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혁명을 위해 빗자루를 들었는가
병장 강세희 04-24 14:22 | HIT : 485
나는 왜 혁명을 위해 빗자루를 들었는가?
' 담배 한 대만 빌려줘'는 해방적 증여행위의 정치적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담배화함으로, 해방된 세상을 건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주영준, 담배 한 대 빌려 달라는 말에 대하여 中
내가 속한 어떤 곳을 가장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기수'였다. 여기에서 몇몇 부조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타났다. 내가 꼽창이 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이 체제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더욱 굳건히 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빌려주는 일이 비상품의 영역을 확장시켜 모든 것을 상품의 영역으로 포획하려는 체제를 위협하듯이 그곳도 이러한 비체제적 행위의 확장을 통해 모순들을 해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미치도록 해체시켜버리고 싶었다.
기수에 의한 그 사회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청소였다. 화장실에서부터 빗자루, 마대, 감독 등으로 올라가는 그 구조는 힘든 일은 낮은 기수부터 해야하고 서로가 서로를 중첩되어 감시하는 이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바꿔내고 싶었다. 이것만 바뀐다면 기수에 의해 나타나는 다른 부조리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청소 각을 짜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체제 전체를 관장하는 친구들을 능가하는 기수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체제 속으로 들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 체제의 모순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자발적인 비기수적 행동을 통해 체제에 구멍을 내야 했다. 그러한 행위가 확장되어 체제의 기본 공리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발생해 너덜너덜해진다면 결국 그곳은 바뀔 것이다. 아니, 굳이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그것은 더 이상 기수에 기반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빗자루와 마대를 집어들었다. 우선 독서실부터 시작했다. 사용하는 사람이 정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우리는 길들여져 있었을 뿐이다. 독서실 청소를 해야하는 친구들이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자기들이 하는 청소가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절대 그런 반응이 아니었다. 나의 행동이 선행으로 알려지길 바라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나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친구들이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빗자루와 걸래, 마대를 함께 들어주기를, 결국 모든 청소가 억압적 명령이 아닌 어떤 다른 방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이 그곳의 모든 영역에 확장되어 체제를 떠받치고 있던 근본적 모순을 해체시킬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계획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불순한 의도에 기반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소극적인 방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책들과 소통하며 배운 억압을 수반하지 않는 근본적 사회변혁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체제를 거부하는 비체제의 공간, 즉 체제의 외부를 내부에서 확장시켜 나가는 것. 기수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던 일을 비기수적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빗자루와 걸래, 마대를 드는 것. 그러한 삶의 방식이 이 체제 전체로 확장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진정한 혁명이다.
언젠가 그곳의 모든 억압이 해체되고 있음을 들을 때, 어디에선가 나는 눈물을 뿌리며 춤추고 있을 것이다.
* 병장 김현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10 09:39)
상병 조진
세희/ 강세희'병장'님, 대단하십니다. 쉽지 않았을텐데. 근데 보수적인 우리사회는 님처럼 군에 있을때 혁명에 성공해 '병장'임에도 불구하고 마대를 잡아봤다는 경험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또 그런 경험자들이 늘어나 우리사회 구석구석 포진하기 시작했다는걸 알게 되면 될수록, 군필자 가산점이 더 이상 필요없다고 느끼고 그 제도를 없애려 들거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아무튼 결론은 대단하십니다. 04-24
병장 강세희
조진 / 이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저 역시 이 체제 유지의 '적극적' 가담자라는 측면에서 저는 대단하다는 평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군필자 가산점의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만약 가산점이라는 것이 조진님이 가정하신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저는 차라리 부정하고 싶군요. 아무튼 결론은 감사합니다. 04-24
병장 진규언
세희님, 진심으로 대단하십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러한 혁명아닌 혁명을.. 지극히 상식적인 상식을 꿈꾸어온지 오래이나, 그럴만한 위치에 오른 다음에라도.. 다만 마음속으로 꿈만 꾸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세희님에게 남몰래 응원을 보내봅니다. 단.. 하나 균열이 필요할테지요. 그만한 용기와 실천이 결여되어 있는 저는 그럴만한 자격도 없겠지만..
