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에겐 느낄 수 없었던 관념. 

종종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사물을 보며 느끼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하루키의 방식대로 하나하나 간결하게 연결되고 만다. 다른 어떤 책을 읽어도 이러한 추상적 관념들은 뒤죽박죽 내 머릿속에 거미줄처럼 엉켜있지만 하루키의 책을 읽을때 만큼은 그렇지 않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되어 마치 하루키가 되어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 것 이다. 내가 꼭 하루키처럼 관념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되고 만다. 좀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느꼈던 과정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담배를 몰래 태우고 있었다. 이 순간 나는 긴장하게 된다. 누군가가 들어와 담배를 태우는 나를 발견한다면 나는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만약 화장실을 관리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나 건물의 고위 관료라면 더 골치 아플거라는 생각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담배연기를 뱉어낼 때 누군가가 갑자기 들어왔다. 얼룩무늬 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소변기 쪽에서 얼른 좌변기 칸으로 몸을 숨기느라 얼굴은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닌 듯 했다. 좌변기 칸에서 나는 숨을 죽이며 그가 어서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소변을 보고 머뭇머뭇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비스듬한 틈새를 통해 그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나 얼룩무늬 셔츠가 담배연기를 맡고 밖에서 나를 끝까지 기다리며 왜 화장실에서 담배를 폈느냐고 추궁을 한다면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상황은 더욱 곤란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화장실에서 심심찮게 담배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내 밑으로 떨구어진 지저분한 담뱃재의 흔적들은 종종 화장실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얼룩무늬 셔츠는 수돗물로 손을 몇 번이고 씻어내더니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얼룩무늬 셔츠는 후각이 덜 발달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그도 이곳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 중 한명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안심을 하는 동시에 내 눈앞에 붙여있는 ‘담배와 침을 뱉지 마시오’ 라는 경고성 프린트를 보며 도덕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러는 한편 홀가분한 기분을 나는 화장실을 나섰다. 
이렇듯 나의 희미한 생각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구분품?정리된다. 다른 책을 읽을 때 느끼지 못한 경험이었고 실제로 나는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화자와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비록 내가 하루키는 아니더라도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에 동요 받는걸 보면서 나는 하루키의 책을 읽는게 아니라 그의 인생을 읽는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며. 

