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와 똘레랑스 
 병장 김지민 04-24 15:00 | HIT : 286 





 개고기와 똘레랑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다보면 똘레랑스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단어가 꽤나 생소했는데, 대충 문맥적 의미를 파악해 놓고 보니 '자신과 타자의 의견에 대한 높은 수용성과 관용성' 이라는 뜻으로 풀이 되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고딩 시절 사회문화시간에 배웠던 '문화 상대주의'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다만 그것이 문화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모든 '의견'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훨씬 큰 개념이겠지만. 말하자면. 문화상대주의 또한 똘레랑스의 기지로 바라본 하나의 문화관이라는 이야기다.
 홍세화는 책에서 내내 빠리 시민들의 똘레랑스를 칭찬하며 한국의 대중성을 비판하는데에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그래. 위험발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좀 생각없는 대중들이 좀 많기는 하지. 아무 비판없이 그저 우루루 몰려다니는 이상한 습성이 있지 않은가. 그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붐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나도 스타를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접해보지도 않으면서 스타가 최고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말임. 오해 없길 바람), 유행패션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게 아니던가. 도대체 똘레랑스라고는 없어서, 타인이 나와 다르다 치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내가 타인과 다르다 치면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 생각 없는 대중들의 특성 아니던가. 우루루 우루루. 우루사도 아니고.
 홍세화가 물론 그토록 잔인하게 우리나라를 비꼬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도 조금 과장해서 말했을 뿐, 말한 그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점에서는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대책 없이 그냥 다 좋다고 하는 것에 끌려가는 건 내가 보기에도 별로 안 좋아 보이니까. 요즘은 개성시대라는데 그런 생각 없는 대중성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 아니겠는가. 똘레랑스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의견이 없이 타인과 마냥 같아지려 하는 것이 그닥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빠리의 시민들은 어떤가? 패션의 도시인만큼 유행에도 민감할 것 같지만, 오히려 빠리의 시민 -특히 여성-들은 유행보다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멋쟁이들은 다들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 그것이 복고이든 최신 스타일이든, 나만 좋은겨 이든 상관없이 그런 자신만의 트렌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은 다 똘레랑스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기본 바탕에 똘레랑스. 즉 나의 의견과 다른 사람의 의견은 다르니까, 그래 다르니까 수용하고 내가 좋은건 내가 좋은거 니가 좋은 건 니가 좋은거 해서 그렇게 입고 다닌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빠쑌을 한다면? 패션 7080이 되어버리고 만다. 압구정에서 먹어주지 않는 빠쑌이 되어버리는 거다.

 설명을 듣자하니 똘레랑스라는 것은 참 좋아 보인다. 알게 모르게 대중매체에서, 그리고 교육과정 속에서 개성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암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똘레랑스는 추구해야 할 하나의 삼강오륜과도 같아 보인다. 이는 패션의 문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일에 있어서도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발표수업, 토론식 수업을 주로 진행하는 요즘의 대학만 보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는 학생은 뒤떨어진 학생으로 취급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편협한 식견으로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것도 도태되는 대상으로 분류되니까 말이다. 똘레랑스는 이렇게 우리 사회에 조금씩 침투해 가고 있다.

 그래 좋다.
 물론 우리나라가 정에 입각한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과 다른 것 보다는 같은 것을 추구하고, 예의범절을 중요시 한 까닭에 아닙니다 보다는 그렇습니다를 따르다보니 똘레랑스가 부족하다는 핑계거리가 있지만, 어쨌거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그러니까, 그 잘난 똘레랑스의 의식을 앞세우는 이른바 선진국들의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도 그러한 의식을 따라가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만 꽁꽁 묶여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거 없이도 알콩달콩 재밌게 살겠지만, 다른 나라 노무시끼들이 바란다는데, 우리보고 편협하다고 몰아세운다는데, 어쩔 수 있나. 지금은 세계화 시대인데.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좋다 이거다.

