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광고학 이야기. -어쩌면 1부-
몇부작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엠 그라운드. 지금부터 시작!
-과학자와 방송반과 광끼. 중심의 강뽕.
어릴적 꿈은 로봇만화와 에디슨을 읽은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랬듯이 과학자였다. 과학동아 애독자였고, 아마도 초등학교 5,6학년때까지는 장래희망란에 '과학자'라고 당당히 적어냈었다. 그러나 발명왕 대회를 휩쓸기는 커녕 교내 백일장이나 수학경시대회 입상에 더 실적을 쌓아오던 나는 에디슨과 영원히 바이바이 해버렸다. 발명은 무슨. 공부나 해야지. 라는 심정으로. 그리고 한동안 나의 장래희망란은 공란이 된 채 무언가 씌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강뽕(최강희)을 만났다.
전에도 썼듯이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에는 언제나 강뽕이 있었다. 중2때 나를 방손반에 들도록 부추겼던건 다름아닌 청소년 드라마 나에서의 노란 넥타이를 교복으로 입는 학교를 다니는 강뽕이었다. 이제와서 다시 보니 청소년 드라마답게 계몽적인 판타지가 난무하던 유토피아의 남녀공학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실제와 엄청난 괴리감이 들 정도로.
드라마에서 학교와 방송반은 무지하게 미화되었고, 판타지의 절정을 달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현실인줄로만 알아, 방송반에 들어갔고 억지로 떠밀려 부장까지 맡으며 카메라를 만졌고, 교내 방송을 도맡았다. (판타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숨막히는 중학교에서 깔삼하게 교복을 빼입은 선배가 교내의 모든 행사에 열외하여 행사를 촬영하던 일이나, 착 달라붙는 목소리로 졸리기만한 점심시간 교내방송을 진행하는 것 자체는 꾸며내기 나름대로 판타지였으니.)
그러다 광끼를 만났다. 이동건, 원빈, 배두나, 양동근, 그리고 강뽕. 광끼 역시 나 못지않게 판타지스러웠지만 -스토리 보드를 짜는 아이디어 회의나, 엄청난 카피들은 대부분 밤의 술자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간과하고 있었다. 물론 드라마처럼 극적이게 아이디어를 발견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실제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방송반 활동을 하며 방송에 관심을 갖던 나에게 광고라는 새로운 직업을 알려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 난 어디서 주워 들은건 있어서 장래희망란에 카피라이터 라고 적었다. 그것이 단순히 카피만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던건 광고학과에 입학하고 부터였다. 그 사실을 안 뒤 나는 나의 직업을 한정짓지 않았다. 그냥 광고인. ADHolic. 그거면 충분했다.
-그래서 광고가 좋았다.
나의 광고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02학번 선배가 술자리에서 '난 광고에서 비전을 보고 광고학과를 택했다기보다는 과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광고학과를 택했어.' -참고로 학부제다.-라는 말을 들어도 꿋꿋했다. 광고보다 디자인이나 노는 것에 관심있던 여자 동기 두명이 '싼타페 커피' 광고 대상을 받았어도 여전했다. 동국대 최고 비인기 학과는 철학과도 아니고 산림자원학과도 아니고 사실은 광고학과일지도 모른다는 선배의 말에도 나는 고집스럽게 광고를 택했다. 그만큼 광고는 매력있는 녀석이었다.
광고는 일상에 가장 맞닿은 미디어(media)라서 그랬다. 드라마나 영화는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된다. 음악이 듣기 싫으면 귀를 막으면 되었다. 책이 보기 싫어서 1년내내 책 한권 읽지않는 현대인들이 늘어가는 동안에도 광고는 여전히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인적이 드문 산 꼭대기에 걸려있는 '노인대학 현수막 광고'를 발견하고 나는 광고가 우리 생활에 이렇게까지 밀접하구나 라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광고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수 없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매체였다.
굳이 데리다적 해체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광고는 해체되어 일상에 편입되어 있었다. 아니, 차라리 해체의 증거자료가 되면 모를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광고는 곧 삶이었다. 그마만큼 광고의 영향력은 컸다. 광고급 영향력. 그건 김지민급 책마을 주민 이라는 파워와도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또한 광고는 영상이 가진 미덕인 판타지와 일상을 훌륭하게 넘나들었다. 광고안에선 민간인도 모델이 되었고, 실제의 삶이 광고라는 매체로 포장되며 판타지가 되었다. 광고에게 있어서 '경계허물기'는 일상이었다.
다방면의 매체에까지 침투해있는 광고라는 매체의 특성도 광고의 경계허물기를 도왔다. TV광고, 인터넷광고, 신문광고, 잡지광고, 라디오 광고. 대중과 호흡하는 모든 미디어엔 광고가 존재했고, 모든 매체의 벽은 광고라는 이름하에 허물어졌다. 광고는 미디어에게 필연적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광고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절대적 목적의식을 가지고 제작된다는 점이 좋았다. 대중들과 같은 호흡을 하기에 대중들은 광고에 공감하고, CM 플래너 이강우씨의 말처럼 광고는 대중보다 반발짝 앞서가며 유행과 트렌드를 선도한다. 그래서 광고는 위대했다.