내게 쉽게 읽히는 책과 어렵게 읽히는 책을 택하라면 단연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 중에서 좋은 책은 쉽게 읽히는 동시에 그 안에서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내용이 내게 전달되어야 한다. 읽기 어려운 책은 무분별한 현학적 용어사용과 읽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유의 책이다. 다시 읽으면 이해되는게 대부분이겠지만 또 다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나의 역량부족을 탓하기보단 책을 쓴 지은이나 번역가를 탓하고야 만다. 허영원도 이와 같은 고민을 칼럼을 통해 올린 바 있다. 그가 말하길 어려운 책일지라도 그 책엔 나름에 이유가 있고 자신의 지적사고를 탓할 필요없이 그런 책은 그 책 나름에 의미가 있으므로 그러한 책을 쓴 작가의 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쉽게 읽히는 책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손꼽는다. 나의 독서량이 늘어난 것도 전적으로 그로부터 시작했다. 그로 인해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챈들러 등을 알거나 읽게 되었고 또 그들을 통해서 다른 책을 확장 시킬 수 있었다. 하루키 책에는 항상 주인공과 관련돼 닿을 수 없는 사물이나 인물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주인공은 그러한 것들을 찾으려 한다. 그런 사물과 인물들을 찾으려 손짓을 내밀고 방황하다 결국에는 자신에 손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시 소멸한 상태이거나 잡을 수 없는 형태로 남거나 날아가게 된다. 이렇듯 하루키는 상실을 표현해내고 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또한 이러한 상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과거의 사랑으로부터 새로운 사랑은 걸림돌이이 되곤 한다. 그 과거의 첫 사랑은 주인공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이며 동질적인 존재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곳곳에 산재해 주인공을 엉켜놓고 뒤흔들고 있다. 과거의 결핍과 상처란 주인공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자 에너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은 오로지 시마모토뿐이다. 외동으로 자라 느꼈던 외로움과 편견들은 주인공에게 커다란 장애요소이지만 시마모토를 만남으로서 주인공 하지메는 온갖 장애로부터 해방된다. 그 해방은 안락이요, 애증이며, 사랑이었다. 그러나 중학교가 되면서 시마모토와 멀어지게 된다. 그 전까지 하지메는 주로 시마모토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집에서 음악과 책을 듣고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마모토의 어머니는 하지메에게 걸림돌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하지메가 그녀의 집으로 올때마다 반겨주지만 좀처럼 어머니에게서 친근함보단 이제 시마모토를 찾아와주지 않았음을 느끼고 만다. 하지메가 중학생이 되는 동시에 시마모토와 다른 학교를 배정받고 하지메는 시마모토와 멀어진다. 외부에 요인으로. 
고등학생이 된 하지메는 이즈미라는 여자친구를 만난다. 그녀를 좋아하고 이해하지만 좀처럼 이즈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녀와 공통분모가 없었다. 그녀는 외동도 아니었고, 책을 좋아하지도 음악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성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여자친구 일뿐이었다. 사춘기 탓에 성적욕망이 넘쳤던 하지메는 그녀와 섹스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즈미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다 하지메는 이즈미의 친척언니를 만나 동시에 데이트를 하고 이즈미 몰래 친척언니와 밀회를 한다. 친척언니는 하지메의 성적욕망을 채워주는 존재이자 흡입력을 가진 여자였다. 꼬리가 길면 걸린다고 했다. 결국 이즈미는 모든 사실을 알게되고 하지메와 헤어진다. 여기서 이즈미는 하지메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는 이즈미 인생에 치명적인 악재가 되고 말았다. 이렇듯 주인공 하지메는 시마모토에게서 영향을 받아 어떤 이성을 만나든지 간에 자꾸 시마모토와 비교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이즈미는 하지메한테 느낀 배신감과 충격으로 인생이 꼬여 버리고 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로부터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 쓰길 원했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그 과정을 면밀히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대학을 입학한다. 대학생활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떤 사람을 만남에도 하지메는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이 공허해 보인다. 몇몇과 사귀기도 하고 동거도 반년쯤 하지만 다들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사귀는 내내 생각한다. ‘아니야. 이런게 아니야’라고. 결국 하지메는 고등학교 시절 이즈미에게 입힌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을 한다. 일을 아무리 몰두하고 노력해도 흥미를 갖지 못한다. 그는 예전보다 더 깊이 혼자만의 세계에 박혀 산다. 그러면서도 곧잘 시마모토와 이즈미의 사촌언니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메는 이성을 만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압도적으로 뒤흔들만한 흡입력을 가진 여자를 찾길 원하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그런데 시마모토와 이즈미의 사촌언니에겐 그런 것이 있었다. 
서른 살. 하지메는 유키코를 만나 결혼하고 장인의 권유로 출판사 편집일을 그만두고 빌딩의 재즈카페를 차린다. 재즈카페를 차려 수익이 오르고 값비싼 외제 자동차를 사고 부유해진다. 그러나 하지메는 장인어른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진거라 생각해 괴로워 한다.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는가하는 정체성의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렇듯 한번 뭔가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잘되지 않는 일이 다른 잘 안되는 일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상황은 끝도 없이 나빠지고 만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그곳에서 꺼내주기까지. 그러다 재즈카페가 유명해지고 잡지에 실리게 되면서 하지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중에 시마모토가 있었고, 이즈미를 발견한 동창생을 만나 근황을 듣게 되고 하지메는 놀라움과 동시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시마모토를 만나 하지메의 인생은 크게 흔들리고 만다. 이즈미의 사촌언니를 만났던 그때처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전작에서 보이던 연애-상실 모티브에서 벗어났다. 전작과는 달리 주인공이 찾아 헤매는 시마모토는 불완전한 상태이지만 실제로 남아있고 그녀와의 관계를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 버린다. 이는 기존 하루키 작품에서 보이던 상실과는 다른 맛을 지녔다. 전작 양을 i는 모험에서 주인공은 별 무늬의 양을 찾는 모험을 떠난다. 그 양을 찾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위태로운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안착하고 양의 존재 유무를 확인한다 . 그러나 주인공이 찾고 있던 양의 실체는 희미한 상태로 남아 연기가 되듯 이미 사라져 버렸다. 상실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나오코와 사랑을 간절히 갈구하며 그녀와의 사랑을 되돌리길 바라지만 나오코는 불분명하며 비정상적인 상태로 남다 나오코의 자살로 결국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지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는 다르다. 주인공이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시마모토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주인공의 주위를 멤돈다. 시마모토를 다시 품에 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주인공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에 대하여 하루키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책을 다 덮은 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살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점이다. 그 기억들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며, 축적된 기억들을 성숙하게 발효시키는 것 또한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던가. 

 
 
 
 병장 임정우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살고, 또한 자유로와 질수있느냐 하는 부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물론 쉬울리 없겠지요. 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