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구차한 설명보다는, 글로 모두 대신하겠습니다.


102.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


주말. 낮잠 자는 병사들을 위해 불을 꺼둔 내무실은 대낮부터 이미 저물어간다. 그것은 어둠이되, 황혼이 없는 어둠. 최후의 순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붉은 황혼이 허락되었기 때문일텐데, 대낮부터 저물어가는 내무실은 아무래도 그저 삭막할 뿐이다. 그 속에서 얼마간의 생존자들이 TV를 보았고, 나는 책을 읽었다. 바야흐로 21세기 국군 병사들의 무덤덤한 주말 풍경.

슬라보예 지젝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두워서, 다리에 쥐가 나서 계속 자세를 고쳐 앉았다. 책은 머리에 곧잘 들어오지 b았다. 간간이 TV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결국 나는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책 내용을 노트 정리하고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생전에 이런 걸 옳게 해봤어야지. 점차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흉내내기에 불과한, 결과물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다만 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 전형적인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의 노트 정리'가 되고 있었다.

쳇, 학교 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 나의 불성실이 나를 그 어느 거대한 헛소문으로부터 지켜줄 거라 믿었었는데. 대개 성실한 학생들의 행위 양식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에 대해 나의 태도는 비굴하고 패배주의적이다. 내가 감히 그 신화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과연 나도 열심히 하면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학점이 되었건 토익이니 뭐니 각종 시험이 되었건 말이다.

가려져있던 내 뿌리깊은 열등감을,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 난 늘 비교당하면서 자라온 불우한 놈이었지. 고작 도망갈 구멍이라고 찾은 게 그거란 말이냐. 죽어도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한줌도 안되는 자존심을 위해 어린애같은 고집으로 여지껏 연명해온 불쌍한 녀석. 위로받고 싶었던 거냐. 아무도 너한테 그럴 생각이 없는데.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거냐. 무모한 일일텐데. 너만 다칠텐데.

너를 개과천선시키려면 세상이 널 앞으로 얼마나 더 절망에 빠뜨려야 하는 거냐. 이기적인 녀석, 양보라고는 안중에도 없는. '못이긴 척'이란 말을 배우지 못한 지진아야. 네 전략이라면 익히 알고 있어. 초라한 니가 이 세계에 승리함으로써, 이 세계에 모욕을 주려는 거지. 네 스스로 세계의 오점이 되겠다는 거지. 세계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네가 자멸함으로써, 이 세계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드려는 거지. 벼랑 끝에서 함께 공멸하자는 거지.

아무도 손 내밀어주는 이 없어 혼자서라도 스스로 치유해보기 위해 1인 2역의 사이코 드라마를 찍고 있는 작자야. 나이를 스물다섯 먹도록 고등학교 때 치던 당구 이후의 다른 어떤 대안도 찾지 못한 정체된 작자야. 당구장에서만큼은 네가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었겠지. 네게 우호적인 유일한 세계에, 집착했겠지. 쿠션의 네 모서리로 한계지어진 그 좁은 세계가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했겠지. 어린 녀석아, 태어나 단 한 발짝의 삶의 진전도 경험하지 못했던.

남들이 TV를 볼 때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 양식은 자못 그럴 듯 하다. 고작 그 정도의 눈가림으로 나는 소위 말하는 '자기 관리'와는 도통 거리가 멀었던 지난 삶을 위장하려 한다. 그렇게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TV를 보았다. 어차피,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걸 견디지 못하는 병약한 심성이었기에. 여전히 같은 목적으로 TV를 보려 한다.

'여선생 vs 여제자'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벤허'나 '친절한 금자씨'가 아닌, '여선생 vs 여제자'가, 별다른 무게감없는 그런 영화가. 요새 제법 잘 나가는 염정아를 성공적으로 섭외하고 얄팍한 소재주의를 그 위에 얹어 한 잘 생긴 총각선생을 둘러싼 여선생과 여제자의 갈등 구도를 축성하고는 그 틀 안에서 적당히 아기자기하게 웃기는 대충 그 정도를 기대했다. 그렇게 똑똑한 척, 멍하니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어찌할텐가, 적당히 웃긴 뒤에 돌연 근엄하게 반성을 촉구하며 전통적인 교사와 제자의 본분으로 복귀할텐가. 이어질 얘기를 예측하며 감독과 머리싸움을 하는 듯한 감상법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뭐랄까. 아무튼 그보다는 응원하는 심정이랄까. 제발 그런 도덕적인 결말로는 나아가지 않기를. 쓰레기가 되지 않기를.

