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명예롭지 않은 우리의 그림자를 위하여 
 
 
 
 
“징역 속에 주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맨 처음 시작하는 일이 책을 읽는 일입니다. 그러나 독서는 실천이 아니며 독서는 다리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한 발 걸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 발 걸음이라 더디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현실의 튼튼한 땅을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해간다는 사실입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168



아픈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등병 때 누구나 한번쯤, 나는 내무반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상병장쯤 되었을 때, 그 갖가지 장밋빛 이상들이 얼마나 쉽게 잊혀지는지도 다들 경험해보셨을 줄 믿습니다. 
저는 제 삶을 혁명하지 못했고, 제 주위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사람들 앞에, 생활 앞에 얼마나 쉽게 바스러지는지 볼 때마다, 제 앞에 닥친 모든 질문은 공평하게 무력해지곤 했습니다.

이상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마음 먹은 바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싫었습니다. 일단은 불편했고, 그 다음엔 본전 생각이 나더군요. "나 때는 이랬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더랍니다. 내 후임에겐 너무도 당연한 권리 보장인데, 업무에 떠밀려 그것을 챙기기가 귀찮았고, 더 나아가 그걸 보장받지 못했던 저는 배가 아팠습니다. 대놓고 내색은 못했지만, 저는 그렇게 세상에 열려있기 위해 온갖 착취적인 감정구조를 말없이 참아넘겨야 했습니다. 그걸 참아넘긴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되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저는 그 당연함에 화가 났었습니다. 그럼 내 지난 세월은 누가 보상하는가. 누가.

해답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나는 결코 내가 당한 것들을 그대로 되물려주지 않겠다고, 일기장에까지 선명히 써놓은 그걸 까먹었을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따르기가 귀찮고 싫더랍니다. 물론 환경의 탓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환경의 탓이고 어디까지가 내 탓인지 더듬어볼 시간도 없이 떠밀려오는 일거리에 백이면 백 그 깜부기는 모두 제게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속에 쌓이고 쌓인 것을 어떻게든 화풀이하고자 하는 그 녀석은 좀체 논리가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습니다. 툭툭 털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니체나, 모든 것을 참고 삭여서 없애버리는 문수보살의 흉내를 내고 싶었지만, 잘 안되더군요. 겉으로 티를 안낸답시고 애를 썼지만, 제 후임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튀어나오는 히스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본 것은 내 머리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애써 참고 있는 저의 하해와 같은 도덕성이 아니라, 뭔지 모르는 것에 끙끙 앓다 간간히 상황에 안맞는 짜증이나 부리는 체증 걸린 환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공한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많진 않았지만요. 아, 잘난, 눈부시게 잘난 그대들은. 차라리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면 더 마음 편했을지도 모르죠. 저도 그들 속에, 그들이 속한 상위 몇 %에 들지 못하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제게도 상처가 있고 각자가 처한 환경도 다양하다는 걸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지만, 상처에도 레벨이 있고 다양성 가운데에도 우열은 존재한다는 걸 무시하기엔 고마운 제 머리는 너무도 든 게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제 꼴에 비해 높아만 보이는 도덕적 기대치가 원망스럽더군요. 거짓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데 그것을 거부하는 제 머리가 미웠습니다. 막상 손 끝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눈만 잔뜩 높아져 있었으니까요. 차라리, "나는 내가 당한 것 고대로 아랫놈에게 갚아줄거다" 라고 공언하여 저를 경악케 했던 제 친구놈이 더 나아보이더군요. 적어도 그는 머리와 손끝은 일치했을 테니까요. 최소한 그는 머리와 손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진리에 토라지고, 세상에 토라지고, 자신에 토라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무뎌지더군요. 어디서 몇명 죽었다는 말에 충격을 별 못받듯, 내게 이런 점이 잘못되었노라 집어주는 말에도 충격을 못받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도 변하겠냐는 심산이었죠.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애초 포기한 것, 제 자신을 능멸하면서 평생을 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죠. 세포 하나하나가 근질거리고 곧 터질 것 같은 상태, 모멸은 익숙했으니까요. 언제라고 못 견딜 것 같지 않았던 날이 있었을까요. 또 그걸 매번 까먹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요. 그래서,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허의 블랙홀을 맞아 제 머릿속 모든 가치관이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멸에도 내성이 생기더군요. 거대한 무관심 덩어리들이 차츰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 일이등병때와는 무언가 변해버린, 애매한 눈빛으로 피로섞인 표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병장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대로, 인생은 그리 쉽사리 그럴듯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군생활을 찌질하게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정치적 견해까지 폄하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 앞가림이 안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시사에 대한 관점을 못가지란 법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아무리 휼륭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사람과 사회의 변혁을 보장해주진 못합니다. 이상과 실천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가장 손쉽게 뻗칠 수 있는 실천의 영역에 대해 말씀드린 겁니다. 그 좁은 영역에서도 사람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던가를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하물며 내 손이 닿는 내무생활에서도 이러할진대, 이보다 더 복잡한 바깥에서는 그 괴리가 얼마나 커질지, 저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철학을 통해, 당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하늘 끝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걸 생각하는 뇌는 두 뼘 아름 남짓한 두개골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이야기하고 이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외연은 세상 모든 것들을 포용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천에 다다르면 그렇게 부풀어있던 자아의 스케일은 순식간에 자신의 몸 속으로 쪼그라들고 맙니다. 참, 인정하기 싫은 순간이죠. 방금 전까지 별을 이야기하고 지구를 희롱하던 자신이 도리없이 눈에 뻔히 보이는 감정에 휘둘리고 온갖 정치적 부당함을 밥먹듯이 늘어놓는 그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요.