눈높이를 맞춰 대중의 코드를 읽어내고, 코드의 방향을 제시한다. 선동이긴 선동이었으나 정치적 색채보다는 상업적 색채가 짙은 선동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발적 선동이었다. 대중은 광고를 보고 스스로 물건을 택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광고의 이면에 숨기운 상업적 목적의 덫에 걸려들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한채 말이다.
음흉하지만 실력있고 꾀많은 여우같은 광고가 그래서 좋았다. 15초의 마술, 강력한 설득력으로 무장한 세련된 제품포장법. 광고를 좋아하는 것에 비례하여 내가 만들고 싶은 광고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자리잡아갔다.
-광고는 이래야지.
광고는 본의아니게 반복되어진다. 과거 월드컵 광고가 그랬듯 의미없고 아이디어없이 졸속으로 제작되어 반복, 남발되어지는 광고는 짜증을 유발한다. 아무리 우리학과 소모임의 이름처럼 'AD is simple'이라 외쳐도, 잘빠진 깔끔한 광고가 좋은 광고라 할찌라도, 그것이 반복이 되어지면 단순한 광고는 금세 지루해지고 싫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광고에서도 미장셴(무대장치나 미술등을 이용하여 꾸며내는 영상미)과 디테일을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뜩이나 얼마없는 컷에서 한번보면 다 아는 것들로만 화면을 채우면 식상하지 않겠는가 최대한 거품을 빼고 단순하되, 마니아들에게 포착될수있는 작은 센스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15초의 영상물이기에 오히려 더 공을 들여야하는 미장셴과 영상의 디테일함. 난 어떠한 광고를 맡게되더라도 이 자세는 꼭 견지해내고 싶다. 단순함 속에 숨은 '윌리를 찾아라!' 이것이 높은 안목을 가진 눈썰미좋은 대중들의 마니아적 감수성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직관적 영상을 좋아하는 대중까지 만족시킬수있는 광고적 미학인셈이다.
이런 나의 성향을 보면 사람들은 수십년간 끌어온 이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광고는 상업인가 예술인가 당신의 말대로라면 제품을 많이 팔아치운 영상미가 떨어지는 광고는 좋지 않다는 말인가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을 하고 싶다.
광고란 상업이라는 고향을 가진 예술적 소양의 시민이라고. 광고는 세련된 예술양식을 띄고 있어야하지만 그 예술성이 광고의 본질인 상업성을 잊고 있다면 그 광고는 본질빠진 예술적 자위 그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많이 팔았으나 쓰레기같은 광고가 더 나은가 물건은 많이 팔지 못했으나 광고적 지평을 넓힌 예술적인 광고가 더 나은가 라는 질문에 나는 당연히 물건을 많이 판 광고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상업이란 광고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이다. 나의 정의를 빌어서 이야기하자면 고향인 셈이다. 고향도 잊어버린 실향민같은 시민이 아무리 예술적이라할지라도 그건 알맹이빠진 찐빵밖에 안되는 것이다. 예술성을 잃은 광고는 촌놈일뿐이지만 상업성을 잃은 광고는 실향민이다. 첫째로 고향을 찾고나서 예술을 논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고는 리마커블해야했다. 세스고딘의 말처럼 똑같은 젖소가 가득한 목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purple cow. 즉, 보랏빛 소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광고였다.
주목받지 못하는 광고의 제품은 금세 잊혀진다. 광고의 홍수로 인하여 그럭저럭인 광고시장 가운데서 리마커블이란 광고에게 있어서 가장 간절한 가치였다. 그때문에 광고에게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했다. 리마커블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듯.
그래서 난 오늘도 스토리 보드를 하나 그렸다. '포터블 씨어터' 라는 카피의 PMP 광고를. 영감은 시도때도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나중에 그 아이디어를 보면 신기할정도로 내 머릿속에서 나온것 같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만큼 아이디어는 '나'라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왔지만 도무지 일관성이 없었다. 아이디어의 높은 수준을 유지시키기위해 내가 시작한 일은 메모였다.
좋은 아이디어를 모두 적어두고 나중에 써먹는 것이다. 나중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좋은 카피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을때 과거의 아이디어를 펼쳐가며 브레인 스토밍할때라도 써먹으려면 부던히 적어야했다.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남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숨은 진주같은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아이디어. 그걸 가지고 대중의 눈과 귀를 15초동안 꽉 붙들어맬 그런 광고를 난 오늘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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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은 2부를 연재하라!
병장 송희석 (20060808 124513)
'상업이란 광고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이다.' 맞다. 그런데 공익광고는 대체 뭐지
병장 박진우 (20060808 125145)
광고의 영향력만 낼름 빼먹는 '선동주의의 잔재.'
병장 이영기 (20060808 125316)
경제학적 견지에서 국가 역시 경제학적 주체 아니우.
병장 박종민 (20060808 131732)
허어. 2부는 무슨. 난 군에 있는 동안 광고공부는 무기한 유예였는데.
그러나!
자, 광고라. 한 판 질펀하게 놀고 싶은 생각은 드는 군요. 아, 이 글 좋은데.
병장 박형주 (20060808 215031)
신방과임에도 방송 계열과 광고 계열 과목 하나도 안 듣고 졸업하기를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