거대 권력의 비상식 앞에 자꾸만 작아지고,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들이고 있고 길들임 당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게..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날을 '꿈만 꾸며'
어느 누구에게나 단 하나 동기부여가 안되는 현실에.. 맞설 수단이라곤 폭력밖에 남아있지 않는 저 스스로를 위로하며.. 04-24
상병 조진
적극적 가담자라는게, 참 이중적으로 들리네요. 그래도,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게 사람인지라,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오려는 성인과 같은 행동들은 그래서 찬양(?) 받아 마땅합니다. 04-24
병장 진규언
진, 조진님 저도 세희님을 경탄에 마지않는 것은 사실이나..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성인과 같은 행동에 찬양을 보낸다는 표현에.. 조금 웃었습니다(웃음) 이거 세희님이 굉장히 민망해 하실듯한대요...? 04-24
상병 조진
진짜 이 현실체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데 장소가 장소이고, 신분이 신분인지라..무엇보다도 보안관님이 무섭습니다.
규언/ 그..그런가요. 민망해서 싫으시다해도 뭐 뱉어놓은 리플을 주워담을순 없습니다. 리플은 계속되어야하니까요.(응?) 04-24
병장 진규언
진, 저도 사실 보안관님이 무섭습니다. 덜덜.. 사실 그분이 위정자의 고통내지는 통치자의 고뇌정도의 일부쯤은..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좋아서 일을 맡을까요. 다시 말해, 까짓거 글좀 수정할 수 있고 삭제할 수 있는 권력이란게.. 무어 그리 좋은 것일까요. 이곳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자리이지요..
조금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혹은 봉사해야할) 공직에 계신 수많은 인들을 위해서도 참 좋은 말이지요. 아주.. 중요한 동기부여인 "자부심" 04-24
병장 김지민
어흥 04-24
병장 김지민
참 쉬운 일인데, 순응하다 보면 어느새 또 내가 타파하려던 대상과 같은 내가 있죠
순응은 쉽고, 반항은 어렵다.
저는 욕심 없는 사내입니다(응?) 04-24
병장 이건룡
선진병영문화를 위한 자발적인 발상인데 굳이 호들갑 떨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희생을 감내해야 부정이 타파될 터이지만 '감내'라는 지점야말로 변증법적 실패로 다각적인 면으로 내몰리는 고비의 시점이 아닐 까 싶습니다. 04-24
병장 김지민
그렇담 '희생' 역시. 04-24
병장 강세희
규언 / 예...바로 그 균열이 제가 원하는 것이고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균열을 더욱 넓혀줄 마치 누군가 말했던 연속혁명이 절실한데 저도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것 같으니 한 번 믿어보려고요.
지민 / 지민님의 댓글에 혹시나 하던 불안감을 씻었습니다. 웃음. 04-24
병장 조용호
세희님 글 잘 읽었습니다. 비슷한 목적으로 저 또한 병장달고 청소를 하면서 느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경험을 끄적여 보자면, 세희님이 언급하신 자기들이 한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하는 불안한 감정의 '포장'속에서, 현재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낮은 기수자들이 나중에 헤게모니를 쥐었을 때, 나중에 우리가 청소를 해야할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과 불안의 표정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막내시절 저와 비슷한 '기수'들이, 이 시스템 나중에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그당시 처럼 말도안되는 악폐습정도는 없애자! 고 다짐했던, 그 '기수'들이 이 시스템의 존속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있는 것을 직접적으로 깨달았던 터라 충격이 더 컷었지요.
뭐랄까.. 왠지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희망했던 유토피아에 갑작스레 살게 되더라도, 그곳을 디스토피아로 바꾸어 살것 같은 좌절감을 경험한 기억이 있던 저로써는 마냥 씁쓸하기만 합니다. 04-24
상병 박준연
용호/동감이 갑니다. 글에서 세희님이 언급하신 청소 각을 짜는 입장(..)으로써 우리들만은 얘들에게 잘해주자는 신병결의(?)를 잊고 저의 동기들이 마구자비로 행동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저희 기수 이전 사람들보다야 조금은 낫지만 그건 크게 보면 그놈이 그놈이겠죠. 저 또한 그렇구요.) 사람에 대한 역겨움까지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살다보니 과연 '인간은 선한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기가 난해하더군요.
