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체와 그 개선방법 
 병장 이승일 03-11 04:35 | HIT : 275 



 기억의 정체와 그 개선방법


1. 
 저는 예전부터 신경과학과 관련된 글을 많이 써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것을 공부한 것은 벌써 여러 해 전이고, 이 과목의 특성상 $@#%^@#^%$# 이런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 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헌데 그런 용어들을 참고할만한 책을 얼마 전 부대 도서관에서 발견했습니다.(야호!) 이 책을 참고해서'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자, 기억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한컴 국어사전에는'경험이나 인상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고 꺼냄'이라고 써 있군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설명 같지는 않습니다. 의식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또 대체 어떻게 간직한다는 건지도 말해주지 않으니까요. 의식의 문제는 저 역시 건들지 않겠습니다.(저는 이것이 현대 신경과학의 능력을 벗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억을 어떻게 간직한다는 건지에 관해서는 조금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군요. 

 우리가 영어 단어를 외워서 기억하는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저는 종이 위에 써 있는 영어 단어를 봅니다.  "E X T I R P A T E" .  저는 알파벳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회로의 도움을 받아 이 시각적 영상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습니다. "[ekst이렇게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제 성대가 떨려줘야하고, 제 입과 혀가 알맞게 움직여 줘야하겠죠. 이것은 모두 근육을 움직이는 일과 관련되어있습니다. 한편 저는 이 단어의 한국어 뜻을 보게 됩니다. "박멸하다, 근절하다, 뿌리뽑다 ......" 그리고 아마도 그것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 등을 떠올리게 되겠지요. 벌레를 박멸하는 장면, 로마가 기독교를 뿌리 뽑으려고 노력하는 장면 등등. 자 - 이제 모든 것이 완비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킵니다. 저는 이제 extirpate 라는 시각적 영상물을 보면, 필요에 따라 성대와 입, 혀 근육에 알맞은 자극을 보낼 수도 있고, "박멸하다, 근절하다, 뿌리뽑다 ......" 와 같은 한국어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벌레와 기독교가 박멸당하고 뿌리뽑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는 상태를 제가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저는 이 단어를 기억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의 연결을 기억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죠. 이제 이 연결의 생물학적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2 뉴런과 시냅스
 우리 뇌는 약 1000억 개 정도의 뉴런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뉴런은 수천에서 수만개에 달하는 의사소통 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시냅스'라고 부릅니다. 시냅스의 개수는 최소한 수 조개에 이릅니다.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개수이죠. 이렇게 막대한 양의 대화 채널이 우리 모두의 뇌 속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냅스가 어떤 시냅스와 연결되어있는가가 결국 우리의 지식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다, 다음 그림을 봅시다.



