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
내가 지닌 한 가지
뜨거운 태양이 훅훅 살갗을 볶아대는 한여름에 입대했으면 어차피 열지옥일 훈련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착실히 했을테지만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어중간한 시절에 입대한 나는 한주일 한주일이 지나며 서서히 달아오르는 훈련소의 열기를 도무지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그것이 단순히 섭씨 몇 도로 표현되는 수치상의 열기였다면 어떻게든 식혀보려는 궁리라도 해보았겠지만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볍게 초월해버린 곳에서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았던 낯선 사람들과 느닷없이 같은 공간에 몰리게 된 이상 누구든 통제당하는 몸의 자유에 대한 기갈과, 흥분과 불안으로 온몸이 달구어진 수많은 이들의 역한 살내음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쇠난로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열기의 한복판에서 도리없이 허우적거려야 했다.
조교들은 훈련병들이 자대에 배치되어서 겪게 될 말못할 시련들을 최소한의 인내로 삭혀버릴 수 있게끔 도와주려는 의도였는지 나를 비롯한 훈련병들에게 갑작스런 폭언과 일방적인 명령으로 일관했고 그것이 마땅히 자기네들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듯 그들은 조금도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우리들이 보지 않는 뒷자리에서 그들은 우리들과 똑같이 서로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전형적인 20대 청춘의 빛살을 언뜻언뜻 내비쳤지만 우리들 앞에서 그들은 마치 무뚝뚝한 아버지 같았다. 우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벌컥 화라도 내는 날에는 그야말로 술이라도 얼근히 걸치고 밤늦게 들어온 아버지 같았다. 도무지 분위기를 종잡을 수도 없었고 그저 우리들은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싹싹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연일 이어지는 혹독한 일과와 모든 것이 비우호적으로 작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훈련소 입소 동기라는 서로의 동일한 신분에 기대어 저마다 속에 맺혀 있을 수많은 말들을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일거리이자 오락의 방편이었다. 누구는 나이트 클럽에서 '삐끼'를 하다왔고 누구는 사업하다가 스물 일곱에 군대 왔고 누구는 벌써 결혼해서 갓난아기와 아내를 두고 입대했고 누구는 수도권 곳곳의 유명한 사창가들을 꼼꼼히 섭렵했으며 또 누구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을 철제 쓰레기통으로 두들겨 패서 퇴학당한 후 바로 입대했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이야기들은 밤이 새도록 끝이 없었다. '절대 정숙을 취해야 하는' 취침시간에 조교들 몰래 어둠 속에서 시시덕거리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자신이 이십여 년 동안 살아온 삶의 테두리 바깥에서 역시 자신과 똑같은 젊음으로 똑같은 시간을 서로 다르게 통과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었고 영화였다.
젊음. 그랬다. 땀으로 목욕을 하며 힘들게 훈련을 받고도 농담하며 웃을 수 있고 억울하게 욕을 먹어도 팔굽혀펴기 몇 십 개로 잊어버릴 수 있고 오지 않는 여자친구의 편지 때문에 세상이 날 버린 듯 내가 세상을 버릴 듯 울상을 짓고 아직 이등병 계급장을 달지도 못한 것들이 벌써부터 전역하고 나서 하고싶은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자기들의 별 것 아닌―고작 샅에 털이 나기 시작한 이후 몇 년에 불과한―인생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떠벌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들이 몹시도 젊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음이란 버들가지처럼 낭창낭창해서 이리저리 휘둘리기 쉬운 것인지 때로는 폭풍과도 같은 자기 감정에 휩쓸리는 때가 있었다. 아무리 허물없는 훈련소 동기라지만 서로 낯을 붉히고 소리소리 지르는 순간은 결코 적지 않았다. 수건과 세면도구를 들고 웃으며 나갔던 둘이 멀쩡히 씻고 들어오는 와중 서로 어깨를 부딪혔다는 이유로 갑자기 싸움이 붙어 주위에서 뜯어말려야 했던 일도 있었고 누구 군장이 더 무겁네 덜 무겁네로 시비가 붙어서 조교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군장을 벗어던지고 서로 주먹다짐을 했던 일도 있었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늘 피로에 절어 있었고 땀방울은 온몸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열기로 자욱한 그곳에서 나는 얼마든지 서로 좋게 엮어질 수 있었을 인연들이 무수히 뒤엉키고 어긋나는 광경을 보았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계기란 또 얼마나 사소하고 하찮은 것인가를 알았다. 