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의 의의


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인 부모 슬하에서 별탈 없이 무난하게 이십년 가량을 살아왔다.
나는 한국어에 상당히 능통하다. 
What’s your favorite food를 말하기 위해서 덜덜 떠는 영어와는 달리 “점심에 뭐 먹었어?”라는 문장을 별 생각없이 내뱉듯 말할 수 있다.

 나는 한국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A가 말했다
 “중성미자의 경우 좌우의 대칭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완전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성미자 ν 는 좌선적이고 반중성미자는 우선적이므로 경영과 동시에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면 된다. 입자-반입자의 치환은 모든 입자에 동시에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B가 말했다. 
 “화성이 근접한다 두피 모근이 삼삼오오 사라진다 육체가 절기마다 비대해진다 애인이 지인과 동침한다 원수들이 눈앞에서 코앞에서 상을 받는다 박수과 무명과 범용을 예언한다 눈 코 입이 큰 처녀가 복사기처럼 번쩍 웃는다 잠을 훔쳐간 자를 잡는다 불길한 꿈처럼 전화벨이 울린다 싫어도 실내 야구장에 세워진다 털 많은 손이 술잔에 가루약을 탄다 황폐한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는다 금을 잃고 황사를 받는다 번개와 천둥 사이가 좁아진다 하늘에서 내려온 햄버거를 믿는다 지구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계속 머물 수도 없다” (‘저주’ – 이승원)

C가 말했다. 
 “미국의 대중 환율 압박이 갈수록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일 영국[파이낸셜 타임즈]는 불어나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 의회가 보복관세 부과 등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다 조지 부시 행정부도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환율조작을 통해 막대한 무역흑자를 챙기고 있다는 국제적인 반발하면서 시장 주도로 지속적인 환율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D가 말했다.
 “테샬레 티베부는 페리 앤더슨을 비롯한 다수의 마르크스 주의자들에게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면서 봉건제, 절대주의,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그들의 분석, 그리고 “유럽의 특수성과…… 우월성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서양의 ‘문명적 오만’이라고, “역사라는 분장 속에 숨은 이데올로기” 즉, “수법을 달리한 오리엔탈리즘의 연속”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저것은 분명 한국어인데 한국어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거 배워서 어디다 씁니까?” , “학자가 될 게 아닌 이상에야 미,적분 이런거 알아야 되나요? 산술 연산만 알아도 충분할 듯 싶은데요.” , “어차피 고등학교에서 배운 거 어차피 다 잊어먹어버리고, 나중에 자기 직업이랑 연관도 없는데, 점수나 따서 좋은 대학 가는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저는 물리학자를 꿈꾸는 학생이고, 제가 꿈을 이루는 데 고등학교에서 배운 ‘세계사’ , ‘기술’ 따위는 도무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또 누군가 ‘작가’를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학교에서 배운 ‘극한’,’미,적분’,’파동’ 따위는 그다지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겠지요. 그 사실은 학생시절 저에게 항상 큰 짜증을 유발시켰습니다.

 “이 따위 것. 어차피 도움도 안되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저희는 학교에서 정말 많은 과목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배웁니다. 그리고 개개의 분야에서 어떤 ‘깊이’를 추구하기 보다는 ‘다양성’ 에 좀더 무게가 실리지요. 게다가 우리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중간고사’ 나 ‘기말고사’ 따위의 격렬한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그 순간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은 소실되고 맙니다. 나중에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습니다.

“그러고 보면, 들어 본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분야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학생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다양한 분야들은 희미한 잔상만을 남긴 채 우리들의 뇌리에서 지워져 버리고 마는데 우리는 왜 십 년도 넘는 시간을 들여서 그 허무한 작업을 강제적으로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제가 찾은 답은 이렇습니다. 저희가 학교에서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과학’도 ‘가정’도 ‘수학’도 ‘국어’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저희는 다만 ‘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한글, 영어, 일본어, 중국어와 같은 개념의 언어가 아니라, ‘분야’간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방법을 말합니다. 위의 A, B, C, D 는 모두 한글로 말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세상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A가 B의 세계에서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냥 헛소리 일 것이고,
 B가 C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무슨 세상 그렇게 복잡하게 사냐고 할 것이고,
 C가 D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복잡한 이야기 하지말고 먹고 사는데나 신경쓰라고 하겠지요. 그리고 각기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건 이리도 쉽고 간단한데 너희는 정말 복잡한 세상에 사는구나.

A,B,C,D는 서로 단절되어 있어 전혀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다른 분야를 알기 위해 ‘추가적인 채널’을 확장하지 않는 한에는. 그리고 그 기본적인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 많은 수업들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관심사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꿈도 다릅니다. 누군가는 소설을 읽고 쓰는것에 매혹될 수 도 있고, 누군가는 물리에 매혹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군가가 모든 분야에 대해 ‘많은 수준의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그럴 필요성도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분야들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길만을 제외한 다른 분야와 완전히 단절된 다는 것은 처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학교에서는 가장 최소한의 ‘다른 분야에의 접근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들이 그걸 자각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국어가 좋은 사람이라도 수학,과학,사회,영어 수업을 들어야만 하고, 최소한의 수준을 갖춰야 하고. 수학이 좋은 사람이라도 국어,과학,사회,영어 수업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어느정도 다른 분야에 대한 언어와 사용방식에 익숙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언젠가 그들이 다른 분야의 개척을 필요로 할 때 기억의 아득한 저편에서 살며시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아닐까요? 학교 교육의 의의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