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병장 김지민 04-13 11:33 | HIT : 271 



 써 나가기 전에

 금복, 춘희, 국밥집 노파, 애꾸, 文, 쌍둥이 자매, 걱정, 흰양복, 점보, 약장수, 생선장수, 반편이, 고래, 수련, 철가면, 청산가리, 포주, 간호사, 트럭운전사...........
 젠장할 이 소설엔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많다. 기이한 것은 이런 등장인물들이 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천연하게 플롯플롯에서 빛나고 있다. 일본 만화에서 보여지는 이렇다할 또라이같은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향기가 난다. 인물들에게서 향기가 난다. 그리고 이 '고래'는 그 인물들의 이야기다. 물론 주요 인물은 금복과 춘희이다. 



 자 그럼 차차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거대함에 대한 추구

 소설은 무의식적인 추구를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함에 대한 추구이다. 30cm에 달하는 귀물, 바다, 고래, 막대한 부, 엄청난 양의 벌떼.....
 플롯에서 드러나는 이미지 중에서 언제나 빛나는 것은 거대한 것이다. 그리고 내용 중에서도 이런 문장이 화자의 말을 통하여, 또는 금복의 사상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작고 누추한 것은 죄악이야'
 따라서 소설 속의 인물들은, 그리고 플롯은 거대한 것을 좆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 
 허물어진다.


 독자들은 플롯을 따라가며, 소설 속의 인물들과 함께 거대하고 빛나는 것들을 좇는다. 금복의 부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마음 속으로 환호하며, 자신이 막대한 부를 가지게 된 것처럼 설레게 된다. 아니, 이것은 감정이입이라기 보다도, 소설 속의 이야기 뿐만이라기 보담도, 인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것'에 대한 추구의식이 우리 바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다
 허물어진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추구하고, 추구하지만, 마침내 소설의 결말은 그것을 허물어뜨린다. 하나하나 차례차례 부숴뜨린다. 반편이는 개울물에 빠져 죽고, 고래로 만들어진 극장은 불에 타 없어지며, 벌떼는 벌통에 빨려 들어가 타 죽고, 점보는 차에 치어 죽는다. 그렇게 독자들의 만족도 산산조각이 난다. 허무한 인생. 아 아이러니 한 것이 인생이라던가.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이라던가.


 정작 거대한 것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거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거대한 것들은? 정작 거대한 것들은 어땠는가. 그것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어땠던가.

 소설을 살펴보면, 거대한 것들이 추구하는 영역은 참으로 소소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 다시 말해 또 한번 인생의 아이러니함이 이들에게 그려진다.

 반편이는 다만 추악한 추녀와의 섹스면 족했다. (그것이 섹스인지도 모르면서)
 걱정은 일하고 끼니만 챙겨 먹을 수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제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으면 되었다.
 춘희? 외롭지 않으면 되었다.
 점보? 소소한 일상이면 끝이었다.

 바다? 바다는 다만 광활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소소한 것을 원했기 때문에, 금복이나 국밥집 노파처럼 욕망으로부터 허물어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또 No이다. 이들 역시 무너진다. 반편이는 죽고, 걱정은 불구가 되며 금복을 잃고, 춘희는 외로움 속에서 홀로 죽어가며, 점보는 일상을 잃어버리고 박제가 되어버린다. 오로지 바다만이 변함이 없다. 바다는 바라지 않기 때문일게다.

 결국에 작으나 크나, 원하는 것들은 허물어지고, 그렇게 인생은 아이러니의 극으로 달려간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추구하는 바를 이루더라도 허물어 지고, 혹은 아예 이루지도 못하는 식으로 해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소설속의 인물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것은 다
 허물어진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살아? 그래도 남는 게 있을 거 아니야?


 이쯤 되면 이 소설은 다만 절망적이고 회의적이며, 인간의 부조리함을 꼬집어 아프게 만들고는 도망가버리는 무책임한 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절망적인 모든 허물어짐을 겪고 난 뒤, 독자들은 대체 어떤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희망 없이 회의주의 속에서, 어차피 허물어지지만 다 그런게 그렇고 그런거지, 그냥 사는거야 라고 말하며 살아가라는 것인가. 대체, 대체 남는 것은 무엇이냐?


 그게 바로
 희망, 그리고 그리움, 기억.이다



 회의주의보다 강한 것은 막무가내의 희망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이다. 춘희의 벽돌 그림은 이런 희망의 절정이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 한 쌍의 잠자리처럼, 한 쌍의 족제비처럼 우리 다시 만나 예전처럼 사랑을 나누어요. 이것은 물론 시인의 해석으로 나타나 있지만, 그림은 책에 진짜로 그려져 있으므로 독자들 역시 시인의 감흥을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기억은 남고, 그래서 죽은 것들도 허물어 지지 않고 기억 속에 살아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그리움이라는 3의 생명을 태동하고, 언제까지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실존하는 거대함들은 모두 허물어지지만, 기억속의 거대함들은 남아 언제까지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춘희에게 있어 점보가 그러하듯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리고 여기에 소설에 담긴 모든 인생철학이 압축된 문장 하나가 있다. 엑스트라처럼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이 '청산가리'라는 인물의 한마디는 모든 회의주의와, 희망과, 인생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지는 계속 쌓인다.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는 기정사실이다. 우리도 군바리라 이런 경험을 안 해 본 것이 아니지 않는가. 끊임없이 내리는 눈, 왜 우리는 이것을 쓸고 있는가. 우리는 회의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는 고정불변의 진리이며, 만약 이것을 거부하려거든, 사라지는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왜 쓸어나가야 할까.

