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을 손에 쥐고 (상병 허원영/050926) 
 
 
 
 
방향성

  필진의 자리를 겁없이 덥석 맡기는 하였지만, 막상 얼개를 쓰려고 하니 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할 수밖에 없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질문에 나는 가슴이 답답하였다. 필진의 자격으로 글을 올리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실존적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옛말 중에 틀린 것 하나 없듯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 가혹한 기회를 빌어, 간략하게나마 촌장님이 말한 내 <학문적 관심>과 <그러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과거의 일련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눈이 감겨있던' 국민학교 시절과, '눈을 뜨기 위해 영양을 섭취하던'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접어두자. 아마 내가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일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임한 교장 선생은 말하자면 일종의 '기독교 광신도'였다. 그에게 진리는 오직 '자신의 렌즈를 통해 굴절된' 편협한 기독교였고, 그외의 모든 것은 쓰레기였다. 그 시절 우리는 기독교의 우월성과 여타 종교의 불합리함, 그리고 기도의 힘 같은 교장의 '신앙고백'을 한 시간 가까운 조회시간 내내 묵묵히 서서 들어야만 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교육자로서 어느 한 종교를 옹호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교장에게 쓰는 글을 올렸다. 당시 익명으로 교장에 대한 여러 가지 욕설들이 올라오곤 했지만, 'IP를 추적해서 잡아낸다'는 전산담당 선생의 말에 기세가 수그러진 즈음이었다. 나는 저녁에 집에서 그 글을 올리고,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교장실로 불려갔다. 제발 말대꾸하지 말라는 담임의 신신당부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오랜 시간 설교를 듣고, 교장의 '안수기도'를 받고 나서야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 이것이 내 삶의 방향성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 최초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부당함' 같은 건 내게 선천적인 알레르기를 유발했다. 나는 세상이 왜 배운대로 굴러가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공정함을 가르치면서, 평등을 외치면서, 자유를 역설하면서, 평화를 주장하면서, 어째서 세상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좀 더 체계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더 많은 지식과 생각들을 접하게 되었다. '부당함'에 대한 방향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연구나 실천적인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세대'의 문제와 마주쳤다. 어째서 '우리 세대'는 무능한 세대로 매도당하는가? 왜 '우리 세대'가 온갖 부당함을 떠안아야만 하는가? 나는 그런 문제를 문학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학의 힘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갖게 되었다. 문학에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문학만으로 파악하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부당함'에 대한 생각들 사이를 거닐었다. 때로는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에, 때로는 일제가 남긴 잔재에 대해, 때로는 왜곡된 우리의 현대사와 현대사 교육에 대해, 나는 가볍게 노크하고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 당시의 나에게는 수많은 - 책들이 나를 찾아왔고, 그 수만큼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나를 찾아왔다. 한때는 '근대와 탈근대'라는 주제에 오래 머물러 있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내게는 너무 커다란 집이었다. 한 마디로, 나는 뉴턴 비슷하게 '부당함의 바닷가'에 서서 유난히 눈에 띄는 조개껍질들을 줏어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 조개껍질들 밑에 어떤 '거대한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군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내게는 촌장님이 이야기한 <학문적 관심> 같은 건 형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러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과거의 일련의 활동> 같은 것도 없다. 대학 때 내가 했던 '일련의 활동'이라고는 공강시간에 강당 옆 벤치에 느슨하게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다가, 혹은 졸다가 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 참, 다들 뭐가 저렇게 바쁜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 정도다.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으로 나라는 인간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얼개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칼럼을 운영할 예정이다. 하나는 [Ex-Libris], 다른 하나는 [에세이]이다.
  [Ex-Libris]는 말 그대로 '출전(出典)'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진중권이 쓴 동명의 책이 크게 히트를 친 바 있다. 구성은 이렇다. 내가 읽은 책들 중 마음에 드는 구절을 쓰고, 밑에 그 구절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다. 이건 그렇게 무거운 내용도 아니고, 짤막짤막하게 이어질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 주에 하나 정도는 쓰려고 마음먹고 있다.
  [에세이]는 말 그대로 나의 생각이다. 이건 신문에서 본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일상 생활에서 포착한 것들에 대한 단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토론이 침체된 책마을의 분위기를 감안해서 - 또한 필진으로서의 책임감으로 - 부족하지만 '시사적'이거나 '논쟁적'인 글도 시도해 볼 것이다.