초코파이 하나에 버럭 화를 내고 담배 한 개비에 서로를 죽일 듯 증오하고 그늘 한 자락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하고 조금이라도 몸이 편한 뒷줄에 서기 위해 말다툼을 벌이고. 마치 활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대지를 뒤덮듯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단번에 뒤덮어버리던 그 감정들도 우리들 젊음의 일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건 순전히 우리를 훅훅 볶아대던 그 힘겨운 열기 탓이었을까.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은 몇 번 훈련병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려야 했고 그에 따라 내가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번호는 67번이었다. 67번 훈련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나는 마치 먼 미래 사회의 인조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SI-59378705 같은 요령부득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인조인간이나 67번 훈련병이라고 불리는 나나 이물스러운 기분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앞은 66번 훈련병이었다. 66번이든 666번이든 번호와는 상관없이 그 동기와 훈련소 퇴소할 때까지 잘 지냈으면 좋았겠지만 일이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문제는 나와 그 동기가 2인 관물대를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인 관물대라고 해서 특별하게 고안된 넓은 관물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물대를 두 명이 어떻게든 써서 2인 관물대가 되도록 만들라는 억지스런 식이어서 그 동기는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다. 세면도구가 든 가방을 놓을 곳도 속옷을 담을 서랍도 전투복과 탄띠와 철모를 넣어둘 공간도 모두 둘이 나눠서 써야 했다. 공간을 2차원으로 분할해서 좌우 이등분으로 사용했더라면 그 동기와 나의 물품들은 서로 부딪힐 일이 없었겠지만 폭은 좁고 속으로는 쑥 들어가는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자니 어쩔 수 없이 3차원으로 분할해서 앞뒤 이등분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한 명은 안쪽 공간을 사용하고 다른 한 명은 바깥쪽, 즉 물품이 관물대 정면에서 바로 보이게 되는 공간을 사용해야 했다. 안쪽의 공간을 사용하게 되면 자기 물품을 꺼낼 때마다 바깥쪽에 있는 상대방의 물품을 먼저 꺼내놓고 손을 공간 깊숙이 집어넣어서 자기 것을 꺼낸 다음 도로 바깥쪽에 원래 있던 물품을 넣어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는지라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자신이 바깥쪽을 쓰기를 원했다. 나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기의 물건으로 안쪽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내 물건들을 바깥쪽에 넣어두었는데 나는 그 때까지 이른바 '관물대 수납의 심리학'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느닷없이 집합 명령이 떨어지고 나는 별다른 생각도 없이 전투복을 입고 양말을 바삐 신고 있는데 갑자기 동기가 내게 버럭 화를 냈다.
아 ×팔, 앞쪽에다 이렇게 놔두면 내 탄띠는 어떻게 꺼내라는 거야!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칼에 베인 손가락을 지혈하듯 나는 내 속에서 솟구쳐오르는 시뻘건 감정을 지그시 눌렀고 조용히 내 탄띠와 철모를 꺼내 내 앞에다 놓았다. 한참 동생뻘 되는―내가 좀 뒤늦게 입대한 덕분에 대부분의 훈련병들이 내 동생뻘이었다―녀석과 사소한 걸로 아웅다웅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음부터는 내 탄띠를 앞쪽에 두어야 겠다고 생각하고선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 날 교육이 끝나고 나는 틈을 보아 내 탄띠와 철모를 안쪽으로 냉큼 집어넣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쪽에 자기 물건을 올려놓은 그 동기는 취침할 때까지 내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허둥지둥 모포를 개고 전투복을 입고 양말을 신고 나서 속에 있는 내 탄띠와 철모를 꺼내려고 그 동기의 것을 집어드는 찰나 마치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듯한 그 동기의 탁한 목소리를 들었다.
왜 내 물건 건드리는 건데 아 ×팔, 아침부터 기분 ×나게 나쁘네.
