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의, 그러나 다른 시간의... 
 병장 진규언 02-22 16:46 | HIT : 170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이 제한되다 보니 공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헛된 망상에 그쳐버릴 지라도 말이다. 이 망상을 옮겨 적을 수 있는 메모장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약간의 여유가 주어져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타인에게 일종의 공해가 되지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2007 년 2월 현재, 이 공간에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다. 나이 차이를 이야기하는것일수도 있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의 학년을 이야기 하는 것일수도 있다. 학년을 떠나 전공의 심화된 정도로 시간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소통'의 공간인 이곳에 들어와 버리면 다 섞인다. 말을 섞고, 냄새를 섞고, 경험과 지식을 다 토해내며 섞인다.

 섞이는 과정에서... 자괴감에 빠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난다. '나는 왜 이정도밖에 자라지 못했을까', '나의 지적수준은 왜 이정도밖에 안될까', '저 좋은 경험들을 나는 왜 하지 못했는가'..... '나는 왜이리 멍청한가!' 책마을의 기본적인 도구인 책을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을 계속 읽어내려가다 보면 느껴지는 것은 나의 무지이며, 지식을 아무리 쌓는다 하여도 내가 지니지 못했던 지식의 방대함에 으악. 소리를 질러버리는게 당연하다. 결산주의자 A가 읽은 책의 목록들을 보며... 그 진중함에 혀를 내두르고, B가 읽어온 책들을 보며 오호. 이런 부류의 인간도 있구나. 그 어떤 글들을 읽든 그것은 다른 정신세계를 봄인데... 계속 멍청함 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까이 국어교사가 꿈인 녀석이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처럼 되는 것이 가장 가까운 목표라고 말하는. 그녀석의 생활은 참 솔직하다. 가식이 묻어나지 않는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읽고 싶으면 읽고 그리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적어도 나처럼 가식적인 속물은 아니다. 문학적 감수성은 어찌 그리 뛰어날까 ? 하루중 아무때나 툭툭 누런 가래침인듯 뱉어내어 버리는 글들은... 감탄을 넘어 경탄에 이른다. 호응도 대단하다. 스무살 이전에 등단했어야 하는데... 라는 말을 계속 내뱉는다. 아... 멋모르던(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청소년기에 '문학소년'을 자부했던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문학소년이 아니구나. 라고 느낀다. 

 이곳의 수많은 괴물같은 인물들을 보며 뭐.. 정치경제적 문제들까지 수학내지는 과학들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뭐 대충 '일반인'들이 보기에 제목조차도 겁이나는 책들에 대한 비평을 거침없이 쏫아내는 사람들, 지식인이라고 칭송받는 부류들(유명한 교수쯤되겠지)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 아 이 경지에 이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아니, 도대체 저 인간들은 어떠한 과정들을 거쳐 저렇게 되었을까. 보다 큰 궁금증은... 과연 언제(몇살 내지는 몇학년? 살아온 삶의 깊이?) 저것을 이루었는가(혹은 이루고 있는가)

 분명, 1년전... 범접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에 '감히' 발을 내딛기가 무서워 눈팅만 주구장창했던 책마을도 이랬으리라. '소통'에 대한 논의야 뭐, 어딘가에 숨어지냈을 책마을에서조차 지속해 왔겠지. 그래서 이런 이야기야 뭐... 참신성 전혀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 겠지.다른 시간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시간의 충돌이기까지 하다. 배운 분야 내지는 관심분야가 다 다른데다가, 같은 분야의 사람일지라도 그 나아감에 있어 다 다르니까.. 회계원리조차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원가,고급회계를 이야기할 순 없는 노릇이며 나아가 나름의 회계실무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뭐, 실무에 있어서... 잘 만든 엑셀 시트 하나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래도 그 원론은 알아야 한다는 지극히 편협한 생각에 기초하여...) 맨큐의 경제학 정도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재정학의 이해를 기대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비슷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조차 이럴진대 애초에 다른 분야는 말해 무엇하랴. 

