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세술(處世術) 책이 싫다. - 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난 처세술을 끄적거려 놓은 책이 싫다. 읽어보지도 않고 남이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을 ‘싫다’는 말로 쓰레기 취급해버리는 것도 옳은 자세가 아닌 듯하여―군대에서는 이런 책들이 넘쳐나기도 하고―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더더욱 싫어졌다. 이런 말을 남들 앞에서 꺼내면, 
“왜 싫은데? 성공한 선배들로부터 뭔가 배우면 좋잖아.”
라는 식의 물음을 받는데,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랄까, 첫 번째 이유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실컷 씨불여 봤자(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처세술책의 저자들은 문필가적 재능도 걸레같다.) 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은 개인의 ‘실천과 의지’라는 시지프의 바위 앞에 홀로 맞닥드리게 되어있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꺼내면 현실과 괴리된 염세주의자 소리를 듣기 십상인데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첫째 이유 이면에 더 큰 ‘어떤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뭔지를 스스로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그래서 우리 엄마보다 한 살 어린 이 대단한 아줌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 한다.

단순하면서도 늘 외면하는 삶의 본질을 일깨워준 이 ‘기성세대의 이단자(異端者)’에게.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위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평생 새장 속에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지,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창공으로 비상할 것인지.
나는 지금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려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본문 중에서 인용)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잠시 책을 덮은 후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나이 스물 세 살. 이쯤에서 솔직히 털어놓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어른이 두렵다. 어른이 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금의 어른들이 무섭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부와 명예’가 무서운 것도 아니요, 그들이 가진 ‘권력’이 무서운 것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세치 혀에서 쏟아지는 ‘현실’에 대한 달콤한 유혹과 ‘입에 풀칠 어쩌고......’ 하는 살기등등한 협박에 내 꿈이 산산조각나 버릴까봐 그게 두렵다. 실제로 나는 여러 번 부서질 뻔 했고, 주변에 부서진 꿈을 안고 축 쳐진 발걸음으로 각자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야 내가 왜 처세술책들을 싫어하는지 알았다. 처세술(處世術)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이요,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현실에 적응하라’는 강요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강요는 여집합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차단한다. 그것이 한계다. 나는 그 한계를 끊임없이 세뇌하는 저자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아직 내 꿈이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고 호언할 만큼 스스로를 단련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래서 한비야씨가 고맙다. 이미 스물 셋의 인간 박종민은 새장 속에서만 살아가기엔 새장 밖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너무나 강했고, 이제 그녀의 아름답고 화려한 수사와는 동떨어진, 피와 땀의 냄새가 진동하는 글로 말미암아 왠만한 협박에는 가볍게 비웃어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연봉’과 ‘집 평수’라는 xy축으로 인간을 가두고 좌표로 상하를 구분 짓는 이 답답한 인간사의 지도에서 ‘꿈’이라는 z축을 긋고서, 나는.
뛰쳐나가련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09 17:20) 

  
 
 
 
일병 허익준 (2006/03/20 18:05:10)

... 같은 이유로 "마시맬로 이야기"와 기타 "스펜서 존슨"이란 작자가 끄적여놓은 글들을 격렬히 증오했기에, 밑의 마시맬로 리뷰에서도 일장일대의 연설로 엄청나게 길게 썰었습니다만... 
... 제가 하고 싶었던(결과적으로는 반밖에 전달못했던) 말을 한큐에 다 해버리시는군요. 멋집니다. 
처세술요? 좋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꼬라지는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처세술 책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네들이 끄적거려놓은 "성공"이라는 소리는 어디까지나 꿈과 이상을 가지고 이카루스처럼 날아올라도 모자랄 젊음들에게 "현실적으로, 물질적으로의 성공"을 강요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요. 

... 아무튼, 리뷰 잘 읽었습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위시리스트 추가.    
 
 
일병 변화수 (2006/03/20 18:24:42)

역시 젊음이 좋고, 그 젊음의 열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저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미래의 희망이 어느덧 평범하게 다름사람들 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평범하게 살아가기도 왜 그렇게 힘겨워 보이는지.    
 
 
병장 박종환 (2006/03/20 18:43:25)

제가 생각하는 처세술의 답안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목표에 따라 달린 것 같습니다. 
그저 자기와 맞지 않는다고 증오하니 어쩌니 하는 걸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정말 모든 게 자신의 가치관과 맞아 떨어질 순 없겠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아닐까요.    
 
 
상병 박종민 (2006/03/20 21:34:06)

종환 // 그래서 '싫다'라고 한거지요.(웃음) 
저는 '틀렸다' 라거나, 익준님처럼 '증오한다'라거나 하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三人行 必有我師라 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지요.    
 