 그래서 말인데, 그 잘난 프랑스의 똘레랑스도 씹을 겸, 개고기 문화를 아무 생각 없이 비판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씹을 겸, 개고기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본 필자가 개고기에 대해 풍부한 교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아니다. 수많은 역사적 고증을 들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는지 따위를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리라 믿고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프랑스의 한 인기 연예인님께서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를 비방하며 망발을 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뇨자는 심지어 개고기 문화 뿐만 아니라 한국 자체, 우리나라 국민 자체를 야만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니 여기에서 흠칫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그녀가 주장하는 바가 어쨌건 간에 발끈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말의 애국심이 있다면 말이다. 최소한 월드컵때 다른 나라 응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튼, 그 뇨자의 의견은 이렇다고 한다. '개는 우리의 친구인데, 어떻게 친구를 먹을 수가 있느냐.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

 개뿔.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를 놀릴 때 "아 그놈들은 개 키우다가 배고파지면 잡아먹는다더라" 하고 농담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뇨자의 이런 망발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이놈들 착각을 해도 단단히 했다.
 우선 그 잘난 똘레랑스의 의식을 가진 프랑스분들께서 잘 못 알고 있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듯 '개'에게도 식용과 애견용이 있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그렇게 썩 모를 법 한 이야기도 아닐 것 같은데, 그분들은 마냥 우리가 그저 야만인 같은가 보다.

 동물은 살기위해 먹는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그러하다. 식물이란 놈은 햇볕과 물만 있으면 쑥쑥 자란다지만, 동물 놈들은 그렇지가 못해서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먹이사슬 피라미드 최 상위 클래스에 위치한 인간의 식성을 보자면, 정말 그야말로 피라미드의 최정상임을 실감 할 만큼 대단한 잡식성을 보여준다.
 개는 다만 그 피라미드의 하위계층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친구라고? 그래, 친구일 수 있겠지. 행여나 나의 이 글을 보면서 '아 저놈 개 키워본적 없으면서 저런 글 쓰나보다'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나에겐 기른지 15년, 아니 이제 곧 16년째가 되는 요크셔테리어 예삐가 있고, 이미 개라기보다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근데도 그런 생각을 해? 이런 야만인" 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글을 차근차근히 읽어주시라.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피라미드의 하위 계층에 서있는 개가, 그 어느 때서부터인가 인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살아온 데에 있다. '개는 우리의 친구' 라고 불러도 무방한 것은, 그만큼 개들이 우리 인간사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피라미드의 하위계층으로 기본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이놈들은 세계 각지에서 구조견, 맹인견, 마약탐지견, 경찰견, 군견, 등등의 용도로 인간에게 유용하게 사용 될 뿐만 아니라, 애견용으로도 길러지고 있다.
 그러나, 말했듯이, 그것은 특수한 경우일 뿐이고, 개들은 언제나 피라미드의 하위계층에 서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식용동물과 다르지 않다. 소, 돼지, 양, 오리, 닭 등등등.
 막말로 그놈들(소 등등등)도 애완으로 키우면 키울 수 있는 조낸 귀여운 놈들이다. 다만 식용으로서의 용도가 훨씬 가치 있기 때문일 뿐이지.
 우리나라는 그 식용으로서의 가치를 개에게도 후하게 주고 있을 뿐이다. 그 차이다. 그 차이.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이익을 챙기는 기회주의적 생물인가. 어차피 조낸 배고프면 똘레랑스 머시기한 놈들도 친구를 잡아 먹을거다. 아직 배가 덜고파서 그딴 말 하는 걸거다. 아니, 개는커녕 진짜 친구도 뜯어먹을걸. 인간도 본디 짐승이지 않던가.

