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 기시 유스케
# 까발림(미리지름)의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휴가 때 건져온 온 책 3형제 중 그 첫째. 원래 무서운 건 별로 안 좋아합니다만, 아는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무섭고 재밌다고 해서 영풍문고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는 질러버린 책입니다. 이 책 읽고 무서워서 야근 못하면 어떻하지 라는 바보 같은 고민까지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장르는 호러소설로 되어 있습니다만 스릴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한테 호러란 귀신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읽었던 아임 소리 마마 라는 소설과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군요.
주인공 와카쓰키 신지는 보험회사 직원이다. 그것도 사망보험금의 사정(査定)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맑은 공기를 들이쉬며 출근하고 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는 어느날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자살 시 보험금 지급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때 어떤 예감을 느낀 신지는 여자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경험을 털어 놓게 된다. 그 후 갑작스러운 지명에 신지가 방문한 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소름 끼치는 검은 집이었다. 검은집에는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한 악취가 풍기고 음산한 분위기에 잠겨 있는 시커먼 저택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 보다는 폐가에 가깝다. 도망치듯 떠나려는 신지는 자신을 호출한 고모다 시게노리라는 남자와 마주쳐 어쩔 수 없이 검은집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지가 발견 한 것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어있는 고모다의 아들 가즈야였다.
제목이 검은 집이라 주인공이 검은 집에 갇혀서 공포와 마주하는 그런 스토리를 상상하였으나 실제 전개 상에서 주인공이 검은 집에 직접 발을 들이게 되는 것은 몇 장면 되지 않는다. 어떤 공포의 상징인 검은 집에서의 전개가 짧아 특별히 아주 공포스럽다거나 전개가 긴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신 소설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긴장감을 높이며 조여 들어온다.
사이코파스
동정이나 양심, 후회와 같은 심적 기능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남을 속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
소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이코파스이다. 배덕증후군과도 일맥상통하는 이것은 ‘정신병’이라기 보다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에 가깝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만을 위해 행동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애초에 브레이크라는 것이 없어 정말로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곤 한다.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남을 속이고, 갑자기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누군가를 고문하고 죽이기 까지 한다. 심지어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정’인 혈육의 정 조차 결여되어 있어 자신의 아이를 태연하게 유기시키기 까지 한다.
“하지만 자식을 버리는 것이 곧 범죄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 까요?”
“부모, 자식의 사랑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지요. 그런데 사이코파스는 자신의 자식에게조차 애정을 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요?”
사이코파스이자 모든 범죄의 원흉인 사치코는 검은과부거미로 상징된다. 거미는 인류의 집합적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원형인 ‘태모(胎母)’를 상징한다. 융에 따르면 태모는 어머니다운 배려, 위로, 여성 특유의 주술적 권위, 이성을 초월한 지혜와 영적 고양, 육성 등의 긍정적인 측면과 온갖 비밀과 은폐, 암흑, 나락, 사자의 나라, 집어삼킴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이코파스인 사치코에게는 애초에 ‘혈육의 정’이라는 측면이 결여 되어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검디 검은 어둠 뿐이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그녀는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전 남편 시라카와 이사무, 화장품을 팔기 위해 잠시 들른 외판원, 친 자식인 시라카와 요시오, 고모다 가즈야,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 가니이시, 미요시. 목표를 자신의 둥지 – 검은집 – 로 유인하거나 끌고와 잔인하게 살해하는 그녀에게 ‘죄책감’따윈 찾아 볼 수 없다. 그런 것은 그녀에게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최후의 최후에 신지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도와 같은 예리한 식칼을 들고 회사에 잠입한 사치코는 짐승과 같은 감각으로 신지를 회사에 가두어 버린다. 죽음을 각오한 사투 끝에 간신히 소화기로 사치코의 후두부를 박살(搏殺)해 버린 신지가 느끼는 것은 살인의 죄책감이 아니라 바퀴벌레를 퇴치한 것과 비슷한 후련한 감정 뿐이다. 신지에게 있어 사치코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다.
