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 니체의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상병 손동철/050921) 
 
 
 
 
고병권 - 니체의 위험한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시작

  나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난 몇 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다. 공동체 모임에도 참석해보고 철학이나 자기계발서를 비롯해 정신분석 관련 책들도 많이 읽어 왔다. 이런 노력들은 많은 도움이 됐지만 결정적이진 못했고 대부분 단순 지식화나 단발성으로 그쳤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니체의 사상은 가히 폭발적인 힘으로 내 두뇌와 신체를 때렸다. 그의 표현대로 그의 사상은 다이너마이트였다. 니체는 '나' 자신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니체에 대한 여러 전문적인 해석이 많지만 그와 상관없이 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1. 나는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나의 삶은 어땠나? 허무주의, 염세관, 피로감, 피동적, 수동적, 순응, 복종 그리고 가치창조 및 판단의 포기로 이어진 삶이었다. 예를 하나 들겠다. 난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내 언행은 타인에 의해 좌우됐다. 내가 먼저 뭔가를 한다는 것은 매번 날 불안케 했고 또 그럴 자신감도 없었다. 오죽하면 신병훈련소에서 총검술이나 각종 제식을 비롯한 연무동작에서 정확히 그 과정을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 눈치보다 틀린 동작을 따라해 혼났게는가.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나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없다는 것, 즉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성질은 나를 수동적이게 만든다. 노예로서의 삶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 확실히 그렇다. 나에 대한 긍지의 결여는 날 노예로 만들었다. 아래를 보자.

    1.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다. 타인의 평가방식대로 산다.
    2. 시선공포증이 있다.
    3. 확고한 주관이 없다. 나만의 가치평가 방식이 없다.
    4. 뭔가를 먼저 나서서 한다는 것은 정말인지 피하고 싶다.
    5. 모든 것이 귀찮고 피로하다. 심지어 말하기도 귀찮다.
    6. 명령하고 지배하는 것보단 순응과 복종이 훨씬 더 쉽다.
    7. 차이와 다양성 그리고 변화가 싫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두려움.
    8.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낀다.
    9.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자신을 부정하고 타인을 평가절상한다.
    10. 웃음과 놀이 그리고 춤을 잊어버렸다.
    11.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줄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
    12. 능동적이지 못하다. 먼저 창조하지 못한다.
    13. 타인은 물론 세상의 가치에 별 비판없이 순종적이다.
    14. 자신의 신체를 경멸한다.
    15. 사람, 사상, 물질 등에 의존적이다.
    16. 고통을 두려워 한다.
    17.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질) 용기가 없다.

  위 17 개의 항목은 내 내면에 억압된 '그것'들을 자유연상으로 억지로 끄집어 낸 것들이다. 표현만 다른 동어반복의 항목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위 항목들이 내 약점들이며 열등감이고 이와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변태도 아니고 왜 굳이 저런 걸 끄집어 냈단 말인가? 그것은 내가 이해한 '니체'가, 즉 '나'의 니체가 위의 항목들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대략 두 가지로 말 할 수 있다.

  하나는 니체가 말한 주인(귀족, 강자)과 노예(천민, 약자)의 구분이다. 주인과 노예를 구별하는 기준은 스스로 가치를 창조 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즉 주인이란 것은 자신만의 가치평가양식과 가치창조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주인에게 있어 가치란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비롯되고 삶을 긍정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간다. 반면 노예에게 있어 가치는 타인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되며 늘 피로감에 젖어 있고 수동적이며 삶을 부정한다. 주인에게 있어 부정은 긍정을 위한 부정이지만 노예에게 있어 부정은 부정을 위한 부정일 뿐이다. 여기서 긍정을 과잉이라고 한다면 부정은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묻는다.

    "나는 개개의 경우에 다음과 같이 묻는다. '여기 만들어져 있는 것은 기아가 원인인가, 과잉이 원인인가?'"

