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바리에떼(Variete)』 
 병장 진규언 04-16 10:47 | HIT : 200 



 한 사회와 다른 사회와의 만남
 그것은 다른 사회를 알기위함 보다는, 다른 사회를 통해
 내가 속한 사회와 스스로의 가치를 돌아보는 데 있다.  
 홍세화 <악역을 맡은자의 슬픔> 中

 그래서, 이래서 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리저리 수많은 책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택할 수 있는 그것이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시간과 의지조차 제약되는 이곳에서는 1권의 책을 읽더라도 곰곰히 고민해야 했다.(밖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데 바리에떼라니. 저자는 이야기한다. 영어의 variety, 한국어의 다양성 이 가지는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어 논의를 진전시키고 싶다고 말이다.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의 '바리에떼'를 서두에서 언급한다. 은연중에 형성된 기대치는, 책으로 접하는 다른 사회를 통하여 나의 가치를 제고해 보려는 의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체계가 잡혀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일정한 체계없이 생각을 무한정 펼쳐놓은 책 1권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이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책의 표지에 적혀있듯이 '문화'와 '정치'에 대한 파편들과 같은 담론을 엮어놓는다면 깊이 있는 지식보다는 일상적인 생각만을 얻을 터였다. 그럼에도 신선한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내가 사상적으로 편협하다거나, 그가 진정한 '자유주의자'이거나 아니면 둘다 였다. 


 경어체를 쓰면 이 글이.. 쓸데없는 선동이나 선전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감에..

 실존하는 사람들중 진실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도 그렇습니다. 늦은밤 학교앞 술집에서 친우들과 밤을 새며 이야기를 하더라도,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논쟁을 즐기더라도.. 결국 자신이 아는것만을 말하게 되며, 생각의 다름 따위는 종국에 가면 존재하지 않게되네요. 
 신입생일적 그저 술마시는것이 좋았고, 술자리가 좋았고,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무한한 토론과 논쟁의 장이 좋았습니다. 결국 '다 똑같다'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저 허탈한 웃음만 짓고, 타성에 젖지 말자. 길들여지지말자. 세상에 물들지 말자. 라는 판에 박힌 이야기들만 하더라도, 무언가 아는척을 하며 정치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은.. 더나은 내일을 위하여 고민하는 피끓는 젊은이라고 자위하기에 충분한 도구가 되었지요. 그때도 그랬습니다.

 고종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건, 70년대에 출생한 어느 선배를 통해서였지요.
" 어차피 자유주의란 없어. 다 지들 나름의 논리로 무장한채 서로를 향한 폭력만이 능사일뿐.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정신(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일뿐.. 이 나라의 현재 좌우를 막론하고 개인의 자유를 엄정하게 보전하려고 하는건.. '고종석'밖에 없어.."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어지는 정치적인 이야기들,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 스무살의 아이에게는 다 버거운 이야기였지요.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제가 무슨 '사상'을 하사받았다는건 아닙니다. 쓸데없이 고집은 셌으니까요.(이건.. 나중에 이야기해요) 상당히 취해있어도, 학교 연못에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정도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도.. 그 이름 석자만은 은연중에 기억에 자리하게 됐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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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마을에서 누군가가 추천을 해주더군요. 진정한 '자유주의자'를 만나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추천하겠노라고. 그의 저서가 꽤 많았어요. 언뜻 보더라도 10권이 넘네요. 그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적어도 2~3권은 읽어봐야 하며 다 읽어보는게 좋겠지만.. 아직 그 길이 요원하여 가장 근작을 택했습니다. 참 자유롭네요 이 사람. 거침없이 내뱉는 말들속에 뼈도 담겨있고, 가볍게 읽기 좋았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네요.