도저히 해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그 동기는 내 앞에 서있었고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일단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동기의 끊임없는 시비는 상황의 논리와 일반적인 상식을 모조리 무시한 그야말로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는 식이었다. 내가 너댓 살이나 나이가 많은 형이니 대놓고 욕을 퍼붓지는 못했지만 그 동기는 내 귀에 충분히 들리게끔 궁시렁거렸고 대수롭지 않은 내 행동 하나하나에도 지청구를 먹였다. 건빵이라도 먹을라치면 부스럭거리는 소리 좀 내지 말라고 쏘아붙였고 트림이라도 하면 냄새나니 고개 돌리고 하라고 오금을 박았다. 순간순간 화가 치밀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꾹 참았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녀석도 훈련소 생활이 힘들고 짜증나니까 그러는 걸 거야. 바깥에서 만났더라면 나와 편한 형 동생 사이가 될 수 있었겠지. 여긴 훈련소니까, 그런 식으로 속에 있는 걸 풀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러는 걸 거야. 많이 안타까웠다. 왜 녀석과 나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행군을 앞두고 우리는 20Kg짜리 군장을 등에 지고 훈련소 주변을 한바퀴 달리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강도의 훈련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그날 따라 날씨는 우리가 만두라도 되는 양 푹푹 쪄대는 거대한 솥 안이나 다름이 없었고 달리기 코스의 길이는 우리가 지금 뛰고 있는 게 마라톤인지 철인 3종경기인지 뭔지 헷갈릴 정도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어깨에는 총까지 메고 있었다. 절반 정도의 훈련병들이 도중에 포기했고 나 역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내 옆에서 뛰는 66번 훈련병, 바로 그 동기 녀석에게 왠지 지기가 싫어서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그 동기도 나를 힐끔힐끔 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서 결국 나와 그 동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코스를 완주해내고야 말았다.
들어오면서 우리 분대는 약속이나 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코에 들어오는 건 지독한 땀냄새였고 귀에 들어오는 건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헐떡임이었으며 눈에 들어오는 건 땀으로 뒤발을 한 채 숫제 거지꼴을 하고 있는 동기들의 모습이었다. 입에는 물이 들어가게 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그 때 주전자에 물이 없었다. 거기에 있던 누구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리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섣부르게 자기 감정을 게워내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를 옴쭉달싹 못하게 묶어놓은 것은 괜한 폭력을 보고싶지 않다는 숨막힐 듯한 긴장감과 급격히 고갈되고 만 체력이었다. 막 고아낸 엿처럼 끈적끈적하고 끊어지기 직전까지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한 무엇인가가 그 때 우리가 힘겹게 들이마시던 공기 속에 스며있었다. 어쩌면 그런 긴장과 초초의 갑갑한 장막을 찢어발겨줄 누군가의 도발을 다들 내심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힘들게 군장을 내려놓고 전투화를 벗고 침상에 올라 주저앉았다. 어서 양말을 벗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넋을 놓고 잠깐 앉아있으려니 내 동기, 66번 훈련병의 익숙한 목소리가 내 정수리로 내리꽂혔다.
×신 ×끼.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어따 써
나도 별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의 신경줄을 가졌다. 그 동기의 한마디 말은 내 속에 있는 무언가의 방아쇠를 당겼고 뇌관을 건드렸으며 스위치를 올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순식간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분노의 화신이 되어 그 동기녀석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씹어뱉었다.
이 미친×끼야.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죽고 싶어
그 동기는 순간 움찔한 기색이었다. 백 팔십이 넘는 키에 우람한 덩치를 가진 나한테―더구나 형뻘인 사람한테―함부로 덤빌 수도 없었는지 녀석은 의외로 싱겁게 꼬리를 내려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탄띠와 전투복을 정돈하는 그 동기를 보면서 나는 쓴 한약을 억지로 다 마신 듯 입맛이 썼다. 긴장을 견디지 못한 공기가 기어이 마찰을 해서 불꽃을 튀기는가 싶었던 다른 동기들은 집중했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자기 옷과 물건들을 정돈하는 데에 열중했다. 질식할 듯 우리를 내리누르던 분위기는 취침 전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날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도 그 동기에게 맞받아쳐서 욕설을 퍼부었던 그 순간이 조금도 시원하거나 통쾌하지 않았다. 그 동기에게 충분한 앙갚음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녀석과 나는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 전에는 서로 이름도 몰랐고 얼굴도 몰랐던 생판 남남이었다. 바깥에서 만났다면 서로 좋은 형과 동생 사이로 지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연은 어쩌면 다른 식으로 풀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렇게 돌이킬 수 없도록 어긋나버리고 말았다. 왜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되어야 했을까. 그렇게 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우리의 인연을 다른 방식으로 열어갈 수는 없었을까. 물음은 계속되었고 나는 어느덧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건 다 가짜다. 67번 훈련병도 66번 훈련병도 전부 가짜다. 우리는 하나의 연극을 하고 있는 거다. 훈련소라는 무대에서 조교라는 감독의 지휘 아래 우리는 서로의 동의가 필요없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거다. 우리의 관계는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다. 만일 바깥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면 우리의 관계는 결코 이런 식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고 지쳐서 서로에게 짜증낼 일도 없었을 것이고 먹을 것, 마실 것 하나로 서로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버겁고 견뎌내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를 이러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 짜증을 내던 그 동기의 감정도 다 가짜고 그 동기에게 화를 내고야 만 나의 감정도 결국은 가짜다. 