준 (20060712 083941)

싱크혼 사파연합  한번 07년 1학기에 독토 다 같이 들어볼까요 전역자 김대현 이준영 박상원까지 꼬셔서. 서로 모른척 생까고 진검승부 내기. 종강파티때 수업 1등한사람은 회비 열외. 20명 이하면 상대평가일 테니까, 책마을파 전원 A+도전도 가능할듯. 20명 넘는다면 뭐. 글쓰기. 철학입문. 현대교육사상. 한국교육사. 교육학고전강독. 스페인어권 문화와 예술. 각 2회이상 결석으로 A+에 빛나는 내가 상대평가 학점을 가져가도록 하지요. (뻔뻔) 그래봐야 4.5에 수렴하는 학점을 관리중인 나의 여신에 댈 건 아니지만. 

훈재  이름이 도저히 기억 안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01인것 같기도 하구요. 교육학과에서 만난 여학우 중 가장 매력적인 두 분 중 한 분이었습니다. 영문인지 불문인지 독문인지 이중전공 하셨구요, 중간에 학교 좀 오래 쉬셨다고 이야기하신 게 기억납니다. 조그마한 체구에, 어려보이지는 않는 '귀여운' 인상. 아. 꽃 이름이었는지 꽃과 관련된 어떤 단어였는지를 서명 및 아이디로 즐겨 쓰던 분이었습니다. 나머지 한 분은 02 여은지. 아마 학과적으로나 분반적으로나 용재관 소속이었던걸로 기억. 성격과 취향은 정 반대였지만 학적 관심분야-교육철학-와 실천적 관심분야-대안교육-가 일치했던고로 한학기동안 함께 나름 즐거웠던. 
그리고 남학우중엔 굉장히 미안한 기억이 있는 '이영민'씨. 뭔가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제가 안좋은 일이 생겨서 잠적. 그 이후로 연락두절. 정식으로 사과해야 하는데. 아. 젠장. 

희석  나름대로 재밌었습니다. 후웃    
 
 
병장 이영기 (20060712 092901)

크하. 백지사설. 지겹다기 보다는 이젠 더 우려먹을 건더기가 안나올 정도로 많은 글이 양산된 (물론 춘추 내부에서) 주제군요 (.....) 원하신다면 몇 편 뽑아다 드릴 수도 없습니다. (응) 어쨌든 내부문서인지라 (........) 

동환형, 영준 데이터베이스화, 망해갑니다 (........) 내 부장이월서, 후배들께 두번 드려야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 그쪽에서 원하길래 내가 가진 사본들 (그래봐야 원 이월서의 23에 못미치게 60장 가량만 남은) 사이월드 통해서 전해 줬습니다 (........) 바로 이번 설탕때.    
 
 
 병장 김동환 (20060712 105640)

영기 
아. 그런 데이터베이스 말고. 
제작 끝날때마다 사진부장이 사진 CD로 백업하던거 있잖아요. 그것도 안하나 요새    
 
 
병장 엄보운 (20060712 112452)

XYZ 

07년도 1학기 콜. 

코드 명 강림, 책마을. 
안암쪽 인원들도 수강 신청할 수 있으니깐 김강록, 정한국, 허원영, 박형주 등의 인원들도 대거 참여시켜 마지막 남아있는 한 방울의 피까지 모두 짜내어서 붙어보도록 하는 겁니다! 이거 상상만으로도 너무 재미있겠어요. 
한 학기 3학점만 들으면 안되나 (먼산)    
 
 
병장 김희곤 (20060712 130313)

독토는 2학점짜리예요. 

07년 1학기는 저도 콜. 그러나. 학점을 보장할 수 없다는 크나큰 아픔이 느껴지는걸요. 
이번학기 듣고 재수강하던지 해야겠다. 후훗.    
 
 
 병장 노지훈 (20060713 014854)

독토, 신청했다가 초과인원 발생으로 제비뽑기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