 며칠전 읽은 진중권의 <폭력과 상스러움>과.. 상통하는 부분도 상당합니다. 어차피 '자유'를 표방하는 이상, 개인 사상의 자유까지도 온전하게 보전되어야 하겠지요. 국가 안보를 위하여 폐지되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던 하나의 법안에 대한 생각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생각들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심지어 마약까지도 개인의 선택에 맞겨야 한다는 생각은 납득하기가 조금 힘들었어요.(아 물론, 그들이 마약중독자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저릿한 자극으로 다가오는건.. '국가'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가치가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였지요. 선혈을 뿌리며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유독 많은(함몰된 개인들의 표상인) 삼국지를 지어낸 이문열이라는 아저씨를 지독히도 비판합니다. '죽은자들을 위한 변호'라는 글에서 기모찌의 나라에 협력하였던 우리네 수많은 선조들을, 지금은 죽어 없어진 그들을 변호하는 생각을 보여주었던 복거일이라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그 아저씨의 생각이야, 첫번째.. 그들의 통치가 굉장히 잔혹하여 '딴생각'을 할 수 없었던 시대상황이었고 언론과 계몽의 자유를 일정부분이나마 얻으려면 협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구태의연한 이야기. 이 아저씨의 위험하고도 발칙한 생각에 대하여 아주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통쾌하기도 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새나갔네요. '국가'라는 가치가 통치의 수단으로는 될지언정,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누누이 이야기하는데.. 맞는 말이에요. 며칠전에 플라톤이 엮었다는 <국가론>을 읽어보니, 이상적인 국가건설을 위하여는.. 우등분자들간의 교배만을 허락하여야 하고, 열등분자들끼리의 교합이 장려되어야 한다. 라고 합니다. 내지는, 나면서부터 공동생활에 길들여져야 하고..(여기서의 공동생활이 조금 지겨워 지기 시작했는데..) 가족의 가치란 부차적인 것이며 더군다나 하찮은 개인의 존엄성보다야 국가의 앞날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라고 역설합니다. 이상국가를 향하여,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통치자의 책무이며, 이것을 따르는 것에 자유가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자유는 국가에 헌납하되, 경제적 자유의 길은 나날이 증대될 것이다. 무시무시한 주장이지만 이것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우리네 가까운 역사에 있었지요. 내가 없어져버린, 뼈마져 사그라져 버린 구국의 결단. 온몸이 불타버린 나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구국.

 또 이야기가 새나갔지만... 그러나, 저와 동성(동본인지는 모르지만..)의 아저씨가 힘주어 이야기하고,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설파하는 논리에는 심각한 결함이 존재합니다. 개인의 자유 다 좋아요. 엄정히 따져보지 않더라도, 개인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그들이 만나 이루어내는것이 민주주의니까요. 그렇다면.. 바로 국가의 일을(크건 작건) 논하는 것을 누가 하겠느냐 이거지요. 쥐뿔만한 인센티브밖에 없고, 돌아오는것은 오명뿐이며..(학교 학생회도 마찬가지 잖아요. 잘하든 못하든 욕은 먹고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 분명있는데.. 점점 맡기 싫어하고.. '자유'가 증대될수록 공동체의 앞날이란..) 아. 그럼 누가 해야할까요. 하이닉스가 이천에 공장을 짓고 싶다는데, 된다 안된다 가부를 결정해주는것은 누구이며.. 막말로 걔네가 공장을 짓든 말든, 까부시든 내가 반도체 회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데 나와 상관없잖아요. 

 결정권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것은..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개인이 존재하여야 가능할터인데 말이지요. 정치 '따위'에 관심없음의 관심을 보여주는 개인분들이 늘어나는 마당에..명예와 자부심이 통치자들, 집권자들의 유일한 동력입니다. 아 물론, 권력을 가진다면야.. '부'또한 자연스레 따라오는 성질의 것이겠지만.. 그것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건 나쁜 소수이겠지요. 라고 믿습니다. 참여정부들어 공직자의 기강이 점점 바로 서고 있다고 믿는 이상.. 유일한 동력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개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옹호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규정합니다. 존중되어야 합니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정치에 완전히 찬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그래도 부분적으로는.. 자격있고 능력있는 소수가 이끌어 가는 사회에 대하여 찬성합니다. 위험한 생각이지만 추후에 언급할게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이자 본인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가치를 우리는 상식이라고 부릅니다. 상식의 다른말은.. 비상식에 대한 거부.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애초부터, 상식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라져왔나봐요. 거리에서 두발단속하는 것이 상식이었고, 국가의 수장을 간접선거로 뽑는것이 상식이었고, 잘못을하면 끌려가 맞으면서 혼나는 것이 상식이었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상식이었고.. 상식이었고, 상식이었고...그래도, 우리네 쌍꺼풀쟁이 아저씨(할아버지?)가 이야기 했던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의 상식은.. 앞선 상식들과는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달랐습니다. 적어도, 토론의 활성화와 논쟁의 활성화.. 적어도 시끄러워 졌잖아요. 자꾸 자꾸 언론과의 다툼으로 인하여 굉장한 불합리성과 부조화와 불협화음이 일어나긴 했지만서도, 자전거를 뿌려대며 '무가지'수준으로 횡행하는 몇몇 신문들이 당연한 상식이었다고 믿었던 수십년이.. 상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문점도 제시했고.. 투명성의 측면에서야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여전히 밀실정치는 계속되고 있겠지만..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합의나 협정문 체결또한 계속되고 있겠지만.. FTA협정문 자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보다야 많이 시끄러워 졌지요. '비판적'지지자로서..(물론 전에야 비판적 '지지자'였지만) 장점보다야 단점이 부각되는 그분에게 이렇게나마 의의를 부여합니다. 시끄러워졌으니까. 상식이 상식이 아닌게 되고, 상식이 상식이 되고. 