역시 이곳은 참 어려운 곳이에요. 04-25
병장 진규언
세희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하여 어제 청소시간에 동기녀석하고 솔선수범하여 '빗자루'를 들어보려 했으나..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몸소 체험해본 결과, 빗자루를 들고 걸레를 드는 행위는 보통 용기를 필요로 하는것이 아니어요. 정말 내면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지 않고서야(일정 부분..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세희님의 용기에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04-25
병장 김지민
복잡한 이데올로기(?)를 거치지 않고도 그냥
' 귀차니즘' 하나로서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짬은 그야말로 귀차니즘의 허용 척도이겠죠? 04-25
병장 진규언
그 귀차니즘은 자유의 소극적 형태인, '원하지 않는걸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생활관 내의 사람들이 아닌.. 외부의 압력이 밀려온다면 이 소박한 자유(?)조차 헌납할 수밖에는 없지만..
워낙 자유의 냄새에 목말라 있어서, 아~주 비겁하고 소극적인 형태의 그것에만 목매다는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04-25
병장 우석제
세희님 후임들이 이글을 보면 엄청 뜨끔할 것 같아요. 이래선 자발적이지 못할 것 같은데.. 04-25
병장 강세희
용호 / 좋은 지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선물의 교환을 등가교환으로 보느냐 아니면 호혜적 관계에 의한 자발적 증여의 연속으로 보느냐의 차이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전자로 볼 경우 그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지만 후자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등가교환에 기반한 관계와는 다른 것이거든요. 따라서 저는 건룡님이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라는 말씀에는 적극 지지하면서도 '감내'라는 부분은 부정합니다. 그것은 결국 선물의 교환이 등가교환으로 여겨지는 상황(선물을 받은 사람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처럼 '나중에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거든요. 실제로 저도 감내나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면 차라리 그 날은 청소를 하지 않을 때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변화를 위해 희생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호혜적 관계에 의한 증여의 연속과 같은 자발적 행위가 점점 확장되는 것입니다. 안된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요. 웃음. 04-25
병장 한철희
뜨끔한것과 자발적인것과는 다를거에요 아마. 진짜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거든요.
저또한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크게 생각을 안해도 되지 않을까.. 해요.
공동체가 생활하는 곳이니까 사용하는 사람중 누구나 청소를 해도 되지 않느냐 라는 생각. 이런 생각만으로도 충분하죠. 근데 여기서는 다들 자신에게 있는 불만을 이런식으로 '곱창'을 부리는 구나. 라고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게 또한 석제님 말씀처럼 '비자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저역시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병장'이기에 저도 크게 할말은 없군요.
단지 하고싶은말은 소위 말하는 광부들이란 공동의 적을 두고있는 저희끼리 싸울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서로의 모습이 다른만큼 서로의 생각도 다른법이니. 04-25
병장 강세희
용호, 준연 / 저는 그것(자신의 위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어찌보면 주체가 구조에 대해 2차적이다 내지는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무작정 실망만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리가 어떤 접합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것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테니까요. 04-25
병장 이상원
세희//
요즘 독서실에서 계속 빗자루 들고 다니더니.. 무슨 일인가 했네요.
잘 읽었습니다. 일단 내려가서 이야기 하죠. 04-26
병장 배진호
좋은 이야기를 조금 늦게 보았네요..
하지만 제이야기를 들자면 '두려움'즉..
그러한 행위가 부담감 없는 행위일 경우는
그러한 행동이 자연스레 나올 경우도 있지만
즉 어질러 저있는 공동의 공간을 홀로 정리할때가 가끔있습니다만..
하지만 그 행위가 공공연한 나의 책임이 되어버리고 말것 같다라는
' 두려움' 이 뒤따르게 될 경우 그 행위가 조금은
어색해지고 그 빗자루를 내려놓게 되는 경위가 되는것 같습니다.
즉, 청소를 해줌으로써 공공이 즐겁게 되는 현상을 바라보고 싶지만
그것이 한두번이 아닌 자주가 됨으로써 감사는 사라지고 오히려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 인한 비난고 불평의 증가를 경험할 수 있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지요 이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쉽상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일단 우리가 거쳐간 과정중의
일부인 우리가 이병일때 청소하는것이 마냥 당연한것같고 우리가
이미 청소를 해왔던 과정이지만..
병장인 지금 이병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해 마지 않기는 커녕
제대로 청소를 못한다고 비난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이부분을
자그마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것은 저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 혁신이 불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기네요..
문제는 극복하는 것이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