당위는 하늘에 뜬 별같은 존재고, 길가에 서있는 장승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머문 이 곳이 어딘지, 어디에 뱀골이 있는지, 소리쳐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자신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당위입니다. 별이 없는 밤하늘은 얼마나 삭막할 것이며, 장승 하나 없는 마을은 또 얼마나 허전하겠습니까.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말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길을 걷는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는 별과 함께 서있는 것이 아니라 출렁이는 바다 위에 떠있는 존재이고, 조각칼같은 얼굴로 몸에 천하대장군을 새기고 선 장승이 아니라 손끝만 베여도 피나고 아픈 존재입니다.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의 다름에 쉽게 토라지는지,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마땅히 다른 개념"에 쉽게 실망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그림자는 결코 명예롭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용기를 합칠수 있느냐"는 질문의 대답은, 그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비참하고 사소한 것들의 얼굴을 닮아있을 겁니다. 모두가 지친 상태에서 그래도 한 끗 더 움직여주는 것, 모두가 귀찮은 상태에서 그래도 한 끗 더 신경써 주는 것.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쓰다듬다가도 한번 더 입바른 소리를 해주는 것, 그런 것들 말입니다.  만약 그 사소함에 참담해하거나 잔망스러워하여 그것들을 놓쳐버리는 분이라면, 이제껏 공부를 헛한 것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책 한 줄 읽지 않은 시골의 촌로가 철학교수보다 더 뛰어난 철학을 할 수 있고, 학회에서 늘 존경받고 잘나가던 백면서생 대학생이 어른의 지나가는 한 마디에 찍소리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기좋게 실패했고, 우리가 얼마나 참담하게 부스러졌는지 항상 기억하고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창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이해했던 것처럼 우리의 이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기반을 떨치고 일어나 투사로, 장승같이 살 수 없었던 그 이유를 쓰다듬지 못한다면 우리 곁의 흙빛 얼굴을 한 이웃들은 언제까지고 우스워보일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런 시선 속에서는 제대로된 실천은 물론, 제대로된 당위도 세워지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웃들의 초라함을 보듬어안기 위해, 그리고 그런 위로를 - "국민정서"를 참칭하여 제 잇속이나 채우는 조선일보같은 신문에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 보다 이웃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나와 내 이웃의 사소함을 업수이 여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을 위해 별이 저 하늘에 있는지도 모르고, 이 땅의 논객들은 자신의 허한 속을 무릅쓰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죠.

