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스켓맨이 될테야 , 병장 김형진
데굴데굴, 데굴데굴, 굴러오는 농구공이, 서글퍼보였다.
어쩐지 덥썩, 공을 안고 어딘가로 도망가고픈 기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톡, 하고 발 끝으로 굴러와, 데구르르.
치익- 치익- 신발끄는 소리, 그 소리의 주인공은 그저, 손을 내밀었다.
뭐야, 공을 달라는걸까, 툭, 하고 차 주었다, 슬퍼보이는 농구공을.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를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농구코트였다.
코트가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도 그가 있었고, 코트가 휑하니 비어버렸을 때도, 그는 있었다.
나는, 그가, 궁금해졌다.
아, 걔, 걘 항상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라고 농구 꽤나 한다는 친구가, 말해주었다.
학교는? 학교? 안 나간지 꽤 될 걸, 그 녀석이 외출하는 건 오직 코트에 가는 시간 뿐이야, 라고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그가,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했다.
그저 슛을 던지고, 흘러나간 공을 다시 주워온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저래가지고 어디 운동이 될까, 싶을 정도.
적어도, 별다른 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저, 농구에 미친 것 뿐일지도.
걘, 동생에게 패러사이트해서 살아, 한심한 녀석이지, 라는 말을, 들었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언제나 신발이나 질질 끌고, 어깨는 축 쳐져있는걸 보라구, 이젠 그렇게 살면 안 될텐데, 하고 친구는 혀를 찼다.
그 이야기를 한 친구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인턴사원이 되었으니까, 한심하게 느껴질 법도,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밖에.
히키고모리는, 사회적 압력이 두려워 숨어버린 사람들이다.
다른 말로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 어쨌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더욱 큰 사회적 압력에 시달릴 뿐이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살 거라면, 차라리 나가죽으라는 식으로.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혹은 타인에게 패러사이트해서 살아가는 그들을, 욕한다, 이 사회는, 그들을 죄인취급한다.
우연히, 그가 사람들과 함께 농구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 내가 농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슬램덩크를 끝까지 읽었다는 것 정도.
NBA도 꽤나 섭렵하고는 있지만, 농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 봤지만,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나는, 그랬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특별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잘합니다, 하면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내가 받은 느낌을 설명하자면, 그는 늘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승패에는 초연해버린, 그러니까,
달팽이.
늘 열심히 제 갈 길을 가는데,
어쩐지 세상일에 초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그리고 제 집 속에 언제나 쳐박혀 있는, 그런.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링을 보고 있지 않았다.
히키고모리는 왜 나쁜거야, 라고 묻고 싶었는데, 어쩐지 소용없는 질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왜 나쁜지도 모르면서,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졸업하고 일자리를 잡기 위해 고민하는 나 자신이라니.
이건, 너무.
우습잖아.
단순한 줄 알았는데,
부쩍 자주 들려오는 유행어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슛을 던지고, 흘러나간 공을 주워온다- 라는 것엔 변함 없었지만,
마치 공은 링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기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벽과 같은- 를 뛰어넘으려는 것처럼 높은 곡선을 그렸다, 참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다.
그의 점프는 두 발을 딛고 힘겹게 서 있는 이 땅을 벗어나려는 것처럼, 절실하고, 애처롭고, 한편으론 무모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러사이트해서 살아가는 것이 나쁘다고, 사회는 그들을 죄인취급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한시연에게 패러사이트 해서 살아가는 재복을 세상이 욕한다면,
아마 누구보다 한시연이 나서서 재복을 감싸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문제이지,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는 내게,
모르겠어, 후반기 취업설명회 일정이, 언제더라, 하고 친구는 쓸쓸히 내 곁에서 사라져갔다.
하나, 둘씩, 그렇게.
문득,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라고, 내게 물어보고 싶은데,
사실, 똑바로 물어볼 용기가 나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런 것들을 물었다간, 대답은 들리지 않을테고, 나는, 좌절할 지도 모르지.