 이 그림에서 검은색 동그라미 각각은 하나의 뉴런을 나타냅니다. 검은색 선은 뉴런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축색' 이라 불리는 일종의 관이며, 시냅스는 축삭의 끝부분과 뉴런이 만나는 부분에 존재합니다. 물론 한 뉴런에는 수만개의 시냅스가 존재하지만, 그림에서는 간단히 두 세 개로 줄였습니다. 뉴런의 밀도도 실제로는 훨씬 조밀합니다. 자, 이제  "E X T I R P A T E" 라는 글자가 "박 멸 하 다" 라는 한국어 글자와 연결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봅시다. "E X T I R P A T E" 라는 글자를 시각적으로 보고, 그것이 알파벳체계에 의해 해석되고 나면 그 자극은 맨 왼쪽에 있는 뉴런으로 보내진다고 가정합시다. 우리는 "extirpate, 박멸하다, extirpate, 박멸하다 ..." 이렇게 반복적으로 외움으로써, 오른쪽에 있는 "박멸하다" 라는 한국어 글자와 관련되어있는 뉴런과 이 뉴런을 연결시킵니다. 뉴런의 전기 신호는 빨간색으로 표시되어있는 시냅스를 통해서 전달되며, 따라서 우리는 extirpate 를 노래하다, 내보내다.. 등등이 아니라 '박멸하다' 라는 한국어와 연결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단어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경로로 신호를 보냈는지를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즉 저 빨간색 점으로 표시된 시냅스들의 연결을 유지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다음번에 "E X T I R P A T E" 라는 자극이 또 들어오면, 그 길로 전기신호가 전달됨으로써 "박멸하다" 라는 한국어와 관련된 뉴런이 자동적으로 발화될 수 있게 말이지요. 결국 기억이란, 수만개의 시냅스 사이에서 어느 쪽이 선택될 것인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 하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수만 x 수만 ~ 수천만 개의 선택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자, 이제 이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기 위해 우선 시냅스를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자주 본 그림일 것입니다. 뉴런은 대충 이따위로 생겼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요소들이 있는데 기억도 안 나고 원래 몰랐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그림에서 빨간색 팔은 '축색'이라고 불리는 부분이고, 파란색 나뭇가지는'수상돌기'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축색은 신호를 보내는 발신장치 이고, 수상돌기는 신호를 받는 수신장치 입니다. 하나의 뉴런은 대체로 한 개의 축색과 여러 개의 수상돌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입은 하나인데 귀는 수만 개가 되는 것이지요. 자기 말은 줄이고 남의 말을 많이 들으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뉴런은 참으로 현명한 기관인 것 같습니다. 이 수상돌기 위에는 수많은 '혹'들이 나 있습니다. 이 혹에 다른 뉴런의 축색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위가 바로 시냅스 입니다.(그림에서는 보라색 점으로 강조해놓았습니다.) 실제로는 한 뉴런 당 엄청나게 많은 시냅스 연결이 있지만, 그림에서는 하나만 그렸습니다. 수상돌기 위의 시냅스를 통해 들어온 정보들은 뉴런 세포 안에서 종합되어 연산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시냅스는 흥분성 신호를, 어떤 시냅스는 억제성 신호를 보냅니다. 일반적으로 흥분성 신호는 나트륨 이온에 의해서, 억제성 신호는 염소 이온에 의해서 전달됩니다. (나트륨과 염소가 합쳐지면 바로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소금을 아예 안 먹으면 신경체계가 메롱상태가 됩니다.) 이 모든 신호들 - 수만개의 시냅스로부터 들어온 신호들 - 이 더하고 빼져서 최종적인 값이 산출되는 것입니다. 
+1+1+1-1+1+1+1-1+1-1+1-1+1-1+1-1+1-1+1-1+1+1+1+1 = 8 뭐 이런 식으로 계산되는 것이죠. 한편 모든 뉴런은 제 나름대로의 '역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력된 신호의 총 합이 이 역치 이상이면 축색을 통해 다른 뉴런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 이하이면 신호를 안 보냅니다. 역치가 한 5라고 해보죠. 수상돌기의 시냅스를 통해 들어온 정보의 총 합이 8이었다면, 이 뉴런은 축색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축색이 다른 뉴런으로 보내는 발송신호는 1 아니면 0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지요. 뉴런의 입력 시스템은 수만 가지 정보 상태가 공존하는 아날로그- 완전한 아날로그는 아니지만 거의 그것에 가깝죠 - 인데 반해, 출력 시스템은 디지털이라는 뜻이니까요. 이 사실은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괴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인식 체계는 1과 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값을 허용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비올 확률이 35% 이다, 60% 이다,  뭐 이런 말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우산을 들고 나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오직 둘 중 하나밖에 택할 수 없죠. 우산을 45%만 들고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식은 굉장히 유동성 있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논리적으로 양분된 두 가능성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은 심지어 하나의 뉴런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뉴런은 수만 개의 시냅스로부터 정보를 받아드려 종합을 합니다. 일종의 여론 수렴이지요. 하지만 결국 결단을 내릴 때에는 단호합니다. Yes or No. 

3.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일
 뭐  어쨌거나 우리의 관심은 기억에 있으니, 그쪽으로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지요. 맨 앞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기억이란 하나의 연결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자극이 들어왔을 때 정해진 길로만 신호가 간다면 기억에 성공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뇌는 신호가 자주 지나간 길을 "넓게 뚫어서" 다음번에 쉽게 그 길로 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 자주 다닌 산길은 다음번에 갈 때에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은 그 길로만 다니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기억의 핵심입니다. 이제 이 과정이 시냅스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보죠.




 왼쪽은 축색의 끝 부분이고, 오른쪽은 수상돌기의 혹 부분입니다. 복잡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 간단합니다. 우선 일반적으로 시냅스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1. 축색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어 온다. (노란색 점)
2. 그 신호가 축색 끝에 있는 칼슘채널을 열어준다. 
3. 그 칼슘채널로 칼슘이 들어간다.
4. 축색 안으로 들어간 칼슘이 '글루탐산' 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축색의 맨 끝부분으로 이
 동시킨다.
5. 글루탐산 주머니가 열리면서 글루탐산이 방출, 확산된다. 
6. 글루탐산이 시냅스 건너편에 있는 "AMPA 수용체" 에 달라붙어 그것을 개방시킨다.
AMPA 수용체는 나트륨 이온 채널이다.
7. AMPA 수용체를 통해 주위에 산재해있는 나트륨 이온이 들어간다. 
8. 나트륨 이온이 흥분성 신호를 뉴런의 중심 쪽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해서 들어간 신호는 다른 시냅
 스에서 들어온 신호들과 계산된다.