이곳이 아니라면 절대로 생겨나지 않았을 가짜다. 내가 나라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곳에서 나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 내 존재가 67번 훈련병이라는 익명에 갇혀있는 한 나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동기녀석에게 했던 말은, 그 격한 감정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그저 한 순간 무언가에 홀린 것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부질없는 말과 감정은 그 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훅 불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는 한낱 불티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날 이후 그 동기와 나는 아주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욕해서 미안했다는 나의 말은 그 동기의 굳은 표정에 부딪혀 그대로 튕겨져나왔다. 결국 훈련소에서 퇴소하는 날까지 변변한 대화 한 번 못해보고 말았는데 공교롭게도 녀석과 나는 같은 여단으로 배치가 되었다. 퇴소식을 끝낸 후 여단 사령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바깥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단 사령부 교회에 집결한, 갓 진급한 이등병들은 여단 산하의 어느 대대로 배치될 것인지 발표를 기다리며 이등병 특유의 자세로 꼿꼿이 앉아있었다. 마침내 발표가 나고 그 동기는 포병대대로, 나는 참모부에 떨어지게 되었다. 기대 반 불안감 반에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화장실로 갔는데 고작 소변기 두 개와 대변기 한 칸이 전부인 비좁은 화장실 안에 그 동기녀석이 혼자 서있었다. 나를 피하지 않았다. 내 눈을 똑바로 치어다보는 것이 아마도 날 기다린 듯싶었다.
형, 잘 지내고… 참모부라서 나보다는 편할 거야, 편지… 해줘.
그 동기가 나를 형이라고 부른 적은 좀처럼 없었다. 나는 응, 그래…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했다. 녀석은 황급히 화장실을 나갔고 나는 소변을 보았다. 밖으로 나가니 각 대대로 배정받은 이등병들이 차량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녀석은 끝까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 날은 참 바빴다. 간부들과의 면담, 분대 선임들과의 만남, 짐 정리, 낯선 분위기에 낯선 사람들. 5주 동안 훈련소라는 공간에 적응해왔지만 다시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습관을 모두 버려야 했다. 막사 바깥에서 밤늦게까지 우리 분대 분대장과 면담을 하고선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밤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별 몇 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도 않았고, 눈을 감아 내 눈 속의 별을 내몰지도 않았다. 그러자 그 동기의 생각이 났다. 포병대대로 떨어졌으니 고생 많이 하겠네. 나는 내 코가 석자인데도 그 녀석 걱정을 했다. 몸은 튼튼했으니 잘 이겨내겠지. 다만 그 욱하는 성질은 고쳐야 할텐데 말이야. 문득 그 동기녀석과 나 사이에 고여있던 공기가 마찰을 일으키며 불꽃을 튀기던 그 날 그 순간의 생각이 났다. 그 녀석에게 나도 모르게 대들고 나서도 내 마음은 조금도 후련해지지 않았지. 자꾸만 허방을 짚은 것 같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마음은 무슨 돈을 빌리듯 꾸었다 갚았다 하는 게 아니잖아. 녀석이 나에게 한 대로 나 역시 그대로 되갚아주어서 끝날 문제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 나는 그 때의 내 감정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 녀석의 감정도 우리 모두의 감정도 다들 연극배우의 연기처럼 저마다 역할을 하나씩 배정받고 오로지 상황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 우리의 감정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고만 생각했지. 그래서 전부 다 부질없는 짓거리라 생각했지. 67번 훈련병이라는 이름은 내 고유의 자아가 아니라 내게 덧씌워진 가면과도 같은 거짓 자아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훈련소든 어디든 엄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내 존재가 내 것이 아니게 되었던 순간이 정말 있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 모든 감정들이 다 가짜요 거짓이라고 했던 그 순간의 나 역시 가짜였다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진짜도 가짜도 없다. 나는 나라는 고유의 존재로서 존재한다. 내 감정 역시 진짜도 가짜도 아닌 오직 내 감정일 뿐이다. 누가 시켜서, 누가 뒤에서 조종한 결과로, 혹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의 영향을 받아 내 감정이 아닌 가짜 감정이 내 속에 깃든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 감정을 내 것이 아니게 만드는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조차 내가 내 마음으로 내 뜻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내가 어찌해볼 수 없었던 상황을 나를 둘러싸고 있던 갑갑한 현실 탓으로 떠넘기려 했던 것이다. 내가 지고 가야하는 책임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현실에 전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 동기와 나의 인연이 다른 방식으로 엮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훈련소든 어디든 그 어떤 가혹한 환경에서였을지라도 그러한 다른 방식의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고민을 내가 끝까지 끌어안고 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는 훈련소니까, 다들 힘들어하고 짜증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우리의 탓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라고는, 결코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은 채로 더 나아가기를 포기하겠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요, 내 마음 속에 깃든 마음들―분노든 짜증이든 미움이든 뭐든―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인이 자기의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하지 않고서는 나의 존재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싸웠어야 했다. 그 동기녀석과 더 심한 말을 지껄이고 얼굴을 붉히며 손찌검까지 해가면서 치열하게 싸웠어야 했다. 포기하지 말고 내 감정 전부를 온통 녀석에게 쏟아부었어야 했다. 나는 끝내 녀석과 화해하지 못했지만 결국은 나 자신과도 화해하지 못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버린 것들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쳐버린 것에 불과했다.