 시간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뭉치다 보니 삐걱거림이 당연하다. 그 삐걱거림의 소리는... 일천한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좋은 귀감이 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등대가 될 수 있으리라. 어디에나 인용되는 똑똑한 사상가들만이 우리의 선현은 아니다. 인트라넷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지난 글들을 줏어먹으며... 그들또한 나의 선현이 된다. 이미 이 공간에서는 아스라져 사라진 전역자들의 흔적이라도.. 적어도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며 비슷한 고민들을 해 왔을테니까.

 얼마전까지 장기간 베스트 셀러 1위 였다는 '부의미래' - 엘빈 토플러 에서는 변화의 속도에 대해 말한다. 뭐, 정부기관은 몇킬로.. 대학은 몇킬로, 기업은 몇킬로... (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반감이 든 부분은 아니기에...) 이런식으로 다른 속도를 가진 턱에 그 개체들이 가지는 위치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적절한 인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의 변화(내지는 적응) 속도는.. 타자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정도로 빠를 것이다. 그럼에 있어 우리에게 이 공간이 중요한 것이다. 다른 시간대를 사는 사람들의 만남에선,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저마다의 아는 만큼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아예 논제조차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원글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답글의 진행방향이 예라면 예일까) 그 경우 그 진행속도는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섬뜩하다)

 그들이 내 나이때도 이랬을까 ? 오히려 더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배운 전공 정도만 가지고도 심도있는 글을 남길 수 있을까 ? 그건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접하는 책들또한 이미 고등학교때 다 읽어본 사람들이 많을껄... 그래도 다행인건, 이곳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는 사실 자체다. 

 그러기에, 말을 해야 한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오지 산골마을의 의사 한명은 심지어 그가 돌팔이일 경우라도, 마을 주민보다는 의학적 지식이 탁월하다. 만약 누군가가 사소한 병에 걸렸을지라도 그가 없으면 우왕좌왕 방향조차 잡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죽을수도 있다?) 그는 진료에 나서야 한다. 단 한번도 시행해 보지 못한 시술방법으로라도... 왜냐면, 그는 유일한 산골마을의 의사니까. 그가 아니라면 살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수많은 마을주민이 나올테니까... (아. 왜이렇게 극단적이고 좁은 사례밖에 못드는지...) 애초에 가정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 많지만, 한정된 상황에서도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많다면 취사선택 가능하지만...

 어리면 어린 나름대로 장점이 있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보다 순수할 수도 있고, 보다 창의성이 넘칠 수 있다. 과거의 지식들을 그대로 답습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혹은 철이 들어감에 따라(착각일수도 있지만) 조금씩 타협할수도 있고, 조금씩 꿈이 작아져버릴수도 있고... 아예 모르는 편이 나을수도 있으니까. 어려도 떠들어야 하고, 나이 많아도 떠들어야 하고... 몰라도 떠들어야 하고, 심각하게 많이 알아도 떠들어야 한다. 

' 책'을 수단으로 삼아...자신이 아는 분야에서, 자신이 아는 만큼의 정도만 딱. 그정도만... 말을 지어야 한다. 아니 그정도라도 내뱉어야 한다. 이것이, 동일한 공간을 살아가는 그러나 다른 시간속에서 사는 우리들이 가야할 방향 아닐까. 

 몇개월 정도 지났을때에,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진료 받을 수 있는 환자가 되길 희망하고 조금더 나은 수준의 진료를 행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길 원한다. 뭐, 보다 동등한 관계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간호사면 더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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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장 배진호 
 진규언님.. 좋은글 고맙습니다.. 

 음.. 솔직하게 말해서.. 제 글에 매번 태클을 거는 느낌을 받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었는데.. 

 이렇게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어린 글을 보니... 그것도 공감가는 글을 보니 방갑네요.. 

 어떻게 진규언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진규언님의 생각은 저에겐 확실히 와닿는 생각들인거 같네요.. 

 음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02-22   

 병장 강세희 
 재미있는것은 지금 우리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들도 책마을을 접하면서 규언님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지요. 02-23   

 상병 김윤호 
 몇 일 전에 본 영화 데자뷰가 생각나는군요. 02-23   

 상병 김지민 
A 는 B를 질투하고 동시에, B도 A를 질투하고. 

 그렇기에 책마을이 책마을 다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치열한 자기반성, 언제나 규언님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당신을 질투하고 있습니다. 항시.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