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베스트-내글내생각] 기형도와 증폭하는 기형도들, "정거장에서의 충고"
상병 홍명교 2009-06-19 15:52:25, 조회: 210, 추천:0
요즘 저는 아주 종종 시집을 집곤 합니다. 마음이 턱,하고 막혀서 혼란스러운 시간이 오면 항상 시가 끌리더라구요. 때로는 온전히 묵은 감정을 폭발시켜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는 지옥의 나락으로 빠뜨리게 하지만 그 아슬아슬하고 파괴적인 순간들이 몸서리쳐지는 흥분을 안겨주는 기억들이 다시 저를 시로 돌아가게 만들어요. 물론 저는 시에 대해서는 초보자에 가까울 정도로 무지합니다. 최근에 몇 권의 시집을 접할 수 있었는데, 기형도의 모든 시들, 습작시기의 소설들, 에세이들이 담긴 기형도 전집과 故 기형도 시인의 20주기를 맞이해 출간된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라는 책이었죠. 전집을 읽고서는 도대체 기형도라는 텍스트의 무한한 논의들에 대해 파고들어가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989년 3월 어느날. 이 불세출의 스물아홉 젊은 시인은 종로의 어느 극장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심야영화가 끝난 후였습니다. 그 후로 20년. 한국문단의 한 편에서부터 일기 시작한 조용한 파도가 어느 새 폭풍우가 되었습니다. 그 폭풍은 한때 대학가를 휩쓸었으며, 오늘날에는 시니컬한 모험을 해나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문학청년들의 것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소련과 동구권 구체제의 붕괴, 그리고 백만여명의 대학생들이 유령처럼, 유령들과 함께 거리를 떠돌던 91년5월. 방향타를 잃은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시급하게 이 거대한 유산을 청산했으며(GD, CD로 대표되는 청산론들. 그리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 또는 또 다시 보란 듯이 흥분하며 실재 바깥의 유령들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습니다.(포스트모더니즘에의 과잉 집착들과 해체주의) 그때 기형도는 헤아릴 길 없던, 꼭꼭 숨겨두었던 감정들의 블랙홀처럼 다가온 것입니다. 이미 그는 죽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의 영예로운 싸움들의 대립물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5월 광주의 그날들에) 부재했기에 그 지워지지 않는 죄의식으로 시대적 과제에 몰두했던 그 세대. 그들은 그때까지의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순수에 집착했던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순식간에 그 모든 것들이 상실된 것입니다. 하다못해 그들은 권력자(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원식)에게 날달걀 좀 던졌다고 해서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또 스스로 자책할만큼 존재하지 않는 투명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단 사소한 가십거리에 불과한 이 작은 해프닝이 당시의 모든 파고들을 잠재웠습니다. 어쩌면 그 급격한 ‘정리’는 예고되어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수한 죽음들을 보며 외양적으로는 분노를 키우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청산과 도피를 바라는 게 인간의 연약하고도 영악함이니까요. 그때 문단의 한쪽 구석에서 예비된 폭발을 예고하고 있던 ‘기형도’가 이 급격한 좌절과 우울의 시대에 다가온 것입니다.
기형도의 시들 속에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존재하고, 그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안개, 어머니, 빈 집, 밤, 눈, 공장, 누이, 아버지, 사무실, 커튼, 심야극장... 이런 이미지-시어들은 그가 어린 시절에 바라본 세계에 대한 심상과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의 시 세계는 그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물들의 구성에 따라 유년기와 대학졸업 전후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년기의 세계는 말 그대로 공장이 막 들어선 교외 농촌 마을의 안개 가득 낀 외부와 텅 비어 홀로 남겨진 ‘비어있는 방’의 세계입니다. 방 바깥은 어둡고 추워서 밖으로 나갈 순 없습니다. 오직 시장에 나간 어머니와 공장에 나간 누이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한 평론가는 기형도론을 재기함에 앞서 그의 시를 “나르시시즘의 미학, 미학적 나르시시즘”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미지로 대상화시키고, 또 스스로 그 안의 그로테스크한 세계에 매혹되어가는 삶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기형도의 시 <밤눈> 詩作메모 中) 이것은 발터 벤야민의 그것과 닮아있습니다. 텍스트화된 세계 안에서 헤매는 자의 중독. “파리가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길을 잃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발터 벤야민, 파노라마)
기형도는 스스로가 구축해온 비통속적인 세계 안에서 스스로를 환멸하고, 고통스러운 추억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며(부정하지 않은 채로), 아주 견결한 자세로 폐허가 된 삶의 풍경들을 바라봅니다. 그의 추억에 대한 고백들은 무척이나 단호합니다. 그러면서 비유는 오직 현대적 사물들의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연물이나 자연의 순수한 구성물을 빌이지 않는 것입니다. (유년기의 눈이나 안개, 밤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은유’로서만 기능합니다.)