 이때까지 닦아온 인생을 먼지에 쌓이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과거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우리 아름다운 생을 마주하기 위해서.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쓸어 나가는 이상 빛나는 것들은 있다' 라는 대책 없는 희망이 있다. 바로 이것이 소설 '고래'에 담긴 인생철학이자

 문학이다



 수많은 플롯


 자 소설에 담긴 철학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소설 고래의 플롯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소설 고래는 정말 엄청 방대한 내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치 100년동안의 고독에서 그랬던 것처럼(그보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한 도시를 무대로 하여, 국밥집 노파의 재산으로 말미암은, 허무하고도 재미난 이야기가 꾸려진다. 여기에 금복의 남자들은 몇 번이나 바뀌며, 심지어 금복은 성까지도 뒤바뀌어진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아무리 갱년기에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기로서... 하지만 이런 논리적인 질문은 필요 없다. 아이러니한 인생. 그것이 문학이라는데 더 이상 우리는 딴지걸 여지가 없다.

 이 소설 '고래'가 소설 전체를 주름잡는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욱 풍성할 수 있는 것은 잔가지의 이야기들이 큰가지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잘 녹아있으면서 또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롯과 플롯과 플롯이 크고 작게 촘촘히 엮어진 형태의 소설이 완성되어있다. 여기에 이렇다할 작가의 의견과 생각은 거의 없고 다만 그 사상을 뒷받침 해주는 플롯들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조그만 미니 플롯들을 읽으며 이 이야기를 조금만 발전시켜도 왠만큼 훌륭한 단편소설 하나는 나오겠다 생각하며 작가의 대단함에 치를 떨었다.



 수많은 법칙


 소설 고래에는 많은 법칙들이 나온다. 그것은 화자가 개입하는 아주 잠깐의 순간이다. 또한 이런 '법칙'의 문장은 인생의 많은 것들을 '기정사실화'하는데에 한몫한다. 그리하여 회의주의는 더욱 커지고, 인생의 허망함은 배가된다. 

 사랑의 법칙, 자본주의의 법칙, 권태의 법칙, 흥정의 법칙, 상업주의의 법칙, 등등등등.. 하도 많아서 헤아리기도 힘든 실정이다.



 종합평


 소설 고래는, 엮어진 플롯플롯을 통해 치밀하게 생의 모습과 그 부조리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그래도 아직 남은 게 있음을, 인간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해주는 소설이다. 그러나 교훈적 의미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다만 이것은 인생이 부조리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한가지의 면일 뿐이며,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다만 이런 면면의 플롯일 뿐이지, 사상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하고자 하는 말을 위해 글을 썼다기 보다도, 인생 자체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런 김지민의 감상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는지도 모른다. 이문세도 부르지 않았던가 알 수 없는 인생이라고. 그래 알 수 없는거다. 그래서 더욱 흥미 진진하고, 그래서 회의주의가 무릎을 꿇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소설 후반부에 가서 극장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런 인간의 헛된 추구가, 꼭 헛되지 만은 아니라는 것임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그래도 그 것만으로도 소중하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임을 말하기 위해

 고래 극장은 다시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고래 극장을 세워야 할 인생이 망망히 펼쳐져 있다.

* 병장 김현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10 09:37)  


 병장 김민성 
 빛나는 독서후기 잘 읽었어요. 
 역시 책마을짬(?)이 상당해지신 탓인지 내공이 느껴지네요. 
 꼭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앞으로도 좋은 후기 부탁드립니다~ 04-13   

 일병 구본성 
 저도 이 소설 무진장 재밌게 읽었습니다.이 후기를 그대로 책 뒤에 옮겨도 되겠네요. 04-13   

 병장 김광철 
 병영 문학관에 있던데....꼭 읽어봐야 겠네요~!! 04-13   

 병장 임종헌 
 주요 등장인물은 몇 안되는데, 그 몇 안되는 인물들로 엄청나게 거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갔죠.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어내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작가의 센스넘치는 유머에 밑줄 쫙- 04-14   

 상병 이종규 
 구라쟁이 소설가!! 
 나를 향한 끊임없는 사기를 치지만 
 나는 이것이 사기인줄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소설!! 04-14   

 상병 박수영 
 독서후기를 추천하기 위해 늦게나마 순회하며 읽는 중입니다. 잘 읽었어요. 
 이 책을 정작 읽어보지 못했지만 독서후기만 보아도 재밌을 것 같네요.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