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의 광기 
 병장 이승일 05-16 05:47 | HIT : 288 




 내가 맨 처음 나방이라는 놈들을 본 것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도 나방을 '시각적으로' 보지 않았을리 없고, 단지 기억을 못하는 것일터이다. 아무튼 내 인식 속에 '아, 저런 것들도 있구나' 하고 각인 된 것은 중학교 때가 분명하다. 그 때 나는 저 곤충이 다쳤다고 생각했다. 날개가 찢어졌거나, 다리가 두 개 쯤 없거나. 왜 파리들도 이 정도의 중상을 입으면 바닥에서 빙빙 돌거나 미친듯이 창문 따위에 부딪히며 돌아다니지 않는가. 때문에 사정없이 공중에서 난동을 부리는 하는 저 곤충 역시 심각한 상해를 입었으리라고 추측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본 모든 나방은 모두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그 모든 나방이 다 다쳤을리 없고 .. 결론은 나방이란 것들은 원래 그렇다, 는 것이 분명했다. 귀납적으로 너무나 타당한 이 결론과 함께 나방은 모기를 제치고 비호감 생명체 1위로 등극했다. 모기는 해충이기에 싫은 것이었지만, 나방은 말 그대로 진짜 비호감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방이란 유기체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이다. 특히 갈색 나방이 그러하다. 흰색 나방은 미약하나마 무언가 개념이 있는 듯 하다. 가끔씩은 고고한 자태까지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색 나방들 - 아마도 나무 색과 같다는 유일한 경쟁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이 녀석들은 개념을 상실한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보호색 탓이라도 그렇지, 이런 것들이 수만년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했다면 생존경쟁도 뭐 별거 아닌가보다. 이놈들은 우선 도대체 날줄을 모르는 것 같다.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다음 순간 어느 곳으로 날아가야 할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미쳐서 날뛸 뿐이다. 가끔씩 진정한 것인지 벽에 얌전히 붙어있다가도 광기의 폭풍우가 몰아치면 순식간에 황금색 분필가루를 사방에 뭍혀가며 브라운 운동을 일삼는다. 황금색이라니, 생각해보면 정말 안어울린다. 미친 네로 황제가 황금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 광기의 정점에는 빛이 있다. 이것도 정말 안어울린다. 대체 미쳐놓고 왜 빛을 향해 돌진하는가? 하긴. 그러니깐 미친것이겠지. 이러한 행동이 어떠한 진화적 유익이 있는가. 곤충학자들이 그것을 그럴싸하게 설명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내 눈에는 정말로 희한한 일로 보일 뿐이다. 상황실앞에 운집한 나방들은 뜨거운 백열등으로 카오스 궤적을 그리며 돌진한다. 부딪힌다. 뜨거워서 뚝 떨어진다. 다시 회복하고 광무(狂舞) 혹은 광무(光舞)를 추며 백열등으로 돌진한다. 추락한다. 돌진하고, 추락한다. 추락하고, 돌진한다. 백열등이 아니라 작은 화염이나 촛불이었다면, 이들은 그대로 산화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이젠 희한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하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과 죽음을 감수하면서 빛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일까? 빛을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광기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자신을 불살라 해탈하려고 하는 것일까? 
 결론은 우리 소대엔 나방이 너무 많다는 것. (←?) 










 병장 심승보 
 음, 저도 나방은 아주 싫어합니다. 무엇보다 아주 더러워 보이죠. 나비계의 쉬레기. 특히 헌병은 그 비호감이 피부로 와 닿곤 하는 것이죠. 근데 지금 막 간단히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나비는 전세계에 2만여종이 있는 반면, 나방은 무려 그 10배나 되는 20만종 이상이 있다고 하네요. 참 쓸데없이 '더럽게' 많군요. 게다가 몸에 인분이 묻어있다고 해서 (역시나, 어윽, 더러워-) 눈살이 더욱 찌푸려 졌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였군요. 비늘린, 가루분의 인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나방보다 더 멍청한 놈이 저희 소대 주변에 있습니다. 일명 '헤딩벌레'라고 하는 것인데, 이건 어찌 된 놈인지 무작정 벽에 죽어라 헤딩만 하곤 하죠. 아닌 게 아니라, 이제 곧 그 놈들이 몰려 올 때가 되었습니다. 치명적 아디다스 모기와 함께... 음, 버물리와 물린디를 준비할 시기가 왔군요. 05-16   

 상병 조진 
 오. 아디다스 모기는 전군 공통이군요. 05-16   

 병장 안수빈 
 나방의 날개짓 소리는 섬뜩합니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 만큼이나 싫어요. 
 은근히 더 싫은 것은, 귀뚜라미. 좋은 소리에 비하면 생김새는 영.. 05-16   

 병장 박효승 
 그리고 각 종 이름도 모르는 족보 조차 없는 벌레들은. 
 군대가 낳은 돌연변이일까요? 
 우리 생활관에는 후임들이 손으로 잘 잡아서(...) 없습니다. 05-16   

 병장 이시인 
( 웃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05-16   

 병장 김지민 
 전에 한번은 정말 배가 엄지손가락 만한 나방을 봤는데, 고참이 화염방사기(라이터 + 모기약)를 발사했는데도 안죽더군요. 타는냄새까지 났는데도 말예요!! (!!) 두 번이나 쐈는데도 말예요!! 05-16   

 병장 윤용 
 저는 나방 잡을 때 특히 발로 밟을 때 나는 
 응축된 무언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너무 좋습니다. 
 후임들은 그것에 희열을 느끼는 저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저만 그런건가요? 05-16   

 병장 임창욱 
 일상에서 관찰한 것을 재미있게 잘 써주셨네요. 글 잘 읽어습니다. 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