비극적 시대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도덕적 태만들에 대한 죄의식과 습관성(안개) 속에서 그는 홀로 방(유년기)이나 사무실 앉아 어머니가 오시기만을 기다리곤 했습니다.(빈 집, 홀로 남겨진 사무실) 아버지와 주위 사람들, 광주의 죽음들은 그 자체로 ‘신화’가 되어 밤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런데 그 밤이, 습관이 되는 삶의 권태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나’는 오늘밤에도 아무도 모르는 도시의 밤 거리를 걸어다니고, 심야극장에 갑니다. 그런데 여전히도, ‘나’와 거리의 ‘군중’ 사이에는 거리감이 남아있습니다. 이 무의미한 반복이 안개처럼 습관화되는 나날들. 어떤 정체불명의 공포가 삶을 휘감습니다. 그에게 유년기, 시간이란 삶에 대해 숙명적 태도를 갖게 하는 모태같은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낙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막 위에 덩그러니 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전망 또한 부재합니다. 타자들과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던 욕망은 말을 듣지 않은 “육체 때문에” 소멸되었고, 그 때문에 ‘나’는 너무 빨리 ‘늙어버린’ 것입니다.(시적자아의 조로) 오늘날에는 무수한 정서적 조로증이 20대를 지배하고 있죠. 이처럼 철저한 물질과 약육강식의 세계에의 조로는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조로는 좀 더 삭막한 것이죠. 그래서 더 비극인 것입니다.
91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고뇌하고 부딪치고 깨져가는 20대들에게 ‘도시적 삶’이란 이 밤 같은 비극의 반복과도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볼 기억조차 없는 게 기형도와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겠지요. 유년기의 우리에게 그리워하거나 떠올려질 ‘고향’마을의 이미지가 존재했던가요? 그 때문에 2009년의 기형도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세계는 죽음으로 치달아가는 ‘죽음의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익숙하기만한 낮선, 불연속적 순간들에 대한 이 지독한 부정!
기형도라는 텍스트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거대한 틀입니다. 그의 죽음 이후 이 틀은 계속 부풀어지고 폭발해왔죠. 어떤 평론가는 이 거대한 ‘사건’에 대해 “수상한 시대에 매우 수상한 방식으로 홀연 등장해서, 증폭되고, 지속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당대의 무수한 역사가 거리에서 이루어진 것들 뿐이었고, 기형도는 그 거리의 이면에서 자신의 시간을 구축했기에 “홀연 등장”했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 ‘기형도’라는 신화는 도심의 심야극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한 시인의 개인적 신화와 지속적인 대중의 열광으로 함축됩니다. 이 신화는 어떤 면에서는 문화적인 상징이기도 하죠. 지극히 시적이며 영화적인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의 그로테스크하며 회한적이며, 유년기의 부재한 무엇들에 대해 갈망하는 말들이, 서로 어우러지고 묶이고 뒤엉키면서 무한한 서브 텍스트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수한 논문들, 평론들, 기형도에 관한 시들, 소설들,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지난날 ‘기형도’를 경유하는 청년들의 시선이 음울하고 심각한 종류의 무엇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텍스트로서의 ‘기형도’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의 변이에 따라 나름의 변증법적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독특한 지형에 있는 한 젊은 시인 정도의 평을 받던 기형도는 죽음과 함께 한 시대의 상징,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 땅의 문학을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옮겨놓았다는 평도 듣습니다. 요컨대 그의 시는 시대적 상황과 당시 세대의 자기명멸적 소명들과 어우러지는 우연성들의 충돌을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입니다. 그리고 2004년의 저는,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이라는 영화를 통해 기형도의 한 부위를 만났고, 또 2007년에는 그의 전집을, 또 죽음과 부재의식, 권태에 휩싸인 2009년에는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만났습니다. 저에게는 오직 ‘나’에게 언제, 어떻게 왔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마 여러분들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때에 접근하고 폭발하겠죠. 전역 후 복학하면 바로 찍게 되는 2010년 기초워크샵 작품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모티브로 한 단편영화를 찍으려 생각중입니다. 그 상징적이고 모호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시를 서사가 있는 이미지의 연속들로 만든다는 점에서 많은 변이가 불가피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정거장’이라는 장소가 지니는 경계의 느낌, 침울한 밤의 하강하는 뉘앙스가 끌리고, 또 ‘충고’라는 태도에 담긴 단호하면서도 고단한 피로가 담긴 느낌이 맘에 듭니다. 삭막한 세계 앞에 영화를 찍는 저의 고백 내지는 선언 따위를 할 수 있는 괜찮은 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뻑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책마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9-07-14 12:36)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5:54:31
상병 김태완
시는 각자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더 심오한 것 같습니다. 논외거립니다만 교과과정에서는 시를 왜 '일반적으로 해석'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이렇게 복합적이고도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데 말이죠.
