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를 오해를 없애기 위해 분할 분할시켜서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원익씨와 명교씨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고 싶지만 하나의 글로 쓰겠습니다. 명교씨와는 약간의 입장차이 밖에 존재하지 않고, 단지 제가 이 소사선거를 [특정화]시켜서 바라보는 것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겼으니까요. 그것은 이 원익씨에게 쓰는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그런데 민해기 님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여, 굳이 책마을에 대한 어떤 '노선'을 선언하지 않아도 이미 책마을이 그 자체로 인문독서커뮤니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 모든 것이 과도한 소란에 지나지 않냐는 의문을 표하셨습니다. 헌데 저는 오히려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책마을에 대한 혹은 책마을 안에서의 하나의 '노선'을 창안해야할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책마을에 어떠한 인위적인 노선을 설정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인문독서커뮤니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주요한 관점이었죠. 저는 이 소사선거에서 발생한 일군의 ‘당파성’같은 것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가지 경우 모두가 문제성을 안고 있다고 봤습니다. 

 첫째, 이미 책마을에 존재하고 있는 ‘인문독서커뮤니티’라는 하나의 거시적 방향
이 경우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단지 소사선거를 위해서 일련의 불필요한 정치화를 시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실제하지 않는 허상으로 논의를 하는 것이기에 맞지가 않는다고 생각했고요.
이러한 생각에서 저는 『이번 소사선거에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정치성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둘째,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떤 하나의 구체적인 방향
이 경우는 일군의 ‘노선’으로 묶여진 것의 반대편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반대편은 소사선거에서 드러나지 않았으니까요. 그것은 아직 발생하지도, 발생할지도 모르는 한 편의 싹을 잘라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원익씨와 정환씨등의 후보들이 제가 아직은 알 수 없었던 어떠한 한 가지의 방향성으로 책마을을 전진시키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제시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염려스러웠습니다. 제 눈에는 그것이 선점을 통한 독주로 보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선거가 진행되고 끝난다면, 후보를 보고 뽑은 주민들의 한 표, 한 표들이 그들이 선택했다는 것을 못한 상태로 책마을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의 매듭을 지어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저는 이 논의가 그 자체로는 가치가 있지만, 소사 선거와 같이 논의되기를 거부합니다.』라는 입장이 나왔습니다.

 원익씨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로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제기했던 

 두 가지의 문제제기를 모두 철회합니다.


 2.

 섣부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짧았지만, 거의 모든 시간을 이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서 내린 결론이니까요.

 첫 번째 문제제기 철회의 변론
‘인문독서커뮤니티’라는 해석하지 않고 문자그대로 존재하는 거대한 흐름은 모두가 동의한다는 인식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 책마을이라는 마을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흐름입니다. 다만, 그것이 원익씨 등이 하려던 말이 그것이 아니었을 뿐이죠. 그래서 저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철회합니다. 제가 이해를 잘못했었군요.

 두 번째 문제제기 철회에 대한 변론
 이 문제제기에 대한 철회는 원익씨, 정환씨등 일군의 노선이 제시한 방향성이 어떤 것인지를 원익씨의 글을 통해서 이해하고,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이 책마을을 살펴보면서 내려졌습니다.

 …그것은 이 적대를 책마을을 가로지르는 두 노선(비판적 인문독서 커뮤니티를 향한 지향성과, 그것에 대립되는 지향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과(이것이 책마을에 대해 제가 지금껏 시도해왔던 라캉주의적 개입이고요), 그러한 적대를 각자의 다양한 성향과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떤 (그러나 불가피할지도 모르는) 불행한 '소란'으로 치환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순치기능 간의 적대로, 적대의 진정한 본성이 그렇게 '이중화'되어 드러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제가 굳이 어떤 정념을 표출하지 않아도 될 문제일지도 모릅니다.……(중략)……그러므로 책마을에는 분명한 노선의 차이가 있다, 인문 독서 커뮤니티를 향한 방향과 그것에 반동적인 방향 간의 차이가 있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잠재해 있던 '적대'(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머리 간의 적대)를 그 자체로 새롭게 발명하고 형상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환님의 문제적인 메니페스토가, 그것이 아직 실질적으로 어떤 '공약'도, 책마을에 대한 이러저런 제안도 함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적실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해기님은 이 논쟁이 소모적이며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지평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논쟁 혹은 논쟁을 촉발한 '선언'이 즉각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쟁점이야말로 유일하게 '정치적'인 쟁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쟁점을 소사선거 이후에도 재발명해내야 합니다. 적대는 다른 어떤 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한 발명을 통해 '도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긍정하는 축과 그렇지 않은 축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지요.