함석헌옹의 말씀처럼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와 눈물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눈물 흘려본 사람은 눈물 흘려본 사람을 알아보듯, 자신의 빈틈을 한번쯤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그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빈틈이 불러올 해방을 믿습니다. 그 빈틈은 제가 가진 가장 초라한 것이기에,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 20060316, cryingkid
* 병장 김동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09 17:18) 

  
 
 
 
이병 송규영 (2006/03/16 15:27:41)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글이네요. 
머릿속의 이상과 실천인으로서의 나 사이의 괴리에 좌절하는 저로선 김병장님의 글이 마음을 뒤흔드네요.    
 
 
병장 한상원 (2006/03/16 17:07:00)

네, 울어봐야 합니다. 실패해봐야 합니다. 공감은 자신으로부터 빚어지는 것이니까요. 가슴을 후벼파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대현씨의 글입니다. 아, 슬퍼져요. 부끄럽고. 그래도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은 추천 백이십사만개 해야 합니다.    
 
 
 병장 김동환 (2006/03/16 17:22:15)

눈으로는 천리를 보더라도 우리는 결국 두발로 걸어가야 하죠. 
대현씨 글 잘읽었어요.    
 
 
일병 조승화 (2006/03/16 17:26:57)

1.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가히 슈퍼스타로 불리는 안회가 떠오르는 군요. 그 분의 특징 중 하나가 그러라고 하더군요. 
'불천노'.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시키지 않음. 전 그런 사람이 존재 할 수도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인간 이해를 벗어난 존재였습니다. 허허허... 

2. 예전에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과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러더군요.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두가지 중에 하나라구요. 자기 자신도 속일 정도로 타락하거나, 끝없는 자기반성의 칼날에 피폐해지거나. 남성이란 단어와 페미니스트란 단어에 얼마든지 다른 단어를 집어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3. 제가 예전에 신영복 선생님 수업을 듣고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업의 메세지는, 천재의 기준을 '부와 명예를 지닌 인간'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간'으로 바꾸라는게 아닐까요?" 
선배가 이러더군요. 
"즐. 니 머릿 속에서 '천재'라는 개념과 그런 개념을 거론하는 너의 일부를 완전히 삭제하고, 새로 생긴 공간에 '보통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집어넣으라는 거야."    
 
 
일병 허익준 (2006/03/16 18:12:11)

마르크스는 노동론을 제청했지만 자기 하녀의 월급을 안 주기로 유명했고, 로크는 에밀을 통해 이상적인 교육론을 세웠지만 자기 아들을 고아원에 보내버렸죠. 제가 말만 번지르르한 효자론이나 사랑론을 싫어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변절하더라. 인간은 원래 그런 생물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이미 뿌리깊게 바뀌어버렸던 탓도 있고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란 언제나 너무나 넓어서, 어떻게 보면 미친듯이 평생동안 메꿔도 간단히 메꿔질리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분명 그걸 메꾸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쉽사리 포기하지를 못하겠더군요. 승화님께서 이야기하신 안회 선생님 처럼요. 제가 언젠가 코지마 히데오같이 "자신의 이름만으로 얼마나 좋은 게임인지 유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명 프로듀서"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처럼. 

좌절하면서도- 묘하게 희망이 생기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좀 더 노력해볼렵니다. 

조승화 - "마쵸이즘에 물들지 않은 남성"이라는 중간적 개념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페미니스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쵸적인 성격도 아닌.(웃음)    
 
 
병장 노지훈 (2006/03/16 18:40:12)

정말 혼신을 담은 글이네요. 뭐라 할말이 없어요. 
추천 기능 있으면 추천 노가다라도 해드릴텐데.    
 
 
상병 황준구 (2006/03/16 19:17:51)

머리와 몸을 일치시킨다는 것. 정말 너무나도 힘든 문제죠. 
머리에서 몸까지 가기까지의 장애물이 왜 이렇게 많은지 . . . .    
 