 요약하면 저는 경제적인 자유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기반으로 하여야만 성립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자유를 담보로 하고 얻어지는 경제적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아닐것 같습니다. 이토록 순진합니다. 마키아벨리가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힘주어 언급했듯이, 통치가는 순수하거나 순진하면 안된답니다. 그래서, 저는 통치가가 되기 힘든가 봅니다.

 자유주의자이거나, 자유지상주의자이거나 그 영역의 사람들이 가로맡을 부분들이야, 이런부분아닐까요.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신체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의 자유 등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유독 '사상의 자유'만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명증한 논리로 성찰하며 궁구한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라도 정치적 자유가 선행되어야 하지않을까요.

 아주 그냥. 바리에떼합니다. 읽어볼 만한 책이며, 읽어볼 만한 사람입니다. 
 고씨 아저씨를 앞으로 몇번이고 더 만나볼 듯 합니다.


 변명. 그렇다고 제가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진짜 변명. 그래도 결코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니까요.


 두루뭉술한 변명. 플라톤 <국가론>과,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과 고종석 <바리에떼>를 거의 동시에 읽었고.. 어떤 제목으로 독서후기를 달든지, 내용은 거의 같았을꺼에요. 바리에떼로 정한건.. 순전히 제목이 더 마음에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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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장 박상호 
 고종석씨의 책은 예전에 코드훔치기 밖에 읽어보질 못했네요. 새천년을 맞으며 쓰여진 기획물이라 지금이랑은 시의성이 좀 떨어지겠지 싶었는데, 규언님 글을 읽어보니 별로 그렇지도 않은가보네요. 그만큼 이 사회가 정체되어 있다는건가. 잘 읽었습니다. 바리에떼. 나가면 서점들러서 봐야겠네요。笑 04-16   

 일병 임승관 
 제가 정치 '따위'에 관심없음의 관심을 보여주는 개인분들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땀) 
 진규언 병장님께서 언급하신 내용들 중에 상식과 자유라는 것에 대해 공감이 가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식의 정의가 시대마다 달라지고 토론과 논쟁이 활성화 된 것이 '쌍꺼풀쟁이 아저씨'가 말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한걸음 다가선것 이라면.....언젠가는 진정한 상식(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상식이 언제까지 누구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이 통하는 사회로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될수 있으려면 자유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경제적인 자유는 차치하고서라도 정치적인 자유(전 아직도 우리나라가 정치적인 자유가 성립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가 성립되는 그런 나라가 되려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A 가 되기위해는 B가 필요하고 B가 되기위해는 A가 필요하다..... 
 제가 생각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상식이 통하는 자유로운 나라가 되길 빌어보며 이번 투표는 좀 진지하게 참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웃음) 04-16   

 병장 진규언 
 상호님의 지적대로, 시의성은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2007년 1월이 초판 발행일이나.. 책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21세기의 초엽에 쓴 글들이 다수이지요. 예를 들면 16번째의 큰 선거 직후에 쓴 글들이나17번째의 대표자들을 뽑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 쓴 글들과 같이.. 그렇지만,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걸 보면, 저의 게으름 탓이거나.. 정체된 사회탓일꺼에요. 

 승관, A와 B 뭐가 먼저필요인지는 모르겠지만.. 둘다 중요한건 맞는것 같아요. 저도 굉장히 진지하게 참여할랍니다. 선거권을 부여받은지.. 얼마 안되서, 이번이 두번째이겠지만.. 04-16   

 병장 이건룡 
 고종석씨는 그외에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시기로 정평이 나 있더군요. 그리고 그의 정치사상은 싫지만.. 04-18   

 상병 이주형 
 개인적인 눈으로, 진규언 병장님은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망으로, 
 한국의 보수가 진규언 병장님 정도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뭐.. 어디까지나 소망입니다. 희망일까요. 망상일 수도 있습니다. 쨌든. 04-18   

 병장 김지민 
 때로 보수는 위험하다, 진보는 위험하다 하는데 
 사상은 위험한 것이라서. 

 저에겐 고민하는 규언님의 사상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바리에떼에 대한 수용. 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