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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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로 가는 길목의 건널목에는 이따금 차에 치어 죽은 동물들이 아침 이슬을 싸늘하게 맞으며 누워 있곤 했다. 그들은 오장육부를 밖으로 전시하기도 했고, 때로는 납작하게 눌려 아스팔트에 붙은 껌을 흉내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았던 시체는 단연 비둘기의 그것이었는데, 아마 건널목 너머로 형성된 광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수많은 시체들을 보면서 징그러워하고, 또 때로는 아이들에게 그런 잔혹함에 대한 목격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한번도 그러한 ‘죽음’자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길을 건너면서도 사고를 생각하지 않는 일종의 불감증 같은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나이가 어렸고, 또 정신연령이 어렸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죽음들을 목격하고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납작하게 눌린 비둘기의 시체를 그 동료들이 처마 밑에 앉아 구구거리며 보고 있어도, 나는 다만 ‘비둘기가 많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무렵 우리 꼬마들에게 건널목의 구경거리는 비단 이런 짐승들의 주검뿐만이 아니었다. 도깨비처럼 눈이 흉흉한 아저씨. 빨간색 야구방망이를 들고 건널목 근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시종일관 앉아 있는 방망이 아저씨가 바로 우리에겐 또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그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똑같이 살기 등등한 표정을 하고 방망이를 어깨에 짊어진 채, 언제라도 휘두를 기세를 선보이며 건널목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기운이 너무나도 살벌하고 무서워, 주민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오직 우리 아이들만이 철없이 그를 놀려대곤 했는데, 심지어 쌍욕을 하더라도 그는 꼼짝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인간이 아니라, 건널목의 귀신을 때려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인조인간 같았다.
그런 그에게도 가끔씩 표정의 변화가 급격하게 닥쳐오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란 바로 비둘기의 주검이 도로에 놓여져 있을 때였다. 그럴 때면 그의 눈은 사정없이 흔들거렸고, 때론 콧물까지 흘려가며 울기도 했으며, 방망이를 땡그랑 떨어뜨리고 했다. 이러한 모습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를 ‘비둘기 수호신’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줄여 ‘비둘신’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은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기등등한 기세를 멈추고 하염없이 우는지 알지 못했다. 온갖 어린 아이들의 추측이 난무 했을 뿐이었다.

그가 우리들에게 언제나 중대한 관심사로 떠올랐던 것은, 그의 존재가 더 말할 수 없이 미스테리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사는지, 무얼 하고 사는지, 형편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이러한 특징은 소문으로 퍼져, 그가 외계인이다. 사실은 귀신이다 라는 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홀로그램이라는 둥(2반에서 한창 공상 과학 도서가 유행할 때 퍼진 소문이었다), 우리가 단체 최면에 걸린 것이라는 둥,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식의 말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현실로서 그 자리에 존재 했고, 항상 그래왔듯이 건널목에서 비둘기를 수호하는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해가 뜨면 자리에 와서 건널목을 지켰고, 해가 지면 자리를 떠나 어딘가로 돌아갔다. 그 누구도 겁에 질린 나머지 그를 끝까지 미행해본적은 없지만, 마지막 목격담에 의하면 언제나 북쪽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곧 없어져 버린 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격담은 또 다른 소문을 발생시켜서, 그 시장에는 그가 기거하는 비밀 아지트가 있다는 둥의 이야기를 또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그에 관해서 정확하게 정의된 것이라곤 그 무엇도 없었다.

그러다가 5반 녀석 중 한 명이 엄마 따라 반상회에 갔다가 어른들이 그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며 소식을 가지고 왔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러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살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대중목욕탕을 가던 중, 아들이 건널목에서 성급하게 먼저 뛰어 건너는 바람에, 달려오던 화물 트럭에 치어 숨지게 됐다는 것이었다. 화물 트럭은 그의 아들의 몸을 짓이기고 머리를 깨부순 뒤, 서둘러 뺑소니를 쳤으며, 끝끝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 것도 못해보고 아들의 잔혹한 죽음을 눈앞에서 치른 그 아저씨는 그 이후로 실성을 했고, 결국은 지금처럼 매일같이 건널목에 나와 그 화물 트럭 운전수가 지나가기만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새빨간 방망이를 들고,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말이다.

