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학교 열람실과 거리가 먼가 (상병 김강록/051113) 
 
 
 
 
75. 나는 왜 학교 열람실과 거리가 먼가 :


이는,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본다. 물론 그런 종류의 문제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왜 노트 필기를 못하는가, 나는 왜 모든 수업 시간 내내 깨어있을 체력이 안되는가, 나는 왜 레포트 마감시간이 임박하면 급하게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다음 시간으로 제출을 미루려 하는가, 나는 왜 시험지를 받아들면 자신이 없는가, 라기보다는 왜 남의 시험인 듯 시큰둥한가, 등등. 혹은 왜 술 마시다 중간에 집에 가길 싫어하는가, 왜 낮잠과 밤잠은 독립 사건인가, 도대체가 긴장이 없는가, 등의 주제도 훌륭하다. 선택은 우연에 근거한다. 그저 오늘 낮에 문득 나는 왜 학교 열람실에서 공부한 기억이 없는가에 관해 강한 의혹이 들었던 것이다.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충분한 이유다. 그러니 안심하고 계속 생각해 보자.


우선은 손쉬운 이유들부터. 열람실에 자리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자리를 잡으려면 새벽같이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10시 정도의 수업도 슬라이딩 태클하거나 혹은 못들어가는 주제에, 새벽같이 학교에 가 열람실 자리를 잡는다는 게 가당이나 할 턱이 없다. 물론 시험 기간에나 그렇지 평소엔 안그럴 거라고 반문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시험 때도 제대로 열람실에서 한번 앉아본 적이 없는 놈이, 평소 열람실에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건 정당하다. 누가 내게 돌을 던지랴! 아무튼 들리는 바에 의하면, 평소에도 자리잡는 일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다고들 했다. 자, 이것이 첫번째 이유. 자리를 잡기가 힘들어서.

그리고 두번째, 나는 학생증이 없었다. 처음 입학해서 2학기가 되어서야 학생증을 받아들고─신청을, 2학기에 했다. 나는 성격이 느긋한 편이다─중간에 1년은 휴학을 했기 때문에 학교에, 더군다나 열람실에는 갈 일이 도무지 없었으며, 그나마 입대 전 마지막 학기에는 택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며 학생증도 같이 분실했다. 즉 다시 말해 내가 학생증을 소지한 채 학교를 다닌 게 전체 학교 생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단 얘긴데, 문제는 열람실이 전철 패스 카드처럼 학생증을 긁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다. 그건 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생활 내도록 열람실과 도서관, 이 두 곳은 나와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우린 남남이었고, 서먹서먹하여 서로 말을 걸기가 어색했다. 내가 아직도 학교에 대한 낯선 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도 한 몫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이게 바로 두번째 이유, 출입에 필요한 학생증이 없어서.


하지만 이쯤에서 의혹이 생긴다. 열람실 자리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힘들다 했지만, 사실 별은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누구나 딸 수 있다. 열람실에는 진작에 뭉개고 코피쏟고 잠자고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별처럼 많이 있다. 나는 왜 그 중의 하나가 되지 못했던 걸까. 여기서 한 가지, 바로 의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이 세번째 이유이며, 내가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파고들 부분이다.

의지의 문제는 통상 근면성의 문제로 환원되곤 한다. 그것은 타당성이 있다. 열람실에 가고 싶으면서도 귀찮아서, 늦게 일어나서, 게을러서, 가만 앉아있질 못해서 못갔다면 근면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그리 무리가 아니다. 못간 게 아니라 안간 거라 말하더라도 혐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우리의 말이 늘 액면 그대로이라면, 세상에 철학이란 게 있었겠는가. 철학의 문제들은 언제나 언어에서부터 발생한다. 언어에 문제가 없다면 철학도 필요없다.

