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나의 운전면허 취득(取得)기 
 
 
 
 
자동차 오너가 된지 올해로 십년이 넘은 것 같다.
처음으로 면허를 딴 것은 91년도였는데 요즘과는 방식이 사뭇 달랐고 또 내가 운전을 배우게 된 것도 나의 의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고 무엇보다 강습비가 너무 비쌌다. 당시 나의 용돈은 8만원 정도였는데 어느날 할머니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이셨는지 본인 용돈을 하얀 봉투에 넣어서 한날은 조용히 나를 부르시더니 ‘앞으로 네가 살 세상은 여자도 운전을 해야한다’ 이런 말씀과 함께 주신 돈 17만원으로 학원을 등록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놀라운 분이 아니신가)

저녁에는 테니스를 배운다고 시간이 없으니 아침에 오겠다고 했더니 여섯시에 학원 문을 여니까 그 시간에 오라고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그때는 정말 한창때였다)세수만 하고 30분을 걸어서 학원을 갔는데 첫날 겨우 얼굴한번 비추면서 시동 거는 법 기어 넣는 법을 가르쳐 주고 주행출발점에 데려다 놓더니 다음날부터는 아예 자다말고 나와서 키만 던져주고 연습하라고 하고는 다시 들어 가버렸다. 겨울이라서 해도 안 떠서 캄캄한데 혼자서 파워 핸들도 아닌 엑셀(주 기종이었다)을 낑낑거리며 (요즘 학원은 구조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때는 학원 내에 언덕도 있고 철길도 있고 신호등도 있고 뭐 그랬다)  언덕길에서 겔겔겔 하며 뒤로 미끄러져 내리고 철길에선 덜컹거리며 풀쩍 뛰어오르고 코너를 돌다가 백미러를 깨먹고는 절대로 내가 안 그랬다고 시치미도 뗐다.
그렇게 고독한 아침을 한 일주일쯤 보내고 나니 한 날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강사가 일찍 나와서 나 하는 꼴을 보더니 이번 주 일요일 시험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아니 운전이 이렇게 대충 해도 되는 거란 말인가. 
내가 안 된다고 극구 버티었지만 선생님은 원서를 턱하니 접수해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싫고 또 부르릉 덜컹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내가 어지간히 귀찮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는데 적어도 한달쯤은 다니다 시험을 보겠지 하고 생각을 해서 한번도 이론수업을 듣지 못한 내게 강사는 문제집 한권을 턱 하니 던지더니 이것만 풀면 아줌마 아저씨들이나 이론 떨어지지 젊은 사람들은 문제도 아니라고 나의 투지를 살살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저녁 밥을 먹으며 식탁에 문제집을 펴놓고 문제보고 답보고 중얼거리고 그런 나를 아버지께서 보시더니 코웃음을 치시는 게 아닌가.
‘면허 시험이 그리 만만한줄 아냐’ 이러시면서 약을 올리시는 것이다.
참고로 아버지는 전설의 칠전팔기다.
이론 시험은 머리 믿고 우습게보시다가 한 번 떨어졌고 실습에서는 코스에서 네 번(S자 코스를 직진하셔서 시험관도 어이없어 아무 말도 못한 천하무적이시다) 주행에서 두 번을 더 떨어지셨다. 원서에 수입인지를 더 이상 붙일 공간이 없을 때 간신히 붙은 양반이시다. 

대충 다른 부분은 그럭저럭 알겠는데 자동차 정비부분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가 없었다. 
‘여기서 다섯 문제가 나오니 대충 찍어서 두문제만 맞추자‘ 그러면 필기는 붙지 않을까. 
필기 커트라인이 80점 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순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수험 번호는 아침에 줄서서 접수하는 그 순서였다.
필기시험은 시민 체육관에다 책상을 놓고 8타입의 시험을 봤는데 한번에 볼 수 있는 인원이 100명 정도였던 것 같다. 합격자는 채점이 끝나는 30분쯤 뒤에 발표가 되고 합격자들은 바로 실기장으로 옮겨 코스와 주행을 볼 수 있었는데 이론을 첫 시간에 보면 그날 하루에 코스와 주행을 모두 치룰 수가 있었다. 학원에서 들은 귀동냥으로 아침에 일찍 가서 줄을 서면 100명안에 들 수 있다고 해서 시험이 있던 그 전날 저녁 여섯시에 억지로 잠자리에 들어 새벽 한시에 일어났다. 날씨가 추워서 오리털 잠바에 커피를 잔뜩 끓여 보온병에 담고 전날 싸둔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고 목도리를 칭칭 동여매고 택시를 탔다. 할증 요금을 내고 체육관 앞으로 갔는데 ...세상에나 그런 난리도 없었다.
전날부터 텐트치고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식구들이 총 출동해서 교대로 줄을 서고, 멀리 시골에서 왔다며 제발 앞에 좀 세워달라고 사정하는 사람까지 심지어 코펠에 라면 끓여 먹는 사람까지 있었다. 새벽 4시쯤 되니 차가운 겨울비마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데 정말 몇 번이나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내가 또 이 짓을 하랴 싶어서 꾹 참고 섰는데 발도 시렵고 몸도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이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9시가 되어 아수라장을 뚫고 전투적으로 원서를 접수하고 나니 순번이 84번이었다. 그리하여 그 넓은 체육관에 첫 시간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벌써 지쳐서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아는 문제도 가물거리는 판국에 제대로 풀어보지 못한 부분에서 나온 몇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둘째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깔려죽을 판국인데 겨우 헤쳐 나오니 합격자 발표라고 붙여놓은 대자보 종이 사이즈가 A4지였다. 그 밑으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을 뚫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누군가 몇 번이요? 하고 외쳤다. 어딜 가도 그런 곳에 꼭 있는 타입의 아저씨였는데 사람들이 수험번호를 외치면 ‘합격이요’ ‘담에 또 보셔야 겠는데요’ 하며 우리를 웃겼다. 