  다른 하나는 니체의 핵심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원회귀와 권력의지 그리고 위버멘쉬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어떤 '알'이다. 그런데 이 알을 깨뜨리고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가 있었으니 그 새의 이름은 "신은 죽었다"이다. 새의 이름이 '신은 죽었다'라니 뭔가 분명 이상하지만 쓰는 사람 맘이므로 어쨌든 '신은 죽었다'. 신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뭔가? 난 내 삶의 연금술사이고 가치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데 도대체 왜 종교를 비롯해 습속의 윤리와 도덕, 이념, 타인의 가치관 따위들이 내 삶에 끼어들어 귀찮게 만드냐는 일종의 짜증인 것이다. 그러니까 짜증나서 신을 죽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는 외친다. "필요한 것은 모든 가치의 전환 그것뿐"

2. 위버멘쉬(초인)

  니체는 다양성과 차이를 억압하는 '지배적'인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신도 죽였고, 철학, 정치, 과학, 도덕, 윤리 등 지배적인 가치를 모두 망치로 부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제발 '네' 생의 주인으로서 좀 살라고 외쳤다. 이런 그의 생각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내' 정신과 신체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어떤 정체성을 그는 거부한다. 끊임없는 자기 자신의 극복. 이를 통한 자기강화와 생에 대한 긍정. 이 때 고통 같은 부정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긍정된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어린아이의 유희로서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을 즐기는 것이다. 이를 위버멘쉬라고 한다. 그런데 위버멘쉬로 변신하기 위해선 임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새로운 자기를 임신할 수 있는 능력, 새로운 가치를 품어 새로운 자기를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말이다. 이는 변화와 차이 그리고 다양성을 긍정하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허무주의 같은 피로감에 젖은 사람은 불임증에 걸려 새로운 자기를 창조할 수 없다. 즉 그는 위버멘쉬가 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니체의 말들을 직접 들어 보자.

  "너에게는 너 자신을 잃고 몰락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너는 결코 새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오늘은 날개, 색, 옷 그리고 힘이었던 것이 내일은 단지 재가 되어야만 한다"

  "개인은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하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자기를 생성시킨다"

  "그렇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너는 너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을 네 안에 갖고 있는가?"

  "상처에 의해 정신이 강해지고 힘이 회복된다"

3. 이것이 생이었더냐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놀이로서 생을 즐긴다. 무한히 다른 것으로 반복되는 삶의 변화에 쫄지 않고 정적인 안정보다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한 번 더'를 외치겠다. 주사위의 수는 6 경우이다. 무한히 던져도 결국 나오는 경우의 수는 6 경우 중 하나다. 그런데 동일한 숫자는 반복될 수 있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동일한 상황은 반복되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질 때와 받을때의 '나'는 전혀 다른 나이다. 니체를 통해 난 주사위를 '한 번 더!'외치며 던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4. 잡담 
    
  예전에 어떤 지적허영심에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원저를 기대감에 들떠서 샀었다. 그런데 그 사상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라면받이와 곤충제거용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아침놀, 선악을 넘어서/도덕의 계보 좀 읽고나서 이 책을 보니 비로소 쬐금 니체가 보인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 멀다. 읽어야 할 니체의 원저도  많지만 들뢰즈, 데리다를 비롯해 국내 니체 연구가들의 책들도 봐야 할 것 아닌가. 노력과 시간도 시간이지만 책을 살 돈이 없음에 목이 메인다.





상병 정치환 (2005-09-21 23:33:12)  
확실히 저도 이책을 부대에 가져왔다가 책꽃이 장식용으로 남겨져 버린 슬픈 과거가 있었죠... 저도 다른책을 좀 읽고 다시 입문해야되는걸까요, 흐음. 동철씨의 그 극복되어야 할 몇가지가 저에게도 통용되는것 같아서 왠지 이책에 눈길이 가는걸요.  

상병 한상천 (2005-09-22 08:19:43)  
내 생의 주인으로 살라!!