바깥에서, 훈련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그 동기와 나와의 인연을 다른 방식으로 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무게의 이유로 그 동기와 나와의 인연은 훈련소에서도 그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엮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알았어야 했다. 포병대대와 참모부로 서로 엇갈리던 그 날, 화장실에서 보았던 그 동기의 눈은, 몇 마디의 더듬거림과 그 말없음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형, 우린 이제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게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오늘처럼 작별하지는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다, 그치
한 다발의 인연들이 시간과 함께 지나가버리고 나는 그렇게 이등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로부터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는 유격훈련장에서 먼발치로 정말 오랜만에 그 동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슬이 시퍼런 조교들이 마치 유령처럼 대열 사이를 배회하고 다녔던 탓에 소리를 쳐서 불러보지는 못했지만 녀석의 얼굴은 역시 군대밥을 웬만큼 먹어서 그런지 제법 좋아보였다. 내 기억은 순식간에 훈련소 시절의 거친 열기 속으로 줄달음쳤다. 녀석의 생각을 해보는 것도 도대체 얼마만이었는지 몰랐다. 훈련소의 그 뜨거웠던 열기도 우리가 젊음이라고 불렀던 감정들도 결국엔 다 저마다의 삶이었고 저마다의 몫이 있었다. 아무리 감당하기 버겁고 추하게 보이는 것일 지라도 자기의 것을 자기 것이라 떳떳이 인정할 수 있어야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너무도 힘들고 지쳐 내가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들을 허공에 마구 흩뿌리고 싶어질 때, 모든 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의 탓이라 핑계를 대고 싶어질 때 나는 내 손에 비끄러매진 내 삶을 좀 더 단단히 틀어쥐고 나아가기 위해 가끔씩 그 동기녀석의 얼굴을 생각하기로 했다.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7-31 1712)
병장 엄보운 (20060731 105121)
... 내가 지고 가야하는 책임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현실에 전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 ...그건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은 채로 더 나아가기를 포기하겠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요, 내 마음 속에 깃든 마음들―분노든 짜증이든 미움이든 뭐든―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인이 자기의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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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글입니다. 가지로 갑시다.
병장 송희석 (20060731 122051)
병영문학상 제출 글인가요 이런이런. 이렇게 뛰어난 글들이 많아서 점점 저는 입상에서 멀어지는군요.
병장 박진우 (20060731 124913)
갑시다 가지로
병장 송희석 (20060731 125536)
아참. 저역시 가지로입니다.
상병 송호근 (20060731 142605)
멋진걸요
병장 김희곤 (20060731 145852)
정말로 굉장한 글입니다. 이거이거 대단하신 분들이 속속 나타나시는 군요. 저는 얼른 찌그러져야 겠습니다.
병장 박형주 (20060731 155505)
일단 가지로. 이달의 베스트 게시물 확정이로군요.
상병 조주현 (20060801 004250)
멋진 글입니다.
이제야 봤군요.
병장 김봉현 (20060801 113732)
멋집니다. 저 역시 이런 생각을 줄곧 해왔었는데
글로서 멋지게 풀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상병 이승일 (20060801 174316)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글이네요! 사르트르의 소설을 읽는 것같았습니다.
'글 하나'라는 소박한 제목 아래 이런 엄청난 글이 쓰여있으니, 평범한 글들의 제목은 어떻게 지어야한단 말인지!!
일병 김지민 (20060803 082322)
헛. 좌절이다 좌절....
병장 노지훈 (20060803 094014)
글, 잘 읽었습니다.
상병 박병학 (20060804 160734)
뭐 많은 분들께서 좋다고 해주시니 일단은 고맙습니다만...
왜 논쟁을 걸어오시는 분은 하나도 안 계신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내용이라구 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