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같은 유치함! 
 
 
 
 


112. 강철같은 유치함! :


……그녀는 정말로 어째서 자기를 사랑하는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질문을 받으면 그는 권투선수가 나비를 사랑하듯, 가수가 침묵을 사랑하듯, 악한이 마을 처녀를 사랑하듯 그녀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는 백정이 송아지의 겁먹은 눈을 사랑하듯, 번갯불이 조용한 전원의 지붕을 사랑하듯 그녀를 사랑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무료한 세계로부터 구원을 받은 신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를 흠모한다고 말했다.……
- p.58,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마침내 애엄마와 애의 미술 선생이 바람이 났고 소설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미술 선생의 의뭉스러움이 이지적인 마초주의였다면 이에 무방비 상태로 끌려다니는 주부의 모습은 패배주의적이었다. 헌데 이럴 수가, 이 여자의 매력은 바로 패배주의에 있었다.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그 어리석음은 차라리 우아하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그녀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건 어쩌면 나의 나르시시즘일 수가 있다. 그 나르시시즘은 그야말로 나 잘난 맛에 느끼는 그녀를 향한 동정일 수도 있고, 동시에 같은 패배주의자로서의 연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르시시즘과 패배주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 병장님의 손길이 뒤에서 무방비 상태의 내 옆구리를 엄습해 들어온 것은. 화들짝 놀라 잽싸게 안전한 곳으로 몸을 옮겼다. 장난이 시작되었다─뒷걸음질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소룡이었다. 자세를 잡고 "오와아~아됴!"만 하면 이제 기본 설정이 끝나고 본판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헌데, 순간적인 어떤 미심쩍은 느낌 때문에 이미 반쯤 잡았던 자세를 풀고 나는 다시 도망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는 신이 나서 계속 쫓아왔다.

도망다니면서 이제 내 관심사는 왜 아까 이소룡으로 가는 문턱에서 주저했느냐가 되었다. 그가 고참이라서? 이 나이 먹고 이소룡 놀이는 한심할 것 같아서? 아니다. 정답은 이소룡이라는 문화 코드를 대하는 나의 패배주의에 있었다.

단도직입으로, 이소룡은 우리 세대의 유산이 아니다. 비록 우리가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통해,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를 통해, 개콘의 장동민을 통해 이소룡을 소비하고는 있지만 그의 원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어린 시절 극장에서 이소룡 영화를 직접 보았던 이전 세대들이다. 즉, 지금 보고 있는 이소룡의 부활은 그들 세대의 향수를 겨냥한 것이고, 우리는 어디까지나 그같은 배려의 주변부에 머무를 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이소룡을 흉내낸다 해도 이소룡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영영 이소룡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었다.

내무실 안에서 뺑뺑 도는 것만으로는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 과감히 침상에서 뛰어내려 냉큼 슬리퍼를 집어신고서 밖으로 도망갔다. 다행히 밖으로까지 쫓아오진 않았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나는 도망가기를 멈추고 담배를 물었다. 그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무실에서 틀어놓은 건데, Baby Vox의 노래였다.

마침 흘러나온 가락은 심은진이 맡은 part였다. 심은진이라니. 아니 심은진이라면, 우선 인상부터가 도도하기도 하며, 심지어 노랫말조차도 "어리숙한 내가 아냐"라는 그 어려워보이는 여자 심은진이 아닌가. 그녀의 노래는 또다시 나를 패배주의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대체 나는 어디까지 절망해야 하는가. 무엇이 내무실에서 아무 탈없이 얌전히 책 읽고 있던 나를 졸지에 이렇게 만들었는가.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현재 이 상황이 그다지 진지한 상황만은 아니라는─즉, 진지한 자세로 임해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데서 실마리를 찾았다. 지금껏 나는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정○○ 병장님의 마수에 쫓겨다녀야 했고, 그렇다고 이소룡 흉내도 함부로 낼 수 없었으며, 심지어 가수 심은진조차도 나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묘한 안정감을 주는 법이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한바탕 웃음과도 같은 용기까지도.

나는 다시 내무실로 돌아갔다. 여전히 팔짝팔짝 뛰어다니면서 도망치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아까의 내가 아니었다. 그 모든 체신머리의 굴레를 벗어던지자 이제껏 나를 옭아매던 엄숙주의들이 일거에 무화되는 걸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순교자이듯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겐 거칠 것이 없었다. 패배주의? 그것은 아마도 세계가 제시하는 욕망들을 거부하는 이들의 나르시시즘일지 모른다. 패배주의자의 나르시시즘, 순교자의 나르시시즘.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세계를 향한 비관을 딛고 마침내 세계를 변화시킬 힘의 원천일런지도.

결국 지쳐서 그만 둔 우리는 샤워를 했다. 땀 흘리고 (그랬다,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씻고 나니 기분이 한결 개운했다. 아하, 이제 알았다. 그것은 당장 나 자신을 향한 구원이기도 했고, 또한 서로 이렇다할 대화도 없이 각자 멍하니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던 무미건조한 주말의 내무실을 가로지르며 두 체신머리없는 병장들이 난잡을 떤 것은 더욱 화목하고 사람 냄새 나는 내무실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기도 했다. 