그 나이로서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나는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를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 보였던 그의 행위가 참으로 인간적인 행동으로 변모 하였으며, ‘나 같아도 그랬겠다’는 동정표를 얻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하였으며, 앞으로는 내 친구들이 혹여 그를 놀리더라도 나는 놀리지 않겠다는 숭고한 다짐을 했다. 그것은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자식을 잃은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고,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처사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마음 한편으로는 그 아저씨가 화물 트럭 뺑소니 운전수를 잡아다가 방망이로 사정없이 복수 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그러나 사실 어른들이 나처럼 그의 사정을 안다고 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고 그를 독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하긴 했지만, 엄연히 ‘미친 사람’으로 분류해 두고 있었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를 ‘조심해야 될 사람’으로 가르쳤다.
‘그 아저씨가 언제 정신이 헤까닥 해서 방망이로 누굴 다치게 할 줄 모르는거야’
이것이 어른들의 논리였다. 사실 시뻘건 방망이와 그의 독기 품은 눈은,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고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아저씨를 그렇게 치부하는 어른들의 논리가 왠지 미안했고, 아쉬웠다. 나는 우리 부모님의 편이기 보다 그 비둘신의 편이기를 자처 했으며, 비둘기의 시체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함부로 비둘기의 잔혹한 죽음에 대해 자랑하듯이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른들이 그를 미친 사람으로 분류하고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 할 뿐, 어떤 경찰의 협조라던가 하는 대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단순한 무관심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때 나에게 그들의 그러한 조처는 일종의 ‘이해’로 비췄다. 다만 어른들은 그의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했고, 따라서 이런 분노의 표출로 드러나는 ‘건널목에서 살기등등하게 버티고 있기’를 인정해 준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우리 집 앞 동 사는 내 친구 조승훈이가 어느 날 그의 시뻘건 방망이를 맞고 뒷통수에서 피를 뿜은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동네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조승훈네 부모님은 흥분했고, 다른 부모님들과 함께 비둘신 아저씨를 찾아가 따졌다. 그러나 아저씨는 또 묵묵히 살기등등한 눈을 하고서 건널목을 지킬 뿐이었다. 마침내 부모님들은 경찰을 불렀고, 사건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큰소리가 몇 번 나고 이따금 조승훈이 아버지의 ‘내가 미친 놈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하는 말도 들려왔지만, 그 날의 사건은 결국 비둘신의 노모가 찾아와 넙죽넙죽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몇몇 부모들은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뺑소니고 뭐고 당신부터 콩밥 먹을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경찰들은 이 흥분한 부모들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비둘신의 노모는 자꾸만 사과를 하며 비둘신을 때리고 고개를 숙이라고 했다. ‘아이구 이놈아 빨리 사과 드려 이놈아’ 노모는 굽어서 굽힐 수도 없는 허리를 연신 굽혔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으로 이 도깨비 같은 비둘신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왠지 인간다운 면모는 더욱더 느껴졌지만, 사실 나는 다시 그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고, 여느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에 대해 분노했다. 조승훈이는 나의 친한 친구였고, 그가 비둘신의 방망이에 맞아 피를 뿜었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뒤 늦게 접한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까불까불한 조승훈이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둘신을 마구 놀렸고, 제 풀에 겁이 나서 후닥닥 도로를 건너 달아나려고 하는 순간 비둘신이 방망이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조승훈이를 쳤다는 것이었다. 문병을 간 조승훈이의 병실에서, 조승훈은 선물로 받은 각종 위문품을 개걸스럽게 먹으면서 사건을 설명했다.
‘별 미친 놈이 다 있다 그지?’
조승훈이가 맨 마지막에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에 끄덕였다. 나는 비둘신 자체에 대한 분노도 분노였거니와 한때나마 그를 동정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역시 분노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폭력으로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조승훈이 말고도 그 전에 피해자가 몇 명 더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들 중 몇 명은 실제로 이러한 경험담을 토로했으며, 소문은 또 삽시간에 퍼졌다. 더군다나 그들 중 몇 명은 조승훈이와는 달리 그를 놀린 적도 없으며, 자극 한 적도 없었는데도, 그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따라왔다는 이야기를 해 왔다. 다행히 재빨리 도망친 탓에 방망이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둘신이 달리기가 무척 느린 편이며, 제대로 뛰지도 않는다고 했다. 소리만 크게 지른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겁에 질렸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조승훈이 사건만으로도 그들의 경험담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방망이를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미친 사람이었고, 그 때부터 나는 동정보다는 경계를, 이해보다는 미움을 그에게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하교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은 화창했고, 기분은 명랑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장난이 심했고, 이것은 건널목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 중 덕환이 녀석이 반장을 ‘팁贅라고 놀리면서 i고 i기는 추격전이 시작됐는데, 문제는 덕환이가 도망 코스를 건널목으로 잡으면서 시작 되었다. 지금부터 내가 설명하는 것은 바로 그 당시 일어났던 일이며, 슬로우 모션처럼 동작을 천천히 묘사하는 것임을 미리 말해 두는 바이다. 
덕환이가 도망가는 2차선 건널목에서는 좌측으로 커다란 화물 트럭이 달려 오고 있었다. 단지내 구역이기 때문에 속도를 낮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급한일이 있는지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마침 덕환이가 건널목으로 뛰어든 순간은 트럭과 충돌하기에 딱 알맞은 순간이었다.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가면 우물쭈물하다가 교통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아차 하는 그 때, 내 옆쪽으로 빨간 무언가가 보였다. 반장은 덕환이에게 야 안돼 임마! 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그 빨간 무언가는 반장마저도 스쳐 지나가 덕환이에게 달려갔다. 비둘신이었다. 그는 덕환이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트럭이 덕환이를 충돌하려는 순간 급브레이크 소리가 고막을 찢을듯이 울렸고,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트럭은 저 앞에 멈춰서 있었고, 덕환이와 비둘신 아저씨는 한몸이 되어 건너편에 넘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물트럭 운전수가 겁에 질려 차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죽었다. 저 아저씨는 이제 죽었다. 비둘신은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인 지금, 저 운전수를 흠씬 두들겨 팰 것이다. 나에겐 그를 말릴 힘이 없었다. 어쩌면 저 화물트럭 운전수는 그 뺑소니를 대신해서 죽을 지도 모른다. 나는 겁에 질렸다. 비둘신 아저씨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덕환이도 정신을 차렸는지, 울먹울먹 하다가 이윽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그들에게 접근했다

“괜찮으세요?”

비둘신은 천천히 일어나 그의 머리통을 방망이로 휘갈길 것이었다. 

그러나, 비둘신은 일어나질 않았다. 덕환이를 꼭 껴안은 채 오래도록 그렇게 있었다. 기괴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지 우는지 모를 괴상한 표정과 함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덕환이를 소중하게 껴안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말했다
“다행이다.. 다.. 다행이다...”

어쩌면 아저씨는 뺑소니 운전수를 기다린 게 아닌 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