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것에 대한 어려움. 
 
 
 
 
아는 지인중에, 소설가이자 한 잡지의 필진 자리를 꿰차고 있는 Y형이라는 사람이 있다.
내가 잠시 할일을 접어두고, 바깥에서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는 사이, 최근 이 형이 무슨 소설을 쓴다고 다시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소설을 맨처음 쓰기 시작한 시점은 무려 내가 고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었다.

때마침, 전국일주 중반 무렵에 서울을 들릴 일이 생겼고, 그때 한 6시간정도 일정을 늦추는 방법을 통해, Y형을 만날수 있었다. 신촌의 한 병맥주집에서, 하이네켄 두병을 맞대고 바삭하게 구운 소시지를 안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Y형. 그나저나 몇년동안 소설쓰는거 멈춘거에요?"
"네놈 군 입대 1년전부터니까. 2년 6개월인가 그럴걸."
"하여튼 형도 대단해요. 도데체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서 글을 못쓴거에요"
"못쓴게 아냐. 나는 계속 썼다고. 단지 지금에 와서야 연재분에 도달한건지."
"그동안 뭐했는데요?"
"...그거 네놈도 잘 알면서 나한테 꼭 물어봐야겠냐?"

그러고보니, Y형이 그동안 놀고먹고 한건 아니었다. 하긴, 2년 넘게 놀고 먹었다면 이렇게 맥주병을 부딪치는 일도 이루어내기 힘든게 사실이지.(웃음)
일단 소설을 출판하여, 인세를 받는다는게 그다지 녹녹한일은 아니었다. 그 사이에 소속 출판사를 한번 바꾸는 일(!!)을 저질렀고, 그리고 중간 중간 빈 주머니와 카드 명세서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서, 필진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잡지사에 기사를 써서 올리는 행동도 했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근세 시대의 정보를 구하기 위해, 대학교 도서관과 국립 도서관등을 전전하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다시 모았다고 한다. 막상 이런 조건을 딱 갖춘 시점이 2년전. 그런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위궤양에 걸리셔셔 6개월동안 꼼짝없이 옆에서 봉양해야 했고, 이제서야 완치된덕에, 글쓰기를 시작한다고 공표(?)하게 된것이다.

한 5일정도 지났을까. 전국일주를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서 재충전을 하는 동안, 메신저로 갑자기 Y형이 나한테 쪽지 하나를 냉큼 보냈다.

- 용준! 너 전화번호 XX한테 알려준적 있냐?
- Y형. 내가 그럴리 없잖어. 이제 집에 들어왔는데, 무슨수로 내가 알려줘?
- XX가 네놈 전화번호 알고 있는거 아냐?
- XX한테 내 전화번호도 알려준적 없다고.

약간 횡설수설하는듯한 말투인데다가, 상당히 화가 난 어조로 나를 몰아붙이길래, 일단 Y형을 진정시키고 무슨일때문인지 조용히 물어봤다. 내용인즉슨 매우 간단했다. XX라는 사람이, 자고 있는 동안에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웠다는 것이다.

- Y형. 뭐 그거가지고 그래? 그럴수도 있잖아.
- 한참 머리속에서 자면서 소설 쓰는거 구상되고 있었는데, 중간에 딱 끊겨버러셔 그래.
- ...Y형. 왠만하면 자면서도 일하는 그런건 자제하는게 좋지 않을까?
- 이렇게 몰입해야 글이 잘 써진다고. 종목은 달라도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사실 전형적인 이과생인 나 역시, 그런 면이 은근슬쩍 많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리포트 쓴다고 자료 모으고 다니는거, 아예 책상 주변에 아무것도 놓지 않고, 오직 자료들만 쌓아놔서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해야만 리포트를 쓰는 체질이었으니까. 천성이 이러다보니, 아무래도 소설같은걸 쓰는 Y형과는 상당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리포트와 소설의 괴리를 뛰어넘어서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도 역시 마찬가지인건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다른 소설가중에서 S군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사실 S군은 의외로 빨리 데뷔를 한 케이스인데, 글 쓰는 중간 중간에 전공과목 부분과 지리쪽에 대해서 나한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뭐 전공과목 부분이야 내 밥그릇이 될 부분이니, 내가 되는대로 설명을 해 주면 될테고, 지리쪽에 관련한 질문은 지도와 모 위성사진 서비스를 통해서 충분히 인식이 가능하니까. 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오산이었다.

