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글내생각] 결국 나의 고민은 하나로 귀결된다
병장 이기범 2009-08-08 06:16:09, 조회: 97, 추천:0
현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사실 실천의 현장에 가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현실이다. 아무리 머리로서 이해하고 사유하고, 사회구조를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하더라도, 그곳에서 냉정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굳이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결국 하루가 끝나고 남는 것은 연대를 사는 작은 즐거움, 그리고 허탈함, 씁쓸함. 그렇다면 우리는 왜 허탈함을 느끼는가. 너무나도 거대한 어떤 장벽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우리들의 모습- 결국 이렇게 자위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회의.
사람이 살아가는 길, 그 중 머리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고 했던가.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품고, 논쟁을 하고, 훌륭한 글로써 그것을 역설한다 해도. 정작 실행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천 이전의 그것들이 전적으로 무의미 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각설하고- 에,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고 모두가 알고 있는 이른바 사회의 주류 세력. 어쨋든, 대부분의 20대들은 그 세력으로 합류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대학생들이 토익책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돈'보다는 '이력서의 한줄'을 위해 각종 알바, 인턴등을 지원하며(사실 이 경우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내 주변에는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너도 나도 이력서의 한 줄을 위해서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세상엔 정말 많은 길이 있을 터인데, 또한 각자가 그리는 꿈- 자아의 실현은 젊음의 가능성 만큼이나 무궁무진한 길이 있을 터인데 왜 그 좁은문을 통과하기만을 고집하려는지.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 보지만 쉽사리 결론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뭉뚱그려서 말해보자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자아를 실현하자니 생존이 어렵고 생존을 추구하자니 자아 실현의 계기를 잃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어렸을 적부터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날은 소설가 되고 싶었고, 어떤날은 작곡가가 되고 싶었다. 그 다음날은 시인이 되고 싶었고, 또 그 다음날은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사춘기가 오는 시기도 늦어졌다는 설이 있던데, 나는 그 말에 아주 동의 한다. 그렇게 난 20대 초입에 사춘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내 인생을 던지기엔, 내게 있는 재능이라는 건 한없이 초라했고 현실은 암울했다. 물론 이 모든게 핑계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의지와 용기의 부족일 수도 있고, 또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허나 어찌되었건 현 사회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기도 벅찬 사회인 것 만큼은 확실하다.
다시 돌아와서, 생존의 문제를 조금 더 확장해 보자면, 어쨋거나 일반 대중들은 그 좁은문을 통과하길 원한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그 문은 분명 열려 있다. 비록 바늘구멍보다 좁긴 하지만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다. 그렇게 사회는 대중들의 경쟁을 교묘하게 조장한다. 모두가 '개천에서 용나기'를 꿈꾸는 세상이다.
과거보다 개천에서 용나기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차별적인 기회 부여, 가령 경제력에 따른 교육의 기회 등등-은 차치하더라도, 결국 그 문을 통과하는 이들은 극 소수의 천재들, 혹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되곤 한다. 마치 누구나 노력하면 그러한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용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잘못된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게으름이나 부족한 능력에 회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그 문을 통과한 이들을 더더욱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사회 구조의 모순은 점점 화려한 용들의 모습 뒤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거대한 모습에 체념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설득하여 연대하는 것이다. 사실 전자 같은 경우 이미 사회 이곳 저곳에서 그 폐단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명확히 그것이 보여졌기 때문에 학습을 소홀히 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쨋건,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어려운 일로 보인다.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이야기하고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헛소리가 아닌 매력적이고 솔깃한, 담론으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그리하여 자아실현과 생존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요구하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결국 또 다시 같은 고민으로 귀결되고 만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담론이다. 모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담론. 내 부족한 실력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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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먹으면서 비몽사몽 휘갈긴 글. 저장했다가 좀 더 다듬어 올렸어야 했는데 원익씨, 승인씨의 글을 보고 가슴이 불타올라서(!) 일단 올립니다. 뭐라 횡설수설 했을지. 월요일이 참 두렵군요.
댓글 제안
유익한 글과 말은 글쓴이와 본인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2009-08-24
18:40:06
상병 서석호
기범씨 병장 축하해요 허허. 2009-08-08
16:16:42
상병 서석호
맞아요.
하지만, 사회구조의 모순을 고치기 보다는 그 '좁은문'을 비집고라도,
다른 사람을 제치고 들어가는 것이 더 쉽게 보이거나, 아니면 그런 사회 자체를
당연시 여기며 받아들이거나,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어쩌면, '욕망'과 '경쟁'의 발산을 당연시 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자아실현과 생존을
보장해줄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 결여되어있지는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 '무언가'는 저도 잘 모르고요.. 허허. 죽을 때까징 생각해봐야겠죠? 2009-08-08
16:26:25
병장 이기범
하핫, 감사합니다.
그 무언가를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네요(웃음) 2009-08-10
09:42:12
병장 김지호
머리와 발 끝의 거리가 제일 와닿습니다.
기범씨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