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지각, 존재 등에 관하여 
 병장 이승일 04-29 19:13 | HIT : 136 



 이 글은 원래 책마을 방공호에서 김청하씨와 논의하던 것에 대한 답변인데, 방공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폐쇄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1. 검증과 반복가능성
 과학에서 말하는 근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것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나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지요. 우리의 능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과학에서 말하는 근거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한, 과학은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과학이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다는게 아니라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굉장히 불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아주 가벼운 비유로, 일상적으로 생각해보죠. 우리 삶에 중요한 의미로 남겨지는 것들은 대체로 특수하고 일회적인 것이지 결코 항상 반복 가능한 것들이 아닙니다. 밥먹고 똥싸고 세수하고... 이런 것들은 매우 확실하고 언제나 우리 통제하에 있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결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첫키스, 예상치 못한 만남, 갑작스런 사고, 아이디어 .. 등등의 우발적이고 일회적인 사건들 속에 오히려 더 많은 삶의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과학은 말하자면 밥먹고 똥싸고 세수하는 부분에만 관여되어있는 학문이라는 것입니다. 


2. 지각과 실재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보죠. 검증이라는 것 자체의 성격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검증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를 지각(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1인칭으로 경험되는 감각적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퀄리아'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이러저러한 시각적 형상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집니다. 그러나 이 자체가 실재를 보장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보인다고, 만져진다고 다 있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들은 서로 정합적으로 연결되어있어야합니다. 이 정합성이 결정적인 증거력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니터의 형상에 손을 가져갔는데, 손에 아무런 감각이 안느껴진다면, 우리는 당황할 것이고 모니터의 존재를 받아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아마 홀로그램이 예가 되겠지요) 또한 만져진다고 해서 다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손바닥에 분자들을 빠르게 충돌시킴으로써 무슨 딱딱한 물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잘못된 감각적 추론입니다. 만약 시각을 통해서 상황을 확인한다면 이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이처럼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실재를 받아드릴 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감각적 느낌 자체가 아니라, 그 느낌들 사이의 내적 정합성과 일관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감각을 신뢰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정합성과 일관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뿐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든 합당한 감각적 자료를 제공받기 때문에 우리는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당한 근거로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비행기로 날아가도, 알래스카로 배를 타고 가도, 심지어 잠수함을 타고 가도 일관적인 형상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란 결국 "정합적인 감각" 을 통해서 수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비물리적 존재에 대한 감각
 문제는 이 감각이 과연 물리적 대상들에만 국한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관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각적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적 대상들을 생각해보지요. 저는 다수의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대상들이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그것을 지각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다고 다 실재하는게 아니듯, 머리속에서 생각된다고 해서 다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겠죠. 앞에서의 경우와 같이 중요한 것은 내적 정합성과 일관성입니다. 만약 수학에 내적 일관성이 없었다면, 저는 그것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없겠지요. 그것은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작위적 규칙,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도 일관적인 형상을 보여주듯, 수학적 대상들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도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저 만큼이나 청하씨도 잘 알고, 또 이해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형이상학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 우리에게 물리적 대상에 대한 감각만큼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물리적 감각은 다섯가지 갈래로 나뉘어있어서 서로간의 일치를 확인해보기 편리한 반면, 형이상학적 대상들에 대한 지각은 오직 한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일치를 볼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감각만으로도 얼마든지 내적 일관성을 탐구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오감 중 오직 시각만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착시현상이고 무엇이 실재에 대한 지각인지 분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훨신 더 어렵고 까다로울 뿐이겠지요. 형이상학적 탐구는 물리학적 탐구보다 더 어렵고 까다로울 뿐, 불가능하거나 허구적인 것이 아닙니다.
 결국 저는 우리가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받아드리는 것과 형이상학적 대상의 존재를 받아드리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둘 다 우리의 느낌으로부터 출발하며, 그 느낌들 사이의 내적 일관성을 통해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대상이지, 관념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학적 대상이나 논리적 대상들에 대한 관념은 하나의 지각이요 느낌일 뿐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의 눈에 느껴지는 시각적 현상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 듯 말입니다.)
 따라서 청하씨가 형이상학적 대상들에 대한 '검증' 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검증의 의미를 깊이 따져본다면 말입니다. 결국 검증은 감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형이상학적 대상들에 접근할 수 있는 감각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적 대상에 대한 감각들 중에서 어떤 것이 실재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가 하는 것은, 그것들 사이의 내적 정합성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무턱대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 그 안에서 완전한 일관성이 발견된다면,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물리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만큼이나 오도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이 될 것입니다.


4. 감각의 수단과 감각의 대상
 신경과학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어찌되었건 뇌가 없다면 어떤 관념도 있을 수 없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건 그 때의 뇌를 fMRI로 찍어보면 관련된 영역에서의 뇌 활동이 감지되기 때문에 이런 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는 감각의 수단과 감각의 대상을 혼동한 것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망원경이 없다면 우리는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과 오리온자리의 말머리 성운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이 없다면 타이탄과 말머리성운은 있을 수 없다." 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타이탄과 말머리성운은 망원경에 의해 <지각> 되는 것이지, 망원경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망원경은 감각의 수단일 뿐이며 감각의 대상은 수단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형이상학적 대상을 지각하는 수단이지만 그 대상 자체는 아닙니다. 물리적 대상들 역시 뇌에 의해 지각되는 것이지 뇌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의 중요성은 이처럼 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있을 뿐입니다. 


5. 의식의 존재 
 만약 뇌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면, 결국 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발생할 것입니다. 뇌라는 감각기관을 사용하는 주체야 말로 과거 인류가 영혼이라고 불렀고 현재 의식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청하씨도 인정하셨다시피, 현재 신경과학은 의식 현상을 "전혀"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의식현상은 인간의 감각과 사고 전반과 관련되어있는 매우 중요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감각과 사고와 관련된 뇌의 국지적인 부분들이 거의 밝혀져 있고, 그것들의 활동이 잘 알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에 관한 극히 미세한 단초라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이상한 일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특수한 감각현상에 대한 물리적 기반마저 밝혀낸 상황에서, 이렇게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상에 관한 어떤 물리적 기반도 발견할 수 없다는 상황이 과연 정상일까요? 만약 의식이 정말로 물리적 현상이라면 말입니다. 대체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의견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 문제는 여기에서 더 깊이 논의하기는 힘들 것 같으며, 아직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거론한 문제들이 지금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이 문제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현재로서 저는 200년 후 중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르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200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어리석게도 의식이 20세기식 컴퓨터와 같은 물리적 현상인 것으로 믿었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기계를 모델로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의식을 탐구하려고 했답니다." 







 병장 김청하 
 갸오(...)           04-30   

 중위 정도환 
 듀얼리즘에 대한 내용인듯 하네요. 풀하우스를 쓴 스티븐 제이 굴드와 빈 서판을 쓴 스티븐 핀커-그러고 보니 같은 스티븐!-와의 논쟁이 상당히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조만간(한참 후?) 이쪽 관련해서 간단하게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04-30   

 병장 이승일 
 음... 듀얼리즘(이원론)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표방하고 있는 생각은 말하자면 존재론적 일원론 + 속성 이원론 정도가 되겠네요. 
 존재론적으로는 물질적 대상이나 수학적 대상이나 모두 '존재한다' 는 점에 있어서 동일하지만, 전자의 속성은 시공간적으로 유한한데 반해 후자의 속성은 유한하지 않다는 점에 있어서 서로 불연속적이며 따라서 이원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