작가의 빗나간 의도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서 ‘사이코파스’란 존재에 대해 근본적이고 또한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언자인 가니이시와 노리코는 사이코파스 -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요인으로 인해 애초에 ‘감정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 자 – 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메구미는 완벽하게 감정이 결여 되어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본래부터 인간은 ‘선하다고’ 믿고 있는 그녀에게 선천적인 결함이 존재한 다는 것은 받아 들일 수 없는 금지된 영역인 셈이다.
주인공의 여자친구이며 따스한 마음씨를 가진 메구미는 가니이시와 극렬한 의견의 대립을 이룬다. 그리고 작가는 이 대결 구도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데 오히려 마지막에는 메구미의 편을 들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사이코파스가 아닌 사회에 만연한 염세주의적인 태도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사실상의 넌센스이다.
얼떨결에 사치코의 타겟이 되어 휘말려 들게 된 신지가 진상을 파악해 내고 조여오는 사치코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 - 그것이 검은집의 스토리의 구조이며 또한 전부이다.
검은집은 애초에 ‘사이코파스’인 사치코의 광기 어린 살인으로 인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열 명도 넘는 사람을 잔혹하게 죽여놓은 사치코의 행위는 도저히 ‘괴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을 칼로 난자하는 끔찍한 고문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한 메구미의 말은 이렇다.
“그래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요”
“응?”
“나는 선천적으로 사악한 사람은 없다고 믿고 있어요”
“어린아이는 원래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법이지요. 사치코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에게서 그러한 대접을 받아왔을 거에요. 그래서 그러한 삶 밖에 살 수 없는 거지요. 사람을 상처 입히거나 죽이는 것이 나쁜 짓이라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에요”
이 문장을 읽은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여태까지 사치코의 악마적인 면을 잔뜩부각해 놓고서는 (430페이지에 걸쳐) 마치 사치코가 어렸을 때 그런 대접을 받아왔기 때문에, ‘후천적’학습을 통해서 이러한 정신병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라고 (달랑 1페이지) 메구미는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책의 어느 부분에서도 사치코의 어렸을 시절은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메구미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불편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작가가 이렇게 결론 맺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사이코파스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니이시의 주장은 메구미의 주장에 비해서 훨씬 논리적인 근거를 분명히 갖추고 있다. 2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서 가니이시는 논문이나 학설을 인용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나 작가는 의도적으로 가니이시의 주장의 설득력을 축소하려고 노력한다. 가니이시에게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코드로써 ‘동성애자’ 를 집어넣었을 뿐더러, 이러한 그의 주장이 그가 ‘메구미’를 비롯한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로 한정시키려고 한다. 또한 유전에 의한 사이코파스의 유전율을 의도적으로 높게 잡아 독자로 하여금 가니이시의 주장에 생리적인 불쾌감을 느끼도록 장치해 놓았다.
작가는 검은 집이 ‘사이코파스’는 척결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결말로 흘러가는 것을 염려하여, 의도적으로 메구미의 케릭터를 설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사이코파스의 ‘선천적 결함’은 수정될 수가 없기에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검은 집의 플롯 및 전개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만다. 오히려 작가는 과감히 메구미의 변변찮은 반론을 제거해 버렸어야 했다. 억지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글의 전개에 있어서 통일성이 훼손되어 버렸다.
마무리 지으며
검은 집은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다. 뒤통수를 강타하는 반전이나 숨막히는 전개로 가득찬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여오는 긴장감은 다른 소설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지막의 메구미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만 아니면 더욱 좋았을 뻔했기에 조금 아쉽다.
아임 소리 마마에서는 주인공의 어렸을 적 경험이 현재의 배덕증후군을 낳았다는 충분한 스토리 상의 뒷받침이 되어 있다. 주인공이 자신이 살해한 여자가 자신의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주인공은 큰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라면 메구미의 주장이 통용될 것이다. 그러나 검은 집은 아니다.
정말로 간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도 좋았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기 하는 그런 아슬아슬한 긴장은 단연코 ‘검은집’이었다.
강력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