하지만 어찌할텐가, 도덕적인 결말에 빠지지 않으려거든 무슨 다른 수가 있을까. 탈주─라는 것은, 총각선생과 초등학교 여학생의 조합으로 구성된 연애 관계를 승인하란 말인가? 둘이 손 잡고 야밤 도주라도 하란 말인가? 번지 점프라도 하란 말인가? 혹은 적당한 타협책으로 "스무살이 될 때까지 기다릴께"라며 손도장이라도 찍으란 말인가? 처음부터 답이 없는 영화였다. 아무리 기를 써도 값싼 코미디 영화밖에는 될 수 없는, 극장을 나서자마자 "이제 뭐할까?"라는 말과 함께 머리속에서 지워질 그런 운명의 영화였다. 나는 그렇게 짚었고, 하지만 그 판단은 성급했다.

여선생과 여제자는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것이 곧 전통적 질서로의 복귀는 아니었다. 총각선생을 둘러싼 갈등은 선생/제자라는 관계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균열의 매게체였지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그녀들의 조우. 그리고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삶을 변화시키는 힘, 그것을 나는 이 영화에서 목도했다. 그동안 입으로는 잘도 떠들었지만 정작 나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 힘을 말이다. 모르겠다, 그저 배우면 되는 요령의 문제라면 기를 쓰고 배우겠지만.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발목잡혀있던 문제들로부터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

이제 나는 정말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설령 내가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언사가 될지라도. 나는,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부서질 것만 같아서. 이것이 25년간의 내 생애가 여지껏 무너뜨리지 못했던 벽이다.


2006. 2. 26. 日,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ps. 상천씨 죄송합니다.
px. 염정아랑 같이 나오는 그 여자애 이름이 뭔지 아시는 분?
 

  
 
 
 
상병 배준환 (2006/03/01 12:15:41)

이세영 이였던가 ㅡ..맞는것 같습니다(겸연쩍.)    
 
 
 병장 김동환 (2006/03/01 14:29:31)

이세영. 저도 강록님과 같은 시간에 그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 같군요. 
의외의 반전. 좀 창피해졌었어요. 하핫.(웃음)    
 
 
병장 김대현 (2006/03/01 18:56:26)

드릴 말씀은 저쪽 편으로 다 드렸고, 저는 PS에만 집중하겠습니다.    
 
 
병장 김석윤 (2006/03/02 00:23:55)

저도 강록씨와 같은 시간에 그 영화를 본 것 같아요.. 별 기대 없이 강록씨와 비슷한 생각하면서 염정아의 애드리브나 볼려고 본 영화였는데 다 보고 나서는 그렇게 생각했던 제가 좀 부끄러워지더군요.. 다 보고 담배 하나 피면서 그랬죠.. "하나 건졌다.." 요즘 들어 좋은 영화 보기란 힘들더라구요.. 어찌나 극장에서 빨리 내려가던지.. 흐음..    
 
 
병장 주영준 (2006/03/02 08:58:26)

저도 같은 영화를 무려 '면회실'에서 보았다죠.    
 
 
 병장 김동환 (2006/03/02 09:05:44)

영준// 아아. 저는 주말 면회실에 가지 못한지 어언 1년 반이 넘었어요. 흑흑.    
 
 
 일병 홍지욱 (2006/03/02 09:14:00)

같은 목적으로 텔레비젼을 보는 것 같다는....    
 
 
 상병 박진우 (2006/03/02 15:41:56)

오랜만의 강록씨의 칼럼~ 
역시..... 

p.s:강록씨 스물다섯이에요??    
 
 
병장 김강록 (2006/03/02 15:49:55)

진우 / 아, 죄송합니다. 오타로군요. 사실은 열일곱살인데.    
 
 
병장 박형주 (2006/03/12 00:40:50)

오늘따라 왜이리 공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