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의 도의 (병장 이준영/060108)
흔히들 댓글, 이파리 등으로 불리는 리플은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읽고 나서 그만한 가치를 느끼고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댓글은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왜냐하면 모든 발화는 소통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말하면서 실실 웃고 문답하고 방방 뛰는 놈은 백에 구십아홉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이란건 소통하기에는 극히 제한된 존재이다. 그건 가위바위보를 할 때 가위로 가위를 이길 수 없는 것과 같다- 한 명이 검지와 중지로 가위를 내고, 다른 한 명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가위를 냈다. 두 명은 서로 다른 손가락으로 가위를 냈다. 하지만 둘은 비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찌그러트리고 뭉개거나 단장하고 찬란한 표현이라도 결국 그 상징적 [구심점]이 같기 때문에 둘은 결국 같은 뜻을 의미할 수 밖에 없는거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쓴걸 읽고 자신이 또다르게 이해하거나 서술의 실마리를 찾는건 부질없는 일에 가깝다. 개인의 사상이란 하나의 구심점에서 갈려나온 창작물과 감상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글은 어떤 타인을 대상으로 하여 쓴거고, 상대방이 그 글을 읽고 어떤 변화나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댓글은 상대방의 반응reaction이다. 어떠한 방식으로건 나의 글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이건 받았다- 라는 즐거움이 바로 댓글을 읽는 즐거움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공감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떤 게시물들을 읽을 때 화가 난다. 물론 게시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건 마치 과방과 같다- 과방은 과 사람들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만들어둔 것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짐을 정리하지도 않은채 발 디딜 틈 없이 쌓아둔다거나, 콜라를 바닥에 부어버린다거나 하면 화가 나는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과방의 본 목적인 [자유롭게 쉬어가는] 타인의 권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살면서 100%의 발화를 목적성 있게 하는건 아니다. 무조건반사적인 감탄사, “아야!” 혹은 “타앗!” 쯤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최소한의 [의미를 포함한 발화]를 한다고 생각할 때, 읽었을 때 나의 변화를 도무지 꾀할 빌미가 보이지 않으며 공감도 가지 않는 게시물이 보일 때- 나는 혼자서 조용히 분노하곤 하는 것이다.
댓글이 많으면 기분이 좋다. 그 댓글이 모두 악플이 아니라면, 달리 말해서 그 게시물은 읽는 이의 의견과 일치되어 공감이 되었건, 반대되어 논쟁거리가 되었건 간에 영양가 있는 게시물이라는 소리다. 게시물을 게시할 때는 최대한의 성의를 들여서 쓰자. 절반 밖에 없는 유리구슬 하나만 달랑 들고 와서 애들한테 [얘들아 구슬치기 하자]하면 애들이 끼워주지 않는건 당연한 이치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과 [성의가 없는 글]은 한 눈에 차이가 난다. 잘 쓰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하고 쓴 글에는 그 깊이만큼의 골이 패어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쓴 글에는 깊이가 없다.
단순히 비교해보자, [사랑하다가 헤어졌고 아프다]라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러면 그 이별의 아픔에 대해서 당신은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1.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다시 돌아온다면 절대 잊지 않겠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한정된 소재 [이별]과 해당 [슬픔]만으로 글의 전체를 풀어내야 한다. 이렇게 쓸거면 비유 및 상징에 대한 능력을 길러서 독자가 [이별의 아픔]이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끄덕거릴 수 있도록 참신한걸 좀 찾아보길 바란다. 문학은 사람을 앵무새로 만드는게 아니라 사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2. 유행가 가사에 조차 헤어졌다고 하면 슬프긴 슬픈데 [왜 슬픈가], [어쩌다가 이런 시츄에이션이 발생했나], [헤어지고 나서도 뇌수술 당한 것처럼 너한테 목매는 내 행동은 도무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정도의 원인을 알아보는 센스가 보인다.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원인에까지 눈을 돌려라. 그러면 원인-과정-결과의 긴 여정이 당신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특성이란, 강가의 연어처럼 발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아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기 위한 몸짓.
고로, 댓글을 많이 받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라. 감흥이 없으면 대답도 없다. 무감한 글들이 보석같은 글들을 밀어내는 게시판에는 그 몇몇 좋은 글들조차 슬슬 사라져갈 것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 논리에서 일정 규모의 경제적인 활동을 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경비절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꽁치 한 마리를 옮기려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를 몰지 않듯 / 혹은 혼자서 밥 해먹고 살다보면 사먹는 것과 다를게 없거나 되려 더 비싸다는 사실을 깨닫듯). 그러므로 [규모의 업그레이드]를 바란다. 물론 나 역시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이기에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고 니가 얼마나 잘나서 이런 글을 쓰냐고 욕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다만 나는 이제껏 내가 써온 대부분의 게시물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 썼다고 생각한다. 3분만에 게시물 하나 쓰고 땡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3분만에 쓴 글에는 투자한 3분어치의 댓글만 달리는게 당연하다. 그게 자유주의 경제논리 아니던가. “차피 3분을 쓰든 3시간을 쓰든 결국 남는건 게시물 하나인데 뭐 그리 꼬치꼬치 따지냐.”는 분은 없겠지만, 혹여나 존재한다면 생각을 고쳐드시는게 현명할거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길 때는 어느 정도의 성의를 투입하여 글을 쓰는 것이 게시물을 클릭한 사람에 대한 작은 예의일 것이다.
자신의 글을 보고, 이 정도면 얼마만큼 댓글 받고 얼마만큼은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겠다고 확신한 이후 써라. 혼자 치는 당구에 겜뻬이를 칠 수 없는 것처럼 반응이 없으면 당신의 글은 단순한 문자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상병 이준요한 (2006-01-18 10:59:23)
공감합니다. 그리고 비유가 정말 탁월하시네요.
상병 엄보운 (2006-01-18 11:42:54)
댓글을 달 수 밖에 없는 글입니다.
사족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딱 어울리는 주제이겠네요.
상병 고계영 (2006-01-18 13:40:27)
이런 글을 올려버리시면 그나마 조금의 글이도 쓸려고 깨작깨작 연습하던 저 같은 미미한 필력의 사람은
너무도 가슴이 아파옵니다. 하지만 준영님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스르륵~
댓글을 달 수 밖에 없네요. 정말 지금 세대에 일침을 가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더 저도 글 한 자 한 자를 쓰는데 신경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감, 씽크로 100% ! ! 규모의 경제에 대한 언급은 정말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장 서정우 (2006/01/20 10:59:17)
글 못쓰면 리플 남기기도 힘들어져요~생각 또 생각..
병장 황현준 (2006/01/22 20:05:41)
서정우님 말에도 공감합니다..
리플도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액자속의 꽃"일 뿐이지요
병장 구자민 (2006/01/25 18:49:47)
다들 생각이 너무 깊은거 같습니다
표현력 또한 제가 생각했던 이상이구요.
제가 설 자리는 없는걸까요(웃음)
이런 표현력 좋은글들을 보며 다시 한번 (불끈)
열심히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병장 송준호 (2006/01/27 00:21:25)
共感 입니다
병장 조상욱 (2006/01/29 11:45:50)
아하하. 밖에는..(울음)
상병 조준희 (2006/02/01 11:25:05)
정말 탁월한 글솜씨 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낄자리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