오래전부터 사야할 목록에 추가 되어있지만 여전히 구입하지 못하고 있어요..
조만간 꼭 구입을 해야겠습니다.  

병장 한상원 (2005-09-22 08:21:44)  
잘 읽었습니다. 한 철학자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꾸셨군요. 축하드려요.  

상병 김동환 (2005-09-22 08:22:28)  
요거 참 재밌죠.(웃음)  

상병 김강록 (2005-09-22 09:01:43)  
니체의 '한번 더'는 당구장에서의 '결!'을 연상케 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결!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당구공이에요.  

상병 이효철 (2005-09-22 09:02:09)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고병권씨 다른저서보다는 훨씬 몰입감이 있는것 같네요~
참 재미있어요 하핫  

병장 최재호 (2005-09-22 10:11:53)  
허~잘 읽었습니다~이런 건 제게 있어 늘 마음 안에서만 머물고 쉬이 정리되지 않는,정의되지 않는 뿌연 
안개와 같은 거였는데.. 호~ 조금은 시야의 뚜렸함이 마구마구 느껴지네요~ 
이 니체의 핵심개념은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위버멘쉬'의 추구를 보니 문득 '생의 한가운데에'의 '니나'가 생각이 납니다. 생에 있어 주어지는 과정을(많은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내고자 하는 '니나'의 생의 방법론이 같은 맥락이 아닌가라고~ 그리고 파스칼의 '위대한 사람이란 수레바퀴의 가장자리로 스스로를 내모는 이들이다'란 사유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지~  

병장 박윤철 (2005-09-22 10:29:36)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살 때는 큰맘 먹고 샀지만, 지금은 책장에 꽂혀만 있다는 비운의 책이지요. 절반 정도 읽다가 이해할 수 없는 마법서와도 같아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저희 학교 선배 중에 같은 이름의 분도 니체의 책을 군대에서 보고 심취했더랬죠. (이름이 정말 한글자만 빼고 흡사하네요...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참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만, 제가 지금 노예란 사실만 깨닫고 항상 지쳐 빠져나와 버리는 사상입니다. 대학 시절에 '도덕의 계보', '선악을 넘어서' 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신인류만이 해독할 수 있는 사상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웃음)  

일병 이계문 (2005-09-22 16:57:44)  
저도 이번에 한달에 걸쳐서..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 윗분처럼 철학적인 접근은 하기 힘들었지만...
마지막에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접근방법은 정말...앞으로 평생 못잊을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전...낙타와 같이 그냥 항상 "네"라는 긍정만 할 뿐 "아니오"라고 못하는 피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이제는 신에게 도전하는 용맹한 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저의 상태가 사자와 같은 상태라고 믿고 있었습니다.(무언가 바꾸려고 하는 작은 미동에서 
만큼은 말이죠.) 그러나 조만간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긍정을 가진 제가 되려고 합니다.
아직 머리에서만 맴돌고 말로는 표현 못하겠지만...그래도 책의 감동을 표출하고 싶어서..이렇게
말도 안되는 글들을 써내려가봅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상병 오재환 (2005-09-22 18:41:22)  
니체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읽어보고 싶어요'란 마음가짐만으로는 버거운 책일 것 같긴 한데.  

상병 김강록 (2005-09-23 08:24:54)  
재환님 / 그러니까, 니체는 버거울지 모르지만 고병권씨는 술술 읽히거든요.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셔도 될 듯! 하핫.  

상병 김강록 (2005-09-23 08:25:25)  
지리셔도 (오) →지르셔도 (정)

으윽.  

상병 오재환 (2005-09-23 10:29:30)  
고마워요  

병장 구태우 (2005-09-25 18:02:44)  
후기 잘 읽었습니다. 구입 희망 독서 중 하나였는 데. 후기를 보니 그냥 지르고 싶어지네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즐거울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상병 유인호 (2005-10-15 08:59:35)  
10월 베스트후기 되심 축하 드립니다.
지금에서야 이글을 보게 됐는데 꼭 읽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