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관료적 격리 
 일병 정영목 06-03 15:10 | HIT : 110 



== 들어가기 ==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90년대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장래 희망'이라고 적어내는 '대통령'이 되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꿈 말입니다.

 그러나 '정치와 정책은 별개'라는 복음이 점차 힘을 얻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이젠 '대통령'이 되어 봐야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는 기술 관료적 격리라는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기술 관료적 격리 ==

 금융 투기자들은 성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통화 안정을 원하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성장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경제 신문들은 '고성장의 위협', '지나친 고용의 위협'을 공개적으로 앞다투어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통화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이므로 그건 투기자들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경제 성장, 경제 자극, 실업 감소는 종류를 불문하고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입니다. 금융 투기자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초래하는 어떤 것이나 경제 발전 정책의 신호를 보기만 해도 그 나라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 갑니다. 그들이 약간이라도 돈을 빼내가면 아주 간단하게 그 나라에 불경기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빚은 결과 때문에 국제 경제는 저성장, 저임금, 고이익 체제로 바뀌었는데, 각국 정부가 지금과는 다른 경제 및 사회 정책을 추진하려고 해도 속수무책입니다. 만약 추진한다고 해도, 그런 정책은 자본 도피 탓에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부채 규모는 천문학적인데 그것은 사실 레이건-부시 프로그램의 유산입니다. 국가의 부채 규모가 너무 큰 탓에, 사실상 정부는 더 이상의 사회 개혁 프로그램을 감당할 예산이 없습니다. 만약 200억 달러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제안한다면, 국제 투자 업계는 약간의 경고 신호를 줌으로써 그것을 곧장 400억 달러짜리 예산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저절로 중단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정말로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최근 들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출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국제적 기업 지배 계급의 욕구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상의 세계 정부'는 '정치와 정책은 별개'라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달리 말해, 세계의 민중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배제하고, 정책 계획의 수준을 아주 높은 곳에다 두어서 민중이 그 정책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계 은행은 이런 현상에 대한 자체적 용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기술 관료적 격리'라고 부릅니다. 일단 민중을 충분히 따돌린 다음에는 '민주주의'든 뭐든 그들(민중) 마음대로 떠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봐야 그건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할 테니까. 국제 언론은 이 모든 현상을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The New Imperial Age)'라고 솔직히 묘사했습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현재의 모든 사태는 그런 쪽으로 움직여가고 있습니다.{UDSPW1KO}

== 그들의 목적 ==

 신자유주의파, 쉽게 말해 우파가 세금을 낮추려는 주목적은 국가의 재정을 악화시키는데 있습니다. 국가의 재정이 악화될수록 '사실상의 세계 정부'의 통제력은 강화될테니까요. (이러고 보니 무슨 '음모론' 같군요. 하하)

== 참고 문헌 ==

* UDSPW1KO - 노암 촘스키 지음. 피터 미첼, 존 쇼펠 엮음. 이종인, 장봉군 옮김.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 시대의창. 12. 2005.  


 병장 이승일 
 전체적으로 아주 공감합니다. 약간 뻘소리 같지만, '사실상의 세계정부' 가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된 것은 결코 그들의 음모나 계략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쿠테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의 작은 선택에 의해 지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을 통해 그들에게 투표했습니다. 그들의 권력은 단지 모든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도 물질적 재화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습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최소한 우리에게 핑계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06-04 * 

 상병 김현진 
 공감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정치와 정책이 별개'가 되는 현상은 정치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도 있더군요. 자세한 건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참고하시길. 

... 아, 제가 아직 덜 봐서 참고하기 힘들겠군요(...하하..) 


 승일 님// 우리에게 핑계거리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심은, 사실상의 세계정부에 엄청난 권력을 부여한 것은 결국 모든 개인 때문이고, '음모론'은 핑계라는 의도이신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의 권력이 모든 개인이 물질적 재화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하지만, 그 사실에 의한 우리의 행위에 그들에게 권력을 줄 의도가 들어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저는 개인의 의사결정은 보통 미시적이고, 따라서 전혀 그런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 거라 봅니다- 승일 님 말씀의 근거는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생존과 사회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습성이고, 그렇다면 거기에 죄를 부여하는 자학적인 발상보다는 그 습성을 누군가 이용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차라리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승일님의 지적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우리의 미시적인 결정은 그 권력이 존속하는 '효과'를 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공부-여기서는 소위 돈은 안되는 것들, 인문학이나 일부 사회과학을 지칭합니다-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테고, 보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더 바꿀 수 있을 겁니다. 06-04   

 병장 이승일 
 현진 / 네 현진씨 말씀이 맞아요. 저는 음모론(?) 이 핑계거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 핑계거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물질은 중요했고, 현재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가장 중요해졌다는 점이 틀린 점이고, 바로 이 차이가 자본의 거대한 구조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지금 이순간 우리의 선택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06-05 * 

 일병 정영목 
 김현진 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사실, 몰래몰래 조금씩 보고 있답니다. (땀) 

 이승일 님// 네, 그렇지요.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입니다. 괜히 물질'주의'라고 부르는 게 아니겠죠. 

 여기서 의뭉스러운 점 하나. 환경주의, 인본주의, 자연주의, 민본주의 등등 통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주의들도 어떤 상황에서는 분명 부작용을 일으키겠지요? 예를 들어, '환경주의'도 500년 전에 이야기한다면 그건 아무래도 시대 착오적인 발상일테니까요. 물론, 현 시대에는 분명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서 만족해야겠지만요. 06-05   

 상병 김현진 
 승일// 포인트는 '어쩔 수 없이' 였군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시적 결정뿐만 아니라 물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 또한 개인의 선택에 그 책임을 '전부' 물을 수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승일 님은 '전부' 우리 책임이라는 말씀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뉘앙스는 그렇네요. 아니면 제가 잘못 해석한 거겠지요...) 

 대개의 사회문제는 '쌍방과실'이고 해결책 또한 대립항 양측에서 같이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그것이 자본에게 '핑계거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영목// 실은 저도 영목 님의 책을 몰래몰래 보고 있답니다. 
... 제목만(......) ..책들이 조금씩 바뀌더군요? 

 현 시대에 의미가 있는 건, 아마 '사상'이라는 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