 이것이 뉴런과 뉴런 사이의 시냅스에서 정보가 전달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혹은 몸을 움직일 때, 이런 일이 수백억 ~ 수천억에 달하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어질어질 하지요.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입니다. 자, 시냅스를 통해 신호가 전달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글루탐산이 AMPA 수용체를 열 때, 그 옆에 있는 NMDA 라는 수용체도 함께 열리게 됩니다. 이 수용체는 축색의 칼슘 이온 채널과 비슷한 일을 하지요. 칼슘을 수상돌기 안으로 들여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칼슘이 수상돌기 안으로 유입되면, 축색 안에 남아있는 '재고품' AMPA 수용체를 다시 수상돌기 표면으로 이동시킵니다.(축색에서 칼슘이온이 글루탐산 주머니를 축색 끝으로 이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현장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용 가능한 AMPA 수용체의 총 개수가 늘어나게 되지요.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음번 이 쪽 수상 돌기로 신호가 올 때는 좀 더 예민하게 신호를 받아드릴 수 있게 되니까요. 신호가 자주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더 많은 재고품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바뀌고, 시냅스는 더욱 더 예민해지게 됩니다. 때문에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이쪽 시냅스로 신호가 전달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신경망 이론에서는 이러한 예민성을 '무게' 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냅스의 무게가 늘어났다라고 말하지요. 비중이 늘어났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사용한 그림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EXTIRPATE' 라는 글자와 '박멸하다' 라는 글자와 관련된 회로가 여러 번 연결되고 나면,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회로들은 다른 쪽보다 더 예민하게 변합니다. 따라서 EXTIRPATE 라는 자극이 들어왔을 때, 다른 쪽이 아닌 바로 그 쪽 시냅스로 정보가 전달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그림에서 빨간색 점을 찍은 시냅스들은 좀 더 예민해졌을 것입니다. '자주 다닌 길은 더 넓어진다' 는 것이지요. 이렇게 예민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바로 기억입니다. 기억이란 이처럼 굉장히 작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의해 유지되는 것입니다. 

 한편 한두번의 자극으로 재고품 AMPA 수용체가 다시 사용되어 시냅스가 예민해 졌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가 무작정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개를 제외한 AMPA 수용체는 다시 창고로 돌아가지요. 그렇게 되면 'EXTIRPATE' 라는 시각적 자극이 들어와도 더 이상 '박멸하다' 라는 글자와 연결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까먹은 것이지요.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상태를 계속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이를 위해 실로 놀라운 작업을 시행합니다. 아주 강렬한 자극이나, 계속 반복적인 자극이 들어오면, AMPA 수용체가 아주 오랫동안 수상돌기 표면에 고정되어 수상돌기를 예민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일어납니다. NMDA 수용체를 통해 수상돌기로 들어간 칼슘 이온은, 재고품 AMPA 를 다시 사용가능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다른 작업도 수행합니다. 칼슘은 뉴런의 심장부인 핵으로 돌진해서 DNA의 특정 부분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서 어떤 단백질이 생성되게 만듭니다. 이 단백질이 수상돌기 표면에 있는 AMPA 수용체 가장자리에 끼어서 그것이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유지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조금 오래 걸립니다. 따라서 어떤 것을 완전히 외우려면 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죠. 물론 기존에 형성되어있는 시냅스의 예민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은 금방 외울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아주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10분 정도 계속 외우면 거의 무조건 외워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칼슘 이온이 DNA를 자극해서 단백질을 생산해내고, 그 단백질이 AMPA 수용체를 고정시키는데 약 10분 정도가 걸리거든요. 무언가를 장기 기억하기 위해서  DNA가 단백질을 생산해내야 한다니, 외운다는 건 정말 빡센 작업이 틀림없습니다. 