 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머리. 확실히 원익씨가 제시하신대로, 이번의 ‘적대’를 통해서 저는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논의가 책마을 자체 혹은 직접적으로 그 구성원에 대한 논의였기에 더욱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에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 어떤 한 축선상에 서 있다는 것도요. 그것은 제가 책마을에서 활동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생긴 맹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 저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했다고는 자부합니다.) 잠시 저의 개념정리와 두 노선의 구분을 위해 단어를 나열해보겠습니다.

 [뜨거운 머리] - 진정한 사랑. 존중. 배려. 상호간의 진정한 관심. 기독교적 자기애. 실천적-현실적 개입. 마을내에서의 갈등유발도 자연스러운 과정.  
 [차가운 머리] -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이성). 행복한 상호인정. 언어적인 진지함. 반-사유적인 자기만족. 방어적인 진지함. 비뚤어진 자기애. 자유주의적 예의. 마을내에서의 갈등유발은 지양.

 원익씨의 글을 읽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분명 반대되는 두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저는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소사입후보 글을. 제가 무심코 같은 연장선상에서 놓고 넘어갔던, 현주님의

 B급 정서의 소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입후보 하신분들 중엔 없으신것 같아 지원해 봅니다. 더하여 연말만 지나면 투자할 시간이 엄청나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에다 전 내년 10월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라는 소사입후보 글. 제가 불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다른 하나의 노선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표현형태가 확실하지 않아서 그 동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지만요. 그렇기에 제가 생성되지 조차 않은 반대편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했던 문제의 지점을 철회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개념화되고 정리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민해기님은 이에 반해, 가령 소사에 대한 이런저런 개념정립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책마을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그러나 장차 도래할) 쟁점들이 표면에 부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메니페스토의 정치성을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임을 암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제스처에 반대하며, 바로 그러한 쟁점들이 도래하기도 전에 두 적대적인 노선을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첨예한 정치적인 문제라고……

 그렇기에 저는 원익씨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3.

 저는 이제까지 그렇게 많은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치열한 사유를 통해서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책가지로 가지 못한 글이 몇 가지 있는데,
 [내글내생각] 우리의 연필은 충분히 깎여 있잖아요.
 [내글내생각] 4시 30분발 5시 도착
 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이 글들이 어떤 개별적 사유를 통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연장선상에서 쓰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저는 이 일련의 글들을 통해서 글이 책마을에 글이 쉽게 쓰여지고, 이 안에서 (어느 누가 판단하기에) 가치가 낮은 글들이라도 많이 올라오길 바랬습니다.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활동적인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모두가 소통하고 진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제 댓글이나, 글들에 달리는 답변에도 항상 상대분이 답변을 안 하실 때까지 댓글을 달곤 했지요.(웃음) 저는 이를 통해서 원익씨가 말씀하신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식화나 첨예한 정치화없이. 왜냐하면 모두가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저는 구체적으로도 책마을에는 굳이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방향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직도 아쉬운 점은 정치적 고려에서인지 어떤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세 명의 ‘노선’으로 대표되는 하나와는 다르게 다른 하나는 정확히 선언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해를 하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원익씨가 쓰신 글만 봐도, [차가운 머리]에 대한 객관적인 선언이랄지 정립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까요. 제가 아까 개념화를 위해 나열한 단어들만 봐도, [차가운 머리]는 단지 [뜨거운 머리]에 반대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사실 한쪽에게 다른 한쪽의 정립을 부탁하는 것은 아이러니긴 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원익씨의 ‘진정한 사랑’에 완전 동의하면서도 앞으로는 제 방식대로 [차가운 머리]에서도 ‘비뚤어진 자기애’등의 부정적인 것은 제거하고, ‘행복한 상호인정’이 진정한 호혜로 그리고 ‘진정한 자기애’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목적은 같을 지도 모르지요.(웃음) 간단히 말하면 원익씨가 제창하는 것에서 느꼈던 어떤(하-아니면 어쩌죠.) 약간은 전문적인 뜨거움과는 상보되는 지점을 구성하겠다는 말입니다. 제 활동을 통해서요. 제 여건상 소사나 그런 자리는 하지 못하지만요. 앞으로 이 내뱉었던 글들에 대해 책임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답변 안 달아주시면 삐질 겁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