 
병장 박형주 (2006/03/20 22:53:52)

그런 류의 책 읽을 시간에 차라리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게 성공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병장 김석윤 (2006/03/21 06:18:23)

저도 이 책을 읽고는 멍하니 한동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다녔어요. 종민 씨처럼 꿈이라는 z축을 그어보라고 말이죠.(저도 마시멜로 이야기는 보다가 뭐야 짜증 지대로다~ 하면서 던져버렸어요. 하도 유명하길래 하번 보려고 시도했건만 온 몸이 책을 거부하더군요)    
 
 
일병 허익준 (2006/03/21 06:46:36)

삼인행 필유아사 - 세명이 길을 가면 나의 스승이 꼭 한명은 있다. 
라는 뜻이군요. 
(... 한참을 고민했음(쿨럭))    
 
 
상병 정재명 (2006/03/21 07:54:20)

처세술같은 책도 그려러니와.. 지나치게 모범생 삶을 요구하는 책들도 짜증입니다.(개인적으로.) 
절약하라. 금주하라. 금연하라. 등등의 삶을 살면 성공한다는.. 등의 내용.. 
그렇게 살바에는 즐기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무슨 누구의 13가지 덕목인가를 고참이 뽑아준적이 있었죠.. 보고 
'난 못해' 라고 생각하고 어딘가에 쳐박아버리고... 
그런 삶 살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병장 김동환 (2006/03/21 08:07:32)

저는 친구들 생일선물용으로 주려고 장영희씨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더불어 
몇권 사놓으려고 해요. 
정말 좋은 책이구나 싶은데다가 작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꽤 상위를 지켰던 책인데도 
아직 안읽은 친구들이 참 많더라고요. (실은 생각보다 책선물이 싸게 먹혀..(쿨럭))    
 
 
병장 김중원 (2006/03/21 12:06:11)

지금 읽고있는 책에서 본 문구인데... 
"자기계발서에서 떠드는 온갖 주장을 하나도 남김없이 실천에 옮기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자기계발 관련 서적을 출간하거나 텔레비전 토크쇼에 얼굴을 내밀거나 잡지에 기고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인류의 문제를 알 수는 없다 따라서 그들의 충고가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맞는지 안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종민님 글 너무 잘 봤습니다.. 
처세술에 관한 책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楹六    
 
 
병장 정치훈 (2006/03/22 07:10:03)

이 말도 맞는 말이고 저 말도 맞는 말이고    
 
 
병장 정치훈 (2006/03/22 07:10:25)

전 둥글게 두리뭉실 사는 인생이 좋아요. 현실에 적응 해 버린 것일까요?    
 
 
병장 강보람 (2006/03/22 08:05:35)

사람따라 다를뿐이죠. 적응했다고 나쁠 거 있나요?    
 
 
병장 강보람 (2006/03/22 08:06:41)

그저, 자신의 선택을 다른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할 선택이겠죠.    
 
 
병장 주현탁 (2006/03/23 10:26:10)

한비야씨는 정말 너무 멋있어요. 꿈을 실현해나가는 모습도 좋고, 그 성격도 좋은것 같아요.    
 
 
상병 김상엽 (2006/04/09 18:46:36)

나도 처세술 책이 싫어요. 가끔 똥 쌀때나 있으면 한 번씩 넘겨보고, 잡지랑 비슷한 느낌이죠. 
성공에 대한 집념이나 야망, 정확하게는 질투심을 일으키는 게 그런 책이 제게 가져다주는 일말의 효용이죠. 하여튼 책 내용을 가지고 참 거짓이나 잘 나고 못난 삶의 방식이다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어요.    
 
 
병장 김승연 (2006/04/28 14:42:4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비야씨를 직접 한번 뵙고 싶어지는군요.    
 
 
일병 김동현 (2006/04/28 14:54:29)

저 또한 처세술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박종민님 글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가졌습니다. 
댓글을 읽던중 "마시멜로 이야기"를 몸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던져버렸다는 글을 봤습니다. 
처세술 책들은 그대로 하기엔 정말 억지스러운 부분과 토할것 같은(?)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마시멜로 이야기를 봤을땐 다 읽고 나서 쥐똥만큼 되버린 내 의지를 다시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부감을 느낄수도 있지만 내가 세운 목표에 다가갈때 유혹들을 뿌리칠수 있는 디딤돌 같은 느낌... 하지만 사람이 다 그렇듯!! 작심삼일이죠... 꾸준히 한다면 당신도 처세술 책을 쓸수 있는 인간승리자!! (내가 좋아하는 정지영이 옮긴 책이라 그런지 난 처세술 책 치곤 좋았어요.. 하하)    
 
 
병장 석대희 (2006/04/30 10:00:48)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속에 지닌 열정이 꺼지지 않고 
지니고 있다면 살아가는데 힘이 될듯 싶네요    
 
 
 일병 한경선 (2006/05/04 16:39:13)

자신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런 글을 쓰는 당신도 처세술을 쓸 기질이 보이는 걸요.(웃음) 
사실 그런 글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다 주관적인것이죠. 
저도 역시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의 강한 생각이 담긴. 글을 좋아한답니다.    
 
 
일병 김태균 (2006/06/17 10:39:24)

여기계신 다른분들 모두 비슷한 의견을 갖고 계시네요 
저도 원론적이고 철학전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책보다는 
역시나 픽션의 아름다움이 더 와 닿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