결국 나는 근면하지 못했기에 학교 열람실에 죽치고 앉았는 일이랑은 거리가 멀었다─는 어떤 사실 판단으로서의 가설에 대해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쯤에서 마무리될 정도로 간단하지가 않다. 그렇게 간단했다면, 간만에 이렇게 정색(?)하고 구구절절 늘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열람실에서 공부한다는 게 나로선 그다지 탐탁치 않았던 것이다. 공부를 안했으면 안했지 열람실은 무슨 놈의 열람실이냐 내가, 라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열람실은 하나의 공동묘지와도 같았다. 그것은 또한 막다른 골목이기도 했다. 도대체가 숨을, 그곳에도 과연 산소가 있는가? 멀미가 났다.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고, 별로 고상하지 못한 악취미인 듯 했다. 책을 펴면 잠이 왔다. 잠을 이겨내도 어차피 내가 공부해야 할 범위들은 봐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흥이 나질 않았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잔치에 와 앉은 기분이었다. 기분─단지 기분일 뿐이라고 말하면 차라리 속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내겐 기분이 중요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려드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나는 내가 소중했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 있을지 모른다. 대개 근면을 옹호하는 이들은, 내게 인내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는 원래 참으면서 하는 거다, 참으면서 하는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가치있다, 네게 보람과 성취감을 가져다줄 거다, 등등. 니가 아직 열람실에 앉아있는 게 낯설어서 그렇다, 하다보면 또 그렇게 못할 짓도 아니라고, 친절히 조언해줄지 모른다. 고맙다. 그런 정보라면 내게도 유용하다. 내가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내가 열람실 물을 못먹어봐서 그런 건 아니다. 나도 한 매일같이 열람실의 자리를 채우고 앉았던 시절이 있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 시절이 내게도 있었고, 나는 동네 독서실을 다녔다. 집에 붙어있으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쓸데없는 일로 힘을 馨 싶지 않았고, 그래서 독서실이 돌파구였다. 야자 끝나고 따로 독서실을 한 탕 더 뛰는 학생은 당시 내가 알기로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중에서도 몇 안되었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 있는 일인데, 학교에서는 주로 잠을 잤다. 깨어서 자습시간에 만화책을 돌려보곤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잤다.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독서실에서만큼은 하루 중 가장 맑은 정신으로 앉아있었다. 자물쇠를 채우는 개인 서랍 안에는 일기장과, '다마와 큐대와 쵸크와 시'가 있었다. 말했잖은가, 그곳은 돌파구였다. 세상은 꽉 막혀 있었고, 내가 찾은 출구는 독서실이었다. 그곳은 완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세계의 지배력이 그곳까지 미치진 못했다.

그러나 학교 열람실은 어떤가. 그곳은 돌파구가 아니다. 꽉 막힌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출구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가장 막힌 극단적인 세상의 한 모서리이다. 나, 천하의 김강록이 '겨우 열람실 앉은뱅이'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사망 선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필시 미로 속을 헤매다 막다른 골목에서 마침내 굶어 죽은 모르모트 신세가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곳은, 공장이다! 나를 세상에 내다팔기 위해, 내가 결국 하나의 상품임을 인정하는, 나를 상품으로 찍어내는 공장이다. 열람실에 앉아 공부하는 대학생이란 이 얼마나 산업적인가. 근면한, 대학생. 멋지다. 제법 비싸겠다.


20대 초반, 내 지난 젊은 날 최고의 애독서는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 책의 영향은 실로 상당하다. 그 책은, 내게 욕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욕망을 옭아매고 있는 원죄 의식을 과감히 떨쳐내라고 가르쳐다. 내게 기백 넘치는 상상력을 가르쳤다. 원하는 것이면 뭔든 꿈꿀 가치가 있음을 가르쳤다. 그 책은, 그런 책이었다. 진작부터 나의 게으름을 부끄러워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게으름은 새로운 시대의 윤리가 되었다. 근면이라는 이름의 신이 죽고, 인간은 자유를 찾았다. 원래 인간은, 게으르다. 그런데 열람실이라니.

열람실이라니! 그것도 소위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시대를 제시해야 할 젊은이들이, 열람실이라니.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세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다니. 날아오르지 못하고 세계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다니. 문득 베이컨의 적나라한 고기 그림이 떠오른다. 정육점─우리는 열람실 책상 칸막이처럼 토막난 고깃덩이가 되어 값이 매겨지고 마침내 팔려나가는 것이다. 열람실이라니, 정육점이라니, 자본주의라니.