 나는 어차피 고기 먹으면서 개와 다른 식용동물을 다르게 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나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르는 프랑스 놈들은 그렇다 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 잘난 똘레랑스를 개고기에만 적용시키지 않는 프랑스 놈들처럼, 그런 사람들은 마냥 선진국에서 야만인이라 하니깐 야만인인가 보다 하고 같이 손가락질 하는 것일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 주입된 거다 주입된 거. 자기 사상이라곤 없이. 비판이라곤 하나도 없이.
 개를 후두려 패서 먹는게 야만적이라고? 그래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식적이지 말자. 뭐는 잔인하고 뭐는 안 잔인하고 그런 게 어디 있나. 내가 보기에 가장 잔인한건, 어두 컴컴한 콘테이너 건물에서 부화된 병아리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모이 쪼아먹고 크다가 제대로 땅에 밟도 못 디뎌 보고 자라, 컨베이어 벨트에 매달려 포장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먹히기 위해 태어났다니. 제기랄 불쌍한 거다. 근데 뭘 후드려 패기 때문에 불쌍하고 야만인이야. 맛있게 먹을라고 후드려 팼으면 맛있게 먹어주는 게 예의지. 다른게 예의가 아니다. 죽은 개 불쌍히 여겨서 뭐 할 건가. 개 뿐만이 아니다. 어차피 먹을거면 맛있게 먹어주는 게 장땡이다. 맛있게도 안 먹어주면 최악이다. 먹히려고 태어났는데, 맛없게 먹히면 그야말로 생의 가치가 제로로 변하는 것이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본 필자는 개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먹었을 때는 배가 너무 고파 맛있게 먹었지만, 두 번째 먹고 보니 영 느물거리고 비릿해서, 먹을 맛이 안 났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히 개고기 애호가라서 매니아라서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누차 말하지만 나는 키운지 15년째 되는 개가 있다. 나는 똘레랑스를 생각할 뿐이다. 그 잘났다는 똘레랑스 말이다.
 물론, 프랑스 애들 전원이 개고기 문화를 야만인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게다. 그 중에서도 진짜의 똘레랑스를 발휘하여 아. 그럴 수도 있지. 그게 걔네 문화인가보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세화씨가 말한 것처럼 '똘레랑스의 나라' 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우리나라에게 먹힌 스트레이트가 너무 강하지 않나 싶다. 미쳐가지고, 가식 덩어리의 공격을 날린거다. 조낸 재수없게.
 차라리 똘레랑스라는 어휘 자체가 없는 게 낫다 그럴 바에는.


 추가.

 그러고 보면 서양에서는 개를 조금 존중해 주는 모양이다. 우리 나라에 비하면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라는 어휘가 마냥 부정적인 어휘로 쓰이고 있으니... 굳이 예는 들지 않겠다. 앞에서도 한번 그런 용어 쓴 것 같긴 한데......





 ※ 재탕입니다



 병장 진규언 
 브리짓 바르도라는 그 년자의 입에는 똥을 퍼부어 줘야 마땅하겠지요. 이 또한 엥똘레랑스(불관용)이라고 보여지겠지만 말이에요. 홍세화씨가 자신의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처음 언급했고,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서 힘주어 말한 것은.. 

" 엥똘레랑스(불관용)에 대하여 똘레랑스(관용)한 것은, 엄청난 엥똘레랑스(불관용)이다." 
 고로.. 
" 엥똘레랑스에게는 철저히 엥똘레랑스해야한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지극히, 엥똘레랑스한 현실에 대해서는.. 저항 자체가 엥똘레랑스라고 비추어질지언정, 결코 관용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이야기 합니다. 전 그 년자에게 심각하게 불관용하겠습니다. 까짓거, 그 기준을 누가 나누느냐.. 그리고 어느선까지 불관용을 인정하느냐는 또다른 똘레랑스의 범위를 만들어 내겠지만 말이어요. 04-24   

 상병 고인선 
 지민님의 글에 전적으로 200%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는 프랑스와 개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너무 화가 납니다. 

 한국인이 예로부터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하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 뭐 브리짓 바르도뿐만 아니라 다른 프랑스인들의 시각으로 볼 때는 우리 한국인이 야만인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우매한 야만인들에게 돌을 던져주시는 프랑스인님들도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만물에게 그렇게만은 관대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예로 프랑스에서는 양질의 거위 간을 얻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사용 한다는 것. 빨대로 거위의 콧구멍에 물을 집어넣는다던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방법이었던것 같은데, 프랑스야말로 단순히 "더 좋은 거위 간'을 위해 우리 귀여운 거위에게 그토록 가혹한 행위를 일삼는 것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우리들의 오랜 전통' 이라며 아직까지도 그 행위를 고수하고 있다. 

 개고기도 '우리들의 오랜 전통'인 것이다. 지민님 말대로 그 잘난 똘레랑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정중지와일 줄이야. 