4. 해마
 이제 좀 더 거시적인 기억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거시적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해마'라는 뇌의 한 부분입니다. 바다에 사는 해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고 부릅니다. 이 해마는 모든 기억들의 임시 저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마가 정말 저렇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걍 비슷할것 같습니다. (.....) 우리가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 피부로 느낀 것 .. 등등은 각 감각을 처리하는 뇌의 피질에서 나름대로의 수렴 과정을 거칩니다. 즉 버릴 것은 버리고, 증폭시킬 것은 증폭시키고 .. 기존의 기억들과 비교하고.. 등등.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영역이 그러한 감각을 처리하는 대뇌 피질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처리된 정보들은 모두 종합되어 해마로 보내집니다. 이 해마에서는 '에피소드 기억' 이라고 불리는 기억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각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온 정보에 시간 + 공간의 개념을 덧씌워서 하나의 '이야기' 를 만드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해마에는 '장소 세포' 라고 불리는 세포가 있습니다. 이 세포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만 반응하는 세포입니다. (이 세포들의 개수는, 매우 많긴 하지만 당연히 유한합니다. 따라서 한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장소의 개수는 그렇게 한없이 많지는 않습니다.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원래 알던 장소를 까먹을지도 몰라요 ...) 또한 이 장소세포는 그 자체로서 시계의 기능도 합니다. 이 세포는 어떤 주기 (세타파라고 불리는 주기)에 따라서 발화하는데, 이 주기를 통해 어떤 장소를 어떤 순서로 경험했는지를 파악해 냅니다. 예를 들어 A, B, C 세 장소가 있고, 각각에 대응하는 장소세포 a,b,c 가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A -> B-> C 의 순서로 움직였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세타파의 주기에 맞춰 a,b,c 는 다음과 같이 발화합니다. 
 첫번째 발화 타이밍 : a
 두번째 발화 타이밍 : a, b
 세번째 발화 타이밍 : b
 네번째 발화 타이밍 : b,c
 다섯번째 발화 타이밍 : , c

 자, 이렇게 하면 A->B->C 의 순서를 저장할 수 있겠죠? 이런 식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뒤, 각기 다른 감각령에서 온 정보를 이와 연결시켜 에피소드를 엮어 내는 것입니다. 근데 해마의 기능은 아주 어렸을 때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때의 에피소드 기억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생아가 '기억' 자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에피소드 형태로 기억하지 못할 뿐이죠. 신생아 시기에 경험한 자극은 오히려 아주 강렬한 형태로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자, 일단 해마에 저장된 에피소드 기억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게 정리가 된 뒤, 원래 해당 감각을 처리하는 대뇌 피질로 다시 돌려보내집니다. 그래서 시각기억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곳에, 청각기억은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곳에 저장되는 것이지요. 컴퓨터로 따지자면 CPU가 기억장치 역할까지 하는 것입니다. 해마에서 대뇌피질로 언제 정보가 돌려보내지느냐 하면, 바로 잠잘 때 입니다. 우리가 꿈을 꾼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정보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기억이나 지식들과 모순 되지 않도록 '검열'을 받으면서 차곡차곡 피질에 저장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꿈이 과거의 일, 금기 등과 많이 관련 되는 것입니다. 잠을 적게 자면 이 과정이 방해를 받으므로 장기 기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공부하고 나면 자야 되요. 

5. 기억력을 향상시키려면?
 이제 기억의 메커니즘이 대충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그것은 특정한 연결 상태가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시냅스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를 촉진하고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잠 많이 자세요. 
2. 뭐 외울 때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위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어떤 회로로 정보가 전달     될 때 변연계 등의 감정 처리 기관에서는 해당 정보 전달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합니다. 그     래서 즐거움을 주는 정보 전달은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전달은 더 이상 기억 하려하     지 않습니다. 뭐 저도 맨 날 우울하기 때문에 권유할 입장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학습할 때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기억에 도움을 줍니다. 
3. 칼슘을 섭취하세요. 위에서 보셨듯이 AMPA 수용체를 증가시키고, 그것을 고정하기 위한 단백질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칼슘이 필요합니다. 혈중 칼슘의 농도가 높아지면, 이러한 과정이 더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우유를 많이 먹어 야해요. (하지만 약간 확실하지 않은 게, 칼슘 섭취는 몸 속의 인을 빠져나가게 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AMPA 수용체가 수상돌기 표면에 고정되는데에 인산화 과정이 포함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하지만 별 상관은 없을 듯 해요 .........)

4. 강렬한 감정, 성욕, 긴장감 등을 갖고 외우면 잘 외워집니다. 2번하고 비슷한 얘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변연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변연계는 제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여러 호르몬들을 뇌에 대량으로 살포합니다. 지금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다 외워라! 뭐 이런거죠. 그래서 뇌는 외웁니다. .. 성욕도 변연계가 관장하고 있으며, 이 때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 여자친구와 함께 공부하면 잘 외워지지 않을까요? (...)

