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병장 박수영 06-05 13:49 | HIT : 188
글을 쓴다는 행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하나가 아니리라. 쓰는 이에 따라서 획득하는 것도 깨닫는 것도 제각기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일반화를 시키지 않고 나 하나의 이야기로 국한시키고자 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행위는 스스로의 한계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어떠한 일이든 그렇겠지만 자신의 능력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가장 기본적인 운동 인 달리기를 하더라도 속도가 제 각각이고 지구력이 제 각각이고 달리는 방법도 제 각각이다. 만약 누군가 보다 잘 달리고 싶다면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겠지. 물론 재능도 필요할 것이지만, 나는 그다지 그린 씨 만큼 달리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그저 정도껏 하고 싶을 뿐.
나에게 있어선 글쓰기가 그랬다. 엄청나게 잘 써야겠다는 마음은 없다. 그냥 즐겁게 써서 나도 즐기고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 즐겨주면 좋겠다라는 그 정도 수준일까. 가끔씩 소설책을 읽다가 '아~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 갈텐데' 하는 치기로 글을 끄적여보다가 수치스러운 결과물에 얌전히 세절(or Shift+Del or Wiping)시킨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개중에는 나름대로 읽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결과물을 볼때면 나는 흐뭇한 한편 동시에 나의 한계점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이건 도대체 Fiction인가 Non-Fiction인가? 그 경계가 희미해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나는 내가 경험했던 것 밖에 적질 못한다. 그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글을 쓴다는 행위를 집어 치우고 싶어진다. 나의 삶과 경험으로 구축된 세계가 글에 투영된다면, 경험이라도 풍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태껏 경험해온 세계는 너무나 협소하고 Shallow해서 Swallow해버릴 지경이다. 꿀꺽. 없어졌다.
상상, 환상, 공상, 몽상이던 뭐든지 좋다. 마구 솟아나서 되든 안되든 적어 내리고 그렇게 즐거운 글을 적어보고 싶다. 하지만 결국 깨닫는 건, 그것조차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경험은 세계를 확장하고, 확장된 세계가 자유로운 글을 풀어 낸다. 뭐든지 한발짝 물러서려고 하고 감정에 몸을 내맡기기는 것보다는 최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된 픽션 한 편 풀어 낼 수 없는 이런 찌뿌둥한 날이면 스스로의 한계가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상병 육심일
수영님 글을 읽고서
요즘 읽고있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 큰생각을 하려면 큰장소로 나가야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려면 새로운 장소로 나가야한다.."
힘내십시오~ 06-05
병장 진규언
100% 동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험이라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입니다. (아니 작년부터 경험에 목말라했던걸 돌이켜보면 요즘이 아니네요) 책 속의 지식도 좋고, 탁상에서 벌어지는 공론속에서의 지식도 좋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게 피부로 느끼는 '경험'임을 또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다양하고도 정직한 경험만큼 (글쓰기를 포함하여) 개인을 성장시키는건 없을 것 같고, 온갖 경험에 제약이 따르다보니 더 목말라 합니다. 어줍잖은 독서후기를 써보려고 끄적일때도 한계를 느껴 창을 닫아버립니다.
무한한 자유주의자인 고종석씨의 말마따나 '마약'까지도 해봐야 한다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머지 않은 날부터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다. 라는 다짐만 골백번 합니다. 수영님의 진솔한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힘내세요. 힘내고 싶어요. 힘낼게요. 06-05
병장 김청하
예전에 MT가서 친구들이랑 바람부는 밤에 바위 위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청산별곡을 떠올리고는, 결국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경험'하지 못한 것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로 나는 청산별곡을 '읽었던' 걸까?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세계를 자신의 바깥 어딘가에 고정시키는 것이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거기에 자신의 세계를 감응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06-05
일병 정영목
보통 글쓰기를 배울 때, '다독다작다상량'을 이야기하죠. 좋은 방법이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분명 한계점이 있는 듯 합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등장해야 하는 것이 '정독정작정상량'. 이는 그냥 천천히 읽고, 쓰고, 생각한다는 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박수영 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경험'으로의 전환이 그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06-05
병장 배진호
경험의 중요성에 통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책보다 경험이 우위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간혹 한적이 있지요..
하지만 경험을 어떻게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
그것이 책과 글의 역활인것 같다라는 생각에서..
책 또한 글 또한 경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시점입니다. 06-05
상병 서동영
역활-->역할.... 06-06
병장 배진호
하하핫 동영님 감사요 간만에
글자 지적을 받게 되니 기분이 새롭네요..
재미있군요.. 후훗
그나저나 평안하신지요? 잘지내시는지요? 06-06
상병 박준연
그렇다면 수영님의 글에 픽션입니다 라는 말은 (..) 06-07
병장 박수영
준연/ 아아. 픽션은 픽션이에요. (전 담배 안피거든요)
하지만 그것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봤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죠. 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