열람실과의 거리를 유지한 것은 실로 잘한 일이다. 이쯤에서 제목도 고치는 게 어떨까 한다. 나는 왜 열람실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지 앉았는가, 왜 열람실은 나를 끝내 정복하지 못했는가, 등등. 하지만 역시, 기개가 장할지언정 그것만으로 일이 꼭 순탄하게 풀리지는 못한다. 소위 '철든 복학생'이라는─물론 철이 든다는 것은 대개 강요에 의한다─생활 양식은 열람실과 燦爭塚 수 없는 관계이다. 나도 그렇게 되고 마는 걸까. 참는 건 질색인데, 세상은 참는 것이 미덕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마침내 스스로를 학대하며 미덕이라 기꺼워 한다. 이거야말로 변태의 윤리, 포르노는 이 시대의 정신이다. 차라리 Maxim을 읽자. 그쪽은 건강하기라도 하니까.

열람실은 무슨 놈의 남사스러운 열람실, 나는 당구나 칠란다. 가만히 공부하고 있는 애들 꼬드겨서 당구나 쳐야지. 당구나, 당구씩이나, 무려, 열람실 따위보다는 내겐 역시 당구다. 그게 바로 나다운 모습이고, 그때 내 삶에는 나의 자리가 있다. 헌데 열람실에는 내 자리가 없는 것이다.




2005. 11. 7. 月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병장 강우람 (2005-11-13 11:27:30)  
아, 역시 강록씨 글은 너무 좋아요. 읽으면 즐거워지거든요.  

상병 조혁장 (2005-11-13 16:40:11)  
진정 대단하십니다. (나는 왜 그러질 못할까...울음)  

상병 엄보운 (2005-11-13 16:42:41)  
대학 열람실이라면 러셀의 책을 읽을 수도 있겠군요.  

상병 손동철 (2005-11-13 20:34:32)  
무척 공감합니다. 표현하자면 입맛에 맞는 글이랄까? 어쨌든 글을 보니 지난 대학초년시절의 
기억이 소록 소록 떠오르네요. 글쎄요 열람실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학생증도 있었으며
약간 근면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전 학교 열람실에서 거의 살았습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제게 
학교 열람실은 강록님의 돌파구 같은 것이었죠. 열람실 안 대다수가 토익이나 취업준비에 
몰입해 있을 때 전 맑스엥겔스 선집과 러셀의 서양철학사 등을 위시한 고전 등을 비록 꼼꼼히
읽지는 못했지만 베개 삼아 잠이라도 잤던 것 같습니다. 자기 상품화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거죠.

그런데 군복무중인 지금 내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제대 후 복학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전처럼
편안하게 책이나 읽고 있어도 될까' '보증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생에 단 한번뿐인 이 젊음을 
취업준비로 낭비하는 건 아닌가' '넓은 세상을 냅두고 갇힌 공간에서 공부나 하며 젊음을 허비하는 건 
옳은가' 이런 질문들 뒤엔 한숨만 나오죠. 그리고 그것도 잠시 결국 일단은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울어집니다. 세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건 참 안타깝지만 일단은 입에 풀칠은 해야죠. 안 그래요? 
부자라면 몰라도 서민 대다수는 요즘 같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 강록님의 글을 보면 궁금증이 생기는 데, 실존적인 이유로 현실도피를 
정당화하시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죠. 게다가 강록님의 그 긍정과 용기가 정말 생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변화된 모습인지도 궁금해집니다.  

병장 김동환 (2005-11-14 08:56:53)  
저도 니체를 무척무척 좋아하는데 어느날인가는 니체를 읽다가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어요.

"이사람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럿에게 사랑받지는 못했을텐데."

니체의 철학은 무척 멋지지만 막상 니체는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써 증명해내지 못했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마이 아파서.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당시 그런 철학을 내놓을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적당한 구실이긴 합니다.

가끔 강록님의 글을 보면 아프지 않은 니체 같아요. 처음에는 "우와~"하면서 박수를 치지만
점점 걱정이 됩니다. 니체를 처음 보면서 '위버멘쉬'라는 개념에 찬탄과 두려움을 함께 
가졌던 것처럼. "오우. 강록님. 쉽지않을텐데.." "혹시 글 행간에 내가 놓친 다른 의미라도 있는건가?"

