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무엇일까-관계에 대한 외따른 내 생각 
 
 
 
 

나는, 

친구란 이름으로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생각되기 쉬운 사람들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책임을 스스로, 여러분과 함께 상기시키고자 이 글을 쓴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것들 중에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 부대끼는 일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론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서로에게, 가장 힘든 일을 제공하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우스운 일이다. 내가 힘든건 너 때문이고, 니가 힘든건 나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 때문에 골치가 아픈건 우리 때문이다. 궤변 같지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과연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될까와 같은 서로에 대한 고민들은 우리가 언제나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름의 해답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마음의 수학문제다. 인간관계, 아 얼마나 난해한가. 난해한 문제답게 해답지는 찢겨나가고 없다. 그래서 이 문제에 맞닥뜨린 사람은 자신이 가진 관계에 대한 온갖 공식을 동원하면서 이 관계의 문제를 풀고자 노력한다. 어릴적 맞추기를 번번이 실패해 결국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항상 알록달록 하기만 했던 큐브처럼, 답이 없으니까 끈질기게 부딪히고 풀어야 의미가 있다. 이 관계라는 것은. 

관계를 생각함에 있어, 대개 첫인상이라는 주관적인 지표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도 하고, 술자리에서의 진솔을 가장한 대화를 통해 가식적으로 풀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곤경에 처했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과 같은 소설 같은 어떤 상황에 나나 그 사람이 처했을 경우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분석하는 분석적인 접근이 유효하기도 하다. 종교적인 계시처럼 운명에 대한 비합리적인 믿음이 작용하기도 하고, 장난 같은 심리테스트나 편견의 대명사 혈액형 테스트도 있다. 숱하게 예를 들어봐도 자신만의 분석틀이 따로 존재한다. 20대 초 중반, 이 나이 정도 될 즈음이면 자신만의 사람 대하는 법 따위가 생기기 마련인게다. 이를테면 햄버거를 우유랑 먹을 것인지, 콜라인지, 오렌지 쥬스인지, 물인지 희멀건 크림스프인지 딱히 논리적인 근거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취향 따라 다른 것처럼.

친하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친한걸까. 친구가 밥 먹여주느냐라는 힐난을 종종 듣기도 하고, 군에서 홀로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으면 세상에 나 이외의 존재는 누구도 나의 고독과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눈앞의 자만심에 나는 이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고 있다는 식의 예언으로 자신에게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를 스스로 결정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편, 경제적인 논리가 세상에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지는 마당에는 당장 자신의 하루하루가 걱정이지 어떤 관계라는 것은 곧잘 사치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관계에 목을 맨다. 미니홈피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 방명록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메일을 확인하고, 문자를 날린다. 휴가 나가기 전의 약속을 잡거나 학교에 들러 잊혀짐을 방지하는 일은 기본 옵션이다. 한달에 전화카드는 어찌나 많이 쓰게 되는지.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단순한 외로움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사실, 군대가 아닌 공간에서 바쁘게 지낸다고 해서 그 관계에 대해 초연해지기는 사실 힘들기 때문이다. 관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자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거나 자아에서 자아로 이어지는 내적 관계에 몰두해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아닌 이상 내가 특별히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 본질적으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며 혼자서 꿋꿋이 끝까지 살아내는 경우도 드물다고.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결코 아니므로 - 심지어 잦은 소비행위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단골이라는 개념으로 관계짓지 않는가 - 관계에 대한 고민은 감히 보편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오지랖이 넓어 자기도 바쁜 와중에 이리저리 연락을 종종 돌리는 마냥 사람 좋은 녀석-이런 사람 주변에 꼭 있다. 당신 자신일 수도 있고-을 하나 알고 있다. 예전에 난 그 녀석에게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시니컬한 태도로 그래봐야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다 자기 앞가림에 널 잊어버린다고, 가끔이라도 생각해주면 그걸로 감사하는거 아니냐며 비꼬아댔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말하길.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로 연락 안하는거라고. 원하지만 괜히 ‘먼저 연락하기’ 그래서 주저하는 거라고 그러는거다. 나는 그때 김기덕 감독이 예전에 <빈집> 시사회에서 현대인들은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와주길 기다리는 빈집과 같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외롭고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면서도 쿨한 사람 콤플렉스에, 내가 너를 원한다는 사실로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알량한 자존심으로 시장통 국밥마냥 마음의 그릇 속에 자신을 꾹꾹 눌러담는다. 그리고 돌아서서 외로워, 외로워를 연신 중얼거리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를 읽어보았는지. 그 작품은 관계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예리한 바늘이다. 그 바늘의 핵심은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만들어 보여주는’ 현대인, 바로 우리의 기만을 향한다. 나는 학교에서 만난 누구에게는 이런 사람이고, 고등학교 친구에게는 또 저런 사람이고, 활동을 하다 만난 누군가에게는 또 그런 사람이고...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수만큼 나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는 퍼레이드를 읽으면서 계속 그 유쾌함 뒤에서 어눌한 무언가를 느꼈는데, 내가 느꼈던 그 찜찜함은 그런 관계를 한편으로 긍정하는 그의 태도였다. 오독일지도 모르지만. 온갖 가식과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그 순간부터 그 관계는 긍정적이 된다는 식이다.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다섯 주인공은 모두 그러한 관계에 익숙하고 만족하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보살핀다. 그들의 동정과 화합은 대학에서의 얕은 관계에 비유되는 오늘날 젊은 우리가 겪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지만. 