우여곡절 끝에 84점으로 간신히 턱걸이를 해서 즉석에서 만난 합격자 네 사람과 택시를 대절해 실기시험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점심도 쫄쫄 굶고 대기실에 서 있는데 학원 강사들이 자기 학원 이름이 걸린 표찰을 걸고 사람들을 모아서는 코스를 다니면서 여기서 핸들을 꺽어야 하고 또 어기서 멈춰야 하고 이런 식으로 소스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원 강사는 어디서 뭘 하는지 볼 수가 없었고 또 내가 새벽에 학원을 다니느라 면식이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 같이 택시를 타고 온 일행에게 친한 척 슬쩍 묻어서 다른 학원 수강생 틈에 끼어서 코스를 한바퀴 돌았다. 코스 시험은 세군데서 보는데 내 앞에 사람들이 적어도 50명보다 더 있는지라(내 번호가 84번이다) 내가 핸들을 잡은 시간이 오후 4시였다. 무사히 T코스를 돌고 S자 곡선을 빠져나와 주차를 하고나니 파란불이 들어왔다. 또 차에서 잽싸게 내려 주행으로 가니 정말 해가 져서 이제 안 된다고 하는 걸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사정사정을 해서  마지막 접수를 했다. 또 2시간을 기다려 6시에 마지막 핸들을 잡았다. 

이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난관이 건널목 앞 일단 정지였다. 정지선에 정확히 닿아야 하기 때문에 반 크러치를 잡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멈춰 섰는데 너무 멀었다. (감점) 그리고 언덕. 여기서는 오르막에서 한번 멈춰 섰다가 출발해야 하는데 조금 밀렸다(또 감점) 그리고 요철 (쿵쾅쿵쾅) 내리막의 탄력을 받아 거의 날았다. 돌발 이 불이 들어오면 브레이크를 재빨리 밟아야 하는데 세 명중 한명이 여기서 떨어진다. 돌발 성공(내가  반사신경은 좀 된다) 마지막으로 철길인데 파란불이 들어온 걸 보니 여기서는 제대로 멈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며 앞의 두 번 실수 때문에 틀림없이 떨어 졌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파란불이 윙윙하며 도는 게 아닌가. 나는 도대체 믿기지가 않아서 채점실로 뛰어가 다시 내가 합격이냐고 물었다. 시험관이 30점 만점에 24점 딱 커트라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너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았는데 마치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새벽 한시에 나가서 저녁 8시에 집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넌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오냐?’ 하시는 게 아닌가
사실 혹시 떨어질지도 모르겠다싶어 집에다 가 면허 시험본다고 얘기를 하지 않아서. 어머니는 내가 새벽에 집을 나선 것도 모르셨던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봤어’
내가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는 거만하게 말씀하셨다.
‘거 봐라 그게 뭐 그리 쉬운 줄 아냐’
나는 방문을 열기 전 최대한 무게를 잡고 얘기했다.
‘별거 아니던데. 붙었어’
그리고 침대에 털썩 드러눕는데 방문너머 어머니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다.
‘진짜 붙었냐’
‘어허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라니까 괜히 미안하니까 거짓말 하는 건데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
나는 입을 열 힘도 없이 대꾸도 못하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져서 씨익 웃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 달 뒤 집으로 날아온 운전면허증이 내 책상위에 다소곳이 있는 것을 보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거 가짜 아니냐?’