어느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변해있었고, 나 또한 변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나 자신이었다. 더 낫다는 것은, 더 즐겁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가 말했던가. "내무실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체신머리 없이 난잡을 떨던 두 육군 병장의 얼굴에는 강철같은 유치함이 깃들어 있다"고 말이다.



2006. 4. 8. 土. 황사 바람 부는 날에, 大영일고등당구스쿨 공채 24기 목동의 김프로

 

  
 
 
 
 병장 박진우 (2006/04/10 10:10:39)

드디어 길을 잡으신겁니까. 한동안 흐물흐물해진 강록님의 굳은 심지가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합니다. 
강철같은 유치함이라. 
역시 강록님 답군요! 으하하    
 
 
병장 주영준 (2006/04/10 10:21:52)

그러면 '강철같은 명랑함'이라는 타이틀은 나와 김대현과 전 책마을 필진이자 시인부락 만담관 이준영이 구성하게 될 공동체에게 양보하시는 것이로군요. 이심전심. 텔레파시. 감사히 받겠습니다.    
 
 
병장 김강록 (2006/04/10 10:26:13)

영준 / 이거이거, 정 원한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배우는 학생인 저에게 벌써부터 그런 헌정 단체는 부담스럽습니다.    
 
 
일병 김현동 (2006/04/10 10:38:40)

하하하. 정말 재미있습니다.    
 
 
상병 이영준 (2006/04/10 13:59:29)

'체신머리 없는 육군 병장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권위적이지 않는, 그러한 병장들. 
그런 병장들이 만들어 가는 내무실이 기대되는걸요?    
 
 
상병 엄보운 (2006/04/10 17:09:35)

뼈가 씹히는 찬란한 웃음 소리.    
 
 
병장 김대현 (2006/04/10 17:32:22)

오랜만에 특기를 보여주시는군요. [찡긋]    
 
 
병장 김형진 (2006/04/10 18:06:42)

역시 김강록의 출동은 성공이었군요.    
 
 
병장 이석현 (2006/04/10 18:23:29)

제목이 맘에 들어요. 
Love your catchphrase.    
 
 
하사 윤석호 (2006/04/10 19:32:58)

나는 강록씨가 좋아요.(웃음) 
다만 이런글을 쓰기 문은 아닐터, 무언가 다른게 있음이 분명하겠지만, 
이런 글을 쓸 때의 강록씨는 더더욱 좋아요.(헤-)    
 
 
병장 김대현 (2006/04/10 19:41:08)

하지만 이 너머의 세계도 언젠가는 보여주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저도, 애쓸게요.    
 
 
상병 조주현 (2006/04/10 21:38:52)

사랑해요. GL    
 
 
병장 김강록 (2006/04/11 08:59:21)

석호, 대현 / 앗. '무언가 다른 것' ;이 너머의 세계'라고 표현되는 것은 뭘까요. 

석현 / 문득 생각난 건데, 예전에 자취방에 틀어박혀 인터넷에서 깝죽거리고 다닐 적에 어린 놈, XX 소아병, 쁘띠 XXXX, 등의 소리를 들으며 매일같이 얻어맞고 만신창이의 몰골로 연명하면서 단 한 마디 들었던 칭찬이, 김강록 저놈은 글은 별로지만 제목 하나는 잘 가져다 붙인다, 였습니다. 그리 오래진 않은 과거군요.    
 
 
병장 김대현 (2006/04/11 09:52:43)

강록씨랑 저 사이의 고민이죠 뭐. 유치함과 명랑함의 껍데기는 그대로지만, 그 안의 속살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실 테니, 언젠가는 다른 껍데기가 필요해질 날이 올 것만 같군요.    
 
 
병장 주영준 (2006/04/11 09:58:06)

푸훗. 소아병에 올인. 극X 모험주의자, 정도의 별명도 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병장 김강록 (2006/04/11 10:25:15)

대현 / 속살이라니, 그런 야한 표현을. (으하하하) 사실은 좀 어렵습니다. 대현씨의 말씀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이 전략적 차원에서 차용한 외피일 뿐이고 그속에 감춰진 '진짜 몸체'가 있다는 뜻인 거 같은데요. 제가 맞게 이해한 거라면, 저는 오히려 요새들어 부쩍 그 외피에 삶의 진실이 있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듭니다. 패배주의자에게 있어 지상과제는 삶에의 몰입이며, 저는 이를 위해 표면─그 적나라한 현장─을 향해서 달려가고자 합니다. 

단지 표현 상의 차이인지, 아니면 본질적인 면에서의 차이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게다가 '다른 껍데기가 필요해질 날'이란 것이 성장을 의미한다면, 지금의 제 모습이 그 언젠가 찾아올 상실에 대한 불안을 견뎌내기 위해 벌이는 몸부림인 것 같아 조금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영준 / 그러니까, 철 모르고 설쳐대는 20대 초반의 풋내기 자칭 사회과학도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비록 험악하긴 하지만 얼마든지 자기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욕을 꽤 들어먹었습니다. 나름대로 강하게 자란 셈이지요. 으흐흐흐    
 
 
병장 정치훈 (2006/04/30 12:33:37)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병장님의 쉬운 사회학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