관계는 그 자체가 주는 따스함도 있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확인하는 작업이 아닐까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아직 체험하지 못한 진리라는 생각이지만, 그만큼 관계는 나를 비추어내는 거울일게다. 인간 관계가 우리의 최대 난관이 되듯, 내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테니까. 그렇다고 모든 관계에 진심으로 자신을 던지면 언젠가 밝은 햇살이 나의 창가를 비출거라는 마냥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다. 실천하기 어려울 뿐더러 그건 누구나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사실이니까. 그냥 인정하자. 퍼레이드의 주인공들처럼.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 메이킹의 일정 한계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에 있어 진실함의 심적 무게와 부담을 조금 덜어줄 수 있는 것이리라. 허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그 진실함은 거짓이나 가식일 수 없을 것이다. 누가 하나뿐인 삶을 가지고 이미지를 위해 서툴게 꾸며대겠는가. 그럼 여기서 도출되는 간단한 대답은 서로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면 세상을 덮을 만큼 커다란 지붕을 버텨내는 네 귀퉁이의 서로 외딴 기둥처럼 세상을 함께 짊어지는 우리가 되는 것 아닐까. <슬램덩크>의 북산 다섯 주인공이 서로 친하지도 않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최고였던 것처럼.

매너나 유머나 잘해준다거나 다정하다거나 등등도 모두 너와 나의 관계를 위해 건강한 이야기겠지만, 무엇보다 확실하게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나의 삶을 오롯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단지 외로움이 갉아먹는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놀이마냥 즐거운 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고 인생의 저편까지 같이 걸어갈 동행을 찾고자하는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믿는다. 외로움의 끝에서 사람냄새 솔솔 풍기는 진득한 벗들과의 소주 한 잔도 인생을 멋들어지게 하는 중요한 소재다. 하지만 단순한 위안과 위안으로 만나는 그 이상에 도전하자. 대개 우리는 살갑고 친절하게 다른 누군가를 대하지만 그게 단순한 위장술이 아니도록, 자신의 삶으로 나를 그와 그녀에게 증명시켜주자. 자신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성공한다고들 하지만, 그 성공은 사회적인 통념에서의 성공 그 이상의 빛나는 성취를 관계라는 영역에서 이루게 해주리라 믿는다. 함께 걷고 함께 날아오를 수 있으며, 더불어 세상이라는 미궁에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잡고 빠져나올 수 있다.

오늘도 물어본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사랑하며 내일이 당당해 질 때까지, 힘차게 걸어가고 있는지. 20대 다운 삶을 나날이 글로, 말로, 행동으로 풀어내고 있는지.
 

  
 
 
 
 병장 노지훈 (2006/05/10 04:46:00)

친구란, 나는 너에게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웃음)    
 
 
상병 이영준 (2006/05/10 08:14:33)

'너에게 있어 나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 대답이 두려워서 처음 그 질문이 떠오른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못 물어보고 있네요.    
 
 
상병 임보람 (2006/05/10 13:03:53)

저도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웃음)    
 
 
병장 김태경 (2006/05/10 13:43:31)

상원님 글 항상 너무 좋아요. 
연락안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봐요.    
 
 
상병 양경국 (2006/05/10 21:45:11)

박경림씨의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인간관계가 좋기로 유명한 박경림씨에게 그 비결을 묻자 
겸손해 하며 답하길, 
'한 귀로 들은 말, 다른 곳으로 흘리지 않는 거죠.' 
두가지 대답을 했는데, 하나 밖에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잘 읽었습니다.    
 
 
일병 이건룡 (2006/05/11 08:44:04)

포근한 글이군요 교차되는 상념 속에서 상원 분의 글을 오독했지만(어떻게 보면 정말 민망합니다.) 한 구석이 훈훈히 데워주는 글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모포에서 일어나자 마자 느끼는 울적함이 오늘 날 하루의 모티브일것이라 생각 했는데 하하 조금식 기운을 차려 가는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병장 김석윤 (2006/05/12 02:46:52)

군대 와서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연락이 거의 끊긴 사바세계 대부분의 관계들을 바라보면서 군대와서 새로 생긴 이들과 좌충우돌 관계를 맺으면서 이제 전역을 몇 달 앞두고 같이 먹고 자고 싸던 관계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관계 설정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상원님의 글을 읽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다시 한번 환경설정을 하자니 그냥 내 머리 속을 포맷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미련인가요. 아니면 집착인가요. 아니면 정情일수도 있겠군요.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네 인간들은 끊임없이 관계를 욕망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웃음)    
 
 
 병장 박진우 (2006/05/12 09:03:08)

나의 삶으로 그들에게 증명한다. 
아, 대공감. 말뿐인, 지키지 못할 약속뿐인 인간관계에 사망선고를.    
 
 
상병 조주현 (2006/05/15 10:20:01)

따뜻한글, 감사합니다. 
난 그렇게 가까워지고 멀어지겠죠. 아아    
 
 
병장 이은호 (2006/06/19 21:02:21)

나의 그놈들에게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너에게 있어 나는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