이 일로 나는 친구들 사이에 최초의 면허소지자가 되었고 내 인생에 있어서도 첫 자격증 획득이었다. 운전면허 시험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얼마 뒤 모 탤런트가 불법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고 메스컴에서 떠들썩하기도 했고 가끔 그 체육관을 지날 때 마다 새벽 두시에 줄을 섰는 기억을 되살리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면허가 이렇게 쉬워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하루 고생으로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평생 운전을 해도 좋다는 자격을 딴것인데 요즘처럼 차도 많고 사고도 자주 일어나는 도로에서 초보딱지를 붙이고 나선 사람을 보면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운전하면 나도 할 말은 무척 많지만 사람의 본성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당장 차를 샀던 건 아니고 그 후로 5년쯤 잠을 자는 장롱면허가 되었다.
그리고 96년 2월 나의 운명 티코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폴이란 이름도 붙여주었다. 
한 오년을 이 녀석과 동거동락(同居同樂) 했는데 다음에 예뻤던 녀석의 얘기를 해드리겠다. 

PS.
차를 처음 가졌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차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져’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마디 덧붙이자면 
‘차를 타면 사람도 달라져’
처음 운전을 배우던 그런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무심코 보았던 신호등이 저런 뜻이 있구나. 비보호 팻말이 있던 사거리에서 손이 식은땀이 나도록 덜덜덜 떨었던 그 마음. 이런 것은 면허를 따던 그때는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었다.


 

  
 
 
 
상병 이영준 (2006/03/24 16:15:30)

제가 운전면허를 딴 계절도 겨울이었습니다. 연습용 노란색 차량은 왜 그렇게 춥던지... 
저 역시 지금은 면허를 장롱에 고이 모셔놓고 있지만, 
언젠가 차를 몰고 다닐 그날을 생각해 보며, 미리 따놓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병장 이민호 (2006/03/24 16:35:10)

문학동 회원은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하지연님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글을 읽고..빠진 한 사람입니다. 

그냥..글쓰시는게 재미있게 쓰시네요. 

오늘도 그냥 우연히 들어왔는데 있네요. 재미있습니다.(피식)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ps : 전 이론을 deathline에서 간당간당하게 통과했었는데... 

2003년 겨울이 떠오르네요...    
 
 
병장 노지훈 (2006/03/24 16:38:32)

글 재밌어요~    
 
 
병장 김동석 (2006/03/24 17:12:18)

운전면허를 따려고 해도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당황해서 화악- 하고 들이받을까봐. 
사는 것도 무서워서, '타인에게 말걸기'라는 간단한 일에도 손에 베인 식은땀 닦아내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더듬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인트라넷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필진'이 되었으니 참 야릇하죠. 전 아직도 그 말걸기 무서웠던 때가 생각나요. 

티코 '폴'과의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상병 송희석 (2006/03/24 17:18:30)

설마 티코 다음이 에쿠스라는!!!    
 
 
상병 이준요한 (2006/03/24 17:26:15)

역시 라는 말 밖에    
 
 
상병 고계영 (2006/03/24 18:42:33)

지연님의 글은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고 생각하고 보는 편인데 - 기대를 많이 한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예전의추억과 격려와 이 시대의 우려까지 잘 포함한 글이었습니다. 언제나 미소가 퍼지는 글을 쓰시는 군요. 부럽습니다. 아, 부럽습니다. 갑자기 한달 6차례 접촉사고라는 기록!을 세우셨던 같은 과 누나의 기억이 불현듯 나네요. 친하게 지내서 공강시간이면 자주 할인마트에 같이 갔었드랬는데....... 

참고로 저는 면허가 없습니다. .. 정말 입니다. 부럽습니다.    
 
 
병장 정광훈 (2006/03/25 03:35:26)

장롱면허라. 
거의 2년이 다되어가네요. 
입대전 5월정도 
한참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에 
옆에는 경찰관 아저씨가 체크리스트를 들고 
슬쩍슬쩍 나를 y을때의 그 느낌, 

도로주행 2번 떨어졌었어요 (웃음) 

2번떨어지고, 한번에 붙은 친구놈의 야유와 놀림을 받으며 
한강 고수부지 에서 맥주한캔과 더불어, 
가늘게 뜬 눈 
꽉다문 입술에서 베시시 흘러나온 말. 

"...남자는 삼세판이다" 

아마도 3번째에도 못붙었으면, 
이번엔 바다를 보러 갔을꺼에요. 
"오판 삼선승제!!!"라며 
(히힛)    
 
 
상병 안대섭 (2006/03/25 06:16:06)

수능 마치고 운전면허 딴 다음 대학진학 때문에 집을 떠나버려서, 전 햇수로 4년째 제 면허증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답니다.    
 