 우습다 우스워! 04-24   

 병장 이건룡 
 상충하는 프랑스이미지들의 거리감은. 똘레랑스의 나라와 개고기를 식용하는 문화에 비난하는 나라의 대비는 미화되어진 서양인으로 상존하는 이미지의 문제로 남는 군요. 이는 마치 합목적성과 미의 교집합인 '숭고'가 보편적인 장으로 등록되는 데 실패하는 적당한 사례처럼. 하지만 일례의 합목적성 아래에서는 (수단으로써)포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 까요? 절충안처럼 들릴 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막을 방안(방도)은(는) 어렵지요. 수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시도된 기본적인 교화가 실패한 역사처럼 말이죠. 하지만 유토피아적 궁상마냥 진정한 '세계화' 이룩 되었더라면 이를 위한 위선적인 방안도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다 해도 분명 고종석씨의 언어연구가 풍성한 프랑스처럼, 김지민님이 언급한 '개'에 대해서도 존중적인 언어가 있다는 측면은 미진한 분야에 대한 반성을 요하는 부분이 아닐까?싶습니다. 04-24   

 병장 윤재훈 
 홍세화씨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언론 보도 행태에 관한 문제점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나라 언론에서는 자기 신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외국 사람의 글을 왜곡된 정보를 포함해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요.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 분야의 지식인으로 알려진 기소르망과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관계였습니다. 동아, 조선일보에서는 기소르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지식인이라고 하지 기소르망이 프랑스 우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라는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고요, 브리짓 바르도 라는 사람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은 하나의 가쉽거리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프랑스 사람은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관용을 보일꺼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떠오르네요. 4살에 한국을 떠난 
' 국적'만 한국인인 한 사람때문에 대통령이 유감표명을 하는 나라. 우리는 왜 이렇게 
 외국인의 반응에 민감하게 된걸까요? 04-24   

 병장 김지민 
 재훈님 / 브리짓 바르도의 망언 파문이, 간단한 가쉽거리였는지 모르고, 신문에서 오도한 탓에 우리나라에서 너무 크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재훈님의 댓글에 존재하는 의도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VT사건의 경우와 브리짓 바르도의 망언 사건은 엄밀히 다른 성격입니다.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의 대응 태도가 엄밀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목적이나 행위나 무엇을 보더라도 이것은 엄밀히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VT 사건의 경우는 뉴스에서 이야기하다시피, 그리고 저 아래 규언님의 '이기적인 걱정'에서 다루어지듯이 다만 '이해관계'에 입각한 대응방식일 뿐이며, 어떤 도덕적이거나 감정적 측면의 대응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살인마로 비칠까봐 난리 부르스를 땡기는 것이 아니라, 살인마로 비추어져서 입게 될 이익의 손실 때문이지요. 
 이와 비교 했을 때, 브리짓 바르도의 망언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국가의 이미지 회복이라거나, 이익 보호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순수한 분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는 성격이 다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왜 이렇게 외국인의 반응에 빈감하게 된걸까요?' 라는 결론은 귀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훈님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게 브리짓 바르도의 망언 파문은 다만 가쉽거리로 끝난 것 만이 아니라 '한국수입품 불매 운동'으로 번졌으며 그 선두에 그 년자가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한국인들은 친구 먹는 야만인' 이라는 망발에 이정도의 반감도 갖지 않는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반응에 둔감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현재 VT공대 사건에 대한 우리측의 반응이 너무 과도하다는 데에는 동감하지만요. (하지만 이 역시 자국의 이익 수호라는 측면인 만큼 브리짓 바르도의 망언 사건과 엄연히 성질이 다르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04-24   

 상병 박재우 
 한국사람들은 브리짓 머시깽이의 말싸움에 오나전 말려들었다고 봅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비약시켜 한방에 보내버린다는 '허수아비전법'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모두 개고기를 먹는것도 아니거니와 키우다가 배고프면 먹는다는 건 더더욱 아니죠.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한국인들은 키우던 개를 먹는 야만인이다'라는 말을 전재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그 아줌마는 정치판에 뛰어들면 승승장구할것이다 정도? 04-24   

 상병 김윤호 
 그 잘난 똘레랑스인지 뭔지를 저도 감히 발휘해서 세상에는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애호가를 자칭하고 있는 제 친구가 틈만 나면 개xx, 개x라고 말하는 걸 잠자코 들어주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죽빵을 날린 것은 나름 해오던 '이성적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제 생각과는 무관합니다. 04-25   

 상병 이지훈 
 돼지를 애완돈으로 키우는 사람은 돼지고기 안먹나요? 음....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