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일병 홍명교 2009-03-30 11:08:54, 조회: 125, 추천:0
<구토>
많은 사람들이 사르트르의 대표작 <구토>를 읽어보았거나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남았는가는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구토>를 두 해전에 낭만적으로만 기억되는 한예종 도서관에서 읽었음에도, 내게는 그쳐 스쳐지나간 것에 불과했다. 이런 것은 그저 ‘무자비’한 종이에 불과하다. 그땐 그것이 현재였으며, 그것을 읽는 찰나에 그것은 내 것이었지만 이내 사그라진 기억의 찌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소설은 그 명성이 너무도 높은 현대문학의 기념비같은 작품이기 때문에 이 소설의 감상을 쓴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말로 표현하는 것이 때로는, 또는 누군가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일이겠지만) 이것은 모순으로 얼룩져 관계맺음의 망을 단절시키고 왜곡시키며 언어를 곡해시키는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며, 휴머니즘과 권태, 존재와 무에 대한 사르트르의 철학적 성찰이 깊게 베어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더불어 로캉탱이라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이것은 하나의 ‘방황기’이며 또 동시에 오늘날 인간 모두의 방황기이다.
부빌이라는 도시에 ‘존재’하는 로캉탱은 끊임없이 배회하고 방황한다. 미술관, 도서관, 카페, 술집. 그는 18세기에 존재했던 어떤 귀족주의자 드 로브아(?)의 삶에 대한 작품을 쓰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이들을 문필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로캉탱이며,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주침들을 소모적이며 불필요한 일 쯤으로 여기는 도시인에 불과하기도 하다. “아무런 예고도 없는 밤”을 맞이하고, 주점 여주인과 사랑없는 몸들의 부딪힘이 있을 뿐인 하룻밤을 보내며, 카페 드 브루통이나 바르 드 라 마린 같은 곳에 멈추어서서 문과 문 사이를 배회하고 문들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과 경계에 비롯된 것이며, 회의하는 관계맺음의 연속적인 결과이다.
18세기 귀족들의 삶에는 광채, 요컨대 “아무라”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들에겐 그것이 사라졌으며, “찌꺼기”와 같은 존재로 살아갈 뿐이다. 로캉탱은 매일같이 무언가를 쓰고, 연구하지만 그것은 그저 “무자비한” 종이에 불과하며, 쓰고나는 그 순간부터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잔인한 날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수 년전의 이별 이후 만에 편지를 보내 약속을 정한 옛 애인 안니와의 만남과 기약없는 이별,
주점에서 여주인을 만나듯이 도서관에서는 독서광을 만난다. 그는 로캉탱과는 동류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서광의 목적없는 삶, 인물들의 알파벳순을 따라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읽고 정리하는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삶을 바라보며 낯선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 카페에서 만난 그 때에는 독서광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편집증적인 권태로움을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가 독서광이나 다른 배회자들과 맞부딪치면서 형성되는 감정의 사소한 변화들은 로캉탱의 ‘여행’을 어떤 ‘지점’으로 이끌어가는 거의 유일한 극적 요소들이다. 로캉탱이 마지막으로 부빌의 도서관에서 맞는 사건(광경)은 그를 인생의 극단적 지점에 부딪치게 한다.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는 로캉탱 자신의 삶을 ‘죽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로캉탱은 떠나기로 한다. 부빌을. 삶은 계속될 것이다.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 권태로움 덩어리의 끝에서도 부여잡고 기어이 살아가야하는 어떤 삶이 말이다. 모든 군더더기들과 구토로 가득 한 오염물들이 떨어져나간 찌꺼기와도 같은 것이.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6-01
15:36:31
상병 김유현
저자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로캉탱과 독서광과의 만남은 「독학자」라는 제목의 한국 소설에서, 주인공이 서술하는 특정한 친구와의 만남 -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신성(神性)을 공격하던 시를 짓던 - 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서도 비슷한 만남이 있었던 듯 한데, 이쪽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