 
상병 김종완 (2006/03/25 10:29:41)

운전을 배워 나갈 때의 모습 = 한 사람을 만나서 알아가는 과정 
운전면허증을 획득 = 그 사람을 알게 되서 사귀게 되는 것 
운전대를 처음 잡을 때의 떨림 = 설레이고 행복한 첫 데이트 
' 초 보 운 전 ' 딱지 = 여기 저기 우리 사귄다고 광고하기 
능숙해진 운전 =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진 정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다만 운전을 한다는 게 재밌는 일이 아닌, 피로로 다가올 때... 
그 때만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웃음)    
 
 
병장 주영준 (2006/03/25 15:58:04)

이론이야 어떻게 잘 붙었고. 실기는 돈 몇푼 아낀다고 학원 안 다니고 부친 및 고모에게 적당히(?) 배워 두번인가 만에 붙었는데 
- 
도로주행에서 3번 낙방(1회는 1차선에서 3차선으로 차선을 '혁명적'으로 이행해버리는 바람에, 2회는 우회전 신호가 마침 떠 있어서 제한 속도 60km를 유지한 채 사거리에서 그대로 우회전해버리는 바람에, 3회는 앞에 택시가 정차한 채로 시간 끌고 있는 것이 짜증나서 후진하고 택시 앞질러서 가는 바람에). 
- 
시험장 경찰 아저씨들은 왜 이렇게 깐깐한건지. 사실 첫번째 두번째는 이해가 가는데, 시험 중에 후진이 금지되어 있었나. 그 외엔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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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아직 무면허입니다. 택트와 액시브를 잠시 소유하긴 했지만 아무튼.    
 
 
 병장 윤준오 (2006/03/25 16:46:56)

필기시험 3번만에 80점에 턱걸이하고 
실기시험 연습1번 95점(과속감점)후 1번만에 100점으로 깔끔하게 붙어버려서; 
군대와서 딴 면허가 몇일전 5000Km를 돌파했을때 그 기분이란... 하하... 돈벌었죠...    
 
 
 병장 윤준오 (2006/03/25 16:47:50)

물론 실기를 쉽게 통과한건 고등학교시절 무면허 운전경력이... ...    
 
 
상병 박진욱 (2006/03/26 11:33:46)

저는 필기시험 2번만에 붙고, 실기는 학원 다니고 그냥 학원 스타일로 붙었어요. 

운전 방식이라면 그란투리스모와 이니셜 D, 베스트 모터링을 필두로 하는 레이싱 스타일이 적당히 도로에 맞게 다운그레이드 되었다고 할까요...    
 
 
병장 김형진 (2006/03/26 12:40:46)

진욱 // 운전방식에 한표 던집니다. 크레이지 택시 스타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랄까요, 하하.    
 
 
일병 변화수 (2006/03/26 14:25:01)

'티코 아저씨와 그랜져 아줌마'라는 불후의 명작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데. '그랜져 아줌마와 티코 
아저씨'였던가..    
 
 
병장 박시용 (2006/03/27 08:37:32)

저는 도로주행 첫날 일산 자유로를 나갔더랬지요. 시속 100km가 넘어가는데 아무말이 없길래 '목숨을 걸고' 오른쪽을 보는데 강사 아저씨는 자고 있더라구요. 에라 모르겠다. 120을 넘자 카메라가 번쩍하던것 같던데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면허따고는 어린 혈기에 부릉부릉 자주 했는데 언젠가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나니깐 겁이나서 이제는 설설 기어다닌답니다. 어짜피 부릉부릉해도 다음 신호등에서 다시 만나더라구요..    
 
 
병장 김석윤 (2006/03/27 09:18:08)

주위에서 하도 면허를 따라는 성화에 요즘엔 쬐끔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냥 마누라가 운전하는 차 얻어타는 로맨티스트가 되는 게 소원이었는데..(싱긋)    
 
 
병장 김태경 (2006/03/27 13:11:38)

면허는 한방에! 
그 면허증이 갱신일이 다 되어서 제대하면 바꿔달라는군요. 차도 없는데 면허만 경력이 쌓여가네요.    
 
 
일병 박재왕 (2006/03/28 15:25:06)

저역시 군입대전에 면허 따기는 했는대 훗.. 

경력만 열심히..(웃음) 

창문열고 시원하게 달리던 그때가 생각나는군요..    
 
 
병장 노지훈 (2006/03/28 16:26:54)

김여환님 댓글 통신어체 사용으로 삭제되었습니다.    
 
 
상병 김재규 (2006/04/04 11:22:44)

차를 처음 가졌을 때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차가 있으면 인생이 달라져’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마디 덧붙이자면 
‘차를 타면 사람도 달라져’ 
06년 봄, 
가슴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