 
일병 김동민 (2006/03/16 20:49:15)

대현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그 솔직하고도 치열한 고민, 
한 자락이라도 닮고 싶군요. 너무나 쉽게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는 저의 모습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철퇴 한 방 즐거이 맞고 갑니다.    
 
 
병장 김석윤 (2006/03/16 23:28:58)

요즘에 이것저것 짜증이 많이 나는 이유를 이제 인정해야겠네요.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었는데 결국 인정해야겠어요. 이제 행동만이 남았군요..    
 
 
 상병 강계정 (2006/03/17 00:08:17)

음... 제 경우가 답이 될지는 모르겟지만 적어 보렵니다. 
저역시도 신병때는 모든게 부당해 보이고 나는 절대로 후임한테 저렇게 안해! 라고 계속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지금은....확실히 그때 생각한 대로 되어있는거 같아요 
제가 뒤퉁맞아서 후임들귀찮게 하는 경우는 맞기는 합니다만..적어도 
예전 고참들 처럼 강압적으로 이야기 하거나 하는게 아닌 인간적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제경우는 ....그래요..... 후임들에게도 인정 받고 싶다거나 우월해 보이고 싶은 심리 랄까요? 
" 나는 다른 고참들과 다르다구~ " 라면서 콧대를 높히고 싶은것 뿐일지도 모르겠어요 

솔찍히 저는 후임들한테 우리때는 이랬어~ 라면서 허푸반 진실반 섞어서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이야기는 후임들에게 " 니네들 고생한건 별거 아니야 좀더 똑바로 해! " 
가 아닌 " 우리때는이랬으니까 이걸 바꾼 우리들을 존경해 주길바래 " 라는 심리죠 

저같이 이기심과 독선으로 똘똘뭉친 속물에게는 이렇게 하니 되더군요 
< 누군가 비방하거나 비꼬는게 아니라 실제로 제가 그렇다는 겁니다. > 

저같은 속물 덩어리도 하는데 다른분들이 못할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머리와 몸이 따로논다고 자책하고 계시는거....... 

제 의견을 말해 보자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게 
하나도 바뀌지 않고 제자리 인것 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적어도 행동에 어느정도 영향은 주니까요.    
 
 
병장 김대현 (2006/03/17 01:02:10)

이기심이나 우월감, 혹은 분노가 인생사에 좋은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그 동력이 종종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 트였을 때 문제가 된다고 봐요. 그걸 제대로된 쪽으로 트이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게 이기심이고 우월감이며 분노라는 걸 스스로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계정님께서는 이미 그걸 알고 계시고, 더구나 그 동력을 좋은 곳에 쓰셨으니 별로 문제될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고대로 아랫놈에게 갚아줄거라고 한 친구녀석이 차라리 나아보였다는 건 그때 잠깐 그랬다는 거구요, 아직까지 나아보인다는 얘긴 아닙니다. [웃음]    
 
 
병장 김강록 (2006/03/17 08:55:47)

대현 / 혹시 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이 밑으로 이파리를 몇 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그냥 지우고 내려갔었습니다. 한 마디로, 존경스럽습니다. 한 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다 이제 좀 벗어났다고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었는데, 대현님의 글을 잃고 도로 기가 죽어버렸습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하다 급기야, "이 바닥에는 이미 大 김대현 씨가 계시니 김강록 너는 어서 다른 일을 알아봐라,"라는 하나의 메세지가 제 머리속에 떠오르더군요. 할 줄 아는 게 몇 가지 안되는 저로선 버겁고 슬픈 메세지입니다. 

"와하하하 이렇게 하면 되겠지롱!"이라고 깝죽거리던 저와는 달리, 대현님께서는 이미 '이렇게 하고' 계셨군요. 글을 통해 엿보이는, 대현님께서 지금껏 쌓아오신 삶 앞에 삼가 고개를 숙입니다. 