가능성과 희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강록님 화이팅입니다.
죽돌이는 힘들겠지만 열람실에서 책 뒤적거리다 강록님이 꼬셔주시면 
즐겁게 당구장에 따라가는 삶. 저도 살고 싶군요.  

병장 박윤철 (2005-11-14 09:31:15)  
저는 큐대를 잡아 본 일이 극히 적었던지라, 강록님의 꼬심에 넘어갈 지는 모르겠습니다. (듣자하니, 학교 근처의 당구치는 가격도 많이 올랐다 합니다) 강록님의 큐대와 다마와 초크와 시가, 저에게는 가죽과 쇠와 채와 소리가 아니었을까요. 저도 열람실보다는 악기와 함께 뒹굴었던 기억이 더 많은 대학시절이었네요. 

저도 철이 들려구요. 고깃덩어리로 그 곳에 앉아, 비싸게 팔려가기를 원하며 몸을 팔 겁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맘껏 더 할렵니다. 욕망을 채우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는 다르다고 믿습니다.  

병장_박대열 (2005-11-14 10:26:24)  
나는 왜 학교 열람실과 거리가 먼 가
- 아니 공부하는 것부터 거리가 먼 데 열람실이란건 생각부터 한 적 없다구...
라고 생각한건 나뿐인가 하더라  

상병 주영준 (2005-11-14 12:39:09)  
나는 왜 학교 열람실과 거리가 먼가-하니

1학년때는 학교 도서관이 어디있는지 몰랐고 
(바람 잘 날 없는 민주광장에 도사리고 있는 건물이 도서관이었을 줄이야. 맙소사. 매일 보던 그게.)

2학년때는 도서관에 열람실이 있는지 몰랐으며
(도서관은 책 있는 곳이지 책 읽는 곳이 아니다. 는 게 기조였는데)

3학년의 1학기는 학생증 잃어버린 휴학생이었고
3학년의 2학기는 학생증 잃어버린 군인이었다. 는 것일까.  

일병 김민성 (2005-11-14 12:47:35)  
그러고 보면 열람실(흑히 말하는 중도..)에 앉아 공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군요
제 기억 속의 열람실은 친구들과 철냉풍이에 고추장과 참치와 밥이 범벅되어 어우려 졌던
장소입니다~ 물론 엉덩이에 풀칠하고 있던 많은 이들을 가끔 부러워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전혀 일말의 후회도 들지 않는다고 말씀 드리고 싶군요  

상병 김상희 (2005-11-14 15:38:48)  
전 지난 4년 내내 열람실에 잡지나 신문보러 갔었더랬죠.. 동내 도서관에선 책빌리러 갔었구요.. 음 지금은 자습실에 멀티플랙싱에 겨워할 때 가끔씩 소설책 보러 내러가요.. 열람실 공기는 너무 답답해서 잠밖에 안오더라구요. 
지성에 전당에서 가야할 곳은 시원한 차한잔에 괜찮은 테이블 하나면 족해요.  

병장 이준영 (2005-11-14 16:47:36)  
열람실은 꿈꾸는 곳이지,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과감히 뛰쳐나와서 마우스를 잡고 질럿과 뛰놀거나 큐대를 잡고 다마와 구르거나 혹은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풀밭을 노닐었지요.

그런데 지금 남은건 하나도 없군요. 하지만 다시 그 순간을 제게 준다면 주저없이 예전과 같은 선택을 하겠어요.  

상병 이상훈 (2005-11-17 10:59:09)  
학교 중도 지하에 있는 열람실... 지하1,2,3...점점 내려갈수록 가라앉은 분위기와 목을 조여오는 답답함...
때문에 1, 2학년때는 거의 중도에서 공부한적이 없었죠. 내 후년에 복학을 하게 되면 저도 가라앉은 분위기,
목을 조여오는 답답함과 싸우면서 지하2, 3층에서 자기 상품화에 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습니다..  

일병 김윤수 (2005-11-28 23:36:15)  
상품화가 왜?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상품이 되어 상품을 판 가치로 내가 즐기고 싶은 다른 무언가를 즐기겠다는..건데..
일종의 기회비용이 아닌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즐길 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