5. 이것은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인데요. 알려진바에 따르면 AMPA 수용체가 증가한 상태에서 다시 그쪽으로 자극이 입력되면, 무작정 또다시 AMPA 수용체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용체를 지지하고 있는 단백질이 헐거워져서 조금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복습을 할 때 오히려 약간 망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때문에 복습을 할 꺼라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순간적으로 휙 보고 지나치면 오히려 안한 것 보다  못하다는 뜻이지요.

 지금까지 기억에 대해서 대충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이 모든 내용을 장기기억하기 위해서는 10분 이상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해요. 물론 우유를 마시면서 말이지요. 다 읽은 후에는 잠을 청해야하고, 아, 아주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도 잊지 말아야하죠. 그리고 복습 따윈 제대로 할 마음이 아니라면 하지 마시구요.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편 저는 어제 외운 extirpate 라는 단어를 확실히 장기기억 하는데 성공할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면서 벌써 10분 이상 계속 반복 자극을 집어넣었거든요. 이와 관련된 시냅스들에서는 이미 AMPA 수용체가 단백질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어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시냅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지 모릅니다! 








 상병 진규언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다가, '중학교 생물시간에 자주 본 그림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잠시, 멍~ 해졌었다가.. 대충 머리속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기억이 형성된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요.(웃음).. 요새 영어 단어 공부하신다고 얼핏 봤는데.. 이렇게 장기기억하신다면 오래도록 안 잊어버리실듯하네요. 

 더불어... extirpate라는 단어를 뉴런과 시냅스의 과정을 통해 우리말의 '박멸하다'로 연결되는 것을 생략하고.. 직접 경험으로 연결하면 훨씬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나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에선 불가능하겠구나... 뭐 그러네요 

 친절하시게도, 5번 단락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까지 따로 정리해주셔서.. 참 감사히 읽었습니다. 물론 따로 저장도 해놓았지요. 03-11   

 병장 황민우 
1. 저는 요새도 하루에 두시간 자고 사는데, 나름대로 石頭라는 소리는 안듣는걸요? (먼산) 잠을 많이 자야 잘 외운다면, 내가 읽었던 책의 내용은 지금 하나도 모르고 있어야한다는 말인데.. 요건 좀 미심쩍네요. 암기는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보통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2. 외울때 별생각없이 외우지만, 어지간한건 죽을때 까지 않 잊는 편입니다. 
3. 저는 여기 올때까지 우유를 한 모금도 안마시고 살아왔습니다. 물론 멸치도 싫어했습니다. 칼슘이 절대부족인데... (먼산) 
4. 강렬한 감정은 뭔가를 읽고 할 때 참 많이 받은것 같기는 하군요. 

 덧. 승일시, 위에 재밌는 글 하나 올렸어요~ 03-11   

 일병 구본성 
// 민우 하루에 두시간 안 피곤하세요? 열정을 지닌 천재시군요. 천재의 필요조건이 '열정'이라고 하니, 흠, 부러워요. 

// 규언, 고등학교 생물2 정도에나 나올 것 같네요. 03-11   

 병장 이승일 
 민우 / 민우님 리플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민우님은 원래 기억력이 좋습니다." 
 참고로 개인의 기억력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뉴런의 숫자보다는 시냅스의 개수인데, 이는 거의 유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후천적으로도 어느정도 개선할 수 있긴 하지만요. 저같은 사람에겐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어요. 03-11 * 

 병장 임정우 
 아... 난 어떻하지... 03-11   

 병장 이승일 
 정우 / 이 글에 쓰려다가 걍 다음 기회에 다른 주제로 쓸 때 쓰려고 안썼는데요, 끔찍하게도 우리의 뉴런들은 1~2세 이전까지 엄청나게 풍부한 연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 의해서 어떤 루트는 살아남고, 어떤 루트는 죽어버립니다. 이것을 '신경 다위니즘' 이라고 불러요. 말하자면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태어난 직후에라도 ...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그 기회를 영원히 먼 곳으로 하이킥 하셨지만요.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시면, 2세 이전까지 가능한 최대한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키세요. 음악, 색상, 언어 뭐든지간에요. 그래야 최대한 많은 시냅스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흑. 03-11 * 

 병장 배진호 
 음!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음.. 만약에.. 사랑하다라는 단어를 머리속에 떠올린다면.. 
 과연 뇌는 항상 같은 상황과 상태를 유지할까요? 