계정 / 제가 딱, 그 지점에서 빠질 수 있는 가장 나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거 같아요. 당위는 이쪽인데, 그걸 내 입에 담는 순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주저앉는. 그럴지라도,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게 하나도 바뀌지 않고 제자리 인것 보다는 낫다"는 계정님의 힘있는 말씀은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제게 어떤 구원의 실마리를 던져주시는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병장 이석현 (2006/03/17 10:53:55)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변할것들은 변한다는 진리는 참으로 몸소 느끼기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직접 하지 못했다는 이유하나로 자기 존재의 가벼움, 또는 자기혐오에 빠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들이 있는 제한된 공간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것보단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걸 본적이 더 많기 때문이죠. 군대의 발전을 위한 애정도 
없는 사람들이 군전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없으면서 자기의 작은 분대 또는 조금 나아가 중대를 
예기해봤자 역시나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죠. 지금도 위에 글을 쓸때와 같은 마음이라면 간부로 
제입대 하여 밝은 군의 미래를 창조하기에 전혀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머리속에 떠오르는것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또는 이기적이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자신을 위한 그저그런 
변명으로 빠져나가버리고 말죠.    
 
 
상병 송희석 (2006/03/17 10:56:24)

계정/ 그게 바로 후임들에게 선임들에 대한 옳고그름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하는것과 같은것 같아요! 결국 후임들은 옳고그름에 대하여 '예의'때문에 말하지 못하죠! 결국 이것은 역사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예의'를 집어치웠고, '친절'만 남아 행동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참 힘드네요!(웃음) 
그래도 장점은 있어요! 적어도 저의 후임들은 마음껏 저한테 옳고그름을 따지거든요! 그래서 많이 배우는것 같아요!    
 
 
상병 서원대 (2006/03/17 11:08:19)

이등병 때 100일 휴가를 나가서 군복무를 마친 친구녀석에게, 불합리한 내무실일 편중과 생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내가 고참이 되면 내무실 개혁한다.!' 
라고 지껄여댔습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지, 지난번 외박때 그 친구녀석이 저한테 이런말을 하더군요. '내무실 개혁은 잘 되고 있냐?' '어? 무슨소리야?' ' 너 asshole 이지.' 

라고 말하는데, '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흔히, 너처럼 말하는 녀석들이 군대에서 후임들에게 요구하는게 많은 법이다.' 

'아니야, 나 애들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데...' '다들 잘해준다고 생각하지.' 
'얼마나 잘 따르는데, 애들이 ...' '다들 잘 따른다고 생각들 하지.' 

그 친구의 말은, 너의 이상은 너의 것이지 전체의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20명정도가 모여 생활하는 내무실에서 모두의 이상이 같을 수 없겠죠. 

본인의 이상에 사로잡혀 후임들을 괴롭힌다면 그것또한 옳다고 볼 수는 없겠죠. 

이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상병 엄보운 (2006/03/17 12:16:08)

글 전체에 치열한 고민과 번뇌, 그리고 실천이 보이네요. 대현님 너무 잘 읽었습니다. 멋져요, 저도 강록씨 따라서 전향(?)할까봐요.    
 
 
 상병 박진우 (2006/03/17 16:46:58)

아. 역시 대현님.    
 
 
병장 김대현 (2006/03/17 18:13:02)

강록씨 / 에에, 저는 원영씨 글 읽고 기가 죽어버렸답니다. [웃음]    
 
 
병장 김주선 (2006/03/17 22:55:46)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죠, 그렇지만 '인식'했으니 다행이지요. 그렇지만 나중에 생각과 행동에 괴리감을 느껴 '어차피 이건 다 나를 합리화시킬 뿐이야'라며 쳐지는 건 결국 다시 '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쳐져도, 다시 일어서야지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생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큰 사람 되지요. (이거 너무 상투적인데) 아아. 하여튼, 폐부를 찌르는 글 너무 좋아요.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게 참 힘든것 같아요, 저도 많이 생각한것이지만,, 글로 적으려고 하니 안되더군요, 누구나 말을 자연스레 연습해서 잘하는 것처럼, 글도 그렇게 되야 할텐데,, 이것 참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