어린 시절에 꿈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건 즐거웠던 그 시절을 부정하는 것이 될지도.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이력서는, △△자동차, ○○전자, ⅩⅩ물산 따위의, 존재했었는지조차 까마득한, 꿈과는 아득히 멀어진 것들인데.
요즘 젋은이들은, 어쩌면, 꿈과 비전을 혼동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나 역시, 그 들중 한명일테고,
꿈과 비전.
아름다운 단어들이구나, 까마득하게 아름다운-
그래서 슬픈-
그가 보고 싶었다.
비가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 -희망일지도 모른다- 으로 찾아간 코트 위에는,
묵묵히 슛을 던지는 그가 있었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갑자기.
나는 꿈을 내다버렸는데, 내가 내다버린 꿈을, 그가 잘 간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와락 달려들어서,
왈칵, 하고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솟구쳐오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비를 맞으면서, 그렇게, 후련해보기는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수업시간에 줏어들은 위버멘쉬라는 게 정말 있을까, 그런게 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가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데굴데굴, 데굴데굴, 굴러오는 농구공이, 서글퍼보였다.
어쩐지 덥썩, 공을 안고 코트 위로 달려가고픈 기분,
나는,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공을 집어, 슛을 던졌다.
노골.
하지만, 그 슛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슛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나는, 코트로 무작정 달려갔고, 그가.
웃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링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도, 바스켓맨이 될테야.
내 손에 쥐어져있던 이력서는, 어느 새, 빗물에 젖어,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 병장 구태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1-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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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박민수 (2006-01-02 00:22:22)
림을 보지 않고 슛을 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골을 외면하길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하하.
농구란, 그런 겁니다. 열정 그 자체. 태워버릴 수 있는 마지막 한방울의 여력도, 남김없이 불태워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
그리고 골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샘물과도 같은 것.
그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희열과 솟구쳐 오르는 열정이 있기 때문에, 천번이고, 만번이고 계속해서 슛을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스켓맨이야 말로 사나이의 로망. 자기 극복의 스포츠. 즉, 초인의 스포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병 노지훈 (2006-01-02 08:09:28)
아아 저는 농구를 할 때 실존을 느낍니다. 빨리 따뜻한 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병장 임현우 (2006-01-02 10:01:56)
농구는 겨울스포츠입니다.
상병 진주연 (2006-01-02 10:19: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해에 처음읽은 글인데, 기분 좋아지네요.
병장 박민균 (2006-01-02 10:30: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왠지 모를 그런 기분이 솟구치네요.
상병 노지훈 (2006-01-02 10:33:21)
현우님/ 여기는 영하 20도가 예사로 내려 갑니다... 장갑 벗고 5분 견디기도 힘듭니다.
병장 김동환 (2006-01-02 10:43:29)
하핫. 바스켓맨 모이세요!!
상병 김강록 (2006-01-02 10:55:30)
그리고 당구장 갈 사람들은 여기로~
상병 이상훈 (2006-01-02 10:58:03)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희망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일병 박민석 (2006-01-02 12:16:00)
그냥 농구얘기 같았는데 곰곰이 다시 읽다보니까 뭔가 솟구쳐오르는 느낌입니다. 멋집니다.
갑자기 바스켓맨이 되고싶은 기분!
상병 김영균 (2006-01-05 00:34:12)
운동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없다...더욱 생각나는 밤입니다.
병장 임현우 (2006-01-05 09:11:48)
지훈님/ 조크였어요(땀땀). 요즘 날씨가 다시 추워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병장 이 혁 (2006-01-05 11:37:02)
형진님 정말 이런글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하하.
농구도 너무 좋구요. 원츄
영균님 '운동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 어디서 나온 말이죠?
전 별로 신빙성이, 운동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감에 가득차서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더라구요. 쩝.
상병 이석현 (2006-01-09 14:05:28)
농구공, 농구장, 베스켓 뭐 농구와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으로서
글까지 따뜻하다는 이유로 괜히 기분좋은 하루가 되버렸습니다.
'왼손은 거들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