일단 S군은 생물학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질 못했다. 그런 사람한테, DNA가 어쩌고 RNA가 어쩌고, 단백질의 재조합이 어쩌고 하다보니, 분명 자기가 언급한 부분임에도 이해를 한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나보다. 당연히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도, 구체적으로 글을 쓴다는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덕에 S군은 나한테서 일주일동안 지겨운 생물학 강의를 E-Mail로 받아봐야만 했다. 그나마도 몇몇 부분은, S군이 두손 두발을 다 들어서, 내가 간단하게 글을 쓰고, S군이 다듬는 편법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내가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덕에, 내가 다닌 지역중 몇군데에 대한 서술을 나한테 부탁했는데, 내가 지도와 위성사진을 첨부로 보내고 이리저리 글을 써서 알려주려 해도, S군은 도저히 이해하질 못하는것이었다. 어떤 빌딩이 있고, 사거리가 있고 하는것까지는 어느정도 이해를 했지만, 왜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는지를 도저히 못알아듣는것이었다. 나같은 경우는 등고선만 가지고도 산의 모양까지 대충 맞출수 있었지만, S군은 하필 등고선에 약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변 지역을 그다지 잘 서술하지 못하는 내 탓이 가장 컸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S군을 끌고 직접 그 지역으로 찾아가서 다시 설명을 해 주었을까. 그때서야 S군은 "아, 이렇구나."라고 하면서, 내 말이 맞았음을 거의 반 어거지로 인정했으니까.

사실 책마을 필진 자리 또한 그렇다. 내가 무슨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하지만, 이 자리는 리포트를 쓰는 자리가 아니다. 내게 가장 익숙한 글 형태는 리포트나 보고서 형식의 글이지, 이런 장문 형식의 글이 아니다. 적당히 사진 첨부하고, 도표 그려가면서 참고 주석 좌라락 붙이는 글을 쓰는데에나 익숙하고 어렵고 비비꼬는데 익숙하지, 쉽게 풀어쓰고 남들 이해하기 쉽게 쓰는 행동이야 말로 진짜 머리에 쥐가 나는 일중 하나인것이다. 막상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 놓고 보면, 이건 리포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가지에 어울리는 글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글이 많이 나온다.

아마 내가 술자리에서 하이네켄을 다섯병정도 비웠을때,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를 Y형에게 했던것 같다. 그때 Y형의 말이 걸작이었다. "그까짓거 뭐 어렵게 생각해? 안되면 다시 써 봐. 나라고 애시당초 글을 잘 써서 소설가가 된건 아니라는거 잘 알잖아?"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칼럼에 올리고 싶은 글들이 뭉치째 굴러다니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뭉치들을 글로 가지런히 옮기는 과정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것도 딱 남들이 느끼는 어려움 만큼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이런 어려움과 함께 부비부비를 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마치 Y형이 몇년전에 그랬던것처럼, 필진제의를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나 역시 글을 쓰는 어려움을 택한것이니까. 

  
 
 
 
상병 송희석 (2006/06/18 15:24:40)

일단 제의를 건의한 사람이 매일같이 째려보고있다고 생각하면 편할듯. 제의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병장 박진우 (2006/06/18 15:35:54)

저도 뭉치째 굴러다니던 녀석을 그제와 어제에 걸쳐 여섯개정도 정리했습니다. 허허. 
아무래도 전 글쓰기의 바이오리듬이 존재하는 모양인가봐요. 

오늘의 글쓰기 지수는 99. 라던가...    
 
 
상병 이훈재 (2006/06/18 16:13:37)

"내게 가장 익숙한 글 형태는 리포트나 보고서 형식의 글이지..." 
저도 그래요.    
 
 
 병장 노지훈 (2006/06/20 09:37:46)

병맥주집과 구운 소시지라면 로드비어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