 즉 사랑하다라는 단어, 그 언어가.. 여러사람이 아닌 단 한사람에게서라도 
 같은 의미로써 머리속에서 구현이 될까요? 
 사랑하다가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면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상황과 시간과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음 이러한 의문은 제가 뇌파와 언어에 관련된 것을 몇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뇌파의 현상들와 언어가 매칭이 된다면.. 
 그것들을 통한 실질적인, 언어의 구현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각각의 언어단위마다 다른 생각으로 구현된다면.. 
 그것이 같은 모형과 현상들을 도출할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가능할까요? 불가능 할까요? 03-11   

 병장 이승일 
 진호 / 불가능합니다. 로마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사랑' 이라는 단어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도 굉장히 많지요. 03-12 * 

 병장 배진호 
 엇.. 불가능하군요... 
 음...... 그렇다면.. 제가 설계하고 있는 내용들은.. 모두 무용지물... 
 흐음.. 그렇다면 단어가 아니라.. 글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가 가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가라는 글자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특정 부위의 신경을 자극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고 
 그에 의해서.. 하나하나의 글자들을 뇌로 스캔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03-12   

 병장 임정우 
 승일 / 궁금한게 생겼는데, 뉴런은 양적으로만 관계하나요? 질적으로 관계한다면 수가 적다고 해서 꼭 나쁜건 아닐것 같아서요. 03-12   

 병장 박인용 
' 혈중 칼슘의 농도가 높아지면, 이러한 과정이 더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우유를 많이 먹어 야해요' 

......... 먹어 '야해요' .... '야해요' 

 아놔, 휴가가야 하나 (,,.;;) 


 저도 질문 하나! 뉴런에서 뉴런으로 신경자극이 가는 길을 확실히 해놓는것이 기억이라면! 
 만약 어떤 A라는 물체(혹은 장소, 시간, 사건)에 대해서 어느 것이 확실한 것인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은 뉴런 사이의 길이 확실치 않아 다른 여러 뉴런과 동시에 연결이 되는 것인가요? 

 그리고, 하나의 뉴런이 자극을 받아 신호를 보내는 것은 잘 닦여진 길로만 보내진 않을 것 같은데 본문그림에서 보면 extirpate 라는 이름의 뉴런에서 보낸 신호가 발견하다, 내보내다, 박멸하다, 노래하다로 모두 전달되지만 그 중 가장 강한 자극을 받는 '박멸하다'가 선택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정말 only 하나의 길로만 전달되는 것인가요? 03-13   

 상병 김지민 
 아이를 낳으면 혼란의 방에 가둬놔야겠다. 
 모든 자극 충돌로부터 개방시켜서...(...) 

 하나의 교과서네요. 정말, 입이 쩍입니다. 03-13   

 병장 임정우 
 전 아기때 우유를 너무 안먹어서 잘때 억지로 입에 쑤셔 놔야 약간 쳐먹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도 먹는걸 조낸 기피해서 국민학교 입학당시 키랑 몸무게는 110에 15키로... 
 중학교 이전까진 여자 포함 최저키 신장을 기록했었죠. 
 고등학교 넘어가면서 약간 크긴 했지만. 03-13   

 상병 이지훈 
 떠~억!(입 벌어지는 소리) 03-13   

 병장 이승일 
 진호/ 그런 상상은 SF소설 같은 곳에서도 자주 등장하죠. 궁극적으로는.. 지식을 뇌로 스캔하는 것. 최소한 일반화된 방식으로는 확실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깐 '가' 라는 똑같은 글자라고 할지라도 그 것을 기억하는 뇌의 회로 형태는 개인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지요. 물론 매우 유사하긴 하겠지만요. 때문에 개인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한, 좀 어려울 것 같네요. 

 인용 / "어느 것이 확실한 것인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은 뉴런 사이의 길이 확실치 않아 다른 여러 뉴런과 동시에 연결이 되는 것인가요? " 대략 맞는 말 같습니다. 흔히 간섭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 그러니깐 A와 B 를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B 옆에있는 C 가 함께 약간의 강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칼슘이온에 의해 자극받아 생성된 단백질이 B 로 연결하는 회로의 AMPA 수용체를 고정시킬 뿐 아니라 같은 뉴런에 있는 다른 수상돌기의 AMPA 수용체를 고정시키는데 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길이 선택되는 것이지 'only' 그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백만개의 갈림길 중에 가장 연결 효율이 우수한 경로만 선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왜곡된 기억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지민 / 혼란의 방...은 좀 역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