각오

  북클럽은 인트라넷 유일의 인문·독서 동아리다. 그리고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인트라넷이라는 가상공간이라도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로 흔치않은 기회다. 더구나 각자가 책에 대한 나름의 열정과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걸러진' 정예 요원들인 바에야,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수많은 회원들 앞에 내 이름을 걸고 이야기할 자격과, 동시에 책임을 갖게 된 것이다. 사르트르의 말로 내 각오를 대신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겠다.

[……]작가란 아직도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 혹은 감히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작가란 사랑이라는 말과 미움이라는 말을 <솟아나게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말들과 함께, 아직도 제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사랑과 미움이 <솟아나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는 또한 브리스 파랭이 말했듯이 말이란 <탄약을 장전한 권총>인 것을 알고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권총을 쏘는 것이다. 작가는 물론 침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총을 쏘기로 작정한 바에야, 어른답게 과녁을 노리고 쏘아야지, 어린애처럼 오직 총소리를 듣는 재미로 눈을 감고 무턱대고 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병 허원영 (2005-09-26 14:16:09)  
책마을에 얼굴을 보이지 않은지 꽤나 오래된 상태에서 얼개를 올리자니 조금은 부끄러워지는군요. 그래도 다시 열심히 활동할 것을 다짐하면서, 예전의 얼개를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병장 이재용 (2005-09-26 14:30:10)  
멋쟁이! (라고 생각해요)  

상병 김동환 (2005-09-26 14:49:14)  
오옷! 원영님 반가~워요~(웃음)
기대하겠습니다아-.  

상병 김성엽 (2005-09-26 15:13:44)  
Ex-Libris의 칼럼이든 에세이든 다 좋아요..하하..언제나 글을 쓰시는 분들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이것 저것의 생각을 그렇게 정리하여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정말 대단합니다...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상병 이천용 (2005-09-26 15:19:25)  
기대되요.  

병장 손영청 (2005-09-26 18:35:37)  
정말 기대되네요.. 좋은 글 많이 부탁해요~~
저도 그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백번 천번이라도 피력해드릴테니.. 笑  

김택균 (2005-09-26 19:12:30)  
오랜만에 보는 사색의 글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내 정신에 물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잠시나마 나를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상병 김도형 (2005-09-26 19:13:13)  
지금 이 순간까지도 조명탄과 공포탄만을 난사해 온 제 자신을 추스르는 마지막 한 줄이 인상깊네요.  

상병 한상천 (2005-09-26 21:22:55)  
원영님 새로운 곳에서 첫 글을 다시 올려 주셨내요..
힘내시길..  

일병 민경갑 (2005-09-26 22:39:00)  
얼개편이 기대되네요.
부담갖지 않고 편안하게 쓰셨으면 좋겠어요.  

병장 최강현 (2005-09-27 07:50:45)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병장 구태우 (2005-09-27 10:05:59)  
허원영 상병님, 얼개를 읽어보고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담 드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칼럼 기대하겠습니다.  

상병 김강록 (2005-09-27 11:10:39)  
'세대'의 문제를 문학으로 얘기하려 하셨다는 말씀을 그냥 지나칠 수 없군요. 이 얘기를 따로, 아니 그냥 여기서, 아니...역시 따로 하는 게 좋을까요? (갈팡질팡)  

상병 허원영 (2005-09-27 14:50:46)  
강록님 / 사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제 나름대로 '우리 세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이랄까, 의식을 소설로 써보려고 했던 거죠.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야 많지만, 서두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가 애매하군요. 차라리 강록님이나 제가 거기에 대한 칼럼을 쓰는 건 어떨까요? 거기에서 이야기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병장 박상원 (2005-09-28 10:58:17)  
네. 좋습니다. 이름을 클릭하면 얼개를 볼 수 있습니다~~  

병장 손영호 (2005-09-30 11:39:39)  
난 아직 실탄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비어있는 탄창만 물끄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