그로테스크와 회한, 어우러지고 묶이고 뒤엉키다, 명멸과 우연성, 죽음과 부재의식과 권태, 단호하면서도 고단한 피로. 신기하게도 여러개의 다른 뜻을 가진 단어조합들은 너무나도 모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기형'이라는 말 때문인지 몰라도 전혀 부조화스럽지 않더군요. 오히려 이 시를 보면서 얼마나 여러개의 감정들을 혼합적으로 느끼셨는지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경쟁사회라는 환경 때문에 낙원에서 너무도 빨리 멀어지며 급속도로 늙어버렸다. 조루다. 그런데 실제 낙원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80~90년대 청년들의 유년기가 낙원이었는지, 지나고 나면 생각도 나지 않는, 부모님 그늘 아래서 철없는 시간들을 보냈던 그 시절이 정말 그들에게 향수로써 기억됐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농촌은 훈훈하고 도시는 삭막하기만 하기 때문에 낙원이 다른 형식으로 다가왔을까요. 전 그저 낙원은 지금이나 그 때나 개념적으로 정리되지 못하는, 무작정 꾸게 되는 자유가 제반된 허구적 환상같습니다. 막연한 꿈인 이들을 꾸는 것은 달콤함 때문에 언제나 환영하지만 현실이란 장벽에 가로막혀 환상실현은 제한될 수 밖에 없기에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늘 허무하기만 합니다. 청년 때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억지로 해야하는 공부때문에 억압감을 느끼고 자유박탈감을 느낍니다. 도시화로 인해 느끼게 되는 황량함과 이것은 다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고단한 피로로 귀결됩니다. 곧 죽음과 비슷할 것 같은 상태로 접어듭니다. 그저 멍하니 내게 부여된 길을 걷습니다. 2009년 6월19일 22:47분 지금 이것은 나나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일입니다. 2009-06-19
22:47:01
상병 양동훈
태완// 논외거립니다만, 그렇죠.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시는 시가 아닙니다. 예술작품도 아니구요.
그냥, 그들은, 하나의 비문학 텍스트를 풀이하듯이 시를 읽어나갈 뿐입니다.
왜냐면,
망할,
사람들의 언어능력(? - 과연 이걸 능력이라고 말할 가치는 있을까)이라는 것을 굳이 수치화해야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글쎄요. 이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결고 옳은 교육은 아닐 겁니다. 껄껄 2009-06-21
12:17:55
상병 윤현상
우선, 가지로-를 외치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저로써는 "91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고뇌하고 부딪치고 깨져가는 20대들에게 ‘도시적 삶’이란 이 밤 같은 비극의 반복과도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볼 기억조차 없는 게 기형도와는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겠지요. 유년기의 우리에게 그리워하거나 떠올려질 ‘고향’마을의 이미지가 존재했던가요?" 이 말이 굉장히 시리게 와 닫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회색빛깔의 도시에서 자란 저로써는 돌아갈고향, 그리운 이전을 노래해봐야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달까요.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돌아갈 추억할 낙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또 그렇기에 상상속에서의 그 곳은 더욱 이상적인 영화속 한장면처럼, 동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형도의 시는 꼭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